깨달음이 연못 속에 있으니  

 

 

   2018. 4. 7. 충청북도 괴산에 있는 칠보산(七寶山)을 올랐다. 무술년 봄맞이 산행이다.
   충청북도 괴산(槐山)은 그 이름에 산(山)이 들어간 지명에 걸맞게 산이 많다.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에서 어디인들 산이 없으랴만 괴산은 그 중에서도 손꼽히게 산이 많은 곳이다. 오죽하면 괴산군청에서 발간한 책자 중에는 괴산에서 가 볼만한 명산(?)으로 99개를 소개한 것도 있다. 


   그 많은 산 중에서 칠보산을 택한 것은 이 산 아래에 있는 각연사(覺淵寺)라는 절애서 유래한다. 2005년 무렵에 우연히 “산”이라는 월간지를 보다가 이 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 절에 내려오는 아래와 같은 전설이 특히 흥미를 끌었다.

 

   각연사는 신라 법흥왕 2년(515년)에 유일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연사 앞산인 칠보산 너머 칠성면 쌍곡리 사동(절말) 근처에 절을 지으려고 공사를 시작했는데 자고 일어나보면 목재 다듬을 때 나온 대패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유일 스님이 밤잠을 안 자고 지켜보니 까치들이 몰려와 대패밥을 하나씩 물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따라가 보니 까치들은 칠보산 너머의 한 연못에 대패밥을 떨어뜨려 연못을 메우고 있었다. 그 연못에서 이상한 광채가 솟아나 들여다보니 석불이 하나 들어 있었다. 유일 스님은 절말에 짓던 절을 그 연못 있는 데로 옮겨 짓고 연못에서 나온 석불을 모신 후 ‘깨달음이 연못 속의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覺有佛於淵)라는 뜻에서 절 이름을 각연사(覺淵寺)로 지었다. 현재 비로전에 모셔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433호)이 연못에 있던 바로 그 석불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전설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각연사를 찾아갔다가 이 절을 품고 있는 산이 칠보산(동시에 보배산<보개산>의 자락이기도 하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2009년 청주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한 후 이 산이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명산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당시 각연사를 다시 가서 주지스님과 다담을 나누었다). 그래 언제 한 번 올라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봄맞이 산행지를 고르다 문득 이 산이 떠올라 주저 않고 택하였다. 작년 3월에 에베레스트 트레킹을 함께 했던 도반들이 동행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위 전설에 나오듯 본래 절을 지으려고 했던 곳이 다름 아닌 절말(寺洞)이라는 것이다. 지명 자체로 보아도 절이 있을 곳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곳에 짓다가 까치의 가르침으로 산 너머로 옮겨지었고, 지금은 절말이나 각연사 모두 칠보산의 이쪽 저쪽에서 각각 산행기점이 된 것이다. 그 옛날 유일 스님도 이 등산로를 따라 갔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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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보산 등산개념도]

 

    서초동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3시간(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은 시간 포함)  걸려 절말의 쌍곡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분명 등산객들을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이는 주차장은 제법 넓고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필부는 당연히 각연사에서 출발하여 원점회귀형으로 산행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1주일 전에 사전 답사를 다녀온 박재송 사무관(산행모임의 총무이다)이 절말의 쌍곡휴게소에서 출발하여 정상을 거쳐 떡바위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 경치도 좋고 무릎에 부담을 덜 준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대신 각연사는 들르지 못하게 된다.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일거양득은 말이 쉽지 흔한 일이 아니다. 

 

   초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한 동안 계속되더니 하필이면 등산 전날부터 쌀쌀해져 차에서 내리니 한기가 엄습했다. 그런 탓일까 우리 일행 외에는 등산객이 안 보였다. 그런데 괴산8경의 하나인 쌍곡의 계곡물은 한여름 장마철을 연상케 할 정도로 소리 내서 흐른다.

   그나저나 주차장 바로 옆의 계곡을 건너려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디디고 건널 돌다리가 안 보인다. 결국 10여 분 거리의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가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이왕이면 주차장 근처에 다리를 놓으면 좋을 텐데... 추측건대, 다리를 먼저 놓고 주차장은 그 후에 조성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리를 건너서 정상까지 거리는 4.3km인데, 처음 한동안은 완만한 계곡 길로 걷기가 수월하다. 다만 계곡의 지형에 맞춰 때로는 이쪽 때로는 저쪽으로 길이 나 있어 징검다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런데 징검다리의 돌들이 지금도 물 위로 간신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지라, 한여름 장마철에 물이 불면 아무래도 징검다리가 물에 잠길 것 같다. 폭우가 쏟아지면 계곡을 건너는 게 위험하여 등산로가 폐쇄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계곡 길에 쌍곡구곡(雙谷九谷) 중 제7곡인 쌍곡폭포(雙谷瀑布)가 있다. 쌍곡 전체의 계곡이 남성적인 데 비해 이 폭포는 수줍은 촌색시 같은 정취를 물씬 풍긴다.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는 듯 8m정도의 반석을 타고 흘러내린 물이 여인의 치마폭처럼 펼쳐진 못으로 떨어진다. 상류에 오염원이 일체 없는 곳이라 초록빛 못은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그지없이 맑다. 더운 여름이라면 당장 뛰어들고 싶을 정도이다. 그 못 주위에 다소곳이 핀 진달래(두견화)가 촌색시의 수줍은 아름다움을 더한다. 그 꽃잎이 물위로 떨어져 흘러내려 가면 옛 시인이 노래한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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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곡폭포]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표현을 원용하자면,
“진달래 뜬 쌍곡에 산영(山影)조차 잠겼어라.
 아이야 무릉이 어디뇨 나는 옌가 하노라”
이고,

 

이태백의 표현을 빌리자면,
“鵑花流水杳然去(견화유수묘연거. 두견화가 물에 떠 아득히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별천지로세 인간세상이 아니로구나)”
이다.  

 

   한 시간 정도 걸어 살구나무골 합수지점 삼거리에 다다라 좌측으로 방향을 잡자 이제까지의 완만했던 등산로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곳곳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심지어 어떤 철계단은 경사도가 거의 수직에 가까워 계단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올라가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갈수록 시야가 넓어져 바라다 보이는 경치가 더욱 좋기 때문에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지게 된다. 다만 그러잖아도 쌀쌀한 날씨에 능선에는 바람까지 세차게 부는 통에 중무장하지 않고 온 것을 거듭 후회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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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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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능선]  

 

    앞서 언급했듯이 한여름 장마철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계곡에는 물이 넘쳐나는데, 고도가 높아지면서 길옆에 쌓인 눈이 이따금 보이더니, 정상 부근으로 가까워질수록 맞은편으로 바라보이는 산에는 거의 산 전체를 덮을 정도로 눈이 하얗게 내려 있다. 며칠 전에도 이 일대 산들에 눈이 오긴 했지만, 아마도 겨우내 내린 눈이 산의 북사면에서는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있는 듯하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따로 없다. 한양 나그네는 봄을 찾아 산에 왔건만 그 봄은 어드메에 있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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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쌓인 산]

 

    이제까지 3.6km 왔고 앞으로 정상까지는 700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활목재에서 잠시 한숨 돌리고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오른쪽 아래로 예의 각연사가 내려다보인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앞서 언급했듯이 칠보산을 사이에 두고 우리가 산행 출발지로 삼은 절말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셈인데, 그 옛날 절의 창건 당시 까치들이 어찌 알고 절말 공사장의 대패밥을 저리로 옮겨갔을까. 창건주 유일스님에게 절터를 잡아 줄 정도로 신통력이 뛰어난 그런 까치들이 왜 지금은 없는 것인지... 찌든 공해를 피해 공기 맑은 다른 세계로 가버린 걸까. 저 절의 석조비로자나불 부처님께 여쭤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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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못 미친 곳의 공터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속리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들이 지나간다(칠보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자연공원법시행령이 개정되어 지난 3월 13일부터 자연공원(국립공원, 도립공원, 군립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는바(1회 위반시 과태료 5만원, 2회 이상은 과태료 10만원), 아마도 단속 차 나온 것 같다. 그들에게 수고한다며 점심용으로 가져온 빵을 건네주자 계면쩍게 웃는다.

 

     비주류(非酒流)인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대부분의 산객들에게는 산에서 정상주(頂上酒)를 마시는 것이 산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젠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히말라야를 가도, 알프스를 가도 음주금지를 듣지도 보지도 못했건만, 그에 비하면 야산에 불과한 우리나라 산에서는 이를 금하니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을 위한 조치라니 드러내 놓고 불만을 토로하기에도 멋쩍을 터이지만, 이런 것까지 시시콜콜 국가가 국민생활을 간섭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관점에서 이미 청와대 게시판에는 음주금지조치를 철회하라는 국민청원이 올라가 있다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석처럼 아름답다 하여 칠보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 산(옛날에는 칠봉산으로 불렸다고도 한다. 그런데 막상 무슨 기준으로 봉우리가 7개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불교의 일곱 가지 보물인 금·은·산호·거저<바다조개>·마노<석영>·파리<수정>·진주처럼 아름답다 하여 칠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절말과 각연사의 전설에서 보듯이 칠보산은 불교와 인연이 깊다. 다음에는 그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은 정상이 해발 778m이다. 북한산 백운대(해발 836m)보다 낮다.

 

     그런데도 오르기가 백운대보다 더 힘든 것 같다. 여러 번 올라간 백운대와는 달리 이 산은 첫걸음을 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주위 경치는 어떤가? 당연히 칠보산이 훨씬 낫다. 아예 비교가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산은 이미 도심 속의 산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백운대에 오르면 전후좌우로 온통 아파트가 즐비하게 보인다. 그에 비하면 칠보산의 정상에서는 끝없이 겹치고 이어지는 산들만 보인다. 그 산들이야말로 보석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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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보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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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의 파노라마]

 

    무릇 어느 산이든  정상에 일단 서게 되면 그 다음은 내려가는 일만 남는다. 그래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우리의 삶을 등산에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칠보산 정상에서 600m 내려가면 청석재이다. 여기에서 각연사로 내려가는 길(1.7km)과 떡바위로 내려가는 길(2.1km)이 갈린다. 각연사로 내려가는 쪽이 더 가깝고 마음도 그 쪽으로 쏠려 있지만, 한양에서 타고 온 차가 있는 곳으로 가려면 떡바위 쪽을 택할 수밖에 없다.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하는 산행은 집 근처에서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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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재의 이정표]

 

    하산 길에서도 가파른 암릉을 지나고, 철계단을 내려가고, 나무 밑둥에 매놓은 밧줄에 의지하여 발걸음을 간신히 떼는 경우가 수시로 생기지만, 올라갈 때보다는 확실히 시간이 덜 걸린다. 오후 2시에 하산을 시작하여 3시 10분경에 떡바위에 도착했다. 쌍곡계곡을 건너는 다리 위에 떡바위 이정표가 걸려 있다. 우리는 이곳으로 하산했지만 이곳을 산행기점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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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떡바위 등산로 입구]

 

     그런데 쌍곡구곡의 제3곡이라는 떡바위(餠岩)는 정작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인다. 바위 모양이 마치 시루떡을 자른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떡바위로 불린다는데,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전설에 의하면, 양식이 모자라고 기근이 심했던 시절에 사람들이 떡바위 근처에 살면 먹을 것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20여 가구가 이 바위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곡에 있는 많은 바위가 다 고만고만하여 어느 것이 떡바위인지 알 길이 없다. 동네사람들이라도 지나가면 붙잡고 물어보련만... 자고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모르는 눈에는 보일 리가 없다. 

                     
   궁금증을 뒤로 한 채 차를 타고 수안보로 이동하였다. 수안보파크호텔의 사우나에서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고, 이어서 영화식당으로 가 산채정식으로 배를 불리는 것이야말로 촌부가 1994년 충주지원장으로 부임했던 시절부터 애용해 온 산후(山後)코스이다.

   영화식당의 주인은 지금도 반가이 맞아준다.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정(情)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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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식당의  산채정식]


(후기)
    봄을 찾아 산에 갔다가 봄은 고사하고 추위에 떨다 귀경한 후 바로 여주 금당천변 우거로 내려갔다. 그런데 마당에 들어선 순간 수양벚나무에 만발한 꽃이 촌부를 맞이한다. 아뿔싸, 봄은 이미 벚나무위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걸 모르고 엉뚱하게 산속을 헤매다니...
그러기에 옛 시인이 진즉에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이라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그의 표현을 빌려본다.

 

盡日尋春不見春(진일심춘불견춘) 
杖藜踏破幾重雲(장려답파기중운) 
​歸來對面垂柳花(귀래대면수류화)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온종일 봄을 찾아 헤맸으나 구경도 못하고

지팡이 짚고 구름 속을 몇 겹이나 헤맸던가.

하릴없이 돌아와 수양벚나무를 대하니

아뿔싸, 봄이 그 가지 끝에 이미 와 있었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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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의 수양벚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