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 매는 아낙네야(칠갑산)

2018.06.20 00:10

우민거사 조회 수:825

 

                            콩밭 매는 아낙네야


구암 보시게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네. 거기에 지난 13일에 실시된 지방선거의 남은 열기가 더해진 때문인지 벌써 시원한 그늘이 그리워진다네.

   어제가 천중지가절(天中之佳節)이라는 단오였으니 아직 더위를 입에 담기는 분명 이르건만, 어쩌겠나 시절이 그러한걸.
   여전히 병원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외우(畏友)에게 이렇게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짧은 글로밖에 전하지 못하는 촌부의 마음이 편하지 않네그려.

 

   벗이여! 어서 떨치고 일어나시게~~
   그래서 우리 함께 금수강산을 찾아나서 보세.

 

구암,

 

   촌부는 지난 16일(토)에 충남 청양의 칠갑산(七甲山)을 다녀왔네. 1989년 주병선이 부른 “칠갑산”이라는 가요로 인해 널리 알려진 바로 그 산일세.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이 노래로 인하여 그 이름이 하도 친숙해진 터라 언제고 한번 가 봐야지 하고 그 동안 별러 왔는데, 마침내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지. 촌부가 속해 있는 여러 산악회 중 하나인 연산회(緣山會)의 회원 중에 지금도 칠갑산 바로 밑에 어머니가 살고 계신 고향집이 있는 도반이 있어, 그의 안내로 연산회의 무술년 상반기 등반을 한 것이라네. 

 

   방배동에서 아침 7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칠갑산의 칠갑광장까지 115km를 3시간 걸려 갔네. 행락차량으로 천안-논산 고속도로의 정체가 심했기 때문이지.

   백화제방(百花齊放)의 화창한 봄날도 아니고, 온 산하가 붉게 물드는 가을 단풍철도 아닌,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이 흐르는 여름철에 행락객이 이리도 많을 줄은 몰랐네. 공주의 정안휴게소는 남자화장실마저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걸세.    

 

       칠삽산위치도.jpg

 

  
   청양군의 중심에 있는 칠갑산(七甲山)은 높이가 561m인데,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네. 칠갑(七甲)이란 이름은 우주만물 생성의 원리인 칠(七)자와 천체 운행의 원리가 되는 육십갑자 중 으뜸인 갑(甲)에서 연유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여겨 이곳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니 확실히 범상치 않은 이름인 것만은 분명하네그려.
  
   이처럼 이름은 거창하지만, 산 자체는 높지 않아 칠갑광장(칠갑산의 북쪽 기슭)에서 정상까지 3km이고, 정상에서 장곡사(칠갑산의 서쪽 기슭)까지 3km일세. 그리고 그 등산로가 널찍하고 완만하여 거의 둘레길 산책로 수준이라네. 더구나 정상만 제외하고 숲이 우거져(선글라스를 안 써도 될 정도) 한여름에도 시원한지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산인데,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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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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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

 

   특히 칠갑광장에서 한티재(大峙) 정상까지는 비록 거리가 짧기는 하지만 아스팔트 포장도로(한티재에 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이 길로 차가 다녔다네. 청양애서 공주 가는 길이지)여서 산행이라고 하기도 민망하네.

   사실 차가 더 이상 안 다니는 마당이니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황톳길로 만들면 좋으련만, 청양군이나 충청남도에 돈이 없는 건지, 아니면 당국의 관계자들이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건지, 포장도로로 그대로 방치해 두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네. 모르긴 해도 황톳길로 만들면 대전의 계족산처럼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한티재 마루턱에는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동상이 있더군. 경기도 포천 출신의 선생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곳 청양에서 살았고, 선생의 고택과 사당(慕德祠)이 청양에 있다 보니 동상을 이곳 한티재 마루턱에 세운 듯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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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동상]

 

 

   한티재 마루턱에서 칠갑산 정상까지 멀지 않은 등산로에는 산장, 천문대. 충혼탑, 정자(자비정) 등이 있네. 그런데 이들 시설보다도 눈길을 끄는 것은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일세. 나이는 50대쯤으로 보이는 이 아낙네(10년 후에 오면 60대려나^^)의 얼굴에는 노랫말이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수심이 어려 있더군.

   이 동상을 보며 잘 만든 노래 하나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런 게 문화의 힘이 아닐는지. “칠갑산” 노래로 알려지지 않았다면, 해발 561m의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 산을 촌부가 찾을 일은 아마도 없지 않았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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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

 

    그늘이 없어 쨍쨍 내리쬐는 햇볕 아래 그대로 드러나 있는 칠갑산 정상은 제법 넓은 평지였는데,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사람들로 붐볐네. 특이하게도 칠갑산 산신령께 통일, 안녕, 건강을 기원하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었네. 등산객들더러 제사를 지내라는 건지, 청양군(또는 충청남도)에서 제사를 지내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시산제를 지내기에는 좋겠더군. 

   칠갑산의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산의 사면을 돌아보는데, 동서남북 각 방향마다 인근의 지명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관계당국의 친절한 배려가 내심 고마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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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정상]

 

   그런데 그 안내판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웃음이 절로 나왔다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청양 시내, 오서산, 대천항 등이야 그렇다 치고, 보이지도 않고 보일 리도 없는 지리산, 한라산은 뭔가. 그래도 그것까지는 애교로 봐 줄 수 있는데, 브라질, 뉴욕, 모스크바, 몽골, 호주, 네팔, 베트남... 청양(충청남도) 사람들 뻥이 이렇게 심할 줄이야!
   세계적인 명승지에 가 보면 그곳에서 세계의 다른 유명 도시들까지 방향과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를 가끔 볼 수 있긴 하네만, 그야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드니 그런 것 아니겠나. 그렇다면 칠갑산 정상의 이 안내판은? 칠갑산이 이미 세계적인 명산이 되었다는 자신감의 발로? 아니면 전 세계에 칠갑산의 존재를 알리겠다는 원대한 꿈? 이도 저도 아니면 혹시 찾아올지 모를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지리 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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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정상의 안내판]

 

   장곡사까지 내려가는 하산길은 올라온 길에 비하면 경사도도 있고, 너덜지대도 있지만, 다른 산들에 비하면 역시 평탄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네. 도중에 ‘아흔아홉 골’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그곳에서 막상 내려다보면 그 ‘아흔아홉’이라는 숫자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흔아홉 칸’, ‘아흔아홉 구비’의 그 ‘아흔아홉’임을 알 수 있지. 뭔가 부족한 듯하면서도 꽉 찬 느낌! 그게 바로 백(100)에서 하나 모자라는 아흔아홉(99)이란 숫자가 주는 매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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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아홉 골]


  빼어난 볼거리가 없이 평범하기만 한 칠갑산에서 그나마 의미 있는 곳은 장곡사(長谷寺)이네. 신라 문성왕 12년(서기 850년)에 보조(普照)선사 체징이 창건한 이 고찰에는 문화재가 많아 상대웅전, 하대웅전, 금동약사여래좌상,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철조약사여래좌상과 미륵불괘불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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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 전경]

 

   이 절의 특이함은 무엇보다도 대웅전이 두 개라는 데 있지. 그래서 상대웅전, 하대웅전으로 구분한다네(현판은 둘 다 그냥 대웅전일세). 상대웅전에는 주불로 비로자나불, 협시불로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을 보셨고,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불만 모셨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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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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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대웅전]

 

 

    그런데 구암,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이름은 둘 다 대웅전인데, 어디에도 ‘대웅(大雄)’인 석가모니불은 없으니 말일세.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은 적광전(또는 광명전), 약사여래불을 모신 전각은 약사전(또는 유리보전),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은 극락전이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이 대웅전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전각에 대웅전이라는 현판이 걸렸을 때는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한데, 아쉽게도 두 대웅전에는 이에 관한 설명이 없었네.

    뿐만 아니라 상대웅전에 모신 비로자나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은 특정한 의도 하에 한군데 모신 것이 아니라, 언뜻 보면 여기저기서 되는 대로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네. 불상의 조성재료가 어느 것은 철조(아미타불, 비로자나불)이고 어느 것은 금동(약사여래불)인가 하면, 좌대도 전부 모양과 재질이 제각각이었거든. 한꺼번에 조성한 것이라면 그럴 수가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치 불상박물관(또는 그냥 보관창고) 같은 느낌이었네. 상대웅전의 바닥에 마루가 아니라 전돌을 깔아 놓은 것도 그런 연유 아닐까 싶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조선 중기 내지 후기에 개축한 탓인지 두 대웅전 모두 팔작지붕이 아니라 맞배지붕이었네.
   아무튼 참 특이한 절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절문을 나섰다네.

 

   절에서 나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식당으로 가 쏘가리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는데, 쏘가리가 그렇게 큰 게 있는 줄 처음 알았네. 쏘가리도 양식을 하는 줄 누가 알았나.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맛만 좋으면 그만인즉, 포식을 하였다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별건가. 

 

구암,

 

   어서 일어나시게!

   그래서 함께 칠갑산에 가 보세. 지금까지 쓴 이야기를 현장에서 들려주고 싶으이. 그 때까지 장곡사 대웅전에 얽힌 비밀(?)을 촌부가 풀어보겠네.

 

무술년 단오지제에 우민이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