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깊어가고(통도사)

2010.02.16 12:31

범의거사 조회 수:10195

 


             가을은 깊어가고  


  
龜岩大師,

가을이 깊어가고 있네.
그 깊어가는 가을을 어떻게 맞이하고 보내고 계시나?

나는 지난 주말(2006. 9. 30.)에 양산 통도사에 다녀왔다네.
자장율사가 가져 온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五大寶宮 중 하나인 이 절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 다녀온 것이라오.
  
  通度寺는 과연 이름만큼이나 큰 가람(伽藍)이었지. 널리 불법에 通達하여 중생을 濟度한다는 이념에 걸맞게 佛寶寺刹로서 손색이 없었다네.

  ‘高山에 있는 최고의 절은 月精寺요, 평지에 있는 최고의 절은 通度寺’라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더군.   

   영남알프스의 한 봉우리인 영취산(靈鷲山, 1,059m. "영축산"이라고도 한다네)을 배경으로 그 초입에 위치하였건만(절의 입구가 시가지 바로 옆에 있더군),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숲이 우거져서인지 마치 높은 산의 깊숙한 자락에 온 듯하였다네.  

  一柱門을 지나 天王門을 거쳐 不二門에 이르는 동안에도 좌우로 건물이 이어졌는데, 不二門을 지나니까 건축물이 빽빽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섰더군. 서기 646년에 창건된 이 천년고찰에는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殿閣이 많았다네.


  그런 만큼이나 우리나라 사찰 중 불교 유형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하며(43종), 聖寶博物館(1999. 4. 15. 개관)은 세계박물관을 통틀어 가장 풍부한 불교 유물을 자랑한다고 하더군. 박물관의 겉모습이 마치 城처럼 보였다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부처님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었지. 처음에 그 이름을 들었을 때는 “아니 무슨 계단(階段)에다 사리를 모시지?” 하고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계단(戒壇)이었다네.


  돌로 쌓은 이 사각형 계단은 2층이었는데, 아래층(높이 82cm)은 한 변의 길이가 대략 10m 정도 되었고, 위층(높이 40cm)의 가운데에 石鐘이 놓여 있더군. 그 石鐘 속에 사리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

   사리함의 정확한 위치는 도난 방지를 위하여 본래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게 보통이니 혼자만의 추측일 뿐이네.
  그나저나 평소 목조문화에 익숙해 있는 書生의 눈에는 이 석조 계단이 낯설었지. 마치 異國의 조형물을 보는 듯했거든.
    
   금강계단 앞에는 대웅전이 있더군. 지붕이 특이하게 T자형인 게 눈에 띄었으나, 정작 내부는 그냥 장방형이었다네.

   사찰의 중심건물인 대웅전임에도 안에는 佛像이 없는데, 이유인즉, 바로 뒤에 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이라네. 사리가 곧 부처님인데 새삼 불상을 또 모실 이유가 없는 것이지.


   그래서인지 또 하나 특이한 게 이 건물에 붙인 현판을 보니까 서쪽에는 大雄殿, 남쪽에는 金剛戒壇이라고 씌어 있더군. 아무튼 이 대웅전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소원을 빌었지. 나약한 중생이 부처님께 의지하여 비는 소원이야 늘 같은 것 아니겠나.      

龜岩,

       대웅전에서 나와 옆에 있는 연못(九龍池)에 동전을 던지며 다시 소원을 빌고, 발길을 돌려 大光明殿(절에 따라서는 ‘大寂光殿’ 또는 ‘毘盧殿’이라고 하지)으로 갔다네.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지.

  大師도 이미 알고 있듯이, 이 세상에 광명의 빛을 비추는 부처인 비로자나불은 모든 부처의 本位라서 法身佛이라고 하며, ‘法身淸淨廣無邊이요,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法身은 청정하여 끝이 없고, 세상 만물에는 다 불성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지.

 

    이보시게, 나 같은 村者에게도 불성이 있겠지? 어찌 생각하시나?


  응진전, 명부전, 관음전, 용화전, 장경각, 영산전, 약사전, 극락전, 만세루 등 많은 전각들을 일일이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走馬看山으로 스쳐 지나간 후, 山內의 여러 암자 중 자장암과 서운암을 보러 차에 올랐다네.

   통도사의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 낮은 언덕을 넘자 놀랍게도 갑자기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나타나더군.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거나, 인근에 인가가 눈에 띄지 않는 것으로 보아 통도사에서 경작하는 논밭으로 보였는데, 그 넓은 면적에 비추어 절 식구들을 다 먹여 살리기에 충분해 보였지. 통도사는 확실히 여러 면에서 풍요로운 절임을 새삼 느꼈다네.

  
     龜岩大師,

  
      자장암(慈藏庵)은 자장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하기 전에 수도하던 자그마한 암자인데, 금와보살로 인하여 찾는 이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더군.

  자장율사가 불공을 드릴 때는 법당 뒤에 있는 암벽 밑에서 나오는 石間水를 떠서 부처님께 올렸는데, 어느 날 금개구리가 나타나 그 물을 헤집고 다녔다지 뭔가.
   그래서 자장율사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암벽에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金蛙孔)을 뚫고(깊이 15cm) 그 개구리를 그곳에 들어가 살게 하였다나.
    그로부터 1,300년이 넘는 지금까지 그 개구리가 금와보살(金蛙菩薩)로 불리면서 자장암, 아니 통도사의 수호신이 되어 왔다고 하더군.

   처음의 그 개구리인지 아니면 새끼에 새끼를 낳아 대를 이어 온 것인지는 알 수 없고, 다만 몇 달에 한 번꼴로 그 구멍에서 금개구리를 발견할 수 있는데, 도대체 수직암벽 가운데 사람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구멍으로 어떻게 개구리가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지, 평소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먹고사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몇 달에 한 번밖에(그것도 정해진 날이 없이) 출현하지 않아 꼭 보아야 할 사람의 눈에만 띄는 까닭에 이 금와보살을 본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른다고 하는데, 마침 이 날 나타나는 바람에 親見할 수 있었다네.
     貧道에게 과연 어떤 행운이 주어질까 궁금하이. 평소 염원하던 소망이 이루어지는 걸까?^^

   서운암(西雲庵) 역시 아담한 암자인데, 三千佛을 조성한 법당도 이색적이지만, 그보다는 절마당에 있는 장독대가 눈길을 끌었다네.
    신문지상이나 TV화면에 자주 소개되는 이 장독대는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옆의 사진을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듯하이. 정말 멋진 장독대더군.

    장독대 아래 주차장에서 이곳에서 담근 된장을 팔던데, 사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네. 말로 표현키 어려운 감흥은 그냥 감흥 그 자체로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낫지 않을까? 언제 한 번 묵은 장맛을 보러 가지 않으시려나?

이보시게 대사,

     가을이 더 무르익기 전에 통도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사동 골목에서나마 遭遇하여 그대가 좋아하는 茶香이라도 즐겨봄이 어떠신가? 백동선생도 불러서 말일세. 하회를 기다리겠네.

                                                  2006. 10. 5.

                                                           凡衣

탁발승의 새벽노래.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