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쉽지 않은 길(관악산 팔봉능선)

2010.02.16 12:39

범의거사 조회 수:11731

 


             결코 쉽지 않은 길

  
 
옥봉(沃峰)선사님,

  한동안 근황을 여쭙지 못하였습니다.
무고하신지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지냄을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벌써 달력의 뒷장이 더 이상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 가는 세월이 아쉬워 지난 주말에 관악산을 찾았습니다. 법원도서관 산악회 식구들과 정해년(丁亥年) 송년 산행을 한 것이지요.

  12월 1일 아침 9시 30분에 30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모이니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의 만남의 장소가 꽉 차더이다. 그곳에서 마을버스(2번)를 타고 서울대학교 구내로 들어가 제2공학관(신공학관) 앞에서 내려, 10시부터 바로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소생도 관악산을 많이 가본 편에 속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는데, 이 등산로는 처음이었습니다. 역시 산은 어디를 가든 무궁무진한가 봅니다.

  출발지에서 자운암(慈雲菴)까지는 등산로가 고속도로처럼 잘 뚫리고 다듬어져 있는데, 아마도 절을 찾는 신도들을 위하여 그렇게 해 놓은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무학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자운암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곧 암릉길이 나오더군요. 관악산의 정상까지 이어지는 이 능선(능선의 이름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은 온통 바윗길이었습니다.



   봉우리를 몇 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올라가는데, 고도가 높아질수록 서울대학교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1975년 처음 관악캠퍼스로 이사했을 때의 황량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건만, 지금은 빽빽하게 들어선 각종 건물들로 인하여 그 넓던 캠퍼스가 오히려 좁아보였습니다.
   지구촌이 한 마당이 되어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있어 ‘세계 속의 서울대’로 키워 나가야 할 판에, ‘서울대망국론’ 운운하며 서울대를 없애자고 하는 코메디 같은 이야기가 한 동안 인구에 회자(膾炙)되었었지요. 요새는 그런 소리가 잠잠해진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여야 하나요?

   바윗길 능선을 오르려니 두 발로는 모자라 두 손까지 동원하여야 한 경우가 많았으나, 그게 오히려 산 타는 재미를 더 느끼게 하였습니다. 2시간 걸려 정상에 오르니 겨울산을 찾은 산객들로 꽤나 붐비더군요. 하긴 점차 아열대화하고 있는 기후 탓에 명색이 12월임에도 불구하고 해발 629m의 정상에서조차 추위를 느끼지 못하겠으니, 사람이 많을 수밖에요.
  정상의 벼랑 끝에 있는 연주대(戀主臺)도 예외는 아니어서 불공을 드리는 분들로 만원이었습니다. 때문에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할 공간이 없어 선 채로 기도를 하여야 했답니다.

   하산길은 팔봉능선(八峰稜線)을 택하였는데, 이 능선 역시 초행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송년 산행지를 관악산으로 정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 능선을 가보는 것이었답니다. 산악회장 송봉준 판사가 사전 답사를 다녀온 후에 가족 동반이 가능할 정도로 매우 쉬운 코스라고 산악회원들을 유혹하였었는데...

   정상에서 연주암을 왼쪽에 두고 남서쪽으로 2km 내려간 지점에서 시작되는 팔봉능선은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어지는 능선입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많은 산들 중에 이름에 ‘악(岳)’자가 들어가는 산은 일단 험한 바위산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서울대에서 정상까지 올라가는 능선이 그렇더니 이 팔봉능선 또한 암릉길 그 자체였습니다. 관악산(冠岳山)이 확실히 이름값을 하더군요.



   봉우리마다 손발을 다 동원해야 오르고 내릴 수 있는 반면, 일단 오르고 나면 주위에 펼쳐지는 멋진 경치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해발 629m라지만 관악산의 산세가 깊은 것에 새삼 놀랬습니다.
   산악회장에게 “이런 곳을 어찌 그리도 쉬운 코스라고 말했더란 말인가?” 하고 물으니, 자기가 사전 답사할 때는 봉우리들을 전부 우회하였다는 대답에 한바탕 웃고 말았습니다. 결국 3시간 30분이면 충분할 거라던 산행이 5시간 걸려서야 끝이 났답니다. 한 마디로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지요.

  하산길의 종점인 서울대학교 옆의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가 거의 공원처럼 꾸며져 있는 것을 보고 관악구청을 칭찬하였답니다. 지방자치의 위력인가요, 아니면 그만큼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증거인가요, 아니면 그 둘 다인가요?

  선사님,
  남은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2007. 12. 3.

                                                      凡衣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