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보시게.

 

  오랫동안 적조하였네그려.

  한반도 상공을 떠날 줄 모르고 수시를 폭우를 퍼부어 대는 먹구름으로 인하여 수해를 입지는 않았는지 궁금하이. 내가 사는 동네는 아는 바와 같이 지난 7월 27일의 우면산 산사태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다네. 그나마 우리 집은 전화가 한동안 불통이 되고, 거실 앞의 풀밭이 ‘뻘밭’으로 변한 것 외에는 다행히도 큰 피해는 면했다네.

 

  사실 그 큰 비가 올 때 마침 내가 국내에 없었던지라 외국에서 TV 화면으로 전해지는 우면산 산사태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른다네. 거북이(큰 아들놈)는 전화로 걱정 말라고 하긴 하였지만, 막상 귀국하여 동네를 둘러보니 걱정 안 할 일이 아니었음을 절감하였지.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이번 일을 겪고는 거북이는 산 밑에 살 일이 아니라고 다른 데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아침 일찍 임광아파트와 삼성래미안아파트 단지를 지나 예술의 전당을 거쳐 대성사까지 다녀왔다네. 원래는 우면산의 등산로를 따라 대성사까지 다녀오는 게 나의 아침 운동코스였는데, 꿩 대신 닭인 셈이지.

 

  구암,

 

  여름휴가는 잘 다녀왔는가? 나는 7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미국의 UN본부와 도미니카, 브라질, 페루의 법원을 공식 방문하는 미주 출장을 다녀왔네. 각 나라별 법원 방문, 장관이나 의회의원들과의 만남, 우리 공관(대사관, 총영사관) 방문 및 업무현황 청취, 교민간담회, 오찬이나 만찬 등 공식일정에 관한 것들은 이 편지에 어울리지 않아 가능한 한 생략하고, 여행 중 보고 느낀 것 위주로 한번 정리하여 보겠네.

 

 

1. 뉴욕

 

   이번 여정의 첫 기착지로 14시간의 비행 끝에 내린 미국 뉴욕의 모습은 23년 전 내가 처음 접했던 그것이 아니더군. 그 때에 비해 한결 깨끗해진 거리가 정돈된 이미지로 내게 다가왔지. 거기에 전보다 치미주1.jpg 안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까지 들어서일까 39도나 되는 더운 날씨가 그렇게 덥다고 느껴지지 않더군. 어떻게든 짬을 내어 거리를 한번 산책하여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에 쫓기다 보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네.

 

   한국이 낳은 ‘세계의 대통령’ 반기문 UN 사무총장, 그 분을 UN 본부의 사무총장 집무실에서 대하니 참으로 가슴이 뿌듯하더군. 그 분이야 한국만이 아닌 전세계를 위하여 일을 하지만, 그 분이 한국인이라는 게 실로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더구나 만장일치로 연임에 성공하였으니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지.

 

   그런데 우리나라가 UN분담금이 밀려 있다는 말에 얼굴이 붉어졌네. 그것 참... 간 김에 총회장과 안전미주2.jpg보장이사회 회의실도 둘러보았지. 치열한 외교전쟁의 각축장, 그곳에서의 한국의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 하루빨리 통일이 된다면 어깨에 더 힘을 줄 수 있으련만...

 

  사흘 전에 먼저 미국에 와 있던 집사람과 합류하여 뉴욕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도미니카로 갔네. 뉴욕에서 도미니카의 수도 산토도밍고까지는 비행기로 4시간 거리라네.   

   그런데 American Airline 비행기가 뉴욕 JFK 공항에서 승객을 다 태우고도 1시간 30분이나 지나서야 출발하면서도, 나 원 세상에, 왜 그렇게 늦게 떠나는지 안내방송 한번을 안 하더군. 이래서야 어떻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나.

   이번 여정에서 비행기를 모두 11번 탔는데, 대한항공만한 비행기를 볼 수 없더군. 이건 팔이 안으로 굽어서 하는 이야기가 절대 아닐세.

   

2. 도미니카

 

   카리브해에 있는 섬나라 도미니카는 작년 지진으로 크게 피해를 입은 아이티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네. 이스파뇰라(Hispanõla) 섬의 서쪽 1/3이 아이티이고, 동쪽 2/3가 도미니카이지. 재미있는 것은 도미니카는 본래 아이티로부터 1844년 독립하였는데, 미주 대륙의 최빈국인 아이티에 비하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나라라는 것이네(1인당 GDP가 5,200달러).

   미국 메이저리그의 왕년의 홈런왕 새미소사, 그리고 현재 최고 연봉(320억 원)을 받고 뛰고 있는 알렉스 로드리게스(Alexander Emmanuel Rodriguez)가 본래 도미니카계라는 정도의 지식만 있을 뿐 이 나라에 관하여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찾아간 것인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

미주3.jpg

   그것은 바로 1492년 콜룸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처음으로 스페인의 식민지가 건설된 곳이 바로 이스파뇰라 섬이라는 사실이라네. 콜룸부스의 동생 바르톨로메오를 위시한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이곳에 최초의 식민도시 산토도밍고(Santo Domingo)를 건설한 후 이를 전초기지 및 병참기지로 하여 중남미의 곳곳으로 뻗어나간 것이지.

 

   미주4.jpg 그래서인지 산토도밍고의 소나 콜로니알 지구(식민지 시대의 도심)에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성당, 최초의 병원, 최초의 다리, 최초의 요새(오사마 요새), 최초의 유럽식 포장도로(부인들의 거리 : Calle Las Damas) 등 ‘최초’가 붙는 유적들이 많더라고.

 

   유럽에 있는 중세 유적들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것들이라는 데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고, 도미니카인들은 바로 그 점을 내세우고 있지.  이러한 유적들이 몰려 있는 콘데(Conde)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 분위기를 띠고 있네.

 

   콜룸부스가 이 나라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하더군. 콜룸부스 동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콜룸부스 관저 박물관(크리스토퍼 콜룸부스의 큰 아들 디에고 콜룸부스가 총독관저로 사용하던 곳으로 콜룸부스 가문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도 있고, 산토도밍고 외곽에는 신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1992년에 콜룸부스 등대(Faro a Colón)를 만들어 놓았는데, 십자가 형태로 만들었다는 이 등대가 어찌나 큰지 그 십자미주5.jpg가의 형태를 제대로 보려면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네. 말이 등대이지 실제 기능은 기념관 비슷하여 내부에 48개국의 전시실이 있는데, 물론 한국관도 있다네. 또한 해군박물관, 해양박물관으로도 사용된다고 하더군.

 

    한편 이 거대한 콘크리트 건축물 안에는 콜룸부스의 유해를 담은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는데,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에 있는 콜룸부스의 관과 둘 중 어느 게 진짜인지 헷갈리네. 서로 자기네한테 있는 게 진짜라고 하니 말일세.

 

   여기서 도미니카의 슬픈 역사 한 가지를 소개함세. 이 나라에는 콜룸부스의 도착으로 스페인 식민지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타이누(Taino)족’이라는 원주민이 살았는데, 그들은 스페인 사람들에 의한 학살과 유럽에서 들어온 전염병으로 거의 멸종되었다는군. 그 대신 유럽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하면서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하여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왔고, 그들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mulato)족이 지금의 국민들 대다수(74%)라는 것이네.

 

   그런데 그 혼혈도 아프리카의 출신지가 다르다 보니 무려 82개 부족이 있다네. 그러다보니 이곳의 관광기념품 상점에 가면 나무 인형을 파는데, 그 인형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없다네. 82개 부족 중 특별히 어느 한 부족의 얼굴을 그려 넣을 수는 없는지라 얼굴을 아예 안 그린다는군.

 

   미주6.jpg이처럼 원주민은 없고 이방인만 사는 나라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새삼 수많은 외침을 겪으면서도 이 강토를 지켜온 우리의 옛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일세.

 

    아프리카 흑인 노예 이야기를 하려니 꼭 언급할 게 하나 있네. 다름 아니라 도미니카 사람들이 아침에 눈 뜨면서 듣기 시작하여 밤에 자려고 눈감을 때까지 듣는다는 메렝게일세.

 

   메렝게(merengue)는 이곳의 민속 음악으로 2/4박자의 쾌활한 리듬의 춤곡인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들을 수 있지. 이곳 사탕수수 농장에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육체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위해 북과 같은 타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하는군. 나도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간 음식점에서 불려나가 졸지에 태생적 몸치임을 드러내고 말았지.

 

   미주7.jpg 도미니카 대법원을 공식 방문한 자세한 이야기는 딱딱하고 관심도 없을 테니 앞서 말한 대로 생략하겠네. 다만, 수베로(Jorge Subero Isa) 대법원장에게 대법원에서 연간 처리하는 사건수를 물으니 엄청 많다는 말로만 대신하는 그의 말에서 동병상련을 느꼈지. 금년 중에 한국을 방문하여 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그러고 싶다고 하더군.

 

   산토도밍고의 힐튼호텔은 바닷가에 세워져 있어 방에서 카리브해가 바로 보인다네.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 용인의 캐리비안 베이, 카리브해 유람선 크루즈여행 등으로 우리에게 그 존재가 알려진 카리브해, 왠지 모르게 멋진 낭만이 깃든 바다일 거라고 생각해 왔지. 그러나 호텔방에서 내려다본 카리브해, 직접 바닷가에 가서 본 카리브해는 그런 환상의 바다가 아니더군.  서울의 한강처럼 산토도밍고를 관통하는 강이 토해내는 흙탕물로 누렇게 된 바다, 우리나라 서해안에 가면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런 바다가 내 눈앞에 있었을 뿐이라네.

 

   7월 24일, 그날이 마침 일요일인지라 시간 여유가 있던 박동실 대사(경복 51회일세)가 나의 실망스런 기분을 눈치 챘는지 푸른 카리브해를 보러 가자고 하여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려 도미니카의 동부지방 해안가로 갔다네. 미주8.jpg

 

   이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나? 다름 아닌 미국의 부자들이 휴양하는 리조트 단지가 있다네. 미국 부자들은 이곳에 비행장까지 건설하여 이곳에 먹을 것까지 가지고 와 실컷 놀다가 간다는군. 마치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租借地 비슷하다고나 할까. 영화나 사진에서 보던 모습일세.

 

   백사장이 펼쳐지는 얕은 바다에 통나무 다리를 놓고, 그 끝에는 초가집을 지어 놓고, 거기서 찻잔이나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그 이상은 구암대사의 상상에 맡기겠네. 마침 비가 부슬부슬 내리건만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더군.

 

   도미니카에도 한국 교민(현재 약 460명)이 오래 전부터 뿌리내리고 산다네. 자유무역지대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 열려 있어 그곳에서 사업을 하다가 아예 정착을 한 사람들이 많지. 미주9.jpg 어떻게 이 생소한 땅에까지 올 마음을 먹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참으로 억척스럽고 자랑스런 한국인이 아닐 수 없지.

 

   산토도밍고에 있는 한식당에 근무하는 현지인 종업원들이 모두 한복을 입고 있었고, 식당 안에는 우리 전통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며 감사할 따름이었네.

 

   이런 자랑스런 한국인 중에서도 특히 누구보다도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파견 나온 해외봉사단원들이말로 보배로운 존재들이었네.

 

   우리가 6.25 전쟁의 참화를 겪어 힘겹게 살던 시절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찾아와 많은 도움을 받은 일이 있지 않은가. 곧 떠나는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도 그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처음 한국에 왔던 사람 아닌가. 과거에 그런 도움을 받던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지금 세계 각국에 나가 바로 그런 도움을 되갚고 있다네.

 

   이역만리 이국의 낯설고 물선 땅에서 자발적으로 봉사의 땀을 흘리는 젊은이들,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주10.jpg힘은 바로 이런 젊은이들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

 

    7월 25일, 오전 공식일정을 마치고 오후에, 바니(Bani)라는 곳에서 젊은 여자의 몸으로 오지 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화장실도 없는 빈촌에 공중화장실을 지어주는 일을 하는 현장에 일부러 찾아가 보았네. 그 봉사단원 덕분에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주민들이 바구니 가득 과일을 따가지고 와 환대를 하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

 

   이날 저녁에 산토도밍고 인근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봉사단원 20여 명을 초대해 식사를 함께 하면서 “여러분들이야말로 자랑스런 한국인”이라고 칭찬, 또 칭찬을 하였지만, 아무리 해도 미진하더군.

 

 

3. 브라질

 

   7얼 26일, 산토도밍고에서 브라질 상파울루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 파나마시티에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네. 비행시간은 산토도밍고에서 파나마시티까지 2시간 30분, 파나마시티에서 상파울루까지 7시간, 총 9시간 30분이 소요되더군.  

 

   미주11.jpg     

 

      브라질의 남부에 있는 상파울루(São Paulo)는 브라질 경제의 중심지라네. 해발 800m의 고원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는 상파울루주의 주도(州都)로 인구가 900만 명인 남미 최대의 상업도시이지.

     상파울루주가 브라질 전체에서 생산되는 설탕의 60%, 커피의 1/3, 과일의 50%를 생산하는 까닭에, 상파울루 사람들은 자신들을 파울리스타(Paulistanos)라고 부르며 자신들이 브라질 전체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는군. 시내 곳곳의 건물이나 상점의 벽에 보면 ‘Paulista 어쩌구’ 하는 표시가 눈에 띄네. 이런 자부심이 지나치다 보면 언젠가는 상파울루가 따로 독립하겠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네.

 

   이처럼 중요한 도시이지만, 고층빌딩이 즐비한 대도시답게 교통체증이 심하고, 치안이 불안하다네. 시내 중심가의 대성당 옆을 지나다가 차에서 내려 사진이라도 찍고 좀 자세히 볼까 했더니 우리 총영사관의 동행하던 정제서 영사님이 말리시더라고. 뿐만 아니라 우리 총영사관 건물을 들어갈 때도, 상파울루 연방법원 건물을 들어갈 때도 출입자가 체크되는 지하주차장을 통해서만 안내되더군. 그게 다 안전문제 때문이라는 거라지 뭔가. 아 참, 총영사관에는 외빈용으로 방탄차를 구비하여 두었더라고. 그래서 난생 처음 방탄차를 타보았네. 이래서야 원...

 

   그런가 하면 과룰로스 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옆으로 하천(폭이 서울의 중랑천 정도 되네)이 흐르는데, 인근 주거지나 상업지대에서 버린 오폐수가 그대로 흘러들어 악취가 코를 찌른다네. 상파울루의 첫 이미지를 확 망쳐버리는 것이지. 서울도 옛날에 청계천이나 중랑천이 그랬으려나... 아무튼 아직은 정비되지 않은 도시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

 

   아무렇거나 그래도 그 길에 세워진 수많은 깃발에는 삼성과 LG의 로고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어 뿌듯했지. 그러고 보니 이번 남미 여행 동안 공항이나 호텔의 TV는 의례히 둘 중 하나의 회사 제품이더군. 그 흔하던 일제 TV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네.

미주12.jpg

 

   브라질 이민 역사가 중국은 160년, 일본은 100년이라는데 한국이민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짧은 50년 정도 되었다네. 교민 수는 약 5만 명. 그런데 상파풀루에 공식적으로 소수민족 고유의 문화타운이 지정된 곳은 코리아타운뿐이라네.

 

    상파울루의 ‘봉 헤찌로’(Bom Retiro)지역이 2010. 1. 12. 상파울루시 의회의 조례로 코리아타운으로 공식 지정된 것이지. 교민들 대부분이 섬유업에 종사하여 브라질 사람 5명 중 1명은 한국인이 만든 옷을 입는다고 할 정도라는군. 

 

   이곳 상점이 들어서 있는 건물의 주인이 대개 유태인이라서 다소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비록 번듯한 고층건물이 즐비한 번화가는 아니고 늦은 시간이라 상점이 대부분 문을 닫았지만, 그 거리를 한 바퀴 돌아보며 한국인의 근면성과 개척정신에 새삼 감탄을 하였다네.

 

   미주13.jpg교민 중 이곳에서 외과병원을 하시는 분이, 한국에 총상환자를 다룰 의사가 없다는데 이곳에 연수를 오면 임상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다고 하여 한참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등이 오싹하였지. 이곳은 총기 규제를 안 해 총상 환자를 많이 다룬다고 하더군.

 

   브라질 교민이 이민 초기에는 의류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분처럼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 상파울루 연방법원을 방문하였을 때 통역을 한 사람도 어려서 부모님 따라 이민을 온 한국계 이규순 판사(女)였다네.

 

     다른 나라의 법원 방문 이야기는 자세히 안 하더라도 상파울루 연방법원을 방문한 이야기는 좀 해야겠네. 미주14.jpg 이 법원은 시내 중심가에 20층짜리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관할구역의 인구만도 4,500만 명이라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거의 맞먹는 셈이지. 하긴 브라질 전체 인구가 2억 명이니 그럴 만도 하지. 연간 사건처리건수가 50만 건이라니 어느 나라 법원이나 사건의 홍수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네. 

 

     연방법원장은 히베이로(Ribeiro)라는 분인데, 정이 많고 인심 좋은 전형적인 브라질 사람이었네. 나를 보자마자 상파울루에 얼마나 머물 것이냐면서 주말에 자기 농장에 놀러가자고 하여 입이 벌어졌다네. 일정상 곤란하다고 했더니 너무 아쉬워하는데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네.

 

   그리고 법원장이 직접 안내하여 법정, 회의실, 휴게실 등 법원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는데, 마지막으로 건물 옥상으로 안내를 하지 않겠나. 의아미주15.jpg해 하면서 옥상으로 올라가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이 건물의 옥상에서 상파울루시의 동서남북 전경을 다 볼 수 있었거든. 상파울루가 비록 고원지대이기는 하지만 서울과 달리 시내에 산이 없는 까닭에 그게 가능한 것이지.

 

   법원장실에 돌아와 그가 내주는 법복을 입어보고 법복이 멋지다고 외교적인 인사를 하였네. 그리고 준비해 갔던 간단한 선물을 교환한 후 법원을 떠나려니 법원장이 지하 주차장까지 따라와 이별의 포옹을 하는데, 몇 번을 반복해야 했지. 브라질 사람들 작별하려면 30분 걸린다는 말이 지나친 농담이 아니더군. 

 

   그런데 더욱 놀랄 일이 그 후 서울에 돌아와서 생겼네. 다름이 아니라 이 법원장이 우리 총영사관을 통해 외교행낭편으로 브라질 법복을 새 것으로 한 벌 보내온 게 아닌가. 미주16.jpg

   아들 둘이 다 법과대학을 나와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는 히베이로 법원장, 당신은 30여 년 판사를 하고 있는데 왜 아들은 판사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판사는 재미도 없고 돈도 못 벌어서 자기가 말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법원장,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온 판사를 처음 보자마자 자기 농장으로 초청하고, 법복이 멋있다는 말에 새것 한 벌을 바로 보내주는 이 법원장의 인간미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상파울루에 머무는 동안 이과수(Iguaçu)폭포를 다녀왔네. 상파울루에서 이과수시까지는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이네. 이과수는 인디언 원주민인 과라니(Guarani)족의 말로 ‘깊은 물’이라는 뜻이라는군. 이과수 시내에서 이과수폭포까지는 자동차로 20여 분 정도 걸리네.

 

    미주17.jpg브라질 남부지역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국경을 따라 흐르는 이과수강이 통째로 밑으로 꺼지면서 생긴 이과수 폭포는 폭이 2.7Km, 평균 낙차가 70m인데, 그 형상을 말로 설명하기가 힘드네. 그냥 가서 직접 보라고 할 밖에.

 

   세계 3대 폭포로 꼽히는 나이아가라폭포, 빅토리아폭포와 비교하면, 나이아가라폭포는 명함도 못 내밀고, 빅토리아폭포는 이보다 낙차가 더 큰 대신 폭이 좁고(1.5Km) 수량이 적지.

 

   겨울이라 건기임에도 초당 2,000톤씩 쏟아지는 이 거대한 폭포 앞에 서니까 인간이 참으로 미미한 존재임을 절감하게 되더군. 여름에는 수량이 훨씬 많아 그로 인해 생기는 물안개로 폭포를 볼 수가 없다니 구암대사도 여길 가려거든 꼭 겨울에 가시게. 겨울이라고 해도 추운 것이 아니라 서울의 가을날씨라네.

   방울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강가로 내려가 모터보트를 타고 폭포가 떨어지는 지점으로 접근하여 직접 폭포물을 뒤집어쓰는 체험도 스릴 만점이라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관광객의 대부분이 찾는 미주18.jpg브라질 쪽에서 보는 이과수폭포는 대부분 아르헨티나 영토에 있다는 것일세.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셈 아니겠나.

 

    그래도 이과수폭포의 진수를 보려면 아르헨티나로 가야 한다네. 국경을 넘어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아르헨티나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네. 거기서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가는데, 이 기차는 차창이 없고 나무의자가 놓여 있어 초원지대를 달리는 분위기를 한껏 연출한다네. 기차를 안 타고 걷는 사람들도 있네.

 

   기차에서 내려 이과서 강위에 놓인 철제다리를 20여 분 걸어가면 마침내 폭포의 진수가 나오네.    여기서는 다리 위에서 폭포를 내려다보게 되는데, ‘악마의 목구멍’으로 불리는 이곳은 이과수폭포 중 수량이 제일 많은 곳으로, 무지개가 뜨는 이곳 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네. 그 이상은 설명이 어렵네. 거듭 말하지만 직접 가보시게.

 

미주19.jpg

 

   그리고 한 가지 정보를 제공하면 이과수에서의 숙소는 Bourbon Caratas 컨벤션 리조트를 추천하네. 안에 멋진 야외 수영장이 있고, 밀림산책로도 있다네. 아울러 미주20.jpg 인근의 La Cabana(‘초가집’이라는 뜻)라는 숯불구이 집에서 먹는 암소 한 마리 즉석구이 맛도 만점이네.

 

   이과수폭포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계에 있는 명물이라면,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경계를 흐르는 파라나강에는 이따이뿌(Itaipu) 수력발전소라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네. 차이는 전자는 대자연이 만들어낸 명물이고 후자는 인간이 만들어낸 명물이라는 것이지.

 

    브라질과 파라과이가 합작으로 건설한 이 발전소의 발전 용량은 무려 1,400만KW라는군. 70만KW짜리 발전기가 20기 설치되어 있지. 쉽게 말하면 한반도에서 제일 큰 수력발전소라는 압록강의 수풍발전소가 20개 있는 셈이네. 이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 강을 막은 댐의 길이가 7.7Km, 미주21.jpg댐의 높이가 196m, 무려 18년에 걸쳐 완성했다고 하네. 댐 위에 올라가 댐으로 인해 생긴 호수를 보니까 꼭 바다 같더구먼. 

 

  이만하면 이 댐이 세계 7대 불가사의한 건축물에 속한다는 이유를 알 만하지 않나. 이과수폭포를 만들어낸 대자연의 힘도 대단하지만, 이런 댐을 만들어낸 인간의 힘도 참으로 대단하지. 이따이뿌(Itaipu)는 과라니족의 말로 ‘노래하는 돌’이라는 뜻이라네.

 

워낙 큰 발전소이다 보니 이곳을 관광하려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네. 발전소단지에 아예 관광객 전용의 2층 셔틀버스(2층에는 과람의 편의를 위해 지붕과 창문이 없음)가 다니더군. 물론 유료일세. 전기 만들어 돈 벌고 관광객한테 입장료 받아 또 돈 벌고...브라질 사람들 상술도 대단하데그려.

 

  미주22.jpg 내가 대단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네만, 한 가지 더 추가하겠네. 그것은 바로 한반도에서 지구 정반대편에 위치한 이곳의 댐을 구경하러 한국에서 찾아온 사람의 숫자라네. 

   지금 정확한 기억은 안 나네만, 브라질과 파라과이를 제외한 외국인 관광객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들더구먼.

 

   하긴 브라질 이과수폭포 국립공원 안의 음식점이나, 아르헨티나 국립공원 안의 음식점에서도 한국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네. 참으로 부지런하고 대단한 국민 아닌가.

 

  이번 중남미 여정에서 우리나라 재외국민의 수가 대략 750만 명이고, 전세계 유엔 가입국 195개국에 단 한 명이라도 자기 나라 사람이 가 있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말(진위는 잘 모르겠네)을 들었는데, 나라 안팎으로 그 위상에 걸맞는 국가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 나뿐이겠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