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을 아시나요?

2010.02.16 11:48

범의거사 조회 수:8866


沃峰禪師님,


살같이 지나는 세월을 인력으로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벌써 7월의 넷째 일요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비가 참으로 많이 내렸지요. 새벽 2시부터 3시 사이 1시간 동안에 무려 100mm에 가까운 장대비가 쏟아졌다니,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던 것은 아닐까요?
압구정동에 사시니 비 피해를 볼 일이야 없겠지만, 무고하신지요?


소생은 지난 일요일에 남산을 다녀왔습니다.
아니 웬 남산이냐고요?
본래는 친구들이랑 근 그 날 북한산을 등반하기로 약속했었는데, 새벽까지 쏟아지는 빗줄기에 포기해야 했지요. 그 대신 날이 드는 것에 맞추어 중구 필동의 남산골 한옥마을로 향한 것이랍니다. 집을 나설 때는 비가 그쳤었는데, 막상 한옥마을로 들어서니까 장대비가 다시 쏟아져 순간 당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왕 내친 걸음인지라, 그리고 기껏해야 옷이나 비에 젖을 뿐이기에 발걸음을 계속 옮겼지요.

FCHMQ001.GIFFCHMQ002.GIF 전에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던 곳인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純貞孝皇后 尹妃(순종황제의 妃)의 친가와 구한말의 大臣 박영효의 집 등 양반집 한옥 5채가 보존되어 있는데(삼청동, 관훈동 등지에서 옮겨왔다는군요), 성냥갑 같은 아파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야말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집들이었습니다.  특히 무엇보다도 시원한 대청마루가 부러웠습니다. FCHMQ003.GIF모시 한복을 입고 거기에 앉아서 글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다보니, 먼 훗날에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비록 규모는 그에 못 미칠 망정 그런 집에서 꼭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나데요. 후후, 一場夏夢이겠지요.... 그런데, 조선시대 이 곳에 살았을 남산골 샌님 딸깍발이들의 집도 이랬을까요? 몰락한 殘班인 그네들은 초가집에 살지 않았을까요?  

 

FCHMQ004.GIF  한옥마을 안에는 漢陽을 도읍지로 정한 지 600년이 된 것을 기념하여 1994. 11. 24.에 타임캡슐을 묻은 광장이 있답니다.

  분화구를 본떠 만든 이 광장은 그 곳으로 들어가는 길이 내리막길인데다 좌우가 돌로 된 벽이어서, 마치 영화 '인디아나존스'에 나오는 고대 유적지에 들어서는 기분이 들게 합니다. 드디어 눈 앞에 펼쳐지는 커다란 원형 광장!  그 중앙에는 북경, 파리, 앙카라 등 자매결연 도시의 市長들이 보내온 축하메시지를 새긴 石製 원판이 놓여 있는데, 그 밑 지하에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는군요.  

 

이 광장은 여기까지만 보아야 합니다. 선사님이 언제고 이 곳을 찾으시면, 여기서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시면 절대(?) 안 됩니다. 왜냐고요? 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벽(광장을 원형경기장에 비유한다면 그 경기장의 관중석에 해당하는 곳입니다)에는 느닷없이 잔디가 심어져 있고, 그 잔디밭에는 빙 둘러 말뚝을 박아 나일론줄을 쳐 놓았답니다. 01.jpg

 

그것도 하단부분만으로도 부족하여 중간부분(관중석의 2층에 해당하는 곳)에 한 번 더 말입니다.

도대체 한양 땅 定都 600년을 기념하는 곳에 이 무슨 흉물입니까? 그 곳을 石壁(이태리 대리석이 아닌 우리나라 화강암으로 만든 벽)으로 만들고 한양 땅의 사진이나 그림을 파노라마로 펼쳐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궁궐 이야기"(홍순민 저, 청년사, 1999)라는 책을 보면 대궐 마당에 있는 잔디밭은 殿閣의 무덤(倭人들이 殿閣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잔디를 심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곳의 잔디는 "문화의식의 무덤"인가요? 이 잔디들은 걷어내 차라리 원형광장의 바닥에 심으면 어떨까요? 아니 글쎄 이 광장의 바닥은 온통 시멘트콘크리트로 덮여있지 뭡니까. 바닥이야말로 잔디를 심든 아니면 마사토를 깔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흐유∼, 서기 2,394년에 저 타임캡슐을 개봉할 우리의 후손들이 이 광장을 보고 무어라 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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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캡슐광장을 지나 남산 쪽으로 더 올라가면 한옥마을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되고, 거기서 우회전하여 잠시 가다 보면 구름다리가 나타납니다. 청계고가도로에서 남산 1호터널로 접어들 때 길 위로 보이는 바로 그 구름다리입니다.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면 바로 터널(남산 1호터널과는 다른 별개의 터널입니다)이 나오고, 이 터널을 벗어나는 순간 왼쪽에 을씨년스런, 그러나 제법 규모가 큰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이 건물이 바로 중앙정보부,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안기부의 옛 청사입니다. 지금은 서울특별시도시철도공사의 연수원 건물로 쓰이고 있답니다.

주위에 무공화꽃이 많이 피어 있는 이 건물의 앞마당을 지나 산 쪽으로 좀더 올라가면 편도 1차선의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타납니다. 한옥마을로부터 이 곳까지의 이 길은 안기부가 강남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는 서울에 사는 시민들도 오랫동안 접근이 어려웠던 곳입니다. 도대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길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지내온 길이지요. 소생도 물론 그 중의 한 사람이고요. 선사님도 또한? 그리고 그러한 사정은 이제부터 소생이 소개하는 남산 산책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禪師님,

 

  남산에 순환도로가 나 있는 것 아시죠? 어떤 길이 있나요? 북쪽으로는 숭의여고 앞으로 해서 남산 케이블카 타는 데로 이어지는 길이 있고, 서쪽으로는 힐튼호텔 앞으로 해서 하이야트호텔을 지나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지요. 그리고 동쪽으로는 국립극장 앞에서 팔각정으로 오르는 길이 있고, 이 길은 다시 팔각정에서 남산도서관쪽으로 내려가지요. 이 정도는 아마도 웬만한 서울시민이라면 다 알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남산 케이블카 타는 곳 부근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숨은 길(위 그림의 위쪽에 보이는 꼬불꼬불한 길)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총 길이 3.5km. 바로 이 길을 찾아 지난 일요일에 빗속을 뚫고 집을 나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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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은 오랜 군사정권 하에서 그 존재가 베일에 싸여 있다가 뒤늦게 빛을 보았답니다. 편도 1차선의 잘 닦인 아스팔트길인 것으로 보아, 필경 차량 통행이 가능했던 곳인데, 지금은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산책로 내지 달리기(조깅)길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청록파시인 조지훈의 詩碑도 길가에 세워져 있습니다(하도 이상하게 서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보기 전에는 그 정체를 알기 어렵지만 말입니다).

 

서울의 한 복판에 있건만, 들리는 건 오로지 새소리, 매미소리 그리고 계곡의 물소리뿐이고, 우거진 숲 사이로 간간이 하늘이 내비칠 따름입니다. 길 옆으로 난 도랑에는 물이 졸졸 흐릅니다. 남산이 이렇게 깊은 멋진 산일 줄이야, 정상(해발 265m) 부근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眞景山水를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

 

  그런데, 전혀 뜻밖으로 제갈공명의 사당인 臥龍廟가 한 계곡에 자리하고 있길래, 올라가 보았더니 아뿔싸, 간 밤의 비로 수해를 당해 정신이 없더군요. 관리인으로 보이는 분이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하였지만, 글쎄요, 꼭 다시 오고픈 마음은 나지 않았습니다. 蜀나라의 와룡선생과 우리나라의 남산이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이따금 뿌리는 이슬비가 오히려 운치를 더하는데, 갑자기 더운 열기가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가 무섭게 아스팔트의 물기가 더운 수증기로 변한 것입니다. 쯧, 어차피 이 길을 새로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할 마당이라면, 더구나 차량통행을 금지한 터라면, 아스팔트를 걷어냈어야 했습니다. 길 옆의 도랑으로 시각장애인들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쇠파이프 철책(이왕이면 철책보다는 木柵을 했어야 했지요)을 설치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면, 아스팔트를 걷어냈어야 당연한 것 아닐까요? 300mm가 넘는 비가 밤새 내려 대지가 식을 대로 식었을텐데, 어떻게 해가 나자마자 더운 열기가 훅 올라온단 말입니까. 마치 미드필더에서는 잘 하다가 결정적으로 골문 앞에서는 볼처리가 미숙한 한국 축구를 보는 기분입니다. 한옥마을의 타임캡슐광장도 그렇고, 이 산책로도 그렇고, 모두 마지막 마무리를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 짝이 없었습니다.  01.jpg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 속의 그 소나무가 다 어디 갔나 했더니, 왼쪽으로 내려가면 동국대학교가 나온다는 이정표를 지나면서 좌우의 길 옆으로 소나무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마치 群落地를 이룬 듯하였지요. 주로 赤松들이었는데, 하나같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휘었으면서도 하늘로 향해 꿋꿋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온갖 국난과 풍상을 겪으면서도 면면히 이어져 온 한민족의 기상을 대변하는 듯하였습니다. 딸깍발이들의 옹골찬 기개도 거기에서 배운 것이 아닐는지요. 그런데 남산에서 자라는 나무 중 소나무는 20%밖에 안 된답니다. 앞으로는 매년 식목일마다 시민들이 참여하여 남산에다 소나무 심는 행사를 하면 어떨까요?

 

FCHMQ009.GIF

  흐뭇한 기분으로 이 소나무들을 쳐다보며 발길을 옮기는데, 눈 앞에 갑자기 괴물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나바론의 요새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그것도 색깔마저 시커먼 건물이 하나 숲 속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게 뭐지?" 하며 안경을 고쳐 쓰고 유심히 살펴보니, 맙소사! 그 벽에 큼지막한 글씨로 "국립극장"이라고 씌어 있더라고요. 원 세상에, 아무리 서슬퍼런 군사문화가 판치던 維新時代에 세워졌기로서니(1973년), 명색이 국립극장인데 어떻게 저런 건물을 세울 수가 있었단 말인가요. 그 동안 정면에서 볼 때는 전혀 몰랐는데, 남산길에서 뒤와 옆을 내려다보니 정말 가관이더군요. 선사님, 저 흉물을 헐고 새로 지을 수는 없을까요? 주로 전통 예술을 공연하는 장소답게 우리 고유의 멋을 살린, 그런 국립극장을 보고 싶다면 소생의 과욕인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이제는 배가 고파 그 국립극장 안에 있는 식당인 "지화자"(궁중요리 전문)로 들어서려는데,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길을 막더군요. 물난리가 나서 斷電 斷水가 되어 밥을 못 한다나요. 아, 그러고 보니 국립극장 앞의 마당이 진흙 투성이였습니다. 남산에서 쏟아져 내려온 토사 때문에 말입니다. 비록 하루 동안에 300mm가 넘는 비가 왔다지만, 매년 겪는 물난리를 언제나 피할 수 있을는지요.... (2001.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