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 코끼리 만지기(북한산)

2010.02.16 11:49

범의거사 조회 수:9280

 

                    장님 코끼리 만지기

 

  추석 연휴의 끝이자 하늘이 열린 지 4334년째 되는 날,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북한산을 찾아 나섰다. 이제까지의 그 많은 산행 중 도중에 비를 만나 중단 한 적은 있어도, 비 때문에 처음부터 포기한 적은 없었는데, 이 북한산만은 예외이다.

 

   40년 가까이 서울에 살아왔기에 이 산을 오르는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산을 이만큼 자주 오른 곳도 없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 동안 여러 번 오른 산이다. 대학생 시절 고시공부를 할 때는 이 산의 품속에서 세 해 겨울을 났었고, 그 후 산을 즐겨 찾기 시작하면서 1983년 겨울에는 영하 15도의 강추위 속에서 등산하다 싸 가지고 간 음식물이 꽁꽁 얼어버려 쫄쫄 굶은 적도 있다.

 

   그 만큼 친숙한 산인데 올 들어 지난 여름부터 산행을 계획만 했다 하면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 두 번이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로 잡은 날이 10월3일(2001.10.3)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아침에 일어나 일기예보를 들으니 또 비 소식을 전한다. 오전에 흐리다가 오후부터 서울에 비가 올 거란다.
 

  북한산의 구파발 쪽 지하철역인 구파발역(3호선)에 도착한 것이 오전 8시. 이 날 산행의 道伴인 백동선생, 백하선사, 쓸뿌리도사 등 고교시절부터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도 비가 온다지"

"그러게 말야. 북한산이 우리를 거부하는 모양이야"

 

   하지만 일단 지금은 비가 안 오니 산행을 강행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산행의 코스는 내가 정했다. 나머지 세 친구는 異口同聲으로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 북한산을 한 번인가 올라가 본 적이 있다고 하는 판이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순전히 '서울 촌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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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파발역에서 택시를 타고 三千寺까지 갔다. 부처님 사리를 봉안한 寂滅寶宮인 이 절은 현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인근의 군부대 때문에 저 아래에서 한참 걸어올라가야 했는데, 지금은 문명의 利器가 절 마당까지 편하게 모셔다 준다. 바로 그 편안함이 택시미터기를 사용 안하고 자기 마음대로 요금을 부르는 운전사의 횡포를 모른 체 하게 한다.


  대웅전의 바깥에 서서 오늘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 달라고 부처님께 약식으로 빌고 절 뒷편을 돌아 본격적인 등산길로 접어들었다. 예정 코스는 삼천사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비봉능선을 만나면 사모바위 쪽으로 길을 잡아 비봉을 거쳐 구기동으로 내려가는 것. 북한산의 서쪽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소요시간은 3시간 내지 3시간30분.

 

  삼천사계곡은, 우리의 옛 선조들이 그 수려한 풍광 아래서 풍류를 즐겼던 것과는 달리, 10년 전만 하더라도 유원지로 불렸을 만큼 곳곳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고성방가소리가 山客의 심사를 거슬리게 하였었다. 다행히 1993년 이후 시행하고 있는 취사야영금지 조치로 이제는 가재와 버들치가 살아날 만큼 아름다운 계곡으로 원형을 찾아가고 있다.
 

  삼천사를 떠나 산행을 시작해서 30분도 안 돼 갈림길이 나왔다. 미리 준비해간 지도를 펼쳐보니 여기서 좌측으로 가면 부왕동 암문과 문수봉으로 이어지고 우측으로 가면 바로 사모바위로 이어진다.

  어디로 갈 것인가.

  산에 가면 그 어디에서보다도 겸손하여야 한다는 것이 철칙인데, 여기서 그 철칙을 어기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원래 예정했던 대로 곧바로 사모바위 쪽으로 가려니 너무 단조로울 듯하였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른 채 나만 쳐다보는 道伴들 유도하여 이리 곧바로 가면 너무 단조롭고 시간도 짧아 운동량이 부족할 듯하니 저리 돌아가자면서 문수봉코스를 택한 것이다. 이것이 고생을 自招할 줄이야.

 

   사모바위 쪽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길은 작년 봄에도 한 번 가본 적이 있어 알지만, 문수봉 쪽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하나같이 山盲인 道伴들을 데리고 이 길을 택하다니... 이쯤 되면 고생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건만, 등산로 선택의 순간 만큼은 그것을 몰랐던 것이다. 만물의 영장임을 뽐내는 인간의 한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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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봉코스로 접어들어 잠깐 올라가면 이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부왕동암문으로 가는 길(1.1km)이고, 오른쪽으로는 문수봉으로 곧바로 가는 길(2.1km)이다. 왼쪽길을 택하면 부왕동암문까지 올라가서 남동쪽으로 다시 나월봉과 나한봉을 넘어야 문수봉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시간이 제법 걸린다. 오후에는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데... 그래서 오른쪽길, 즉 바로 문수봉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이 길이 바로 문제의 길이다.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길이 계속 이어진다. 이쪽인가 저쪽인가 하며 올라가는 길이 한이 없다. 등산로를 알려주는 그 흔한 리본들이 도통 눈에 띄지를 않는다. 국립공원 입장료로 1인당 1,200원씩 받으면서 그 돈을 다 어디에 썼단 말인가. 단풍이 들기 시작하여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장관이건만, 정작 마음은 그것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山盲인 道伴들에게 드러내놓고 내색하기도 쉽지 않다.

 

    얼마를 올라갔을까, 수직의 바위 절벽이 앞을 막는데, 그 위에 사람이 한 명 앉아 있다. 실수로 장갑을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그것을 주워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장갑을 주워 겨우 위로 던져 주고 물어보았다.

  "그리로 어떻게 올라가요?"

그 사람 曰,

  "삼천사 쪽에서 올라오시는 거죠. 이리로 오시는 것을 보니 길을 잃었군요. 그런 사람들 많아요. 이 절벽은 바위틈을 잘 이용하면 기어올라올 수 있어요. 자신 없으면 저쪽으로 길이 있으니 돌아오세요."

 

   그가 가르쳐준 쪽으로 가자 절벽을 돌아서 올라가는 길이 나왔다. 드디어 능선이다. "휴∼"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나중에 알고보니 등산로를 한참 벗어나 나월봉의 서쪽 斜面 언저리를 헤맨 것이다. 그리고 이 능선은 의상봉능선으로 북산산성매표소의 대서문에서 의상봉, 부왕동암문, 나월봉, 나한봉을 지나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었다. 이 능선과 山城主稜線 사이의 분지가 바로 북한산성이다.

 

    이 능선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가다보니 봉우리 하나가 길을 막는다. 드디어 문수봉인가 하고 허위허위 올라가서 먼저 와 있던 등산객한테 물어보니까, 쯧, 아니란다. 어쩐지 봉우리가 좀 허약하더라니. 그럼 문수봉은? 지도를 펼쳐본 즉, 맙소사 아직 멀었다. 어쩌다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는지.....
 

  가져간 귤로 당분을 보충하고 다시 출발. 올라가는 바윗길에 쇠줄까지 설치한 커다란 봉우리(나한봉)를 또 하나 넘자 그제서야 문수봉(716m)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니, 저렇게 멀리 있단 말인가(정상에 안테나가 서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처음부터 문수봉 정상을 오를 생각은 없었는지라, 대남문→대성문으로 가는 길(산성주능선)이 갈라지는 청수동암문에서 남서쪽으로 문수봉 옆구리를 끼고 도는 길로 들어섰다. 이제부터는 등산로에 사람들이 제법 북적인다. 그 길을 따라 걸은 지 20여 분, 이정표가 나왔는데, 아래로 내려가면 삼천사계곡이란다. 처음에 길을 잃지 않았으면 그리로 올라왔어야 하는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예정보다 이미 2시간이나 더 지나고 있다. 어지간히도 헤맸군.
 

  문수봉의 산록을 벗어나면 남서쪽으로 바야흐로 비봉능선이 시작된다. 이제는 오른쪽으로는 구파발, 그리고 더 멀리는 일산시가지와 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왼쪽으로는 세검동과 북악산, 그리고 더 멀리는 남산이 보인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비바람에 의해 기기묘묘하게 형성된 크고 작은 암봉, 암벽, 암석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하고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그 길을 따라 승가봉을 지나 40여분 가면 나타나는 사모바위. 크기는 집채만한데 생김새가 네모 반듯하여 사모바위로 이름지어진 듯하다. 놓여있는 위치를 보면 금방이라도 굴러떨어질 듯한데, 아마도 저 자세로 천년의 세월을 견뎌오지 않았을까 싶다.


02.jpg   사모바위 그 자체로도 충분한 구경거리가 될 명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바로 이 사모바위가 위치한 곳이 바로 오늘 등산로의 白眉이다. 주위의 지형이 산 위의 능선답지 않게 평평하여 충분히 쉬어갈 수 있는 이 곳이 바로 북한산의 全景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제일 좋은 곳이다.

 

   북한산의 등산로로 가장 많이 찾는 우이동→백운대 또는 북한산성→백운대 코스는 북한산의 일면만 볼 수 있는 데 비하여, 이 사모바위에서 보면 북한산의 북쪽부터 남쪽까지 펼쳐지는 능선과 그 요처마다 웅장한 자태를 뽑내는 인수봉(810m), 백운대(836m), 만경대(국망봉, 800m), 원효봉(604m), 노적봉(716m), 문수봉(716m), 보현봉(714m) 등을 모두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보는 인수봉부터 보현봉까지의 파노라마는 실로 설악산의 공룡능선에 못지 않다. 도대체 서울 같은 대도시에 이런 장관을 연출하는 산이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런데 과연 1,000만 명이 넘는 서울 시민들 중 어느 정도가 그 사실을 알까? 북한산 새내기들인 오늘의 道伴들도 그 멋진 경치에 입들을 다물지 못한다. 정말이지 단풍 구경한답시고 힘들여 설악산까지 갈 일이 아니라고 경탄을 거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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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주위에서 서울이 너무 삭막하다는 말을 듣는다. 회색빛 고층빌딩과 매연으로 상징되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곳, 그 곳이 바로 서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곳을 한 번 올라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말이 얼마나 장님 코끼리 만지는 소리인가를 알 것이다.

   서울은 결코 고층빌딩과 매연만의 도시가 아니다. 동서남북으로 웅장한 산들이 이어지고, 그 한 가운데로 거대한 한강이 젖줄처럼 흐르는 멋진 곳이다. 세계 어느 곳의 대도시가 서울처럼 山紫水明의 풍수를 다 구비하고 있던가. 600여 년 전 한양 땅을 조선의 도읍지로 천거한 무학대사의 안목이 새삼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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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봉(560m)은 바로 그 유명한 진흥왕순수비(국보 3호, 높이 1.54m. 본래의 순수비는 파손의 우려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비봉의 본래 자리에는 그 모형이 서 있다)가 세워져 있는 봉우리다. 정상부근은 온통 바위이다.

 

    그 옛날 고구려와 백제에 눌려 기를 펴지 못하던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雄飛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 후, 진흥왕이 몸소 이 곳에 올라 그 치적을 남긴 것이다(진흥왕16년, 555년). 그 때는 호랑이가 살았을텐데...  


  그런데, 북한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인 백운대를 놓아두고 왜 하필이면 비봉에다 순수비를 세웠을까? 백운대는 너무 높아서? 비봉에 서야 한강이 잘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알 길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1,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20세기 말에 바로 이 곳 비봉 꼭대기에 군대가 주둔하였다는 것이다.

   지금은 철수하고 없지만, 일개 중대 규모의 병력이 이 곳에 주둔하면서 서울을(청와대를?) 지킨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1980대 중반 어느 해 추운 겨울에 처음으로 순수비를 직접 보겠다며 비봉에 올랐다가 바로 그 군인들에 의해 검문을 당하고 곤욕을 치렀던 기억이 새롭다.
 

  비봉에서 시작하는 하산길에 또다시 혼선을 빚는 바람에 또 엉뚱한 길로 들어섰지만, 아래를 보고 내려가는 길은 아무리 잘못되어도 거기가 거기이다. 오늘 산행의 종착역인 구기동에 무사히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오후 1시 반이다. 3시간 내지 3시간 30분 예정의 산행길이 5시간 30분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산 등산객들을 위하여 구기동에서 성업중인 목욕탕과 두부집을 찾아가는 일뿐이다. 그 두부집을 나설 때는 마침내 빗방울이 하나, 둘.....듣고 있었다.(끝)    

          

    (追錄) 인터넷의 북한산국립공원사이트(http://www.npa.or.kr/pukan/main.asp)에 의하면, 북한산은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 명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탐방객(64,000명/㎢)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