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가지고 책을 쌓듯이(변산반도)

2010.02.16 11:16

범의거사 조회 수:10723




           돌을 가지고 책을 쌓듯이




   1997. 2. 27. 충주지원장에서 사법연수원 교수로 전임되어 아직 주변 정리도 제대로 끝내지 못한 3월의 첫머리에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다소 무리였지만, 충주에 있을 때부터의 약속인지라 리베라 여행사에 부탁하여 어렵사리 표를 구해 정읍행 새마을호 열차에 온 가족이 몸을 실은 것이 3. 8. 오후 3시였다.

   오랜만에 하는 기차여행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이사하느라 지쳐 있던 妻도 다소 들뜬 표정이었다. 애당초 이번 邊山半島行이 妻가 학창시절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고 제의하여 성사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정읍역에 내리니 충주에서 차를 몰고 온 孔원장(신경정신과), 白원장(정형외과), 변원장(산부인과)의 세 의사가족이 막 도착한다.
   합류시간을 기가 막히게 맞춘 것이 이번 유람이 순탄할 것임을 예감케 하였는데, 정작 정읍에서 변산반도로 가는 길에서 갈라지는 바람에 초장부터 헤매고 말았다.
   20세기 말 문명의 利器인 휴대폰 덕분에 다시 만날 수는 있었지만, 변산온천의 리조텔에서 30분만 일찍 왔어도 방이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운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轉禍爲福이랄까, 깜깜한 밤길에 네온사인만 보고 찾아 들은 행운장모텔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바로 바닷가에 위치하여 있어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경치가 그만이었다. 모텔이 이름값을 하느라 행운을 준 셈이다.

   근래에 개발된 변산온천장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찾은 것을 결코 후회 안하게 하는 곳이다.
   유황천인 이 곳은 온천수 용출온도가 31도여서 가열하여 사용하기는 하지만, 수안보온천에서 단련된 충주사람들-나도 아직은 충주사람이나 다름없다-에게도 수질이 좋다는 것을 금방 느끼게 한다.
   아, 그런데 탕에서 몸을 씻는 저 村老께는 도대체 무어라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걸까.

   일식(日蝕)을 肉眼으로 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수선을 떠느라 예정시간보다 다소 늦게 採石江을 찾았다.
  '江'이라는 이름이 붙어 진짜 강이 있는 줄 알았더니 강은 없고 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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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가 절벽의 퇴적암층을 파도가 핥아 내어 마치 책을 쌓아 놓은 듯한 기기묘묘한 형국을 하고 있는 이 곳은 그 경치도 아름답거니와, 평평한 바위 틈새에서 굴을 따고 조개를 주울 수 있어 아이들에게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명색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비싼 입장료까지 받으면서도, 절벽 위에 허름한 집들을 그대로 방치하여 아름다운 자연미를 반감케 하는 공원관리공단측의 무감각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채석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赤壁江은 李太白이 달을 건지다 빠져 죽은 중국의 적벽강 만큼이나 아름다운 곳이라 하여 그렇게 이름지어졌다고 하는데, 자세한 지도가 아니면 나오지 않아서인지 채석강보다 찾는 이가 적고, 주위에 人家가 드물어 훼손이 덜 되었다.
   春客의 눈에는 채석강보다 훨씬 더 좋아보이건만, 웬쑤놈의 시간이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하는 통에 두 아들이 잽싸게 뛰어 내려가 조약돌을 주워 오는 동안 먼발치에서 妻와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다. 다음에 다시 오면 꼭 이 곳부터 먼저 찾겠노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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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산반도의 남단을 돌아 來蘇寺로 발길을 돌리니 어느 덧 해가 중천에 걸려 있다. 언제 日蝕이 있었냐는 듯 이제는 눈이 부시다.

   내소사의 본래 이름이 蘇來寺였다고 하니,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의 蘇定坊이 찾아 올 것을 예견하였단 말인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亡國의 敵將을 맞이하는 소래사 부처님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  

   주차장에서 절까지 松林 속으로 난 길은 소나무의 향으로 배어 있어 찾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심호흡을 하게 하고, 절 뒤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세는 험한 듯하면서도 포근함을 느끼게 한다.
   무언가 아늑함을 주는 절이다. 영주의 浮石寺를 찾았을 때 느꼈던 사람을 멀리 하는 듯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그 무엇이 있다.
   신라, 고려의 절만 보다가 백제의 절을 대하여 그런가, 아무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다른 절에서 느끼지 못한 고즈넉한 분위기가 전달되어 온다. 대웅전의 단청은 그 퇴색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친근하다.  

   절문을 나서는데, 경호가 부처님의 선물이라며 젤리사탕을 한 움큼 내민다. 대웅전에서 1,000원을 시주하고 부처님마다 그 앞에 향을 피우고 절하였더니 보살님이 주시더란다. 그 자비로움 때문일까, 자기 딴에는 불교가 좋다고 덧붙이는 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힘들여 변산반도까지 온 김에 인근에 있는 禪雲寺를 가보자고 의견이 일치되어 고창 쪽으로 차를 몰았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에 깜박 졸다 보니 어느 새 禪雲寺 입구다.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곳이어서인지 주차장도 넓고 호텔도 몇 개 보인다. 그러나 그런 편의시설이 늘어날수록 그에 비례하여 정작 절의 안온함이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다. 찾아가기 불편한 절일수록 더 절답다고 하지 않던가.  

   未堂 서정주의 '선운사동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수화를 그리는 墨客이면 한 번 쯤 들러 본다는 곳이 바로 선운사라는데, 기대가 컸기 때문인가, 아니면 아직 철이 이른데도 밀려드는 인파에 질려서인가, 멀리 서울에서 온 凡夫에게는 앞서 들른 내소사가 훨씬 마음에 든다. 소나무가 우거진 내소사와는 달리 절에 이르는 길의 양쪽을 벚나무가 장식하고 있어 더욱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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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의 初入에서 산 번데기를 입에서 오물거리며 절문을 들어서려니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켕겼다.
   번데기는 여자가 먹으면 정력이 좋아지지만 남자가 먹으면 '거시기'가 번데기처럼 된다는 변원장의 우스개 소리와 이를 거드는 선희엄마(孔원장의 妻)의 걸쭉한 입담에 한 바탕 웃고 나서야 께름직함을 다소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내소사와 마찬가지로 백제시대 때 창건된 古刹인 선운사의 멋은 길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비단잉어와 이름 모를 물고기들이 悠悠自適하고 있는 이 계곡물이 그 옆을 지나는 俗人들의 때를 씻어 주기 때문이다.

   이 절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넓직한 境內이다. 昨今의 山寺들이 조금만 터가 있어도 건물을 지어 대는 통에 절문을 들어서면 갑갑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가 많은데, 선운사에서는 잡목과 잡초가 우거진 넓은 공터를 볼 수 있어 한결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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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수 천 명의 승려가 수행하던 전성기 시절에는 그 공터에도 가람(伽藍)이 배치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제발 復元의 美名下에 토목공사를 벌이는 愚를 저지르지 않기를 기도한다.  
   남들은 절 뒤의 울창한 동맥나무숲도 자랑거리라고 하건만, 아직 꽃이 피지 않아서인지 지친 다리를 끌고 온 나그네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였다.  

   눈을 즐겁게 하는 旅程이 끝나고 나면 의례히 먹는 일이 남게 마련이다. 변원장의 아이디어로 114를 통해 정읍시청의 당직실에 물어 찾아간 정읍시내의 전주식당은 생각보다 저렴하면서도 깔끔한 한정식(1인당 10,000원)으로 중생들의 배를 불려 주었다.  
   그러고 나니 벌써 충주사람들과의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되었다. 會者定離라 하지 않던가, 헤어짐의 아쉬움이 있기에 만날 때의 설레임이 더욱 기다려지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도 서울행 통일호 열차는 붐비지 않았다. (1997.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