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기둥을 찾아(부석사)

2010.02.16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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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흘림기둥을 찾아



   1996. 7. 17. 제헌절이다.
   봉암사에 이어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 온지 며칠 되지 않아 피곤하였지만, 짧은 인생살이인데 다리 튼튼할 때 하나라도 더 보아 두자는 심산으로 부석사를 향해 집을 나섰다. 김비뇨기과원장, 삼성생명의 이국장, 그리고 여행도사 공원장이 길동무가 되었다.  

   부석사는 지난 번 울진 갈 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 아쉬움이 남아 있는 절이다. 죽령을 넘어 풍기읍내에서 왼 쪽으로 난 길을 따라 이정표만 보고 계속 가는데, 길옆에 소수서원이 먼저 나온다. 귀가길에 들르기로 하였다.  
   안내를 자청하고 나선 김비뇨기과원장이 모는 차는 예의 마하속력으로 내달아 보이질 않는다. 날아야 비행기지 결국 절 앞에서 만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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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령에서부터 계속 왼쪽으로 소백산을 끼고 달려 온 게 분명하건만, 귀신에 홀렸는가 절문의 현판에는 태백산부석사라고 씌어 있다.
   매표소 앞에 안내문이 하나 있다. 부석사는 비록 소백산 국립공원 내에 있긴 하지만, 본래 태백산 줄기의 봉황산에 자리 잡고 있으니 유념하라는 것이다.
   작은 친절이 주는 큰 기쁨에 까닭 모를 전율이 감돈다. 관광지에서의 친절에는 워낙 익숙하지 못한 탓이리라(나중에 알았는데, 소백산과 태백산은 그 사이에 있는 고치령을 경계로 하여 서쪽이 소백산, 동쪽이 태백산으로 구역이 나뉜다).  

   무량수전에 도달하려면 下階, 中階, 上階를 지나야 한다. 삼복더위에, 그것도 장마 중간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길고 긴 계단을 오르려니 발자국마다 땀에 젖는다. 극락 가는 길이 쉬울 리가 없다. 극락길이 고행길이요, 고행길이 고생길이 아닐는지.

   단청마저 퇴색한 고색창연한 건물(안양루)이 앞을 막아 고개를 드니 이승만 전대통령이 썼다는 ‘太白山浮石寺’ 현판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겉멋이 잔뜩 들어 아무데나 마구 휘갈겨 놓은 후대의 대통령들 글씨에 비하면 어딘지 모르게 운필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02.jpg


   명찰순례책을 펼쳐 들고 전문가이드 못지않게 說을 푸는 김원장의 뒤를 따라 無念의 발걸음을 옮겨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거대한 배흘림기둥이 지붕을 받친 장엄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난다. 無量壽殿이다.

   현존하는 最古의 목조건물,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수없이 들어 온 이름(그러나 지금은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 더 오래된 목조건물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졸업 후 22년 만에 처음 실물을 대하는 바로 그 건물이다. 위아래에 비하여 가운데 배부분이 뚱뚱한 특이한 양식의 기둥을 이름하여 배흘림기둥이라고 한단다.  
   단청은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다 퇴색하였으나, 그것이 울긋불긋한 것보다 더 운치가 있다. 건물벽에 벽화가 하나도 없어 이상하다 했더니 다 떼어 내어 유물전시관에 보관중이란다.  
   건물 안에 들어가니 부처님이 건물 전면(남쪽)이 아닌 옆면(동쪽)을 향하여 앉아 있다. 다른 어느 절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건물 밖에는 그 부처님의 눈길이 미치는 곳에 삼층석탑을 세워 客의 시선을 한동안 묶어 놓는다.

   무량수전의 앞돌에 서서 전면을 바라보면 一望無堤로 탁 트인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가을의 落照가 특히 아름답다고 하는가 보다.
   저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산들은 태백산 자락일까 소백산 자락일까?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궁금증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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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을 왼쪽으로 끼고 돌자 '떠 있는(浮) 돌(石)'이 나타난다.
   의상대사를 사모하던 중국처녀 善妙娘子가 못 이룰 사랑에 서해바다에 투신하여 용이 되었는데, 의상대사가 귀국하여 당시 이 곳을 先占하고 있던 500여 명의 산적들을 쫓아내고 절을 지으려고 할 때 그 용이 커다란 바윗돌을 공중에 띄워 산적들에게 겁을 주니 모두 달아났다는 傳說이 담겨 있는가 하면, 바위가 공중에 떠 있기 때문에 밑으로 실을 넣으면 그대로 통과한다는 이야기가 擇里誌에 적혀 있다고도 한다. 04.jpg


   초상화를 그려 놓고 선묘낭자를 기리는 善妙閣이 무량수전 오른쪽 옆에 있는 것을 보면 그녀가 실존인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무리 보아도 실이 통과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것이 浮石이요 하면 浮石이고, 이 이가 善妙요 하면 善妙인 것이다. 心生卽種法生하고, 心滅卽種法滅이라 하지 않던가.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 것이 일어나고, 마음이 없어지면 모든 것이 없어지는 법,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인 것이다.

   역사가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량수전으로 인하여 널리 알려진 절, 부석사는 분명 큰 절이다. 게다가 華嚴宗의 宗刹이다. 그런데 절에 들어설 때부터 절을 나설 때까지 정체 모를 기운이 계속 맴도는 듯하였다. 무얼까?
   오늘의 훌륭한 안내자 김원장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의상대사 후로는 이 절에서 큰 스님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절터가 넓고 전각이 많은데도 현재 고작 5-6명의 스님밖에 상주하지 않는단다.  

   그렇다. 무량수전을 비롯하여 개개의 건물들은 친밀감을 주지만, 절의 전체 분위기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을 멀리 한다. 이 것이 나 혼자만의 느낌이기를 바라면서 上階, 中階, 下階를 내려와 다시 속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동안의 많은 여행길에서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건만, 庚浩가 어른들과 떨어져 혼자 절을 내려가는 바람에 애를 찾는 소동을 벌인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까?(1996.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