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올 사람은 넘쳐난다(1)

 

 

      1987년 독일에서 1년 1개월 동안 연수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서유럽의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 이후로 지금껏 세계의 명승지로 알려진 여러 곳을 찾았다. 이과수폭포와 마추픽추를 보러 남미를 가고. 희망봉과 동물의 왕국을 보러 아프리카를 가고, 만년설로 덮인 해발 8,000m의 높은 산을 보러 히말라야를 가고, 동서문명 교류의 역사적 현장을 보러 실크로드를 가고,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를 보러 도미니카를 가고...

 

      그런데 그렇게 30여 년이 지나도록 가 보지 않은 곳이 있었다. 다름 아닌 이탈리아의 로마이다.

해외여행을 나서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한 번쯤 가 보는(또는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로마가 아닐까.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로마가 급히 서둘러 가야 할 만큼 매력적인 곳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영화나 TV 화면에서 접할 기회가 적지 않아 신선미가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람에 치이고, 소란스럽고, 들끓는 소매치기를 조심하느라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하는 이미지가 더 강했던 것이 바로 그곳으로 발길을 쉽게 향하지 않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로마는 워낙 유명한 곳이라 나이가 들어서도 비행기만 타면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 한 살이라도 젊어 다리에 힘이 있을 때는 가기 힘든 곳부터 가 보자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잠재하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집사람이 이젠 둘 다 환갑이 넘은 터이니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탈리아 여행을 해 보자고 하여 우여곡절 끝에 2017. 1. 6.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올랐다. 롯데관광의 이탈리아 일주여행에 참가한 것이다.

 

 20170106_180306.jpg

 

이탈리아 도착

 

    인천공항에서 밀라노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1시간 걸린다. 대한항공 직항편인데도 그렇다. 그러고 보면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임이 분명하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제는 이렇게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는 게 고역이다. 더구나 7년 전에 걸렸던 대상포진의 후유증으로 시작된 등의 통증(신경통인지 관절통인지 정체불명이다)으로 의자에 등을 오래 붙이고 있을 수 없어 더 힘들다.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게 힘들지 않던 시절에 갔어야 했나 보다’라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해 본다. 이탈리아 여행을 너무 뒤로 미뤘나?

 

이태리 일주 지도.jpg

 

    인천공항에 익숙한 나의 눈에는 밀라노 공항이 초라하게 다가온다. 비록 겨울이긴 하지만 한국보다 8시간이나 늦은 시차 탓에 아직 해가 떠 있는 오후인데도 공항은 썰렁하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용객의 숫자가 인천공항에 비할 바 못 된다.


    공항에서 나와 밀라노 외곽의 호텔(iH Hotel)에 도착하니 어느 새 저녁 8시다. 명색이 별 4개인 호텔인데 춥다. 내복 위에 거위털로 된 얇은 패딩을 더 입고 자야 했다. 불편한 이탈리아 호텔의 서막이 바야흐로 시작되는 건가. 여행사 안내문에 전기장판을 가져가면 좋다는 이야기가 있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알 만하다.

    서울에서 준비해 간 컵라면의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몸이 풀린다. 거기에 삼각김밥과 진공포장 김치를 더하니 훌륭한(?) 만찬이다. 그런데 향후 며칠간은 이 훌륭한 만찬을 그리워해야 했으니...
  
친케 테레(Cinque Terre)와 피사(Pisa)

 

2017. 1. 7.
   추위에 새우잠을 잔데다 8시간의 시차까지 있어 새벽에 잠이 깼다. 아침식사가 맛있을 리가 없지만 이탈리아를 한 바퀴 도는 대장정을 하려면 배를 불려 놓아야겠기에 호텔 식당으로 갔다. 아침식사는 뷔페식이다.

   이제껏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면 호텔의 뷔페식 아침식사가 어디나 양호한 편이어서 불편하지 않았는데, iH 호텔의 아침식사는 그야말로 꽝이다. 여러 가지 종류를 늘어놓은 빵을 제외하면 먹을 만한 게 거의 없다. 신선한 과일 대신 통조림 과일을 내놓는 호텔은 처음 본다. 주스도 마찬가지이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기는 이탈리아답게 차(茶)는 한두 가지밖에 없고 그나마 맛도 없다. 그런데 커피를 안 마시는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아침 7시 45분, 라 스페치아로 이동하기 위하여 대기 중인 45인승 관광버스에 올랐다. 널찍해서 좋은데 뜻밖에도 버스 안이 춥다. 대기 오염을 막기 위하여 공회전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를 미리 덥혀 놓을 수 없다고 한다.

   하늘이 실종된 서울에서는 특히 중구가 대기오염이 심각한데, 그 이유가 몰려드는 관광버스의 공회전(겨울에는 난방, 여름에는 냉방을 위하여) 때문이라는 신문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른다. 서울과 달리 밀라노에서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20170107_080655(0).jpg
[밀라노의 여명]

 

   밀라노에서 라 스페치아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텄다. 밀라노가 롬바르디아 평야에 자리한 까닭에 달리는 버스 안에서도 시야 장애 없이 붉게 물드는 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해발 2,000m가 넘는 봉우리에는 흰 눈이 덮여 있는 아펜니노산맥을 넘어 라 스페치아로 가는 고속도로는 차가 별로 없어 한가하다. 그래도 관광버스는 시속 100km를 넘어 달릴 수 없다. 차창에 어리는 풍경도 밋밋하다. 그래서일까 스르르 잠이 온다.

 

   라 스페치아(La Spezia)는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인구 10만 명 정도의 군사도시(해군기지가 있다)로서, 특별히 볼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곳에서 제노바(Genova) 행 기차를 타고 친케 테레(Cinque Terre)로 가기 위해 들른 것이다. 친케 테레는 대형버스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라 스페치아 기차역사의 외관은 그럴싸한데 내부는 그냥 시골 기차역 수준이다.

 

20170107_104350.jpg
[라 스페치아의 기차역사]


친케 테레(Cinque Terre)

 

     기차가 출발했나 싶었는데 금방 내려야 한다. 채 10분이 안 걸려 친케테레 중 첫 번째 마을인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에 도착한 것이다.

    친케 테레("다섯 개의 땅"이라는 뜻)는 해안가 산 위로 둘레길이 연결된 다섯 개의 마을로 이탈리아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다.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몬테로소 알 마레(Monterosso al Mare), 베르나차(Vernazza), 코르닐리아(Corniglia), 마나롤라(Manarola), 리오마지오레(Riomaggiore)가 이어진다.

 

친케 테레.png
[친케 테레 지역]

 

   각각의 마을은 기차나 보트로 닿을 수 있지만, 바위투성이 해안선은 오직 걸어서만 접근할 수 있다. 이곳은 중세에(또는 그 이전에) 외적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주민들이 절벽에 요새를 건설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대부분의 주민은 고기잡이가 생업이었는데, 어부들이 연안에서 고기를 잡는 동안 자신의 집을 쉽게 볼 수 있게 외부를 화려하고 다양한 색으로 칠하였다.

                                                                          
   가장 남쪽에 위치한 리오마지오레는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곳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환경에 맞춰 지은 형형색색의 돌집들이 마치 몇 층짜리 탑처럼 하늘을 향해 서 있다. 집과 건물들은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보기 나름으로는 그 집들이 연출하는 풍경이 예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극동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궁기(窮氣)가 흐르는 달동네가 떠올랐다. 그리고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20170107_113323.jpg

[리오 마지오레 전경]

 

   리오마지오레와 바로 위 북쪽마을인 마나롤라 사이에는 해안가 절벽 위로 1㎞ 정도의 유명한 ‘연인의 길(Via Dell’Amore)‘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보는 지중해의 풍광이 멋지다고 하는데 일정상 걷기를 단념해야 했다. 대신 기차역에서 터널을 지나 리오마지오레의 마을 안 중심가로 들어갔다. 뜻밖에 상가가 제법 크게 형성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어업이 아니라 관광업이 이 마을의 주업이 아닐까 싶다.                           

 

20170107_115042.jpg

20170107_114713.jpg
[리오마지오레의 터널과 시가지 모습]

 

   리오마지오레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한 정거장 가니(역시 채 10분이 안 걸린다) 마나롤라이다. 언뜻 리오마지오레와 비슷한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인솔자가 ‘이날 라 스페치아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4시까지는 피사에 도착하여야 대성당과 사탑을 볼 수 있고, 그러려면 20분 후에 도착하는 라 스페치아 행 기차를 타야 해서 마나롤라를 제대로 둘러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도리 없이 마나롤라 역에서 보이는 일부 풍광만 바라보며 기차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맙소사! 그 기차가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안 오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나롤라를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일행들이 불평하니까, 인솔자가 가로되,

 

“이곳은 한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입니다.”  

 

   이곳에서는 기차가 제 시각에 맞춰 올지, 마냥 연착을 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역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0170107_123358.jpg

[마나룰라]

 

    라 스페치아로 돌아와 점심식사를 했다. 한국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 하면 뭔가 그럴싸한 음식을 먹을 것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제 여기서는 ‘이탈리안’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히 불필요하다)에 가 점심식사를 한다니 피자나 스파게티를 제대로 맛볼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하였는데,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다.

 

   우리나라에서 ‘한식당’이라고 해서 다 훌륭한 맛집이 아니듯이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다 근사한 식당은 아닌 것이다. 너무나 간단한 이치인데 왜 그것을 깜빡했지? 이탈이아에 왔다는 들뜬 마음이 이성을 잠깐 마비시킨 것이다. 점심식사로 나온 파스타와 구운 닭다리는 차라리 외면하고 싶었다. 일행 중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온 모자는 급기야 밖으로 나가 햄버거를 사 먹었다. 

 

20170107_125441.jpg

20170107_점심식당.jpg

[라 스페치아의 시가지와 점심식사를 한 식당]

 

피사(Pisa)

 

    피사(Pisa)는 그야말로 평지에 건설된 조용한 도시이다. 추운 날씨 탓인지 거리에 사람들도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사탑(斜塔)이 있는 대성당 부근 넓은 주차장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손님을 기다려야 할 방울기차는 아예 개점휴업으로 운전사도 보이지 않는다.

 

20170107_150827.jpg

[피사 대성당 부근 주차장의 방울기차]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유명한 피사의 사탑은 독립된 건축물이 아니라 성당에 부속된 종탑이다. 일부러 기울게 지은 것은 아니고, 한 마디로 말해 부실공사를 한 것이다. 약한 지반을 제대로 다지지 않고 짓다 보니 기운 것이다. 높이 54.5m의 탑이 그렇게 기운 채로 몇 백 년을 지탱하였다니(1174년 착공, 1372년 완공) 가히 기적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갈릴레이는 왜 하필이면 그 기운 사탑에서 물체 자유낙하실험을 하였을까. 이래저래 신비한 곳이다.


     1990년 이탈리아 정부가 세계적인 건축가, 토목기술자들을 불러 모아 10년 동안 보수공사를 해서 더 이상은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현재 기울기는 5.5도이다). 덕분에 비싼 돈(1인당 18 유로) 내고 입장권을 끊어 종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사탑.jpg

                 [피사의 사탑]


     종탑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후 배낭이나 핸드백 등 짐을 맡겨야 한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테러를 막기 위함이란다. 그래서 종탑 입구에는 총을 든 군인이 지키고 신분증 검사도 한다. 그리고 입장권에 찍힌 시간대에만 들어갈 수 있다(40분 간격으로 30명씩).

    오르내리는 사람으로 엄청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별로 붐비지 않았다. 8층 꼭대기로 오르는 계단이 가파르기는 했지만 걸을 만했다. 꼭대기에서는 피사의 시내가 한 눈에 다 내려다보인다. 피사가 얼마나 평탄한 지역에 건설된 도시인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이 거의 없는 옛 모습 그대로인 게 정겹다.

 

20170107_160943.jpg

20170107_161339.jpg
[사탑 꼭대기의 종과 그곳에서 본 대성당 및 피사 전경]

 

   종탑에서 내려와 대성당으로 갔다. 이곳에서도 입장권을 요구한다.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입장권을 주는 곳이 있어 뛰어갔더니 직원이 입장권을 내주면서 하는 말이 무료란다. 아니 그럴 거면 도대체 왜 멀리 가서 입장권을 구해 오라는 것이지?


   “아 참, 여기는 이탈리아지!”


   다시 달리기를 해 성당입구에 가서 입장권을 내미니까 “헉~” 못 들어간단다. 입장권에 30분 후인 오후 5시에나 들어갈 수 있는 시간대가 적혀 있었다. 멀리 한국에서 왔고,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5시까지 가야 한다고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이다. 그런데 이 때 백마를 타고 나타난 구세주가 있었으니...

    나와 집사람을 종탑에서 본 모양인 한 이탈리아 남자가 혹시 종탑 입장권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러면 그것으로 들어가면 된다고 한다. 종탑 입장권을 집사람이 버리려고 한 것을 기념 삼아 지갑에 넣어 둔 것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종탑 입장권이 있으면 애당초 성당 입장권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에 입장권을 요구하던 직원이 그 사실을 안내해 주었으면 100m 달리기를 왕복하고 더 나아가 들여보내 달라고 사정하는 고생을 안 해도 되었을 것을...

 

20170107_165602.jpg
[피사 대성당]

 

   대성당(두오모 duomo. 이탈리아에서 두오모는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대성당을 뜻한다)은 로마 등 다른 유명한 도시에 있는 대성당들과 달리 거대한 규모에 비하여 내부가 수수했다. 이방인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천장과 벽에 빈틈없이 온통 성화를 그려 넣고 창문은 몽땅 스테인드글라스로 치장하고 발에 걸릴 정도로 조각 작품을 늘어놓은 화려한 성당에 들어가면, 성당 고유의 경건함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볼거리가 많다는 인상을 받고 그래서 오히려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성당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연말 날벼락처럼 발견된 암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처제의 완쾌를 예수님 전에 빌고 또 빌었다. 내 비록 기독교도가 아닌 불자이지만,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이니 나의 간절한 기도도 받아들이지 않으실까. 
         20170107_165219.jpg

[대성당의 내부]

 

   피사 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1시간 거리의 피렌체 외곽에 있는 호텔(Gate Hotel)로 이동하여 투숙하였다. 호텔은 별 4개짜리의 현대식 건물임에도 실내온도가 21℃밖에 안 되어 춥다.

   저녁식사로 돼지고기 튀긴 것(돈까스 비슷하다)이 나왔다. 나는 육식을 안 한다고 하니까 생선스테이크가 나왔다. 그러나 일행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맛이 너무 없는 것이다. 그 맛있다는 피자나 스파게티는 도대체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거지?

 

20170108_093353.jpg
[게이트 호텔]

 

    방안에 커피포트라도 비치되어 있으면 김치도 있겠다 컵라면이나 쌀국수를 끓여 먹으련만 커피포트가 없어 그것도 안 된다. 이에 더하여 물컵은 일회용 두 개뿐이고, 휴대폰 충전은 화장실에서만 가능하다. 다른 소켓에는 충전기가 들어가지 않는다. TV코드를 뽑고 그곳에 꽂아 보았으나 마찬가지이다. 이후의 호텔들도 거의 대동소이했다. 심지어 샤워부스에 문이 없어 샤워를 하고 나면 물난리가 나는 곳도 있다.

    시내 중심가 구시가지에 있는 중세건물을 개조한 호텔이라면 춥고 전기코드가 안 맞고 마루가 삐걱거려도 차라리 이해하겠는데, 시 외곽에 필시 관광객들을 위하여 세웠을 현대식 건물의 호텔 시설이 한국의 여관만도 못해서야 원...

 

   ‘그래도 올 사람은 넘쳐난다’는 배짱인가?

 

구제불능이다.
     
시에나(Siena)

 

2017. 1. 8.
   호텔에서 아침 7시에 식사를 하였는데 정작 시에나로 출발한 것은 9시 30분이다. 거의 두 시간을 하는 일 없이 호텔에서 빈둥거린 것이다. 이탈리아를 짧은 기간에 일주하는 여정에서 이건 시간낭비가 아닐 수 없다.

    호텔이며 음식이 엉망이어서 못 마땅한 판에 일정마저 치밀하지 못하니까 주관 여행사인 롯데관광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간다. 이 여행사가 예전에는 다른 여행사에 비하여 다소 비싸긴 해도 그만한 값을 했기 때문에 종종 이용하였는데, 이번에는 영 아니다. 실망의 연속이다.

    차라리 전날 친케 테레를 제대로 둘러보고 와서 피사에서 투숙한 후 아침에 서둘러 피사 관광을 하고 시에나로 떠나면 훨씬 알찬 일정이 되었을 것이다.
 
   오전 11시에 시에나에 도착하였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다. 본래 11시 30분에 도착하여 바로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30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남아 시에나의 제일 높은 고지대로 올라가 시내를 조망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복병이 등장했다. 운전기사가 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건 본래 일정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가외의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럴 때 “그래 너 잘났다”하고 포기해야 옳은가(여기는 이탈리아이다!), 아니면 그 정도의 서비스도 못하냐고 따지는 것이 옳은가(멀리 한국에서 이곳까지 와 돈을 쓰고 다니는 관광객이다!)?

   아무튼 로마에서부터 달려 온 현지 가이드(한국 교민이다)가 어르고 달래 겨우 버스를 타고 고지대로 올라갔다. 제일 높은 고지대라고 해봤자 버스로 10분도 안 걸리는 곳이다.

 

20170108_112745.jpg

20170108_112419.jpg
[시에나의 고지대와 성문]

 

     이곳에 있는 성벽과 성문은 오랜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19세기 말에 통일이 되기 전까지 이탈리아는 오랜 세월 각 지방마다 도시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살았다. 그래서 각 도시마다 벽을 쌓고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통일국가인 지금도 오랜 도시국가의 전통이 남아 있어 도시 간 축구시합이라도 할라치면 거의 전쟁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이탈리아로 입국하는 국경세는 없어도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들어가려면 도시진입세를 꼬박 내야 한다.

    그래서 이탈리아를 일주하는 이번 여정 동안 매 도시로 들어갈 때마다 도시 입구에 있는 세금 징수소에서 진입세를 내는 것이 인솔자의 첫 번째 일이었다. 그 금액이 많게는 관광버스 한 대당 몇 십만 원에 달한다.   


   고지대에서 내려와 점심식사장소로 이동했다. 메뉴는 칠면조 고기. 먹어 본 사람들이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드디어 일행 중 몇 분이 인솔자에게 식사가 너무 부실하다고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항의의 정도가 미약한 단계였다. 

 

   중세도시 시에나는 크지는 않아도 볼거리가 많다. 피사노,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등이 설계와 조각 장식에 참여한 고딕양식의 대성당, 이탈리아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자랑하는 부채꼴 모양의 캄포 광장, 그리고 광장에 면하고 있는 푸블리코 궁전 등을 둘러보는 데도 시간이 제법 걸린다. 붉은 색 건물들과 골목길로 어우러진 시가지는 제법 화려한 편인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날이 일요일인데다 크리스마스 휴가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많은 상가가 문을 닫았다.

 

   대성당(Duomo di Siena)은 흰 색과 검은 색의 대리석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아름답기로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성당이다. 내부의 흑백 줄무늬를 한 기둥, 시에나의 17개 구역을 상징하는 휘장, 벽면과 천장을 가득 덮은 프레스코화, 바닥의 모자이크, 금으로 치장된 돔과 채광창까지 화려함을 자랑한다.

   12세기 중반에 공사를 시작하여 14세기 후반에야 비로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경쟁관계에 있는 도시 피렌체에 대항하여 세계 최대의 성당을 지으려고 했는데,  1348년 페스트가 창궐하여 시민의 3분의 2가 죽고 재력을 상실하는 바람에 단념하였다고 한다. 

 

20170108_144306.jpg

20170108_142109.jpg

20170108_142544.jpg     [시에나 상당의 전경과 내부, 천장]

 

20170108_143056.jpg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중세 시대 악보 원본]
 
   부채꼴 모양의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데, 부채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부분에 있는 푸블리코 궁전을 향해 내리막 경사가 졌다. 여름에는 시에나의 전통축제인 팔리오축제가 이곳에서 열린다. 광장 주변에 카페가 늘어서 있어 그 중 한 곳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집사람만) 추위를 녹였다.

 

20170108_133846.jpg

[캄포 광장]

 

20170108_134741.jpg

[캄포 광장의 카페]

 

     푸블리코 궁전은 1층 오른쪽이 시청사로 쓰이고 2,3층은 시립미술관으로 쓰이는데, 1층만 보고 나왔다. 1층 입구에 피노키오 형상을 전시해 놓은 것이 눈길을 끌었다.

     1층 왼쪽은 만자의 탑(Torre di Mangia)이다. 높이가 102m로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탑이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데, 시간이 없어 포기했다. 이 탑은 페스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시에나 자치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시에나 시청사.jpg

[푸블리코 궁전과 만자의 탑]

 

     시에나에서 흥미로운 구경을 하였다. 고지대에서 내려와 구시가지로 가는 오가는 길에 분수대를 지나게 되었는데, 맙소사! 얼음 속에서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한국 같으면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아니 가을이 깊어 가면 이미) 분수를 작동시키지 않을 텐데, 이곳에서는 추운 영하의 날씨에도 분수를 가동하는 통에 물이 뿜어져 나오는 분수대 주위가 얼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마치 얼음 속에서 물길이 솟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모습은 그 후 다른 도시에서도 여러 번 목격하였다. 관광객을 위한 서비스차원일까? 이탈리아 사람들의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로 보아서는 그런 서비스를 할 것 같지 않은데....      


20170108_125613.jpg [시에나의 겨울 분수]
 
   시에나를 출발하여 3시간 30분 걸려 로마에 도착하였다. 이탈리아를 일주하는 여행 일정상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 수밖에 없다. 낮이 짧은 겨울이라 로마에 도착하니 벌써 사위가 깜깜하다. 한식당(상호 : 강남)에서 김치찌개와 불고기롤 저녁식사를 했다. 함께 나온 로메인 상추의 맛이 일품이다. 이제까지의 식사 중 가장 나은 편이었다. 이제부터는 식사의 질이 좋아지나 하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최악의 점심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로마(Roma)

 

2017. 1. 9.
   이탈리아는 1월 8일까지 크리스마스 휴가가 이어졌기 때문에 이날 실질적으로 새해가 시작되었다. 로마는 누구나 익히 알다시피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오고 볼거리는 많고... 가능한 많은 곳을 보기 위하여 아침 7시에 호텔(iH 호텔)을 나섰다. 그러나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는 이미 정체가 시작되었다.

 

20170109_071927.jpg

[로마 시내로 들어가는 길의 정체]

 

 

   제일 먼저 간 곳이 바티칸 박물관(Musei Vaticani)이다. 역대 로마교황들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 고문서, 각종 자료들을 수장하고 있는 곳이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대가들이 그리고 만든 벽화, 조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줄이 장사진이다. 다행히 여행사에서 미리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 전 세계에서 온 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박물관 안에서는 그냥 떠밀려간다는 곳인데, 이곳도 추운 날씨 탓인지 그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멋진 그림이나 조각들이 워낙 많이 있다 보니 전시물 하나하나의 가치는 오히려 감소하는 느낌이다. 네팔에서는 4,000m 이하의 산은 산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20170109_075548.jpg

20170109_084916.jpg

[바티칸 박물관의 입구와 내부]

 

20170109_085714.jpg

[바티칸 박물관의 내부 천장]

 

   주마간산으로 박물관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으로 갔다. 교황을 선출하는 바로 그 성당이다. 교황 선출이야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니 그 때가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하고, 이곳은 그보다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가 그려져 있어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또 그들의 발길을 부여잡는 곳이다.

 

천지창조.jpg

[천지창조]

 

      ‘천지창조’는 고개를 잔뜩 뒤로 젖히고 보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게 할 만큼 멋진 대작이다. 저 높은 천장에 저 그림을 그리느라 미켈란젤로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그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으로 1508년 5월에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512년 10월까지 4년 5개월 걸려 완성했는데, 천장에 그리느라 자세에 무리가 가 무릎에 물이 고이고 등이 굽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그로부터 22년이 지나서 그린 것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이 그림의 중앙 예수의 발 아래쪽에 바르톨로메오(Bartholomaeus)가 들고 있는 사람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시스티나 성당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최후의 심판.jpg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에서 나와 산 피에트로 성당(San Pietro Basilica. 흔히 ‘성 베드로 성당’으로 더 알려진 곳이다)으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바로 그 성당이다. 크기도 크기지만 내부의 화려함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중세에 이런 성당을 지은 그 건축기술이 놀라울 따름이다. 본래 4세기에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졌던 상당을 16세기에 다시 지은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유일한 조각품인 피에타(Pieta)가 이곳에 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다.

     성당 앞의 광장은 30만 명이 모일 수 있을 정도로 넓다. 성당 옆 광장의 한편에는 교황의 집무실이 있는 건물이 있다. 그런데 역시 추위 때문인지 이 유명한 성당 앞 광장에 사람들이 별로 없어 썰렁하기만 했다.

 

 20170109_100222.jpg

20170109_093331.jpg

[산 피에트로 성당의 전면과 내부]

 

20170109_094507.jpg

20170109_093519.jpg

[산 피에트로 성당의 내부 천장과 피에타]

 

20170109_093038.jpg

[산 피에트로 성당 앞 광장]

 

   산 피에트로 성당 다음으로 간 곳이 콜로세움(Colosseum)이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4층의 거대한 원형경기장이다. 글래디에이터(Gladiator) 등 여러 영화에 나와 눈에 익숙한 곳이지만, 막상 실물을 보니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다(최대 지름 188m, 최소 지름 156m, 둘레 527m, 외벽 높이 48m).
   부분적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경기장의 내부로 들어가 관중석으로 가니 경기장 바닥이 환히 보인다. 그 경기장 바닥 위로 검투사끼리 결투를 하다가 죽고, 박해 받던 기독교인들이 사자와 같은 맹수에 물려 죽고... 이곳에서 무수히 죽어나갔을 사람들과 그것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을 관중석 구경꾼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20170109_104333.jpg

20170109_111521.jpg

[콜로세움의 전면과 내부]


   고대 로마 정치인들에게 이곳은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굳힘과 동시에 자신들의 권위에 불복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보복을 암시하는 공간이었다.

    멀리 동방에서 온 나그네의 심사가 괜스레 울적해진다. 이유 없이 사람을 죽고 죽이게 하며 좋아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의 잔인함을 어떻게 설명할거나. 그런 콜로세움 옆에 세워진 콘스탄틴 황제 개선문은 아마도 수많은 노예의 희생 하에 세워졌으리라.

 

20170109_115321.jpg

[콘스탄틴 황제 개선문]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아무리 볼거리가 많아도 배가 고프면 소용없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는데(페가소 식당), 메뉴는 또 튀긴 돼지고기와 야채샐러드. 고기를 멀리 하는 나와 또 한 사람의 일행을 위해 특별히 제공된 음식은 프라이팬에 구운 가지 두 쪽이다.    

 

     음식을 보고 일행 중 여선생님 다섯 분(여고 동창들이다)이 마침내 폭발하였다. 향후 일정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인솔자를 몰아세웠다. 모든 것을 한국의 본사에서 정한 대로 할 뿐 자신한테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고 울상이 되어 설명하는 인솔자가 불쌍할 따름이다. 인솔자가 본사에 연락해서 남은 일정만이라도 식사를 개선해 보겠다고 사정해서 겨우 일행의 분노를 가라앉혔다.

 

20170109_122419.jpg

[식사로 가지 두 쪽이 나온 페가소 식당]

 

     점심식사 후에는 대절한 벤츠 밴을 타고 트레비 분수, 사랑의 계단, 판테온 성당, 진실의 입, 헤라클레스 신전, 포로 로마노, 레푸블리카 광장, 미쓰꼬시 백화점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벤츠 밴은 좁은 골목까지 누비고 다닐 수 있어 반나절 만에 이런 여러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는 이날 로마에서 제일 붐볐다.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로마에 있는 분수 중 최고의 걸작으로 규모도 제일 크다. ‘트레비’는 세 갈래 길(Trevia)이 합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폴리 궁전(Palazzo Poli) 건물의 한쪽 면을 화려한 조각들로 장식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이 분수는 본래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고대의 물길 ‘처녀의 샘(Acqua Vergine)’을 부활시키기 위해 만든 것에서 시작된다. 처녀의 샘이라는 이름은 목마른 로마 병정들 앞에 한 소녀가 나타나 물이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한 데서 유래한다. 현재의 모습을 지닌 분수는 교황 클레멘스 13세 때인 1732 공사가 시작되어 30년 만인 1762년에 완성되었다.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로마에서 22㎞ 떨어진 살로네 샘으로부터 끌어온다. 이 분수 가운데에 있는 조각상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넵튠)이다.

 

20170109_142144.jpg
[트레비 분수]

 

   트레비 분수에 가면 전 세계 동전을 모두 볼 수 있다. 분수를 등 뒤로 한 채 오른손에 동전을 들고 왼쪽 어깨 너머로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올 수 있고, 두 번 던지면 연인을 만날 수 있고, 세 번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에 주로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동전을 던진다. 하루에 보통 3,000 유로 정도의 동전이 분수에 쌓인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 오드리 헵번이 이곳에서 동전을 던지는 장면이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추위에 분수 일부가 얼었지만 열심히 동전을 던지고 구경하는 사람들로 모처럼 로마의 인파를 실감했다.

 

  트레비 분수 옆에 있는 유명한 아이스크림가게(Bar Trevi)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집사람과 함께 먹었다. 나는 평소에 아이스크림을 잘 먹지 않는데, 이곳 아이스크림을 안 먹으면 트레비 분수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 추위에 떨망정 하나의 추억으로 남기려고 사먹은 것이다, 맛도 괜찮았다.

 

20170109_144651.jpg

[맨 우측이 아이스크림 가게 Bar Trevi]

 

   스페인광장에 있는 스페인계단(정식 명칭은 ‘트리니타 데이 몬티 계단’ Scalinata di Trinità dei Monti. 스페인 대사관 부근 스페인광장에 있는 계단이다. ‘사랑의 계단’으로도 불린다)에도 젊은이들이 쌍쌍이 앉아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이곳도 영화 ‘로마의 휴일’ 덕을 톡톡히 보는 곳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의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사랑의 계단 앞 분수에서 갈매기 한 마리가 죽은 갈매기의 사체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은 뭐람.

 

20170109_135536.jpg

20170109_135957.jpg

[스페인 계단과 그 앞의 분수]

 

    판테온(Pantheon.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성당은 BC 27년에 지은 것으로 로마의 현존하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 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느 성당과 달리 겉모습이나 내부가 매우 소박한데(측면에서 언뜻 보면 겉모습이 무슨 요새 같다), 천장이 원형(지름 9m)으로 뻥 뚫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곳으로 자연채광을 할 수 있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도 그 뻥 뚫린 천장을 통과하는 순간 분산되도록 설계되어 바닥에 물이 고이는 일이 없다고 하니 놀랍다. 성당 돔의 바닥 지름과 바닥에서 뻥 뚫린 천장까지의 높이가 정확히 43.3m로 같은 것이 이런 현상에 일조하지는 않을까. 혼자 추측할 뿐이다.
 

20170109_152005.jpg

20170109_153346.jpg [판테온 성당의 전면과 측면]

 

20170109_151138.jpg

20170109_150935.jpg

[판테온 성당의 구멍 뚫린 천장과 내부 모습]

 

판테온 성당 구조.jpg

 


   역시 영화 ‘로마의 휴일’ 덕분에 유영해진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à)’은 고대 성당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 입구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대리석 가면이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둥글게 새긴 것인데 지름이 1.5m 정도이다.

 

로마의 휴일.jpg

[영화 ‘로마의 휴일’ 중에서]

 

20170109_160200.jpg

[진실의 입]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은 중세에 사람을 심문할 때 가면의 입 안에 손을 넣고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손이 잘려도 좋다고 서약하게 한 데서 유래했다. 만약 진실을 말하더라도 심문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손을 자르도록 미리 명령이 내려져 있었다고 한다.

    거짓말을 하면 입안에 넣은 손이 잘린다는 것이 허황된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손을 넣고 있다. 관광상품은 유적 자체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어떻게 이야기를 입히느냐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진실의 입에 장신을 팔다 보니 정작 성당 관람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발렌타인 데이를 탄생시킨 성 발렌타인의 유골이 성당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진실의 입 앞에 있는 헤라클레스 신전과 뭇솔리니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연설을 했다는 베네치아 궁전은 지나는 길에 눈에 띄어 사진에 담는 것으로 그쳤다.

 

20170109_헤라클레스공원.jpg

[헤라클레스 신전]
 

베네치아궁전.jpg

[베네치아 궁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은 르네상스 건축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곳에 있는 시청사 뒤로 돌아가면 언덕 아래로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한 눈에 들어온다.

 

20170109_161439.jpg

20170109_162049.jpg

[시청사와 캄피돌리아 광장]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원형을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고대 로마에 때는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신전과 공회당 등의 무너지고 남은 기둥들, 건물 잔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워낙 현존하는 유적이 많다 보니 복원하지 않고 폐허 상태로 두는 유적지가 또한 관광상품이 되는 곳이 로마인 셈이다. 때마침 석양을 받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170109_162948.jpg

20170109_162815.jpg [포로 로마노]

 

    미쓰꼬시 백화점 앞에 있는 레푸블리카 광장(Piazza della Repubblica)은 지나는 길에 바라보기만 했다. 19세기에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광장으로 광장 가운데에는 물의 요정 4명을 조각한 나이아디 분수(Fontana delle Naiadi)가 있고 광장 남쪽에는 오페라 극장이 있다.

    미쓰꼬시 백화점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백화점인데, 한국 관광객들이 쇼핑하러 많이 찾는지 우리말을 하는 교민도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쇼핑에는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저 공짜 화장실을 이용하고 푹신한 의자에 앉아 쉴 수 있는 곳일 따름이었다.   

 

20170109_레푸불리까광장.jpg

[레푸블리카 광장]

 

20170109_로마의 야경.jpg

[미쓰꼬시 백화점 앞의 번화가]

 

    짧은 일정에 로마를 다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대로 보려면 1주일은 머물러야 할 듯하다. 위정자들이 자신의 업적으로 거대한 건축물을 남기려면 말할 것도 없이 백성을 핍박하여 당시에는 원성이 자자했을 터인데, 세월이 흐른 후에는 그렇게 세워진 건축물로 인해 후손들이 엄청난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그래서 인간세상은 하나의 자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리라.


     일행을 폭발하게 만든 점심과는 달리 저녁식사는 그럴싸했다. 해물샐러드, 홍합, 스파게티, 바다가재 등 모처럼 맛있는 요리로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어제 투숙했던 호텔로 돌아갔다. 이번 여정에서 유일하게 3박을 하는 호텔이다. 하루 일정을 간단히 정리하려니 본 게 너무 많아 헷갈린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