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대만, 천마산)

2016.06.06 19:15

우민거사 조회 수:1075

 

옥봉선사님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참으로 오랫동안 소식 전하지 못했습니다. 소생의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십시오. 때 이르게 찾아온 더위에 건강은 어떠신지요?

소생이 대법원에서 나온 후로 어느새 8개월이 지났습니다.
작금의 속도라면 곧 1년이 될 듯합니다.

 

돌이켜 보면,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하더니,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 것 같습니다.
사건의 홍수 속에 묻혀 지내던 대법관 시절에는 6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면 시간이 남아돌 줄 알았는데,

그래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막상 닥쳐 보니 그렇지 않네요.  


특히 예술의 전당에서 배우는 서예나, 국악로에서 배우는 판소리가 당초 생각했던 것만큼 진척되지 않습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배울 때는 안 그러더니, 막상 시간에 여유가 생기니까 게으름을 피우는 게 가장 큰 원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소질도 부족하지요. 
그래서 매사에 언제나 시종여일한 자세를 견지하시는 선사님을 뵐 때마다 감탄을 하게 됩니다. 범부로서는 엄두도 못 낼 그 경지를 그저 존경할 따름입니다.

 

소생은 배움의 길에서는 게으름을 피워도 타고난 역마살 탓에 지금도 여전히 쏘다니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1월에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후, 2월에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다녀온 이야기는 이미 말씀드렸지요.
그 후로도 불암산, 수락산의 서울 둘레길과 문학산, 청량산의 인천 둘레길을 걷고, 북한산 비봉을 오르고, 천마산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4월 초에는 대만도 갔다 왔습니다.

 

                                   

 

    천마산은 40여 년 전 대학생 시절부터 알고 있던 산인데도 정작 정상에는 올라간 적이 없었는데, 이번 초파일(2016. 5. 14.)에 서리풀산악회원들과 함께 마침내 정상(812m)을 정복하였지요. 화창하기 그지없는 전형적인 봄 날씨를 만끽하며 그야말로 즐거운 산행을 하였답니다.
    다만, 송구스런 표현인데, 소생도 나이를 먹다 보니 하산길에 무릎이 많이 아프더군요. 세월의 흐름 앞에 장사가 없으니 어찌하오리까. 그러고 보면 동행한 일행 중 배의철 전 조사심의관님은 고희를 지내고 전립선암 수술까지 한 분인데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산행을 해 범부를 부끄럽게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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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정상]


   천마산 정상에서는 가까이로는 스키장이 보이고, 멀리로는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아스라이 보이더군요. 후자는 주위에 견줄 건물이 없을 정도로 높다 보니 확실히 강남지역의 랜드마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봄 들어 유난히 미세먼지 주의보, 경보가 자주 발령되고, 서울에서는 비가 온 후에조차도 더 이상 맑은 하늘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천마산에서 바라보이는 서울 쪽 하늘은 이를 말해 주듯 그야말로 촌부의 가슴을 답답하게 하더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경의 하늘 사진을 보면서 북경사람들 어떻게 숨 쉬고 사냐며 불쌍하다고 했건만,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맑고 푸른 하늘을 보겠다는 생각이 정녕 부질없는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되는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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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에서 바라본 롯데월드타워. 가운데 뾰족하게 솟은 것]


                                  Ⅱ

 

   2016년 4월 초의 대만 여행은 “말썽이”의 로스쿨 졸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자지간에 손잡고 다녀온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말썽이”일 정도로 그야말로 말썽꾸러기였던 경준이가 어느새 로스쿨 3년을 마치고 지난 5월 17일에 군법무관으로 입대했습니다.

 

    졸업 후 입대 전의 비는 시간을 이용하여 부자가 해외여행을 하기로 하고, 어디를 갈까 궁리 끝에 대만을 다녀왔지요. 3박 4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만 28세의 아들이 환갑을 넘긴 아버지와 함께 여행길에 나서 준다는 게 고맙고 대견하였습니다. 

더구나 비행기표 구매, 현지 숙소 예약, 관광일정 짜기 등 모든 것을 말썽이가 다 알아서 하였지요. 이제는 더 이상 “말썽이”가 아님을 본인 스스로 증명하였다고나 할까요. 그런 말썽이도 짝을 찾아 결혼하게 되면 형인 “거북이”(경호)와 마찬가지로 소생의 품을 떠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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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에바항공의 기내 모니터에 뜬 비행경로 화면]

 


   대만에서는 주로 타이페이에 머물며 인근지역도 둘러보았는데, 백미는 역시 국립고궁박물원이더이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약 67만 8,000점)을 다 보려면 10년이 걸린다는 이야기가 결코 허언(虛言)이 아닐 듯싶었습니다(3-4개월 마다 전시물을 교체한다는군요). 

몇 천 년 내려온 중국문명의 진수를 보여 주는 문화재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를 연발케 하였지요. 장개석 정권이 국공 내전에서 패퇴하여 대만으로 쫓겨 오면서도 그 많은 유물을 챙겨 왔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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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원]

          
그런데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평일임에도 엄청나게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인해 차근차근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알려진 유물들 앞에는 중국 본토에서 온 깃발부대가 거의 점령하고 있어 접근이 어려울 지경이었지요.   대만3.jpg

    

    고궁박물관 다음으로 간 곳이 ‘타이페이101’ 타워(본래 명칭은 ‘타이페이 국제금융빌딩’)입니다. 총 101층(509m. 세계에서 세 번째로 높다)짜리 건물인데, 5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89층 전망대까지 37초만에 올라갑니다.
타이페이를 한 눈에 구경하려는 욕심에 긴 줄을 서서 기다린 후에 우리 돈으로 거의 5만 원 정도 하는 입장료를 내고 올라갔는데, 맙소사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내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타이페이 시내에서의 이동은 주로 우리의 지하철에 해당하는 MRT(Taipei Rapid Transit)를 이용했는데, 정액권을 끊으니까 편하더군요. 요금은 우리 지하철보다 저렴하였지요. 사실 MRT 요금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서울보다 물가가 저렴한 편이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하늘도 서울보다 한결 깨끗하니 자랑스레 ‘서울에서 왔노라’ 하기가 꺼려지더이다. 어쩌다 이리 되었지요?

 

      해가 저문 후에 용산사(龍山寺)라는 절에 갔습니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거찰인데, 대만에서 가장 오래되고(1738년에 건립) 유명한 절이라고 합니다. 늦은 시각인데도 참배객들과 관광객들로 붐비고, 거대한 향로에 피우는 향의 냄새가 온 절 안에 진동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절이 밤이 되면 조용해지는 것과 대비되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단순한 불교사원이 아니라 도교사원을 겸하고 있고, 관우에 삼신할머니까지 모셨다는 것이지요. 대만에는 이처럼 불교와 도교를 합친 사원이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원일수록 외양이 화려하답니다. 

지난 1월에 변호사 시험을 본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던 말썽이가 합격을 기원하며 열심히 기도를 하였고, 소생도 옆에서 거들었지요. 기도 덕분인지는 몰라도 귀국 후의 합격자 발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음을 확인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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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사]

 

   절에서 나와 맞은편의 화서가(華西街) 전통 야시장(夜市場)을 들렀습니다. 알기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우리나라의 광장시장을 연상하면 됩니다. 뱀 등 보양식을 비롯하여 온갖 종류의 먹거리를 팔지요. 타이페이에는 화서가 야시장 외에도 사림 야시장, 요하가 야시장 등 유명 야시장이 많더군요. 시장이 낮보다 밤에 더 번창하니 모를 일입니다.

 

   타이페이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으로 꼽히는 국립중정기념당(장개석 총통을 기념하기 위하여 1980년에 건립)은 그 규모를 보는 순간 입이 벌어졌습니다. 비록 광활한 중국 본토에서 작디작은 섬으로 쫓겨 왔지만 대륙에서 지녔던 기풍은 여전한 모양입니다. 

곳곳에서 눈에 띄는 거대한 건물, 기념관, 시원하게 뚫린 넓은 대로들... 대만 사람들은 아마도 본토 회복의 날을 머릿속에 늘 그리고 있지 않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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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정기념당]


   그런데 국립중정기념당 안의 넓은 예문광장(藝文廣場)에는 돔 형태의 천막을 치고 디즈니가 만든 뮤지컬 만화영화인 ‘겨울왕국’을 상영하는 등 설국잔치를 하고 있더군요.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장하려고 선 관람객의 줄이 끝이 안 보이더이다. 기후상으로 눈을 볼 수 없는 따뜻한 지역이다 보니 비싼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겨울왕국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국립중정기념당 마당에서 그런 이벤트를 한다는 게 이방인의 눈에는 의아하더군요. 더구나 광장의 양편에 국가음악청과 국가희극원이 있는데 말입니다.

 

   말썽이가 타이페이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을 버스로 하루 동안 순방하는 관광을 서울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온 덕분에, 대만에 있는 동안 하루는 온전히 버스를 타고 대만의 북부를 돌아다녔습니다. 예류(野柳), 진과스(金瓜石), 지우펀(九份), 스펀(十分), 핑시(平溪) 등이 그곳이지요.

 

   예류(野柳)는 바닷가인데,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빚어진 온갖 모양의 바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더군요, 그 중에서도 여왕머리바위가 제일 유명하여 그 앞은 관광객들로 엄청 붐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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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머리바위]

 

   진과스(金瓜石)는 일제시대 금광이 있던 곳입니다. 당시의 광산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지요. 이곳에 있는 황금박물관에 들어가면 이 세상에서 제일 큰 금괴(220kg)가 진열되어 있는데, 관람객이 만져볼 수 있습니다. 그걸 만지면 부자가 된다고 하여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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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kg짜리 금괴]

 

    박물관 입구 휴게소에서는 광부도시락을 팝니다. 금광에서 금을 캐던 시절 광부들이 먹던 도시락을 재현한 것으로서, 밥 위에 돼지고기 튀긴 것을 얹은 덮밥이지요. 호기심에 너도 나도 찾는지라 역시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먹을 수 있습니다.

 

    타이페이에서도 그랬고 이곳에서도 그랬는데, 대만에서는 자기네를 50년 동안 식민지로 만들어 수탈했던 일본에 대하여 우리 같은 반감이 없는 듯하더군요. 뜻밖이지요. 그래서인지 진과스에는 금광모습뿐만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왕세자가 이곳을 시찰하러 온다고 해서 지은 목조 건물 영빈관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더구나 실제로 오지도 않았답니다).       

 

    지우펀(九份)은 대만 근대사의 비극을 그린 영화 “悲情城市”(1989년 베니스영화제 작품상 수상)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곳이라는군요. 일본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델이기도 하다네요.
    길 양옆으로 상점들(주로 음식점)이 빽빽하게 들어선 비좁은 골목길은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입니다. 말썽이랑 둘이 걸으면서도 자꾸 놓칠 정도였지요. 온갖 음식점에서 풍기는 냄새들로 골이 지끈거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취두부의 냄새라니...경사가 급한 계단길도 있는데, 그곳에 비정성시라는 간판을 단 음식점도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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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펀의 골목길]


   스펀(十分)과 핑시(平溪)는 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곳은 기찻길에서 천등(天燈)을 날리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천등은 바람에 날린다고 해서 풍등(風燈)이라고도 하는데, 말썽이 말에 따르면 요새는 서울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붓에 먹물을 찍어 사면에 각자의 소원을 적은 후 하늘로 날리는데, 등 안의 촛불이 다 탈 때까지 상당히 높이 올라 멀리 날아갑니다. 소생은 “幸福, 平和, 健康”을 적었고, 말썽이는 “변호사시험에 붙게 해 주세요”라고 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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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페이로 돌아와 먹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타이페이는 명물 중 하나가 먹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딤섬으로 유명한 음식점들 중 서울에도 있는 딘타이펑(鼎泰豊)은 기본 한 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특히 샤오롱바오(小籠包)가 인기이지요. 융캉제(永康街)에 있는 가오지(高記)라는 딤섬 전문점도 역시 한참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었습니다(대만 사람들은 딘타이펑보다 오히려 가오지를 더 찾는다고 하네요). 딤섬 외에 뉴러우멘(牛肉面. 쇠고기탕면)도 추천메뉴입니다.


    망고빙수로 유명한 삼형매(三兄妹)도 마찬가지로 줄을 섰더군요.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시먼딩(西門町)에 있는 이 빙수가게 안에는 한국 관광객들이 해 놓은 낙서가 온 벽면에 가득하였지요.
    샤브샤브에 해당하는 화궈(火鍋)를 전문으로 하는 집도 가 보았는데, 각종 육고기와 해물을 뷔페식으로 가져다 직접 조리하여 먹는 식입니다. 게다가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과자, 음료수 등 후식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가격은 2-3만 원 정도로 저렴하더군요.  

 

선사님,

 

   바야흐로 보리베기를 끝내고 모내기를 하는 망종지제(芒種之際)인데 일찍 찾아온 여름 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합니다. 벌써 30도를 넘으면 정작 한여름 복지경에는 어쩌려나 모르겠네요. 첫머리에 말씀드린 것처럼 올해 들어 유난히 심해진 미세먼지로 푸른 하늘을 거의 볼 수 없어 숨이 막힙니다.

 

   게다가 나라 안으로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데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사람들은 갑질을 일삼아 국민들이 힘들어하고, 나라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져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판국입니다. 

 

   그런데, 아침마다 펼치는 신문지면은 각종 안전사고와 소위 ‘게이트’ 등이 장식할 뿐, 강정호, 이대호, 박병호, 김현수 등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활약상 외에는 어린 백성의 지친 마음을 달래 줄 시원한 소식 하나를 찾기 어렵네요.
 

    OECD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올해 조사 대상 38개 국가 중 삶의 질이 28위, 환경부분은 37위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뜨거운 태양열로 덥혀진 대지를 식혀 주는 시원한 빗줄기처럼 백성들에게 위안을 주는 멋진 소식을 기대한다면, 그 또한 부질없는 일장하몽(一場夏夢)인가요?

 

병신년 망종지제(芒種之際)에

현충원을 다녀와서
우민(又民)이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