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 보시게,

 

 병신년(2016년)의 한가위가 지나고 추분도 지났네. 오늘은 고대하던 반가운 비도 내리네.
그렇게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가 어느덧 물러가고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이 감도네그려.
더불어 천고인비의 계절을 맞아 만물이 무르익어 가는데, 대사의 건강은 어떠하신가?
전에는 대사가 늘 졸부의 건강을 늘 염려하여 주어 감사할 따름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되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네 그려.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여 활기 넘치던 지난날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구려.

 

구암,

 

   범부는 지난 주말에 서울둘레길 중 도봉산 자락에서 북한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부분(7호선 도봉역에서 수유리 4.19 묘지까지) 탐방에 나섰다네. 소오름산우회에서 2014년 2월부터 시작한 서울둘레길 탐방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네. 굳이 서두를 이유가 없어 두세 달에 한 번씩 탐방에 나서고, 이왕 서울의 둘레를 도는 마당이라 가는 길의 풍광을 잘 살펴보자는 생각에 시간이 다소 걸리고 있는 것이라네.

 

   모두(冒頭)에서 말했듯이 추분도 지나 아침 저녁으로 찬 기운에 몸을 움츠리는 때가 되었건만, 낮에는 아직 늦더위가 남아 산객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게 하더군. 둘레길이라고 하면 산책코스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많은 부분이 산허리를 감도는 오르막 내리막길이 되풀이되어 땀이 날 만하다네. 그래도 가을의 일요일답게 산길은 선남선녀들로 붐볐다네.

대사와 백동, 담허가 함께 전처럼 산행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럴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네. 

 

   도봉산 자락에서 북한산 자락으로 접어들면 서울둘레길과 북한산둘레길이 상당부분 겹친다네. 그 겹치는 부분 중 왕실묘역길에서 정의공주와 연산군의 묘를 만나게 된다네.

   정의공주(貞懿公主, 1415-1477년)는 세종대왕의 둘째딸로 세조의 누나이지. 연산군은 세조의 증손자이고. 왕조국가인 조선에서 한낱 공주였던 사람과 만인지상의 지존에 있던 사람의 지위는 천양지차일 터이니, 그 무덤 또한 비교가 안 될 것이 지당한 이치련만, 오히려 그래도 한 나라의 왕이었던 연산군의 묘는 정의공주의 그것에 비하여 너무나 좁고 초라하였네.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고 훈민정음 창제에도 기여한 데다 남편 안맹담(安孟聃)이 세조의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봉해진 덕분일까 정의공주의 묘는 양지 바른 곳에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잘 정비되어 있는 데 반해, 정의공주의 묘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는 연산군의 묘는 그 주인이 폭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탓에 영 볼품이 없다네. 

 

정의공주묘.jpg

[정의공주 묘(오른쪽). 왼쪽은 남편 안맹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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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묘(맨 위 왼쪽. 오른쪽은 부인 묘). 맨 아래쪽은 딸과 사위의 묘]

 

   연산군의 묘는 마치 무슨 가족묘지인 양 묘역 내에 딸과 사위의 묘가 함께 있고, 묘역 중앙에는 황당하게도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義貞宮主 趙氏)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네. 안내문에는 왕자의 예를 갖추어 묘를 조성하였다고 되어 있으나, 그것은 말뿐이지 실상은 공주 대우만도 못한 왕자 대우인 셈이라고 해야 할 것 같네.
   정의공주의 묘가 1982년 서울특별시 유형 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된 반면, 연산군의 묘는 1991년 국가 사적(史蹟) 제362호로 지정되었으니 뒤늦게나마 다소 대접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1506년 귀양지 강화도에서 병사한 지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폭군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끝내 역사의 사면을 받지 못한 채 구천을 맴돌고 있을 연산군은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연산군의 묘를 보면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네.

 

    그나저나 연산군이야 사화(史禍)를 일으켜 많은 선비들을 죽인 죄가 커 왕위에서 쫓겨났다지만,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과 그의 아들 명종 때에도 또다시 사화(史禍)로 무수히 많은 선비들이 죽어나간 것은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상념에 젖은 발걸음을 문득 멈추고 고개를 드니 인수봉, 백운대, 만경봉이 바로 나그네의 눈앞에서 삼각산을 이루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네. 산행 시작 즈음에는 미세먼지와 운무로 도봉산이 희뿌옇게 보였는데, 북한산으로 오는 동안 모르는 새 서풍이라도 불었는가 보네.

 

삼각산.jpg

[삼각산]

 

  비록 산 정상에는 오르지 않았어도 이쯤에서 다산 선생의 시 한 수를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이.

 

岧嶢絶頂倦遊笻(초요절정권유공) 
雲霧重重下界封(운무중중하계봉) 
向晩西風吹白日(향만서풍취백일) 
一時呈露萬千峯(일시정로만천봉)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        

 

        높고 높은 산꼭대기에 힘들여 올랐더니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가로막누나
        이윽고 서풍 불어 밝은 해가 드러나자
        만학천봉이 일시에 다 보이네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구암대사,

 

우리 함께 만학천봉(萬壑千峰) 보러 가세.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네.

 

병신년(2016) 추분지제에
우민이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