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桑田碧海)

 

 

옛날에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십년은 고사하고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그렇게 빠르고 변하는 세상에 살면서 45년 전의 일을 떠올린다면 무슨 봉창 뜯는 소리냐고 질책받기 십상일지 모르겠다.

 

범부가 다니던(1971년-1974년) 경복고등학교는 자리한 곳이 종로구 청운동이다.

그러다 보니 그 당시 교련시간에 M1 소총을 들고 종종 자하문이 있는 세검정 고갯마루까지 구보를 하곤 했다.

더운 여름에 그 무거운 소총을 들고 그곳까지 뛰어 가려면 입에 단내가 나곤 했지만,

서슬 퍼런 교관 선생님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힘들여 세검정 고갯마루에 도착하면 왼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보였으니,

바로 옥인동 시범아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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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전의 옥인동 시범아파트]

 

이 아파트는 인왕산 중턱에 자리한 까닭에 전망이 좋은데다 당시로서는 첨단을 걷는 현대식의 멋진 주거지였다.

지금이야 아파트가 서울에 넘쳐나지만 당시에는 아직 아파트 붐이 일어나기 전이라 희소성까지 있었다. 그랬던 이 아파트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마침내 철거될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일이 일어난다.

 

먼저 아래 사진의 안내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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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다시 위 안내문에 나오는 정선의 수성동 그림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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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이 그림 수성동 모습]

 

정선의 위와 같은 그림이 아닌 현재의 아래와 같은 실제 모습을 보면 상전벽해가 더욱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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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4일의 수성동 계곡]
 
이 수성동 계곡에 불과 5년 전인 2012년까지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에 직접 그 아파트를 보았던 촌부도 지난 주말(14일)에 직접 가서 보고 제 눈을 의심했는데, 하물며 이곳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고 하기 십상이다.

 
촌부가 이곳을 찾기 며칠 전 비가 내린 후 이어진 청명한 날씨 덕에 가을 하늘이 파랗게 열린 가운데,

높은 산, 맑은 물, 흰 구름이 어우러진 이 아름다운 계곡을 찾은 즐거움의 표현을 문득 떠오른 옛시조 한 수로 갈음하여 본다.

 

     산이 하 높으니 두견이 낮에 울고
     물이 하 맑으니 고기를 헤리로다
     백운이 내 벗이라 오락가락 하누나 


이야기가 길어졌다.
급격한 도시화로 서울이 본래의 모습을 자꾸 잃어가고 있던 차에

그 역발상으로 행하여진 ‘옛모습 찾기’가 실로 반가워서 자세히 쓰다 보니 그리 되었다.

아무튼 아름다운 수성동 계곡을 되찾은 것을 서울시민의 홍복(洪福)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일세를 풍미하던 인걸(人傑)은 간 데 없어도 산천은 여전히 의구(依舊)하여야 하는 건데,

인걸 따라 산천이 변모하고 심하게 훼손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성동 계곡의 변모야말로 더 없는 교훈이 되지 않을까.

   

참고로 이곳을 가려면, 경복궁의 서쪽인 서촌에 가서 박노수미술관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