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류봉에 달 뜨거든
2014.05.06 21:40
월류봉에 달 뜨거든
구암 보시게.
명실상부하게 잔인하였던 달이 지났네.
오늘은 불기 2558년 부처님 오신 날인데, 잘 지냈나? 4일간(아니 6일간?)의 연휴 마지막 날이라 바삐 지냈을 수도 있었겠네그려.
비록 연휴를 보내기는 하지만, 아직도 진도 앞바다의 차디찬 물속에 잠겨 있을 세월호 희생자들을 생각하면서 온 국민의 가슴에는 이심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지 않겠나. 그래서인지 TV 화면에 비친 조계사 초파일 법요식은 축제라기보다는 엄숙한 제례를 떠올리게 하였네.
구암,
지난 달 10일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발레단의 발레 ‘백조의 호수’를 함께 감상한 후 한 동안 소식이 뜸했네그려.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우리에겐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백동도 담허도 모두 무소식인 것으로 보아 잘들 지내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네. 아직 세월호 참사의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서울 지하철 2호선 추돌사고 소식을 접하고 보니, 그저 무사히 지내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닐까 싶네.
구암선사,
범부는 2009년 봄 청주지방법원장 시절 월류봉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몇 번 이곳을 찾았다네. 그 때마다 석천변에서 산봉우리를 올려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하였었지. 그리고 그 위에 달이 걸리면 그야말로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그림이 아닌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에, 언제고 달이 뜰 때 다시 오리라고 내심 다짐하였다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마침내 그 꿈을 이루었다네. 달이 떠서 머무는 월류봉의 정상, 그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석천변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볼 때와는 전혀 다른 감흥을 안겨 주었네.
머리 위의 달을 따서 선사에게 보내주고 싶었네만, 아쉽게도 범부의 능력 밖의 일이었네. 대신 훗날 선사, 그리고 백동, 담허 등 죽마고우들에게 길안내를 할 영광을 베풀어 주게나. 다섯 봉우리들을 종주하는데 넉넉잡고 3시간이면 충분하다네. 함께 사진을 찍은 연구관들, 영동지원의 법관들... 산이 좋아 산을 즐겨 찾는 이들 산행도반들도 월류봉 야간 산행이 오래오래 기억될 이색적인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더군.
구암,
월류봉을 가게 되면 인근의 반야사(般若寺)라는 절을 지나칠 수 없다네. 이 절에는 너덜바위들이 절묘하게 연출하는 호랑이 형상과 천애(天涯)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문수전이 나그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데, 그 소개는 훗날로 미루겠네.
성불하시게.
불기 2558년 초파일에 범의가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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