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生還)(뉴질랜드 밀포드)

2016.03.26 23:10

우민거사 조회 수:2580

 

                                 생환(生還)

 

   ‘생존놀이’나 ‘생존게임’으로 번역하면 맞을 ‘서바이벌 게임’(Survival Game)은 안전한 전투 장비를 갖추고 모의 전쟁놀이를 하는 레포츠이다. 한가한 시간에 즐기면서 신체를 단련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뜻의 ‘레포츠(Leports)’는 아직 우리말로 알맞게 번역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적절한 우리말이 없는 것은 이들 용어가 모두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가 짧은 탓이겠지만, 관련 분야 종사자나 국어학자들의 게으름도 한 몫 하지 않았나 싶다. 하긴 언필칭 세계화 시대에 꼭 우리말로 번역해서 사용해야 할 이유나 필요성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필부가 국수주의자이기 때문이려나.

 

   아무튼 비록 전투 장비를 갖춘 전쟁놀이는 아니었지만,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을 완주하는 산악여행(트레킹 Trekking. 이하 ‘트레킹’이라고 한다)은 나에게는 그야말로 생존게임 그 자체였다. 그래서 그것을 마쳤을 때 나는 무사히 “생환(生還)”하였다는 표현을 주저 없이 사용하였다.    


   밀포드 트랙(총 길이 53.6km, 33.5마일)은 페루의 마추픽추, 중국의 호도협(虎跳峽)과 더불어 세계 3대 트레킹코스로 알려져 있다. 영국 BBC방송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코스로 소개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런데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만 길이 열리고(5월부터 10월까지는 눈이 많이 와서 폐쇄한다), 그것도 하루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가이드 동반 트레킹(guided walk) 50명, 독립 트레킹(independent walk) 50명으로 제한되어 있어, 통상 6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올해 11월부터 내년 4월까지의 트레킹 예약을 이미 지금 받고 있다). 

    독립 트레킹의 예약이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특히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독립 트레킹은 예약 자체도 힘들지만, 이번에 밀포드 트레킹을 다녀온 나의 사견으로는 권할 바가 못 된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힌다.
   
   밀포드 트레킹 예약은 본래 얼티미트 하이크 회사(Ultimate Hikes Co.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밀포드 가이드 트레킹을 독점적으로 허가받은 회사이다. 본사가 퀸즈타운에 있다. http://www.ultimatehikes.co.nz)에 해야 하는데, 국내 여행사에서도 대행하고 있다. 

   다만 국내 여행사에서는 인천공항에서 후술하는 퀸즈타운까지의 왕복 교통편 및 숙소를 제공하고, 퀸즈타운에서 출발하여 밀포드 트랙 안에서의 트레킹 및 밀포드 사운드에서의 해상관광(크루즈여행)과 퀸즈타운까지의 귀환은 얼티미트 하이크에서 진행한다. 물론 그 전체 비용은 국내 여행사에 일괄하여 지불하면 된다. 

 

   작년(2015년) 9월 16일 퇴임 후 그야말로 쉬면서 지내던 11월에 집사람과 내년(2016년)에는 해외여행을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던 중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레킹을 하자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고, 집사람이 곧바로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라이카 여행사(http://www.adventures.co.kr/)를 통해 다음 해 2월에 출발하는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운이 좋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자리가 났다(기존의 예약자가 취소한 것이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정해진 날짜가 9박10일 일정으로 2016년 2월 13일 서울을 출발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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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오클랜드(뉴질랜드) 비행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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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타운(Queenstown)

 

   2월 13일 오후 5시 인천공항을 이륙한 KAL기가 11시간 넘게 비행한 끝에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 14일 오전 8시 10분에 도착하였다. 뉴질랜드의 전체 인구가 약 460만 명인데, 그 중 140만 명이 모여 살 만큼 오클랜드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이곳에서 짐을 찾아 12시 5분에 출발하는 국내선(뉴질랜드항공) 비행기로 갈아타고 다시 남쪽으로 2시간 날아가 퀸즈타운 공항에 도착하였다. 


   퀸즈타운 공항은 자그마한 시골공항이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눈이 부시게 날이 화창하다. 기온은 한국으로 치면 5월 초의 그것이다. 분명 이곳은 계절적으로 한 여름이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살기 딱 좋은 날씨라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라이카여행사에서 미리 예약하여 놓은 택시를 타고 20여분 후에 도심의 호텔(Heartland Hotel)에 도착하였다. 
  
   퀸즈타운은 상주인구가 고작 1만 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외국 관광객이 넘쳐 난다. 그런데 며칠 있지는 않았지만 언뜻 보기에 그 관광객의 반은 중국인들 같았다. 하긴 뉴질랜드 인구 460만 명 중 30만 명이 중국계라고 하니 놀랄 일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중심가의 상점을 들어가면 십중팔구 중국인 종업원이 있고, 우리 부부가 들어가면 처음에는 으레 중국인으로 알고 중국말로 인사를 건네다 한국인이라고 하면 미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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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타운 전경]

 

   와카티푸(Wakatipu)라는 총 연장 77km(최고 수심 372m, 평균수온 11.5도)의 호수를 끼고 있는 이 도시는 규모가 작아 어디든 걸어 갈 수 있는데, 연중 기후가 좋고 풍광이 아름다워 그야말로 휴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딱 좋은 휴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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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의 카페]


   더구나 단순히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등산, 트레킹, 골프, 산악자전거, 산악썰매(루지), 번지점프, 파라세일(parasail. 또는 패러플라이트<paraflight>라고도 한다), 모터보트, 유람선, 카약... 등등 각종 레포츠를 즐길 수 있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다. 

   이곳에서 세 밤을 보낸 우리 부부도 이 도시가 마음에 들어 훗날 손자들이 크면 데리고 겨울에 피한(避寒) 여행차 다시 오자고 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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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세일]


    그런데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이곳은 차량이 좌측통행이다. 횡단보도가 있긴 하지만 차가 많지 않아 대개 아무 곳에서나 길을 건너는데, 반드시 오른쪽을 먼저 살펴야 한다. 촌부는 이제껏 한국에서 길을 건널 때는 왼쪽을 먼저 살피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지라(차가 우측통행을 하므로)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시차 적응도 하며(뉴질랜드는 일광시간절약제도<summer time>를 실시하여 한국보다 4시간 빠르다) 쉬기도 할 겸 당초 예정된 트레킹 일정보다 하루 먼저 도착했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어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날 오후까지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하고,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고, 곤돌라를 타고 봅스 힐(Bobs Hill. 서울의 남산 쯤에 해당한다)의 해발 790m 지점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조망하며 뷔페식 식사를 하고, 모터보트에 달린 낙하산을 타고 수면 위 100m까지 올라가는 패러세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말 그대로 휴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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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봅스 힐의 뷔페식당]


   그렇게 하루를 쉬고 15일 오후 4시에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로 갔다. 밀포드 트레킹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집결지이다. 

   이번 트레킹의 참가인원은 총 49명. 그 중 일본인이 13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인이 그 다음으로 10명(모두 부부동반 5쌍이다. 그 중 세 쌍은 양지의 타운하우스에 함께 사는 이웃사촌들이다), 그리고는 호주,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왔다. 뉴질랜드 자국민도 여럿이다(그들은 스스로를 키위<Kiwi>라고 부른다). 

   퀸즈타운에 보이던 그 많던 중국인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한 명도 없다. 근래 세계가 좁다고 몰려다니는 중국인들에게 아직 깃발관광 이상의 것은 다가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마 몇 년 지나면 또 달라지리라. 2년 전에 히말라야에 갔을 때는 한 명도 보지 못했던 중국인을 지난 1월에 다시 갔을 때 제법 보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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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미트 하이크 센터]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에서는 밀포드 트레킹을 위한 사전 안내를 하였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은 각기 따로 모아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하고, 그 밖의 나라 사람들은 한데 모아서 영어로 진행하였다. 한국인 직원과 일본인 직원을 별도로 둘 만큼 두 나라 사람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이다. 

   밀포드 트레킹의 가이드는 총 4명인데, 3명은 뉴질랜드 현지인이고, 1명은 그날 참가자 중 제일 많이 온 나라 사람이 맡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트레킹에는 일본인 가이드가 1명 동행했다. 한국인이 제일 많아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고 한다.

 

   트레킹 코스를 안내한 후에는 한글로 된 지도와 안내서를 주고, 배낭, 비옷, 침대시트를 무상으로 빌려준다. 그리고 배낭 속에 넣을 비닐포대(비가 내려 배낭이 젖더라도 여벌옷과 음식물 등 내용물은 젖지 않게 먼저 비닐포대에 넣은 다음에 배낭에 넣는다)를 나누어 준다. 

   그런데 배낭과 비옷이 서양인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 무거워서 비옷은 반납하고 내가 질 배낭만 하나 빌렸다. 서울에서 가져간 내 배낭은 비교적 가벼워 집사람이 메기로 했다. 비옷은 한국에서 등산할 때 사용하는 일회용 비옷을 가져갔는데, 약해서 쉽게 찢어지는데다 장대비가 쏟아지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통에 제 구실을 못했다. 비옷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것을 트레킹 내내 후회했다.

 

   침대시트를 빌려 주는 이유는, 산장(로지)에서 4박을 하는데, 산장마다 침대시트를 일주일에 한 번 교환하는지라 청결상태를 보장할 수 없어, 아예 개인별로 새 것을 나눠주어 지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트가 제법 무겁다(한 장당 500g). 따라서 침대의 청결상태를 신경 안 쓸 요량이면 굳이 무겁게 가져갈 필요가 없다. 그까짓 침대시트가 무거워야 얼마나 되겠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4박5일 동안 배낭을 메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 53.6km를 걸으려면(더구나 비까지 오면) 배낭무게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침대시트와 여벌옷(속옷과 보온용 겉옷), 슬리퍼, 구급약, 식수, 점심도시락, 과일 등을 다 챙기고 나면 배낭 전체 무게가 금방 10Kg 정도 된다. 

 

   그 밖에 붉은 색 커다란 포대를 하나씩 나누어 주는데, 트레킹을 마치고 밀포드 사운드에 도착하여 갈아입을 옷이나 신발, 기타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서 트레킹 출발 당일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에 맡기면 트레킹이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밀포드 사운드의 마이터 피크 산장으로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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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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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레킹 코스의 고도]


트레킹 첫째 날

 

   16일 아침 8시에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로 갔다. 호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삼사오오 무리를 지어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50명이 타도 빈자리가 남는 대형버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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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 무슨 일이람, 어제까지 그렇게 화창하던 하늘이 흐려지더니 이내 빗방울이 떨어진다. 오호통재라! 이게 그 후 4박 5일 동안 줄기차게 내린 비의 전주곡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Cyclone)이 우리의 밀포드 트레킹 동안 뉴질랜드를 통과한 것이다.


   16일부터 이틀 정도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만 TV에서 언뜻 본 게 전부였기에 사이클론이 통과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비 내리는 차창을 통해 보이는 한없이 평화로운 뉴질랜드의 산천풍경을 감상하며 얼마를 갔을까, 갑자기 차가 멈춰 선다. 

   웬일인가 하여 운전석이 있는 앞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양떼가 편도 1차선의 도로 진행방향 한 개 차로를 막고 행진중이다. 총인구 430만 명에 양 숫자는 3,000만 마리라고 하니 가는 곳마다 양 천지이다. 양 중에서도 털의 색이 회색에 가까운 메리노종이 주종이다. 그 양들이 산으로 올라가길 기다리다 결국 포기하고 버스가 중앙선을 넘어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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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점령한 양떼]


   테아나우(Te Anau) 호수가 있는 곳까지 4시간 여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하늘이 갰다 흐렸다,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한다. 제발 오늘 비가 왕창 오고 내일부터는 화창하게 개라고 기도하였는데 아무런 효험이 없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도중에 이따금 마을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대부분 산과 들과 호수, 그리고 양만 보일 뿐이다. 인구 430만 명이 26.8만㎢(한반도 전체의 1.2배)에 흩어져 사니까 도시를 벗어나면 사람 구경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당연지사이다.

  

   테아나우에 도착하여 얼티미트 하이크에서 예약한 식당에서 점심식사(간이 부페식)를 하고 호수 선착장(테아나우 다운스)으로 이동하였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1시간 30분 정도 북쪽으로 가야 밀포드 트레킹의 출발지인 테아나우 와프(Te Anau Wharf)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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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아나우 호수 선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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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트랙으로 가는 배 위에서]


   배에서 내리면 먼저 등산화 소독을 하여야 한다. 소독 방법은 소독약을 담은 플라스틱 통을 밟고 지나가는 것이다. 밀포드 트랙이 청정지역이라 외부에서 해충이나 미생물이 등산화에 묻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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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트레킹의 출발지]


  밀포드 트랙이 시작되는 지점임을 알리는 팻말이 서 있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일단의 못 보던 한국인들이 나타났다. 퀸즈타운에서 함께 온 사람들이 아니다. 의아해서 어디서 온 거냐고 물었더니 독립 트레킹(independent walk)을 하러 따로 출입허가를 받고 왔다고 한다. 

 

  우리처럼 가이드 트레킹(guided walk)을 하는 사람들 외에 독립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때 비로소 알았다. 그들은 잠은 오두막(hut. 산장보다 규모가 작지만 취사 및 취침시설이 되어 있다)에서 자면서 가이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식사도 직접 해결한다고 한다. 

   모험심이 많은 사람들로 보이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다. 오두막에는 침구가 없어 침낭을 가져가야 하고, 샤워시설이나 건조시설도 없어 비를 맞은 옷을 말릴 방법조차 없다. 그리고 후술하듯이 그 위험이 현실화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 49명이 모두 배에서 내렸음을 확인한 가이드 데이비드(David)가 출발신호를 하였다. 드디어 밀포드 트레킹 시작이다. 1888년에 처음 개설된 길에 그로부터 128년이 지나 나도 첫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출발지부터 울창한 원시림 숲이다(너도밤나무가 제일 많다). 그 사이로 길이 잘 나있어 '룰루랄라' 소풍객처럼 신이 나서 걸었다. 사실 첫 숙박지인 글레이드 하우스(Glade House)까지는 평지나 다름없는 길로 1.6km에 불과하여 어려울 게 없다. 단지 비록 양이 많지는 않지만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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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드 하우스]


   30여 분만에 글레이드 하우스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았다. 2층 침대 3개가 있는 6인실인데, 우리 부부는 충북대 교수 부부와 함께 4인이 사용하는 것으로 배정받았다. 이는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되도록이면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방을 함께 쓰도록 배정하는 듯했다. 처음에 트레킹을 예약할 때 미리 비용을 추가로 내면 1-2인실(퀸 베드룸 또는 트윈 룸)을 사용할 수도 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데(단 1-2인실에는 개인욕실과 화장실이 딸려 있다), 여러 개가 있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 더운 물도 잘 나오고 방마다 수건이 비치되어 있기 때문에 비에 젖은 몸을 씻는 데 어려움이 없다. 샤워실에는 샴푸도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세탁실과 성능이 매우 우수한 건조실이 있어 젖은 옷을 금방 빨아 말릴 수 있다. 대개 산장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건조실에 널어놓은 후 저녁을 먹고 날 때쯤이면 웬만한 옷은 다 바짝 말랐다. 등산화나 배낭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둘째 날, 셋째 날 산장에서도 동일했고, 마지막 넷째 날 산장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방마다 따로 있고, 건조실만 공동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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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실 내부]

    
   배낭을 방에 풀어놓고 참가자 49명과 가이드 4명 합계 53명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조를 나눠 산장 뒤편의 숲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테면 밀포드 트랙에 있는 숲의 사전답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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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과 가이드 전원의 기념사진]

 

   한국인 10명은 따로 한 조가 되어 가이드 켈리(Kelly)의 인솔 하에 1시간 30분 동안 숲을 다녀왔다. 켈리는 한국어도 조금 할 줄 아는 그야말로 친한파로, 친절하고 성실하게 열심히 밀포드 트랙 안에 사는 동식물에 관하여 설명을 하여 주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영어 듣기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뉴질랜드 영어는 ‘Kiwi English’ 라고 하여 영국식 발음이나 미국식 발음과 상당부분 달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다. 비유하자면 영국식 발음이 표준말이라면 Kiwi English는 뉴질랜드화된 사투리라고 할까. 물론 같은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끼리는 의사소통에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우리 같은 비영어권국가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런 면이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비용이 저렴하다고 초등학생, 중학생들을 방학 때 뉴질랜드로 영어 연수 보내는 학부모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실제로 뉴질랜드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런 아이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스테이크, 생선, 야채 등으로 구성된 저녁(가이드가 미리 다음 날 저녁메뉴를 사람별로 주문받는다)을 먹고 나서 총가이드 데이비드가 다음날 일정을 슬라이드로 보여 주면서 설명을 하였다. 다행히 한글로 된 설명서를 따로 나누어 주어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는 그 다음 이틀 동안의 산장에서도 다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한글 설명서를 따로 비치할 정도이니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능히 짐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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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일행들과 함께]


   데이비드의 설명이 끝난 후,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왔고 또 앞으로 4박5일 동안 함께 지내야 하는 만큼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것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나는 간단한 자기소개 후 내일부터 트레킹 하는 내내 해가 빛나기를 기도한다고 한 후 ‘우리 모두 함께 기도하자(Let’s pray for sunny days!)‘고 하여 박수를 받았다.

 

   산장은 밤 10시가 되면 일률적으로 전기를 차단하여 다음날 아침 6시 20분에 다시 켠다. 자가 발전하므로 전기를 아끼는 측면도 있지만, 그래야만 모두 잠을 충분히 자서 다음날 트레킹을 힘들이지 않고 하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외국의 산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왔으니 술 생각이 절로 날 주당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일견하여 현명한 조치로 보인다. 그리고 아침 6시 20분의 점등은 모닝 콜 역할도 하는 셈이다. 


   퀸즈타운에서 나누어 받은 침대시트를 어떻게 사용하여야 할지 몰라 한동안 끙끙대다 이내 요령을 터득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이 넉넉하고, 뜨거운 물주머니(hot bag)까지 발치에 넣으니 추운 줄 모르겠다. 그렇게 밀포드 트랙의 첫 산장인 글레이드 하우스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트레킹 둘째 날

 

   17일 아침 6시 20분, 방안에 불이 켜지고 트레킹의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밖에 나와 하늘부터 쳐다보니 비가 안 온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만 그게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출발하려는 순간 굵은 빗방울이 사정없이 쏟아진 것이다. 


   산장에서의 아침 식사는 식당에서 하는데, 서양 호텔에서의 아침과 비슷하다. 신선한 야채, 빵, 버터, 씨리얼, 쨈, 햄, 치즈, 우유, 과일(사과, 바나나), 주스, 커피, 홍차, 초콜렛, 견과류 등을 진열하여 놓고 각자 취향대로 가져다 먹는 식이다. 


   아침 식사를 전후하여 그날 먹을 점심도시락도 각자 준비한다. 위의 재료들을 이용하여 주로 샌드위치를 만든다. 과일도 먹을 만큼 가져가면 된다. 

   내 점심용으로는 집사람이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 안에 마른 누룽지를 넣어 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야채만 따로 쌌다. 보온병과 누룽지는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다. 양식과 친하지 않은 내가 하루 세끼를 다 양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고 집사람이 그렇게 준비한 것이다. 나한테는 사전에 한 마디도 힌트를 주지 않았는데, 그 애틋한 고마움에 콧등이 시큰했다. 

   다음날부터는 그렇게 하면 배낭이 무거워지니(점심도시락은 집사람 배낭에 넣고 다녔다) 그냥 샌드위치를 만들라고 하였는데,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그렇게 하여 감동을 선사하였다. 

 

   아침 8시, 비가 사정없이 쏟아지는데 가이드 데이비드가 출발신호를 낸다. 빗속에 오늘 16km를 걸어야 한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종일관 경사가 완만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제 와서 어쩌겠는가, 산장 앞을 흐르는 클린턴 강을 출렁다리로 건너 원시림의 밀림 속으로 들어섰다. 숲속으로 난 외길을 따라 이끼가 낀 고목들이 즐비하고 넝쿨이 우거졌다. 옆에서 금방 마귀할멈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다. 동화속의 나라 같기도 하지만, 으스스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곳에서 영화 “반지의 제왕”을 촬영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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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강의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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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으로 들어가기 직전]


   문제는 길의 곳곳이 물웅덩이라는 것이다. 방수가 전혀 안 되는 집사람의 등산화에는 진즉부터 물이 가득 찼다. 2년 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갈 때 샀던 것으로, 당시에는 가능한 한 가벼운 등산화를 신으려고 방수처리가 안 된 것을 골랐는데, 그것이 장대비를 만나자 그만 가장 부적절한 천덕꾸러기의 등산화로 전락한 것이다. 걱정이 되어 물어보니까 괜찮다면서 잘 걷는다. 

   고어텍스인 내 등산화는 그래도 어느 정도 방수가 되었는데, 물이 무릎까지 차는 시내를 건너는 순간 그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시내가 수시로 나타난다.

 

   여기서 훗날 밀포드 트레킹을 가는 사람을 위해 복장에 관하여 주의할 점을 적어본다.

 

   밀포드 트레킹 안내문을 보면 준비물로 비옷을 꼭 가져올 것을 권한다. 트레킹 시즌이 그곳은 여름의 우기이고 수시로 비가 오기 때문이다(연평균 강수량이 6,000mm 정도란다. 9,000mm라고 소개된 곳도 있다). 물론 운이 좋으면 비 한 방울 안 맞고 트레킹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극히 드문 운에 몸을 맡길 일은 아니다. 

   실제로 이번 트레킹 도중에 잠깐 해가 나길래 좋아했더니 가이드가 웃으면서 저 모퉁이만 돌면 또 비가 올 거라고 했고, 그 가이드 말대로 그 모퉁이를 돌자 정말로 다시 비가 내렸다. 가이드 말에 의하거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비옷은 정말 필수적으로 지참하여야 한다. 


   비옷은 종류가 많지만, 가장 좋은 것은 웃옷은 점퍼형, 아래옷은 등산화 윗부분까지 덮는 바지형이다. 방수처리가 완벽하지 않은 일반 등산 점퍼 위에 아래위가 일체로 된 도포형을 다시 겹쳐 입는 것은 권할 게 못 된다. 비 대신 습기가 비옷 안에 차서 점퍼를 적시고 끝내 안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내가 그렇게 입고 종일 걸었더니 습기가 물방울이 되어 흐를 정도였다. 

   이에 더하여 비옷 속에 배낭까지 들어가는 도포형은 배낭이 젖지 않아 좋을 것 같지만, 이 경우 장대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배낭을 열거나(길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도시락 등 음식물을 꺼내야 한다) 용변을 보려면 비옷을 벗어야 하므로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요새 배낭은 대개 배낭 자체에 방수 덮개가 있는데다 배낭 안에는 앞서 말한 대형 방수 비닐 포대를 넣기 때문에 배낭이 젖는 것을 굳이 염려하여 비옷 속에 넣을 필요는 없다. 

   아무튼 어떤 형태이든 비옷은 튼튼하여야 한다. 강하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비옷 무게를 고려해 가벼운 일회용 비옷을 서울에서 준비해 갔다가 금방 찢어지는 바람에 낭패를 겪었다.     

 

   그리고 방수가 완벽하게 되는 등산화가 필요하다. 물이 무릎이나 허리까지 차는 계곡을 건널 때는 아무리 완벽한 방수 등산화라도 쓸모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길(대부분 물이 고여 있지만 등산화 위로 올라올 정도는 아니다)에서는 방수 등산화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데, 출발부터 등산화 안에 물이 들어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 밖에 트레킹 안내문에서는 스패츠도 권하고 실제로 찬 사람들이 있었는데, 위와 같은 비옷을 준비한다면 굳이 스패츠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출발하여 1시간 쯤 갔을 때 늪지대(wet lands)가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였다. 본래의 트레킹 코스에서 다소 벗어난 지점에 있는데, 왕복 10분이면 다녀올 수 있다고 해서 배낭을 길에 벗어놓고 갔다. 배낭은 가이드가 지켜주었다. 

   늪지대는 밀림이 아닌 초원으로 덮인 곳이어서 전망이 탁 트였다. 마침 빗방울도 가늘어져 모처럼 하늘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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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지대]

 

   일본인 가이드 후미(Fumi)가 마누카(Manuka) 나무를 가르쳐 줘 처음 보았다. 뉴질랜드는 마누카꿀이 특산품인데, 이것을 그냥 먹기도 하지만 각종 화장품, 의약품에 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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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카 앞에서. 오른쪽은 가이드 후미 Fumi]

 

   독립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이 묵는 숙소인 클린턴 오두막(Clinton Hut)를 하나 지나 계속 걸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집사람이 걷는 속도가 느려 일행 중 뒤에 처져 걷는데, 얼마를 걸었을까,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며 장대비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까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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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오두막]


   물이 불어난 계곡을 첨벙거리며 몇 번 건너 바지와 등산화가 다 젖은 상태로 이날 일정의 절반 정도인 약 8km 쯤 걸었는데, 앞서 가던 일행들이 갑자기 멈춰 서고 맨 앞에서 안내하던 가이드 데이비드가 헐레벌떡 뒤로 돌아왔다. 앞의 계곡물이 너무 불어 건널 수 없단다. 이 일을 어쩌나 하고 걱정하는데, 헬리콥터를 부를 테니 염려 말고 그 동안에 점심을 먹어 두라고 한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더니만, “밀림의 숲속 길에서 비에 젖은 도시락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밀포드 트레킹을 논하지 말라”는 말이 생겨날 법하다. 

   비와 추위에 떨면서 부리나케 점심을 먹고 나니까 데이비드의 무전을 받은 헬리콥터가 날아왔다. 맨 뒤에 처져서 걷던 나와 집사람이 헬리콥터를 제일 먼저 타는 행운을 누렸다. 헬리콥터가 착륙할 만한 공터가 뒤에 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인생은 새옹지마인가 보다. 더구나 나는 생전 처음 헬리콥터를 타보는 경험을 하였다.

 

   가이드 데이비드가 헬리콥터 탑승순서를 정하고 헬기의 회전날개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배낭을 다시 꾸려주는데, 그 능숙함과 침착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헬리콥터는 6인승으로 빗속에서도 능숙한 솜씨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이날의 목적지인 폼폴로냐 산장(Pompolona Lodge)까지 남은 8km 정도를 10여 분만에 날아갔다. 우리 일행이 가이드 포함 총 53명이니까 헬리콥터가 9회 이상 왕복해야 했는데, 조종사가 베테랑인지 아무 탈 없이 전원 무사히 산장에 도착했다. 

   추측건대 헬리콥터 운항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우리 일행이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지는 않았다. 당초에 낸 여행경비에 이런 경우를 대비한 것도 포함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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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의 헬리콥터]

 
   우리처럼 가이드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계곡물이 불어 길이 막히면 이렇게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지만, 독립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그야말로 조난 수준이다. 비가 그치고 계곡물이 줄을 때까지 기다리든지 온 길을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모험도 좋지만 독립 트레킹은 역시 함부로 시도할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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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에서 본 폼폴로냐 산장]

 

    헬리콥터를 제일 먼저 탄 덕분에 폼폴로냐 산장에 일찍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더운 물로 샤워를 하고, 비에 젖은 옷과 등산화를 건조실에 널은 다음 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천장 한군데서 물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비가 새는 모양이다. 하룻밤 지내는 데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기에 방을 바꾸지 않고 그냥 있기로 했다. 그 대신 다음날 가이드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진심으로 미안해하면서 다음날 저녁 퀸틴 산장(Quintin lodge)의 방은 2인실을 배정해 주었다. 우는 아이에게 젖 주는 격인가?    

 

   계속 내리는 비로 산장 맞은 편 산에 폭포가 생겨 눈길을 끈다. 그 뒤 더 높은 산의 꼭대기에는 만년설도 보인다. 그런데 이 풍경은 다음날을 위한 맛보기였다. 사실 안내서에는 이날 산행 중에 히레레 폭포를 볼 수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장대비는 쏟아지고 헬리콥터로 이동하느라 경황이 없어 챙겨볼 상황이 아니었다. 

 

   저녁식사는 전날 사람마다 미리 주문받은 메뉴대로 나왔다. 가이드 4명이 음식을 메뉴별로 일일이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한국인과 일본인이 많은 것을 감안하였는지 밥통에 밥을 담아 놓고 원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 하였다. 집사람이 배낭에 넣어 무겁게 지고 온 가져온 고추장, 깻잎, 김 등 밑반찬이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산장마다 맥주와 포도주가 있는데, 이것은 유료이다. 대개 반주로 맥주나 포도주를 곁들이는데, 술을 안 마시는 나는 사이다를 시켰더니, 이것도 알콜 농도가 4도 정도 되는 과일주였다. 사과로 만든 듯했다.    

 

트레킹 셋째 날

 

   2월 18일, 걸어야 할 전체 거리도 길고(20km), 클린턴 협곡(Clinton Valley)을 지나 해발 1,154m의 맥키논 고개(Mackinnon Pass)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제일 힘든 날이다. 

   이 날도 예외 없이 빗속에 출발이다. 게다가 이제부터는 출발지부터 오르막이다. 전날까지와는 달리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략 해발고도 5-600m 정도에서 밀림지대를 벗어나는데, 이때부터는 완전 산길이다. 흥미로운 것은 높이 1,800m 내외의 이 산들이 밀림지대를 벗어나면 그 위로는 트레킹 코스 주변 말고는 대부분 민둥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산의 나무를 베어내 민둥산이 된 게 아니라 태생적으로(화산폭발 또는 바다에서 융기) 온통 바위뿐인 산으로 된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직벽에 가까워 트레킹 코스인 맥키논 고개를 넘는 길 말고는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트레킹 코스를 참으로 절묘하게 개설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산에 장대비가 연일 쏟아지니 뜻밖의 장관이 연출된다. 빗물을 머금을 나무가 없으니 모두 폭포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높이 4-50m 되는 폭포도 장관으로 치는데, 이곳의 폭포는 2-300m가 기본이다. 그런 폭포들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 모습은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다. 비가 안 올 때는 바위산인 민둥산에 물이 있을 턱이 없으니 폭포도 당연히 없다. 

    결국 연일 내리는 장대비를 맞으며 걷느라 고생하는 대가로 폭포 구경을 실컷 하는 반대급부를 얻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 밀포드 트랙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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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과 폭포]

 

    산 정상에서는 가늘게 내려오던 물줄기가 이 골 저 골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합쳐져 굵고 거대한 폭포로 변하고, 그 폭포들이 산 아래 클린턴 협곡에서 다시 모여 큰 개울, 나아가 클린턴 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이다.


“깊은 산 골짜기 이름 모를 산모퉁이

작은 물방울 하나 떨어져 내를 이루고,

작은 내 모이고 모여 큰 강을 이루네.”

 

노랫말 그대로이다. 

 

   세상에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세 가지씩 있다고 한다. 전자는, 정답이 없고, 비밀이 없고, 공짜가 없다는 것이고, 후자는,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하늘과 땅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폭포 군락이 연출하는 장관을 보기 위해서는 장대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니 공짜가 아니고, 그 폭포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맞는 땅 위에 있고,  나아가 그것을 감상하는 내가 그 앞에 있으니 이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는 말이다.

 

    민타로(Mintaro) 오두막이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면 맥키논 고개를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여덟 굽이의 갈지(之)자 형태이다. 정상이 해발 1,154m라 그렇게 높지 않은데도 한국의 등산로처럼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 식으로는 길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산객이 쉽게 지치고 주위의 경치 구경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굽이굽이 돌아 오르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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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키논 고개를 올라가는 길. 뒤 협곡은 니콜라스 써크]

 

 장대비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갈지자 형태의 길 덕분에 주위를 둘러보고 맞은 편 산의 반원형 협곡인 니콜라스 써크(Nicolas Cirque. 옛날 화산 폭발의 흔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산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폭포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인다)에 있는 폭포들도 구경하고 사진도 찍으며 쉬엄쉬엄 올라갔다.

 

뉴질59.jpg   고갯마루에는 이 고갯길을 처음 발견한 맥키논을 기리는 기념탑(돌탑)이 세워져 있다(1912년 건립). 마치 종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습이다.

 

   위로는 만년설로 덮인 높은 산봉우리들이 즐비하고 옆으로는 천애의 낭떠러지와 거대한 아더 협곡

(Arthur Valley)이 있고, 사람이 날아갈 듯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이 고갯마루에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가이드 후미(Fumi)가 먼저 올라와 핫초코를 한 잔씩 따라주고 있었다. 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실로 따뜻한 감로수였다. 그 빗속에 53인이 다 한 잔씩 마실 수 있는 만큼의 핫초코를 보온병에 담아 배낭에 넣고 앞서 올라온 후미의 열정과 정성에 새삼 탄복하였다.

    전날 헬리콥터를 부른 데이비드나 이날의 후미야말로 트레킹이나 여행 가이드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는 모범사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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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키논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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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협곡]


   맥키논 고갯마루에서 작은 연못들을 지나 이제까지 올라온 길과 반대편으로 30분 정도 내려가면 조그만 오두막(Pass Hut)이 나온다. 점심식사 장소이다. 먼저 도착한 서양인들 중에는 젖은 옷을 벗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는 사람도 있다. 나와 집사람은 등산화 속의 물을 빼는 정도로 그쳤다. 문을 나서면 어차피 또 젖을 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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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 오두막]


   점심식사는 전날처럼 나는 보온병에 든 누룽지죽과 채소, 집사람은 샌드위치다. 아침 식사 때 오늘은 제일 힘든 날이라 나도 샌드위치를 먹을 테니 보온병 무게를 줄이라고 하였건만 집사람이 여전히 따뜻한 누룽지죽을 준비한 것이다. 동행한 한국인들 중에는 사발면을 먹는 사람도 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사발면은 가지고 온 것이고, 뜨거운 물은 오두막에 준비되어 있다.

 

   점심식사를 하고 뜨거운 차(가이드들이 차나 커피를 끓여준다)도 마셨지만, 젖을 대로 젖은 옷 탓에 추위가 가시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빗속을 뚫고 걸어야 한다. 출발을 재촉하는 가이드가 야속하기만 하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라 무릎보호대를 착용하였다. 지난 1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등반 때 착용하여 효과를 본 새 무릎보호대(Dr.K)는 집사람한테 주고 나는 전부터 쓰던 것을 했는데, 얼마 걷지 않아서 비싸더라도 새 무릎보호대를 한 세트 더 사올 것을... 하는 후회를 했다. 효과 면에서 그만큼 차이가 난다.

 

   사실 처음 길을 나설 때부터 집사람 무릎이 걱정되었는데, 이제껏 용케 잘 걸었다 싶었다. 하지만 결국 탈이 났다. 그러지 않아도 내리막길에서는 무릎에 하중이 많이 실리는 판에 빗속이라 길이 미끄러워 무릎에 더욱 힘을 주다 보니 어느 순간 왼쪽 다리를 절뚝이기 시작한다. 평지에서는 괜찮은데 경사지에서 내려디딜 때 무릎 뒤쪽이 아프다는 것이다. 아직도 폭포를 가로지르고 계곡을 건너고 다시 밀림지대를 통과하여 가야 할 길이 먼데 큰일이다. 고갯마루 오두막에서는 먼저 출발했지만 결국 뒤에 처져 천천히 걷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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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갯마루 오두막을 지난 내리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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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 30분 전에 이날의 숙소인 퀸틴 산장(Quintin Lodge)에 도착하면 서더랜드(Sutherland) 폭포(높이 580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다)에 다녀올 수 있다(가이드가 전날 저녁에 설명했다)고 나더러 먼저 가라고 했지만, 다리를 절뚝이는 집사람을 두고 혼자 내달을 일이 아니었다. 


  “그 폭포 누가 업어갈 것도 아니니, 인연이 되면 훗날 다시 와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고는 계속 함께 걸었다. 
  그렇게 해서 5시를 한참 넘겨서야 산장에 도착하였는데, 무사히 도착한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저녁식사로 나온 비프스테이크(집사람)와 연어 스테이크(나)의 맛이 훌륭했다. 유난히 힘든 행군을 한 뒤인데다, 식사를 나르는 가이드들이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나와 흥을 돋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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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틴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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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복장의 가이드들과 함께]


   방으로 돌아와 더운 물 샤워 후 집사람의 무릎에 파인스 겔(일양약품)을 바르고 코인플라스타(유한양행)를 붙여 주었다. 그 덕분인지 다음날 한결 쉽게 다시 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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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더랜드 폭포에 다녀온 한국분이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가히 장관이었다. 정말로 인연이 되면 언젠가는 볼 날이 있을 것이다. 퀸틴 산장에서 서더랜드 폭포까지는 왕복 5km로 1시간 30분 걸린다.

 

트레킹 넷째 날

 

   2월 19일, 제일 먼 길(21km)을 걷는 날이다. 처음에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지만 중반부터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다. 출발부터 비는 여전히 내린다. 그만 올 때도 되었건만... 
   날씨가 맑으면 도중에 먼발치로나마 서더랜드 폭포를 볼 수 있다는데 구름이 하늘을 잔뜩 덮고 있어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어차피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 모양이다. 


   아무리 청정지역이라지만 나흘째 비를 맞고 산속을 걸으니 어느 정도 피로도 몰려온다. 무릎이 아픈 집사람의 걸음걸이가 계속 신경 쓰였지만, 빨리는 못 걸어도 꾸준히 걸어 그나마 다행이다.

 

   퀸틴 산장으로부터 3km 지나온 덤플링 오두막(Dumpling Hut)에서 따뜻한 차를 한잔 마시고 10분 정도 걸었을까, 아더 계곡(Arthur Valley)의 마(魔)의 구간이 나타난다. 길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이 허리까지 차는 곳이다. 게다가 흙탕물이라 바닥이 안 보이는데다 굴곡지고 미끄럽기까지 하여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풍덩 빠질 판이다. 그렇다고 달리 옆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다. 가이드 데이비드가 찬 물속에 들어가 한 명씩 손을 잡아 건네준다. 가이드로서의 그의 헌신적인 면모가 또다시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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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허리까지 차는 마(魔)의 구간]
 

   겨우 물속에서 벗어났지만 등산화 속의 물은 뺄 엄두도 못 내고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속옷까지 젖은 상황이라 난감하기 짝이 없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해라도 쨍~ 나면 마르련만 야속하게도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원시림 속을 걷는 즐거움이 그나마 피로를 조금 덜어준다. 뉴질40.jpg

 

서덜랜드 폭포만은 못해도 맥캐이(Mackay) 폭포도 장관이다. 사람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고사리는 나물이 아니라 나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런 고사리들이 좌우로 늘어선 숲속을 걷노라면 마치 만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하다.

 

   수없이 나타나는 폭포, 엄청난 속도로 흘러내려가는 아더강과 그 강을 건너는 출렁다리(클린턴강과 마찬가지로 아더강도 수량이 풍부하고 물살이 빠르지만, 강폭이 좁아 그 위로 건너는 출렁다리가 여럿 있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아더호수....


     이 모든 것을 볼 만큼 보았기에 이젠 그만 걷고 싶다고 할 즈음 자이언트 게이트 쉼터(Giants Gate Shelter)에 도착했다. 앞서 간 사람들에 비하면 한 시간 정도 늦었다. 
   이 쉼터는 겨우 비를 가릴 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나마 감지덕지이다. 걸터앉을 평상도 있어 보온병의 누룽지죽을 꺼내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생야채와 고추장을 얹어 비볐다. 그 모습을 보고는 일행 중 서양 여자 한 분이 참 맛있어 보인다며 부러운 눈길을 보내온다. 그녀가 싸온 샌드위치보다 이국적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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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나무(?) 숲속으로 난 길]

 

 

   점심을 먹고 나니까 추위가 좀 덜하다. 자이언트 게이트 쉼터 부근의 자이언트 게이트 폭포를 지나면서 마침 빗방울도 가늘어졌다. 순간적일망정 구름 사이로 해도 잠깐 얼굴을 내밀었다 들어간다. 이제부터 트레킹의 종착역 샌드플라이 포인트(Sandfly Point)까지 5km는 거의 평지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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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게이트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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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플라이 포인트 가는 길]

 
   샌드플라이 포인트는 그곳에 샌드플라이(Sandfly)가 많아서 붙여진 지명이다. 샌드플라이는 밀포드에 사는 흡혈파리이다. 크기가 모래알만해서 단어 앞에 샌드(sand)라는 말이 붙었다. 뉴질63.jpg

  밀포드 트레킹에서 만나는 유일한 해충으로 물리면 한 동안(심하면 몇 달도 간다) 가렵다.

   그런데 우리는 트레킹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이 흡혈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비가 쏟아지는데 날아다닐 파리는 없으니까.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에 처음 모였을 때 샌드플라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구입한 벌레기피제는 그 덕분에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오후 4시, 드디어 53.6km(33.5mile)의 대장정에 종지부를 찍는 샌드플라이 포인트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있는 대피소 건물 안에 들어가 4일간의 서바이벌게임에서 생환한 감격에 겨워 서로서로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가이드가 타 주는 뜨거운 차가 유난히 맛있다. 성취감에 젖은 기분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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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플라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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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플라이 포인트의 표지판. 밀포드 트랙 33.5마일 종점임을 알린다]


   맨 마지막에 도착하는 사람(70대의 미국인 할머니)을 기다리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그녀가 도착하자 샌드플라이 포인트의 선착장으로 갔다. 아더강 하류에 해당하는 곳이다.

   밀포드 트레킹의 마지막 숙소인 마이터 피크 산장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한다. 뱃머리에 앉아 멀어져 가는 밀포드 트랙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4일 동안 빗속에 맥키논 고개를 넘어 바닷가까지 내려온 내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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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플라이 포인트의 선착장]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에 위치한 마이터 피크 산장(Mitre Peak Lodge)은 거의 특급호텔 수준이다. 밀포드 사운드는 트레킹하는 사람 말고 일반 관광객들도 관광버스를 타고 많이 찾는 곳인지라 숙박시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제까지의 산속 산장과는 달리 시설이 훌륭하다. 방도 2인 1실이고, 방에 화장실, 샤워실이 딸려 있으며, 침대시트도 그동안 짊어지고 온 것을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퀸즈파크를 떠날 때 이곳에서 갈아입을 옷과 신발 등을 담은 포대를 얼티미트 하이크 회사에 맡겼는데, 산장에 도착하니 이미 와 있었다. 그것을 돌려받고 대신 퀸즈타운에 빌려서 이제껏 사용하였던 배낭과 침대시트를 반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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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터 피크 산장]


    저녁식사로 나온 대구 스테이크도 맛이 좋았다.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은 집사람도 뉴질랜드에 와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양고기를 먹었다고 흡족해한다. 식사 후 가이드들이 전원이 보는 데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오게 하여 밀포드 트랙 완주 증명서를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물론 축하인사를 곁들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너나없이 행복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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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트랙 완주증명서]

 
  매일 밤 산장에 묵을 때마다 방명록에 다음날은 제발 해가 나기를 빈다고 썼고, 그럼에도 다음날도 여전히 비가 왔지만, 트레킹의 마지막 밤을 맞은 이 날만큼은 특별하게 썼다.

이태백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을 흉내냈다.

 

Someone asks me, “Why do you go into the deep valley and high mountain of Milford?”
Smiling and no answering make me peaceful and convenient.
Manuka flowers drop over the Clinton River and flow forever. 
At this time I am not a human being but one of nature.


누가 나에게 왜 밀포드의 깊은 계곡과 높은 산으로 들어가냐고 묻는데   
미소 짓고 대답 않으니 마음이 평화롭고 안락하다.
마누카 꽃이 클린턴 강에 떨어져 아스라이 흘러가니
지금 이 순간 나는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일세.

 

가이드 데이비드와 켈리가 이 글을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방명록 최고의 글이란다. 집사람이 옆에 있다가 '우리 남편이 본래 시인'이라고 뻥을 쳐서 한바탕 웃었다.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2월 20일, 밀포드 지역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에 햇빛이 비치나 했더니 이내 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떨어진다. 역시 밀포드이다. 하지만 이젠 아무런 걱정이 없다. 전날로 트레킹이 끝났고, 이날은 밀포드 사운드에서 유람선을 타고 2시간 동안 해상관광(크루즈 여행)을 한 후 퀸즈타운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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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의 유람선]


   밀포드 사운드는 피요르드 해안이다. 노르웨이의 유명한 피요르드 해안도 갔다 왔다는 충북대 교수 부부의 말에 의하면 밀포드 사운드가 더 멋지다고 한다. 바다 양옆으로 깎아지른 듯 솟은 산들과 그 산들 사이의 좁은 해협이 신비스런 모습을 연출한다. 더구나 연일 내리는 비로 그 깎아지른 산들이 다 폭포로 변하니까 더욱 장관이다.

   전에 베트남의 하롱베이에 갔을 때 느꼈던 신비스러움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청정지역 보존을 위해 하롱베이와 달리 해상에서 장사를 하거나 산에 상륙하는 것은 전부 금지되어 있다. 단지 배를 타고 둘러보며 관광을 하는 것만 허용된다. 

 

   모터보트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사람들도 있고, 카약을 타는 사람들도 있다.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지는 폭포 바로 앞으로 유람선이 다가가 선상에 있는 사람들은 물벼락을 맞기도 한다. 그렇지만 멋진 사진을 찍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그 물벼락을 감수한다.

   밀포드 사운드의 산 중에서 마이터 피크(Mitre Peak)는 해수면부터 시작되는 높이가 1,692m로, 바다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는 산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높다고 한다. 워낙 높은데다 비가 오는 흐린 날씨라 유람선에서 정상은 안 보인다.

 

   유람선을 타고 가다 보면 물개들이 바닷가 바위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돌고래와 펭귄도 있다는데 이날은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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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의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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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의 신비한 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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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의 모터보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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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포드 사운드의 물개]


   밀포드 사운드를 운항하는 유람선에는 한글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고, 매점에서는 한국산의 다양한 컵라면도 판다. 컵라면 인기가 좋은 듯하다.

   화장실에는 영어, 일본어 다음으로 한국어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자랑스런 한국인들이 세계 어디를 가나 국위를 떨쳐 지구 남반구의 이 먼 곳에서도 쉽사리 한글 안내문을 접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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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 매점의 한국산 컵라면]

        
   5,000만 인구가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등바등 댈 것이 아니라 정말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현재 세계여자골프선수 랭킹 1위인 ‘리디아 고’가 한국계 뉴질랜드 교포라는 것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 통일이 되면 드넓은 만주로, 시베리아로 뻗어나갈 수 있으련만.... 

 

귀국

 

   밀포드 사운드 해상관광을 마치고 버스로 호머(Homer) 터널을 경유하여 테아나우(2월 16일 밀포드 트레킹 첫째 날 밀포드 트랙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던 곳)로 이동하여 점심(이날 점심까지는 아침에 산장에서 각자 만들어 왔다, 다만 식사장소는 2월 16일에 점심식사를 한 바로 그곳이다)을 먹은 후 오후 4시 쯤 퀸즈타운의 얼티미트 하이크 센터로 돌아왔다. 여러 날 동고동락했던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비는 아직도 내린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고 라이카 여행사에서 예약한 한식당(Kim’s Korean Reataurant)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예약된 메뉴는 불고기백반. 식당은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볐다. 식당 사장이 손님들에게 뉴질랜드는 양고기가 최고라며 권한다. 육식을 안 하는 나와는 무관하지만, 양고기 맛이 좋은지 잘들 먹는다. 

 

  저녁식사 후 다시 호텔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집사람은 샤워를 하고 나더니 너무 피곤하다면서 손가락 하나 안 움직이려 한다. 나는 긴장을 풀면 병이 날 것 같아 시내로 나가 한 바퀴 돌았다. 살 만한 게 없나 등산용품점도 둘러보고, 집사람이 사기를 원했던 ‘클라우드 베이’(뉴질랜드 고유의 흰색 포도주)를 파는 곳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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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베이를 파는 포도주 전문 매장]


   2월 21일,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가 오후에 떠나는지라 오전에 다시 시내 구경을 하러 갔다. 간밤에 푹 자고 난 탓인지 집사람도 몸이 가볍다. 퀸즈타운의 명물인 Fergburger 햄버거 집에 갔더니 벌써 줄을 길게 늘어섰다. 보통 1시간 정도 기다려야 살 수 있다. 한참 만에 손에 넣은 그 햄버거, 정말로 크다. 집사람과 둘이 먹는데도 벅찰 정도이다. 적어도 양으로만 치면 훌륭한 점심이다. 물론 옆에 앉은 서양 여자는 혼자 다 먹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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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rgburger의 대형 햄버거]


   오클랜드에서 퀸즈타운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라이카 여행사에서 예약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오클랜드로 가기 위해서이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오후 4시 40분에 출발하였는데, 오클랜드까지 2시간 정도 걸리는 비행기가 그보다 일찍 1시간 조금 더 지나 착륙한다. 


   ‘올 때와 갈 때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하고 공항에 내렸는데, 뭔가 이상하다. 수하물을 찾으러 갔더니, 맙소사 여기는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이라고 씌어 있는 게 아닌가. 엔진고장으로 비행기가 불시착한 것을 뒤늦게 알았다. 기내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다.

   그나저나 본래 이 여행을 시작할 때 크라이스트처치도 들러 며칠 지낼까 했다가 몇 년 전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아직 덜 복구되었다고 해서 생략하였는데, 결국 크라이스트처치의 땅을 밟은 셈이다. 세상 일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오클랜드행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공항에서 할 일 없이 세 시간 가까이 보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간의 뉴질랜드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상당 부분 퇴색했다. 우선 왜 무슨 이유로 불시착을 했으며 언제 다시 출발할 것이라는 설명이 없다. 뉴질랜드항공의 직원에게 물어보아도 모른다는 대답뿐이다. 대략 언제 쯤 출발할지를 알면 그 사이 저녁이라도 먹으련만 무작정 탑승구 앞 의자에서 기다리라니... 이거야 원.

 

   세 시간 기다려 다행히 대체편 항공기를 탔는데, 이미 저녁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늦은 시각이라 승객들이 배가 고플 것은 당연지사이고, 그걸 모를 리 없는 뉴질래드항공사에서 무언가 먹을 것을 줄줄 알았는데, 고작 비스켓 두 개 건네주는 게 전부이다. 그것도 본래 한 개 주는 건데 특별히 인심 써서 한 개 더 주는 양 위세를 부린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다. 한국에서 대한항공을 타도 이랬을까? 뉴질랜드가 문명 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확 날아가는 순간이다.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 호텔에 도착하니 밤 11시다. 서울의 남산타워 같은 스카이타워(328m.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높은 탑이다)가 환하게 빛나고 있다. 그 빛나는 탑처럼 뉴질랜드항공의 관계자들의 친절이 빛나면 오죽 좋을까. 밀포드 트레킹의 가이드들은 그토록 책임감 있고 성실하게 자기 직무의 충실하건만... 하기야 어느 나라든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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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의 스카이타워]


   라이카 여행사에서 예약해 놓은 식당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마침 하나 남은 컵라면을 집사람과 나눠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은 법인데.... 2월 22일 새벽에 일어나 서둘러 공항으로 나가 서울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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