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산이 나를 부른다(2)

 

츄일레(Chuile)

 

   푼힐 전망대에서 고레파니의 로지로 도로 내려갔다. 흥분이 미처 다 가시지 않아 북어국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이다. 욕심 같아서는 하루라도 더 머물며 푼힐 전망대에 다시 올라가고 싶지만, 정해진 일정이 있어 갈 길이 바쁜 걸 어쩌랴.

   오전 9시 30분 다음 목적지인 츄일레를 향해 출발하였다. 이제부터는 안나푸르나 남봉 아래쪽에서 계속 동진(東進)하는 여정이다. 그래서 안나푸르나 남봉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그렇게 총 11.3km를 걸어야 츄일레에 도착한다. 이번 일정 중 가장 긴 코스이다. 가이드가 예정한 것만으로도 9시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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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파니에서 츄일레까지 지형도]

 

   고레파니에서 해발 3,180m의 데우랄리(Deurali)에 도착하기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로 햇볕도 강렬하다. 거기에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설쳤는지라 힘이 든다.

   오전 11시 데우랄리의 전망대에 도착했다. 무공해의 맑은 날씨 덕분에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 남봉, 마차푸차레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인다.

 

   안나푸르나 지역의 동쪽 끝에 자리한 마차푸차레(6,997m)는 이중의 봉우리가 물고기 꼬리(Fish Tail)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본딴 별칭으로 "Fish Tail"로도 불린다. 알프스산맥에 있는 마터호른(Matterhorn) 산에 견주어 네팔의 마터호른이라고도 불린다. 산 밑에 베이스캠프(MBC. Machapuchare Base Camp, 3,700m)가 있지만 이는 안나푸르나 정상 등반을 위하여 이용되고, 정작 마차푸차레는 등반이 금지되어 있다. 네팔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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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푸차레]

 

   데우랄리 전망대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오색 깃발 ‘룽따’이다. 차례로 하늘, 구름, 물, 불, 땅을 상징하는 파랑, 하양, 초록, 빨강, 노랑의 오색 깃발을 줄줄이 걸어놓았다. 본래 티벳인들이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깃발이다.

   룽따는 한자로 ‘風馬’라고 쓴다. 즉 ‘바람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주로 바람이 잘 부는 곳에 그렇게 많이 걸어놓는다.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봉우리를 정복할 때 머무는 베이스캠프 주위에 걸려 있는 모습을 사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것이다. 네팔의 곳곳에서 이 룽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티베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의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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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우랄리 전망대의 룽따]  

 

   그 룽따 앞에서 범부도 빌었다.

 

   “히말라야의 산신령님께 비나이다. 부디 저희들이 이번 트레킹을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데우랄리 전망대를 지나면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이다. 츄일레의 고도가 해발 2,310m이기 때문이다. 무릎이 약한 산객에게는 이런 내리막길이 고통스럽다. 올라갈 때만 걷고 내려갈 때는 케이블카, 자동차 등을 이용하는 트레킹코스가 있으면 참 좋을 듯하다. 이 코스의 중간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깊은 계곡을 지나기도 한다. 아마도 이제까지 거쳐 온 곳보다 추운 모양이다.

 

   점심식사 하는 곳인 타다파니(Tadapani, 2,630m)에 힘들여 도착하니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예정보다 1시간 이상 늦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같이 출발하여 우리와 똑같은 코스로 온 경주산악회원들(총 5명)은 진즉에 도착하여 이미 점심을 끝내고 츄일레를 향해 막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다며 이제부터 점심 먹고 출발하면 츄일레에 해가 진 후에 도착할지 모른다고 랜턴을 빌려 준다. 츄일레에 도착하거든 돌려달라면서. 그 마음 씀씀이가 참으로 고맙다. 이 분들은 푼힐 전망대에서 당신들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 주었다. 누군가 말했던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순박하고 착하다고.

 

   타다파니에서의 점심 메뉴는 수제비이다. 밀가루 음식을 잘 안 먹지만 가릴 계제가 아니다. 맛있게 한 그릇 후딱 비웠다. 그나저나 시계바늘은 야속하게 돌아가 어느새 오후 2시 40분이다. 서둘러 출발해도 츄일레에 5시까지 도착하기 힘든 상황이다. 일행 중 걷는 속도가 제일 느린 집사람이 결단을 내렸다. 말을 타고 가기로 한 것이다. 궁즉통(窮卽通)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웬만한 로지에는 말과마부가 준비되어 있다. 츄일레까지 요금은 70달러이다. 마부가 앞에서 말고삐를 잡고 보조가이드 수잔이 뒤에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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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타고 이동] 

 

   말이 떠나자 나머지 일행도 출발하였다. 가이드 빔의 말이 츄일레까지 정상적으로 가면 3시간 걸린단다. 결국 깜깜할 때 도착한다는 이야기이다. 비록 랜턴이 있다고는 하나 이 깊은 산속에서 해가 진 뒤에 깜깜한 길을 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다. 도리 없이 걷는 속도를 높이기로 하고 내가 앞장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되풀이되는 길을 오르막에서 한 번도 안 쉬고 내달렸다. 평소 법원산악회에서 산에 다니던 솜씨를 여기서 써 먹을 줄이야. 땀을 뻘뻘 흘리며 그렇게 한 시간을 걸었더니 로지가 하나 나와 그곳에서 숨을 돌렸다.  법원산악회원이 아니어서 평소 등산을 하지 않은 박보영 대법관님과 이원 부장은 따라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가쁜 숨을 몰아쉰다. 두 분께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도 평소 산에 안 다니다가 이번에 서울을 떠나기 전에 한 달 동안 계단 오르기를 하며 다리 힘을 키우셨다고는 하나 박대법관님의 산행 실력은 실로 경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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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막길의 강행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같은 속도로 이동하여 오후 5시 무렵 츄일레에 도착하였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산행시간을 단축한 것이다. 먼저 도착한 경주산악회원들이 깜짝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의지의 한국인이랍니다!”

 

속으로만 외친 말이다.

 

   츄일레에서 하룻밤을 지낸 곳은 ‘Mountain Discovery Lodge’이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특이하게 산 속에 외딴 집으로 홀로 떨어져 있는 로지이다.

   이곳에서는 마차푸차레가 더욱 지척으로 보인다. 특히 이른 아침 붉은 색이 감도는 하늘 아래 보이는 모습은 신령스럽기 그지없다. 그 모습을 보면 네팔인들이 성지로 받드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만하다.  

 

  이 로지에는 아예 이 날 대낮부터 정전이란다. 아무튼 깊은 산속에서 여러 날을 지내는 여정이라 여러 가지 불편한 게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전이 자주 된다는 게 아무래도 불편 중의 으뜸이다. 그래도 식당에 피워 놓은 난로가 냄새도 안 나고 화력도 좋아 정전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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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츄일레의 로지]

                                                                         

   저녁식사 메뉴는 달밧이다. 네팔식 백반이다. 네팔의 고유 음식을 처음 대하는 것이다. 의외로 맛이 좋았다. 그런데 정작 사흘 후 카트만두의 식당에 가서 먹은 달밧은 향이 너무 강해 비위가 약한 촌자로서는 먹기가 힘들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했더니 로지에서 먹은 달밧은 한국인들 입맛에 맞게 주방팀이 변형시킨 것이었다.

   새벽 4시부터 서두른 참으로 긴 하루였다. 저녁식사 후 연구관들과 맥주 한 잔 하며(촌자는 차를 마셨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잠자리로 향했다.

 

지누단다(Jhinudanda)

 

1월 7일, 이날도 예외 없이 아침 6시에 보조가이드 수잔이 따끈한 차를 가져와 잠을 깨운다. 전날 강행군을 했지만 츄일레의 아침이 의외로 가뿐하다. 붉은 색이 감도는 마차푸차레가 잘 잤냐고 반갑게 아침 인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안나푸르나 남봉의 윗부분도 붉게 물들어 있다. 츄일레의 이 로지가 명당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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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차푸차레의 아침]

                                                                        

    간밤에 식당에서 만난 호주에서 온 등반객은 이곳에서만 며칠 묵을 거라고 한다. 요새 유행하는 ‘힐링’ 그 자체이다.

   무국과 밥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8시 10분 지누단다를 향해 출발했다. 이날 걷는 거리는 7.4km, 걸리는 시간은 가이드가 대략 6시간 정도를 예상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아마도 그보다 1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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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일레에서 지누단다까지 지형도] 

 

   이 날은 로지의 건너편 산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일단 급경사를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큠룽 강(Kyumrung Khola. ‘콜라 Khola’를 보통 ‘강’으로 번역하는데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 사이의 눈 녹은 물이 흐르는 계곡 정도의 의미이다)을 건너면 다시 올라간다. 출발부터 숨이 찰 수밖에 없다. 그 후에도 촘롱(Chhomrong)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되풀이하지만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다.

 

   이 길에는 우거진 숲 대신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 사이를 지나는 경우가 많아 그만큼 그늘이 적어 햇볕이 따갑다. 겨울이건만 밭에서는 유채꽃, 밀, 감자 등이 자라고 있다. 손으로 짓는 농사인지라 휴경지를 두어 밭을 돌려가며 짓는다고 한다. 해발 2,000m가 넘는 높은 곳에서 물을 대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다지 비옥해 보이지도 않는 토양에서 과연 그 수확량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네팔인구의 90%가 농사에 종사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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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단식 밭]

 

   1시간 채 안 걸어서 한 로지에 도착했다. 목도 축일 겸 쉬어가기로 했다. 마당에 있는 탁자에 아이 셋이 앉아 아빠의 감독(?) 아래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신선하다. 네팔에 와서 처음 보는 광경이다. 근처 어디엔가 있을지 모를 학교에 다닌다고 해도, 시기상으로 지금은 방학 중일 텐데 아직은 이른 아침 시각에 이렇게 모여서 공부를 하다니... 이 깊은 산중에서도 아이들이 이처럼 공부삼매경에 빠진다면 그들의 장래가 분명 밝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음속으로나마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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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부삼매경의 아이들] 

 

   공부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또 계곡을 건넌다. 산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동하고 이동하려니 자연히 계곡을 건너는 일이 많다. 그 계곡에는 대개 출렁다리가 놓여 있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자력으로 놓기도 하고, 자선단체에서 기부하기도 한다.

   이날 우연찮게 다리 공사하는 모습을 실제로 목격하였는데, 특별히 기술자로 보이는 사람들은 없고, 그냥 동네사람들이 인력으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도끼나 망치를 이용해 돌을 잘게 부숴 시멘트에 섞는 모습도 보인다. 시멘트에 섞을 모래를 구할 수 없어 잘게 부순 돌을 대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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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렁다리]

 

   자선단체 중에서는 홍콩의 세계적인 부호인 카두리 가문(Kadoorie Family)이 만든 카두리 농업진흥협회(Kadoorie Agricultural Aid Association)에서 기증하였다는 안내글이 새겨진 다리가 자주 눈에 띄었다. ‘돈을 얼마나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상기하게 한다. 히말라야의 오지 계곡에 다리를 놓아 줄 생각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덥게 느껴지는 날씨에 직사광선의 햇볕을 받으며 구루중(Ghurjung, 2,200m)이란 곳을 지나려니 배구코트가 설치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이날따라 아이들과 인연이 있는지 자주 대하게 된다.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뛰어노는 아이들이나 세계 어디를 가든 귀엽고 천진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순진무구한 그들이 다 곱게 잘 자라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하면서 싸우지 않고 착하게 산다면 이 세상에서 전쟁이 사라지련만... 농심 신(辛)라면을 진열하여 놓은 상점이 있는 작은 마을의 길가에 놓인 평평한 돌받침대 위에 앉아 있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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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루중의 아이]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안 마차푸차레가 시야에 들어왔다 없어지곤 한다. 더워서 등산파커는 벗어 배낭에 넣은 지 오래다. 이날은 길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거나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이 모두 한국인들이다. 여기가 히말라야 맞나? 혹시 강원도의 고원지대 아닌가?

 

   계속 햇볕 아래에서 걸어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 오늘 계속 2,000m 이상의 고지대를 걷느라 피로가 쌓일 때가 되어서 그런가, 이제 그만 가고 좀 쉬면 좋겠다고 할 무렵 가이드 빔이 힘을 불어넣어 준다. 곧 맛있는 점심이 기다리는 촘롱이 나온다고. 과연 얼마 안 가서 촘롱의 푸른 지붕 로지가 보였다. ‘Heaven View Guesthouse’ 로지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12시 4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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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촘롱의 로지]

 

   촘롱(Chhomrong, 2,100m)은 안나푸르나Ⅰ봉(8,091m) 쪽으로 올라가는 길과 지누단다(Jhinudanda, 1,730m)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나야폴에서 푼힐 전망대를 안 거치고 안나푸르나Ⅰ봉 쪽으로 직접 올라가는 등반객들도 이곳을 지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이곳까지 같은 코스로 온 경주산악회원들은 이곳에서 우리 일행과 헤어져 안나푸르나Ⅰ봉 쪽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그들은 전체 일정이 우리보다 사흘 길다.

 

     안나푸르나Ⅰ봉 아래에 유명한 ABC 캠프(4,130m)가 있다. Annapurna Base Camp의 줄임말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낮은 곳에 MBC 캠프(3,700m)가 있다. 두 산 사이에 캠프가 다 있는 것이다. 그래서 높은 곳의 ABC 캠프를 가려면 그보다 낮은 MBC캠프를 거쳐야 한다.

경치는 푼힐보다 ABC 캠프가 더 좋다고 한다. 문제는 고산병이다. 해발고도가 4,130m나 되니 말이다. 

 

   점심메뉴는 라면과 네팔식 만두이다. 네팔에서도 농심 신라면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다만 중국에서 생산된 것을 들여온다. 포장지는 한국에서 파는 것과 똑같다. 라면도 꿀맛이지만 네팔식 야채만두도 우리 입맛에 맞는다.

   배가 부르니 피곤함도 가신다. 경주산악회팀에게 ABC캠프에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덕담을 건네고 오후 2시 지누단다로 출발하였다. 지누단다까지는 계속 급경사의 내리막길이다. 아니 이제부터는 다음날 포카라에 갈 때까지 사실상 내리막길만 남은 셈이다.

 

   이 길에서 뜻밖의 장면에 마주쳤다. 이제까지 히말라야에서 목격한 포터들의 모습은 등에 짐을 짊어지고 이마에 끈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내리막길에서 만난 사람은 베트남에서나 볼 수 있는 운반도구인 ‘가인 항’(Ganh Hang)을 이용하고 있었다. 즉, 단단한 장대 양쪽에 바구니를 달아 짐을 싣고 장대 중간을 어깨에 올려놓는 운반 도구인 가인 항을 메고 올라오고 있었다.

   베트남과 차이가 있다면 베트남에서는 어깨에 올려놓는 장대를 대나무로 만드는 데 비하여 이 사람의 가인 항은 그냥 나무막대를 사용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베트남에서는 여자들만 이 운반도구를 사용하는데 지금 이 사람은 남자라는 것이다. 이 남자 혹시 베트남에 갔다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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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인 항을 사용하는 포터]

 

   한 시간만에 지누단다에 도착하였다. 이곳에는 제법 구색을 갖춘 로지가 여럿 있는데, 오색 룽따가 여기저기에서 휘날린다.

   우리가 묵을 로지는 'HOTEL NAMASTE'. 고레파니에서처럼 이름만 호텔일 뿐이다. 그래도 나름 조경을 한 마당에 차를 마실 수 있는 탁자도 갖추어 놓았고, 가스보일러를 이용한 온수 샤워기가 설치된 샤워실도 있다. 화장실도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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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단다의 로지]

 

   지누단다에는 무엇보다도 노천온천이 오랜 트레킹에 지친 나그네들을 유혹한다. 로지에서 20분 정도 모디 강((Modi Khola) 쪽 계곡으로 내려가면 물가에 노천온천이 나온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눈 녹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 옆에 바로 붙어 온천이 있는 것이다. 시설은 열악하여 간단한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는데, 물이 뜨겁지는 않아도 산행하느라 쌓인 피로를 풀어줄 만큼은 따뜻하다.

 

   반바지를 준비하여 온 연구관들은 탕 안에 들어가 몸을 담갔지만 반바지를 준비하지 않은 나와 집사람은 발만 담그는 데 그쳤다. 당초 혜초여행사에서 나누어 준 준비물 목록에 수영복 또는 반바지가 있어 의아해하면서 준비를 안 했는데, 그게 이곳에서 쓰일 물건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자연온천욕을 즐기던 이원 부장이 탕에서 나와 옆의 계곡물로 들어간다. 그게 신호가 되어 다른 연구관들도 모두 계곡물로 들어간다. 위광하 연구관은 수영까지 한다.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이라 소름 돋게 차가운데 실로 용감하다. 아무튼 히말라야 계곡물에서의 거풍목욕은 해외토픽감이다. 기네스북에는 안 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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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온천과 히말라야 계곡에 들어간 이영훈 부장]

 

   노천온천을 즐기지 않은 사람들은 로지에서 온수 샤워를 하였기 때문에 모두들 모처럼 개운한 몸으로 여유 있게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염소수육. 몇 점 먹어 보니 맛이 괜찮다. 어떻게 삶아서 요리한 것인지 염소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연구관들이 아직까지 남았던 양주를 마저 비웠는데, 로지 주인 아들로 보이는 친구가 침을 삼켜 결국 일부 나눠 주었다.

 

   이 날 밤이 로지에서의 마지막이다. 저녁식사 후 그 동안 수고한 가이드, 포터들과 주방팀이 로지 뒤뜰에다 캠프파이어를 준비했다. 네팔 고유의 악기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노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를 위해 전력을 기울인 그들이 정말 고맙다. 맥주와 얼마 안 되는 팁으로 그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불편하기는 해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던 로지의 마지막 밤이 총총하게 빛나는 별들과 함께 그렇게 무르익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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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파이어] 

 

다시 포카라로

 

   1월 8일이다. 아침 6시 기상, 7시 아침식사, 8시 출발은 이날도 변함없는 일정이다. 아침식사 메뉴는 매운 김칫국이다. 지난 밤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석별을 아쉬워했지만 이날 점심까지는 여전히 주방팀이 수고를 한다. 이 깊은 산속에서 닷새 동안이나 매 끼니 다른 메뉴를 내놓는 그들은 진정한 프로이다. 한국에 가서 음식점을 차려도 크게 성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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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단다에서 시와이까지 지형도] 

 

   어제 제법 쉰데다 이날은 5시간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볍다. 7.5km를 걸으면 점심식사 하는 곳이자 중간기착지인 시와이(Siwai)에 도착하고, 그곳에는 지프차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마스테 로지에서 출발하여 킴롱 강(Kimrong Khola) 쪽 계곡으로 내려가 다리를 건너 로지의 반대편 산록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양옆 계단식 밭에 유채꽃과 밀이 녹색의 향연을 펼친다. 마치 전남 보성의 녹차밭 같다. 누가 지금 계절을 겨울이라 하겠는가. 꼭 한국에서 봄나들이 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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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의 향연]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가 가지 말라고 자꾸 소매를 부여잡는 듯하다. 나그네도 아쉬워 자꾸 뒤를 돌아본다. 경험상 아직은 구름이 낄 시각이 아닌데 안나푸르나 남봉 과 히운출리에 구름이 맴돈다. 객의 마음이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 산들이 석별의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듯하다.

 

내년이면 이순(耳順)인데 저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휴~ 자신이 없네.

아니 힘을 길러 ABC캠프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곳에서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더 잘 볼 수 있다는데....‘

 

   갖은 상념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어느 유행가의 “가다 말다 돌아서서 아쉬운 듯 바라본다”는 노랫말이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쉬움을 달래려고 열심히 카메라에 설산 모습을 다시 담지만 퇴색하기 싫어하는 ‘희나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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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이 맴도는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

 

   큐미(Kyumi)를 지나 시와이(Siwai, 1,380m))에 도착하니 오후 1시다. 점심식사 장소는 'Siwai Guest House', 메뉴는 비빔국수이다. 역시 입에 착 달라붙는다. 수제비, 라면, 비빔국수... 이번 여정에서 먹은 밀가루 음식이 지난 1년 동안 먹은 것만큼 된다.

 

   식사를 하는 동안 큐미에서부터 따라온 흰둥이가 식탁 밑에서 늘어지게 잔다. 깊은 산속이라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보안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개를 많이 키운다. 그런데 그 개들이 낯선 등산객들을 보고 짖기는커녕 졸졸 따라오기 일쑤다. 이 큐미에서부터 따라온 흰둥이도 그런 종류이다. 점심식사 후 나야폴행 지프에 올라타서야 이 흰둥이와 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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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탁 밑에 늘어진 흰둥이]

 

   식당 양지바른 곳에서 네팔의 아낙네들이 노란색 뿌리채소를 펼쳐놓고 자르고 강판에 갈며 손질을 하고 있었다. 견문이 짧은 촌부는 생강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바로 커리(curry)란다. ‘카레라이스’를 이따금 먹었으면서도 정작 커리가 어떻게 생긴 줄 몰랐는데, 생물을 처음 본 것이다. 역시 생생하게 견문을 넓히는 데는 여행이 으뜸이다. 다리품을 파는 만큼 얻는 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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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리를 손질하는 아낙들]

 

   시와이에서의 점심식사가 실질적으로 이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대미(大尾)이다. 더 이상 산속에서 걸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출발할 때는 걱정이 앞섰지만, 이렇게 무사히 해낸 것이다.

   다만 2002년 2박 3일 간의 지리산 종주 때에는 종점에 도착하자 눈물이 났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는 않다. 그 때보다 힘이 덜 들었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10여 년의 세월이 더 흐르는 동안 감정이 메말라졌기 때문이리라.

 

   포터, 주방팀, 그리고 보조 가이드 수잔과는 여기서 작별했다. 오후 2시 20분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던 지프에 올랐다. 나야폴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먼지가 풀풀 나는 비포장 산길이다. 그 사이 눈에 익숙해진 히말라야의 산들이 하나씩 작별인사를 하면서 속삭인다. “또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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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들과 작별하며. 수잔 부부, 빔과 함께]

 

   나야폴에서 다시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타고 포카라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다. 저녁식사 때까지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시내관광에 나섰다. 먼저 험준한 히말라야를 넘어온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난민촌으로 갔으나, 늦은 시각이라 아쉽게도 거리가 대부분 철시한 상태였다.

   외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 하여 이름만 ‘난민촌’이지 거리는 다른 곳보다 오히려 정돈되고 번화한 느낌이다. 난민촌 하면 흔히 떠올리는 텐트촌이 아니다. 구색을 갖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양 지사장 말에 의하면 양탄자를 직조하여 파는 일들을 주로 하기 때문에 네팔인들보다 더 부유하다고 한다.

 

   티베트 난민촌에서 나와 데비 폭포(Devi's Fall)로 갔다. 본래 명칭은 파탈레 창고(Patale Chango)였는데, 1961년 남편과 함께 구경온 데비((Devi)라는 스위스 여자가 이곳에서 떨어져 죽은 후로 데비 폭포로 불린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였기 때문에 혹시 남편이 폭포 아래로 민 것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아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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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비 폭포]

 

   이 폭포의 특징은 물이 지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통상의 폭포처럼 물이 높은 곳에서 사람이 서 있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평지에서 지하로 물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 물이 떨어지는 곳은 동굴로 이어져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의 추락사고를 막기 위하여 폭포 주위에 담장을 쳐 놓은 까닭에 가까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데비 폭포 입구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양탄자와 민속공예품 등을 파는 상가가 번화하다. 한 가게에 들러 안나푸르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하나 3달러 주고 샀다. 완전히 원님 행차 뒤에 나팔 부는 격이다. 카트만두에서 사는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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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푸르나 모자]

 

    양 지사장이 운영하는 히말라야로지에서 양 지사장 부부가 정성들여 준비한 돼지 바비큐로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인 샹그릴라 빌리지(Shangri~La Village)로 돌아왔다.

   혜초여행사에서 준 카고백에 넣어 가지고 다니던 짐들을 서울에서 가지고 온 여행가방으로 다시 옮겼다. 빈 카고백은 그 동안 수고한 가이드 빔에게 다음날 주었다. 여행용으로 준비해 왔다가 사용하고 남은 몇몇 일용품들과 함께.

   이제 등산화에서 해방이다. 평소 자주 신은 등산화를 그대로 신었는데도 발목의 여러 군데 까져서 쓰리다. 그나마 소독약을 준비한 게 다행이다. 그러면 그렇지 히말라야가 어디 그리 만만한 산인가.

 

다시 카트만두로

 

   1월 9일 아침 6시에 일어났다. 본래 더 일찍 일어나 페와 호수에 가서 한 시간 정도 뱃놀이를 하기로 일정이 짜여 있었으나, 모두 피곤한데다 포카라의 날씨가 흐려 호수에 비치는 히말라야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뱃놀이를 포기하고 다른 날처럼 일어난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전날 예상대로 역시 짙은 안개로 날이 잔뜩 흐렸다.

 

  그렇지만 샹그릴라 빌리지의 그림 같은 모습이 포카라의 아침을 상쾌하게 한다. 샹그릴라 빌리지는 호텔이기보다는 리조트 단지에 가깝다. 숙소는 높이가 2층밖에 안 되고 정원이 갖가지 꽃과 나무들로 잘 가꿔져 있다. 1층 방에서 창문을 열면 바로 정원의 잔디밭으로 나갈 수 있다. 아침식사는 뷔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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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그릴라 빌리지]

 

   오전 8시 샹그릴라 빌리지를 출발해 공항으로 갔다. 9시 20분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다소 쌀쌀한 날씨에 서두른 보람도 없이 이날도 비행기는 제 시간에 못 떠난다. 안개가 낀 날씨 탓인 것을 어쩌랴. 공항 대합실 옥상에 올라가니 구름 사이사이로 안나푸르나 남봉,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3봉, 마차푸차레, 람중 히말(Lamjung Himal, 6986m)가 어렴풋이 보인다. 날씨만 맑으면 이곳에만 와도 히말라야의 멋진 풍광을 다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카트만두에서 이곳으로 올 때처럼 또 기약 없이 무작정 기다릴 판이었는데, 천만 다행으로 해가 서서히 나면서 10시 50분에 부다항공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11시 30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이제껏 조용하고 깨끗한 곳에서 지내다 다시 소음과 매연으로 뒤덮인 곳으로 온 것이다. 그렇지만 왕궁 앞의 번화한 광장거리는 그런 대로 형편이 낫다. 보차도가 구분된 4차선 도로에 중앙분리대도 있고, 보도에는 보도블록도 깔려 있다. 길의 양옆 상가에는 세계 각국의 유명 상표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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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궁 앞 거리 모습]

 

   이곳에 있는 낭글로(Nanglo)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메뉴는 철판에 얹은 닭구이, 네팔국수, 익힌 야채이다. 그리고 밥이 따로 나온다. 네팔에 온 지 7일째인데 변형되지 않은 순수 네팔식 음식을 처음 대했다. 해외여행에 나서면 음식이 입에 안 맞아 고생하는 촌부의 입에도 생각 밖으로 괜찮다. 주인이 한국에 오랫동안 있다 왔다고 하는데 혹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킨 것인가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숙소인 하이야트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쉬다가 시내관광을 하러 나섰다. 이때 가이드가 빔에서 싸이로 바뀌었다. 빔은 참으로 성실한 가이드이다. 그와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싸이는 연세대 외국어학당을 다녀와 한국말을 잘한다.

 

   먼저 간 곳은 스와얌부나트(Swayambhunath) 사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사원이다. 대략 2,0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한다.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카트만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이 사원의 중앙에는 네팔식 불탑이 자리 잡고 있다. 불탑 중앙에는 부처님의 그것을 상징하는 눈이 동서남북으로 카트만두를 응시하고 있다. 눈 밑의 물음표 ‘?’ 같은 코형상은 숫자 1을 상징하며, 모든 진리는 하나라는 의미이다. 탑신 위로 13개의 원이 있는데, 이는 티벳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위한 13과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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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와얌부나트 사원의 불탑]

 

   오색 룽따가 휘날리는 이 사원 안에는 야생 원숭이가 하도 많아 '원숭이 사원'(Monkey Temple)으로도 불린다. 그리고 원숭이만큼이나 많은 게 거지이다. 하나같이 어린 아기를 품에 안고 구걸을 하는 여인들 때문에 지나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를테면 앵벌이인 셈이다. 1달러라도 건네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주위의 거지들이 너도나도 따라붙기 때문에 그러지도 못한다. 실제로 이원 부장이 멋모르고 적선을 하였다가 곤욕을 치렀다. 한편 사원구역 안에는 힌두교 사원도 있어 두 종교가 섞여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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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원숭이와 적선하는 이원 부장]

 

   스와얌부나트 사원에서 더르바르(Durbar)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더르바르’는 왕궁이라는 뜻이다. 이 광장은 구(舊) 왕궁인 하누만도카와 쿠마리가 거처하는 쿠마리사원이 있는 곳으로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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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르바르 광장]

 

   왕궁을 중심으로 하여 주위에 독특한 구조가 인상적인 수많은 중세 네팔의 사원, 불탑과 신상(神像)들이 모여 있다. 카트만두의 원주민인 네와르족의 문화가 꽃피운 이들 건축∙장식 예술은 미술사에서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는 평을 받는다. 명성에 걸맞게 많은 네팔인과 관광객으로 붐볐고, 골동품이나 민속공예품 등을 파는 노점이 사원 사이로 줄지어 있다.

 

   광장에는 비둘기도 많았는데, 그 옆에 검은 물소 두 마리가 엎드려 있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죽어가는 소를 누군가 갖다 버린 것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소고기를 안 먹기 때문에 소가 늘고 병들어 죽어 가면 저렇게 갖다 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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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르바르 광장의 사원]

 

   더르바르 광장의 남쪽 끝에 쿠마리(Kumari) 사원이 있다. 힌두교의 처녀신 쿠마리의 화신(化神)인 라즈 쿠마리(Raj Kumari)가 살고 있는 곳이다. 건물도 그렇거니와 목조 조각으로 된 창틀이 매우 정교하다. 하지만 이 사원의 볼거리는 그런 건물이나 목조 조각보다도 쿠마리의 존재 그 자체이다.

 

   네팔에서 살아있는 여신으로 추앙받는 쿠마리는 네와르족 사키아 계급의 여자 아이 중에서 선택된다. 선택된 쿠마리는 신화 속 탈레주 여신의 현신으로 숭배받는다. 매년 가을 힌두교 축제 때는 국왕도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쿠마리를 뽑기 위한 전형위원회는 승려, 왕실의 점성가, 브라만 등의 원로들로 구성되며 만장일치로 선택된다. 주로 2세~4세 사이의 여자 아이 중에서 선택되는데, 건강하고 천연두 자국이 없으며 피부에 흠이 없어야 한다. 또한 까만 눈동자와 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야 하며, 이가 가지런하고 온전해야 한다.  

 

   선택된 쿠마리는 쿠마리 사원에 격리되어 사는데, 유료 관광객이 몰려 가족이 신호를 보내면 잠깐 창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동방에서 온 한양나그네들도 덕분에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사진 촬영이 절대 금지되어 있어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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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 사원. 3층 가운데 창문을 열고 쿠마리가 얼굴을 내민다]

 

   쿠마리는 초경이 시작되거나 몸에 상처가 나 피가 나면 신의 권좌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쿠마리가 같은 절차에 의해 뽑힌다.

   권좌에서 물러난 쿠마리는 나라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게 된다. 신의 권자에서 물러난 쿠마리는 평범한 여자로서 결혼도 할 수 있지만, 그녀와 결혼하는 남자는 비명횡사한다는 믿음 때문에 대부분의 쿠마리는 결혼을 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노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쿠마리 사원 옆에 있는 하누만도카(Hanuman Dhoka) 왕궁은 12세기 말라(Mallas) 왕조 때 건설을 시작하여 18세기 샤(Shah) 왕조 때 완성되었다. ‘하누만도카’라는 이름은 힌두교 왕궁 이름은 힌두교신 중 원숭이 수호신인 ‘하누만(Hanuman)’에서 유래하였다. 그래서 왕궁 입구에 붉은 망토를 두르고 우산으로 머리를 받치고 서 있는 하누만 석상(石像)이 있다. 그런가 하면 칼을 꽂은 총을 세우고 있는 근위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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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누만 석상]

 

   이곳에서는 19세기까지도 네팔 왕족이 거주하였으며, 대관식과 같은 국가의 주요행사를 거행하여 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옛날 왕들의 사진과 자료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시간이 늦어 박물관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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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누만도카 왕궁]

 

   더르바르 광장에서 나와 네팔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상가를 지나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는 네팔 고유의 달밧이다. 식사하면서 네팔의 전통 음악과 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6일 저녁 츄일레의 로지에서 먹었던 그 달밧이 아니었다. 순수 네팔식이라 촌자가 먹기에는 향이 너무 강했다. 결국 먹는 둥 마는 둥 하여야 했다. 네팔의 애절한 음악을 듣고 남자 무희의 화려한 춤을 보는 것으로 식도락을 즐기기 못하는 아쉬움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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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춤추는 남자 무희]

 

   저녁식사 후 숙소인 하이야트 호텔로 돌아와 일행들과 호텔 바에서 맥주를 시켜 놓고 그간 여행의 회포를 풀었다. 그렇게 네팔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갔다. 모든 여행이 그러하듯 끝날 무렵이 되니까 정체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내일 서울로 돌아가면 다시 일에 복귀하여야겠지.

 

귀국

 

   1월 10일, 네팔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평소와 달리 1시간 늦은 7시에 일어났다. 오전에 보우다나트(Boudhanath) 사원만 둘러보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식사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느긋하게 하고, 식사 후에는 호텔 경내를 산책할 겸 한 바퀴 둘러보았다.

   포카라의 샹그릴라 빌리지도 그렇고 이 하이야트 호텔도 그렇듯이 1인당 국민소득 700달러의 가난한 나라에 있는 호텔로는 참으로 호화롭다. 아무리 관광객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는 하나 호텔 주위의 사람들이 느낄 위화감이 어떨는지... 문득 가보지는 않았지만 평양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전에 금강산 관광을 갔을 때 온정각의 시설과 북한 주민들의 주거 모습이 대비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보우다나트 사원의 본래 이름은 보드나트이다. 보드(Bodh)가 깨달음, 나트(Nath)가 사원이니 보드나트는 ‘깨달음의 사원’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 이름보다는 이 사원이 있는 지역인 보우다(Boudha)를 따서 ‘보우다나트’로 더 불린다.

   보우다 지역은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하자 네팔로 망명한 난민들이 정착한 곳이라고 한다. 불심(佛心)이 강한 그들이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부처 사리를 봉안한 보드나트 불탑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튼 이 사원의 불탑은 그 규모가 네팔에서 가장 크다. 그리고 이 사원은 스와얌부나트와는 달리 힌두교적 요소는 없고 순수 불교적이다.

  불탑 맨 아래에는 마니차(불경을 새겨 넣고 돌릴 수 있도록 만든 둥근 통)를 돌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 마니차를 돌리며 코라(탑돌이)를 한다. 탑돌이는 시계방향, 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다. 신이 오른쪽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자인 범부도 그 사람들을 따라 탑돌이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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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우다나트 사원]

 

   탑돌이를 끝내고 기단 위로 올라갔다. 마침 엄청난 숫자의 승려들(티베트 등 여러 나라에서 왔다고 한다)과 신도들이 불탑의 기단 위를 가득 메운 채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야단법석(野壇法席)이다.

‘옴(우주) 마니(지혜) 반메(자비) 훔(마음)’을 외우며 염불을 하는 사람, 오체투지(五體投地)를 하는 사람, 불경을 읽는 사람 등 가양각색이다. 승려 한 명을 붙잡고 무슨 행사인가 하고 물었더니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법회라고 한다. 1년에 한 번씩 일주일 정도 하는데, 올해가 5년째라고 한다. 법정스님의 말씀처럼 세계 불교의 중심은 티베트 불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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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단법석 법회]

 

   우주의 구성요소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 형상화되어 있는 이 거대한 불탑 앞에서 동방의 나그네도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부처님,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케 하여 주시옵소서!”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 사원이 모두 들어와 있어 크고 작은 사원만 30여 개가 되고 각종 불교용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보우다나트 사원의 한 가게에서 보리수로 만든 염주 두 개를 사는 것으로 네팔 일정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인도음식을 하는 식당으로 가 인도음식(달)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카트만두 국제공항으로 향하였다.

 

   오후 4시 10분 카트만두를 출발한 대한항공 KE 696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5시간 30분. 인천에서 카트만두를 오고가는데 갈 때와 올 때 2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이유를 궁금해 하면서 ‘안나푸르나 로얄 트레킹’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서울에 돌아온 후 이상한 증상이 생겼다.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으면 자꾸 히말라야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산이 나를 부른다. 빨리 오라고.(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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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킹 증명서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