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어디 가고(오봉산)

2015.11.19 13:51

범의거사 조회 수:1474

 

                    이름은 어디 가고

 

 

구암 보시게

 

    가을이 나날이 깊어 가고 있네.

    잘 지내시는가?

    나이가 들수록 너나 할 것 없이 건강부터 걱정하게 되는데, 외우(畏友)는 형편이 어떠신가? 달포 전에 보았을 때 그대도 세월의 흐름 앞에 어찌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네. 침과 쑥뜸 도구를 들고 범부의 사무실을 정기적으로 내방하여 정성껏 시술하여 주던 모습이 새삼 떠오르네. 그대의 세심한 배려에 늘 감사하며 지낸다네.

 

구암,

 

    범부는 지난 17일에 오봉산에 다녀왔네. 법원도서관장 시절에 함께 근무하면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모인 서리풀산악회의 가을 정기산행이었네. 2015. 9. 16. 법원 문을 나선 후의 첫 산행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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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후령의 오봉산 등산로 입구]

  

    오봉산은 춘천과 화천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 높이가 779m일세. 21m가 모자라 800m급 산에 못 끼어 안타깝다는 것은 범부만의 생각이겠지? 정작 산은 아무 생각이 없는데 말일세

 

오봉산 지도.jpg

 

     이 산의 이름은 본래 청평산(淸平山)이었는데, 다섯 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해서 언제부터인가 오봉산(五峰山)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네. 사실 봉우리가 다섯 개인 산이 우리나라에서 어디 이 산뿐이겠는가. 북한산의 오봉능선, 관악산의 육봉능선, 팔봉능선... 등등 거의 보통명사화 되어 있지. 그런데도 이 산에 굳이 오봉산이라는 고유명사를 붙인 이유가 있으련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아무튼 이 산은 능선에서 남쪽으로는 소양호가 내려다보이고 북쪽으로는 화천의 고산준봉들이 눈 가득히 들어와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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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의 능선에. 멀리 소양호가 보인다]

 

     비록 출발지인 배후령 고개의 해발고도가 600m여서 정상까지 가는데 크게 힘이 들지는 않았지만, 도중에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가야 하는 곳이 군데군데 있어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하였다네. 게다가 제철을 맞아 한창인 단풍이 한양 산객을 환영하여 걸음걸음이 즐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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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 등산로]

 

    그런데 실망스런 모습도 있었네. 내용인즉,

    오봉(五峰) 중 제1봉에 올랐더니 제1봉임을 알리는 이정표랍시고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작고 희미한 글씨로 1이라고 써 놓았더군. “이거야 원~” 하며 입맛을 다신 후 제2봉에 올랐더니 이번엔 어떠했는지 아나? 그나마 아예 이정표가 없었네. 3, 4봉도 마찬가지였고, 5봉에 올라서서야 오봉산이라는 제대로 된 표지석을 볼 수 있었네.

 

오봉산4.jpg

[오봉산 정상]

 

    이 오봉산의 봉우리들은 본래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 등 고유의 이름이 있다고 하는데(그래서 그 다섯 봉우리를 통틀어 부르기 쉽게 오봉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네), 그 이름은 어디 가고, 그런 내용을 알리는 흔적조차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네. 산 밑에 천년고찰 청평사가 있어 주말이면 춘천시민의 발길이 끊이질 않건만, 춘천시장을 비롯한 관련 당국자들은 낮잠만 자는 건지... 지방자치가 실시된 후 각 자치단체마다 전에 없던 관광지도 새로 개발하느라 열을 올리는데, 이곳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인 모양일세그려.

 

    경사가 제법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면 산 밑에 청평사(淸平寺)가 나오네.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고려 광종 9(973)에 세워졌다고도 하는 이 절은 범부가 사법연수생 시절 처음 찾았었으니 그로부터 35-6년이 지난 내 기억 속에는 요사채가 한두 채 있는 작은 암자였는데, 지금은 거찰(巨刹)의 면모를 지녀 상전벽해가 되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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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사]

 

     아쉽게도 뱃시간에 쫓겨 경내를 자세히 둘러보지는 못하였네.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다는 회전문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모르니까 당연히 안 보인 게지. 아무튼 일견하여 잘 정돈된 모습이었고, 소양호의 나루터까지 난 길도 정비가 잘 되어 있었네.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소양강댐까지 이동했네. 사력(沙礫)댐인 소양강댐의 웅장함은 여전하건만, 안타깝게도 계속되는 가뭄에 소양호는 물이 눈에 띄게 줄었더군. 홍수와 가뭄을 대비한 다목적댐도 비가 오랫동안 안 오는 데는 어쩔 수가 없는 듯하이. 자연 앞에 선 인간의 한계 아닐까싶네.

 

오봉산6.jpg

[소양호]

 

대사,

 

     그러고 보니 그대와는 몇 년 전 월출산과 오대산을 함께 찾은 이후로는 가을 산행을 한 일이 없는 듯하이. 백동이나 담허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네. 나이는 들어가고 다리에 힘은 점점 빠지는데,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함께 주유천하를 해 봄이 어떤가. 주어진 여건들이 다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범부의 마음만 앞서나가는 건가? 산행이 어렵거든 그냥 얼굴이나 보면서 곡차라도 한 잔 하세그려.

 

   후일을 기약하며 이만 줄이네.

   건강하시게.

 

    상강(霜降)지제에 우민(又民)이 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