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안나푸르나

 

 

   2014년 1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다녀온 후 꼭 2년이 지났다. 당시 안나푸르나를 다녀온 후 쓴 산행기의 제목이 “그 산이 나를 부른다”였다. 그랬다.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히말라야의 설산 광경. 그것은 어찌 보면 마약과도 같은 존재였다.

   생각할수록 다시 가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찾지 않으면 왠지 모르게 빚을 지고 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주에 낀 역마살(驛馬煞)도 발동을 하는 듯했다.

 

2016년 1월 22일,

 

   히말라야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결국 히말라야를 다시 가기로 한 것이다. 대략 2주 전인 1월 9일에 한라산 ‘윗세오름’을 등반한 피로도 어느 정도 가신 상태였다.
   사실 설경으로 치면 한라산 영실에서 윗세오름으로 올라가는 도중이나 윗세오름의 그것 또한 장관이라 꼭 굳이 멀리 가서 설경을 찾을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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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윗세오름]

                                                
    그러나 해발 1,950m의 한라산 설경과 8,000m가 넘는 히말라야 고봉의 만년설 설경은 그 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후자의 장엄함은 가서 직접 느끼지 않으면 필설로 설명하기 어렵다. 특히 해가 뜰 때 흰 산이 붉은 색과 황금색으로 물드는 모습은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감동을 준다, 그것이 바로 히말라야의 매력이다.


    비록 정상이 아닌 산중턱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하지만, 그야말로 무공해지대인지라 맑은 날에는 정상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능선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가는 펜으로 그린 듯 날카롭고 선명한 능선 모습은 히말라야만이 보여 줄 수 있는 전매특허가 아닐는지.       


    그 모습이 그리워서, 그리고 이번에는 또 다른 성취감, 즉 최고 3,200m 지점의 푼힐전망대까지 오른 지난번과는 달리 3,700m 지점의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achapuchare Base Camp, 줄여서 MBC라고 부른다)와 4,130m 지점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줄여서 ABC라고 부른다)까지 오른다는 성취감을 맛보려고 길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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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남봉의 일출모습]

 

 

인천공항에서 카트만두까지

 

    본래 인천공항에서 오전 9시 55분에 출발할 예정이었던 KAL이 11시 10분이 되어서야 출발하였다. 인천공항이 중간기착지도 아니고 국적기인 KAL이 첫 출발지로 출발하는 곳인데도 이렇게 늦게 출발하면서 왜 늦는지 안내방송조차 하지 않는다.

    인천공항이 10년째 세계 1등 공항으로 선정되었어도 비행기 지연출발이 잦아 그 위상에 먹칠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한 일이 있는데 바로 그 꼴이다. 과연 누구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소비자 입장에서는 KAL의 불성실, 무성의를 먼저 탓할 수밖에 없다.

    3월말부터는 네팔행 직항편을 1주일에 3회로 늘린다고 하는데, 출발시각을 이처럼 안 지킨다면 원성이 그만큼 높아질 게 틀림없다. 

 

    카트만두는 2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단지 귀국하기 전날 오전에 시간이 남아 둘러본 더르바르(Durbar) 광장의 사원들과 하누만도카(Hanuman Dhoka) 왕궁이 작년의 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었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파손된 유적들은 복구를 엄두도 못 낸 채 방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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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전의 본래 사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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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파괴된 후의 모습]

 

 

    네팔을 찾는 여행객 휴대품 필수품목에 마스크가 포함될 정도로 카트만두의 공기는 탁하기 그지없다. 2년 전보다 더 심해진 듯하다. 오래된 낡은 차들과 거리를 덮은 오토바이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숨쉬기기가 곤란하고 눈이 따갑다. 오죽하면 교통순경이 마스크를 하랴.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번화가 타멜거리도 그대로였다. 다만 상권이 다소 위축된 듯했다. 그곳에서 내 조언을 받은 김용안 전 서울남부지방법원 국장과 박재송 인천지방법원 계장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로고로 새겨진 등산모자를 샀다.

   내가 2년 전에 이곳에서 안 사고 포카라에 가서 산다고 했다가 결국 트래킹 다 끝난 후에야 살 수 있었던 낭패담을 들려준 것이다. 2년 전에는 3불이던 모자가 이젠 4불 이하로는 살 수 없다. 물가가 오른 모양이다.    


  한국 교민이 경영하는 한식당 ‘정원’에 들러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했다. 육류를 멀리하는 나는 밥과 김치 위주로 먹었는데, 김치가 참 맛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번 등반에 동행할 일행들이 각자 자기소개를 했다. 나와 김용안 국장, 박재송 계장 부자(박계장이 중3 졸업반 아들 박종혁군을 대동했다), 대기업에서 퇴직하여 노후를 즐기는 60대 부부, 모녀(50대 엄마와 20대 대학원생), 그리고 혼자 온 남자 두 명(중소기업인과 회사원), 이렇게 모두 열 명이다. 


  식사 후 시내에 있는 Radisson 호텔에 투숙했는데, 지난번의 하이야트 호텔만 못했다. 와이파이(Wifi)가 터져 카카오톡으로 경준이와 무료문자 및 무료통화가 가능했다. 카카오톡의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경준이는 1월 중순에 인도로 배낭여행을 떠난 상태이다.              
      
포카라 → 란드룩

 

   1월 23일 아침, 5시 50분에 호텔 측에서 모닝 콜(Morning Call)을 해 주기로 했지만 그 전에 일어났다. 서울과 3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는 탓에 일찍 잠이 깬 것이다. 이후로도 내내 예정된 기상시각보다 일찍 일어났다.

 

   호텔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꾸려 공항으로 나갔다. 포카라 행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다. 지난번에는 일기가 불순하여(안개가 많이 낀다) 4시간이나 기다렸었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1시간밖에 안 기다리고 9시 30분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행기는 예티(Yeti) 항공 소속 경비행기로 50명 정도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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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행 경비행기. 좌로부터 박종혁군, 필자, 김용안 국장, 박재송 계장]

 

   이 비행기는 지정좌석이 없이 선착순으로 타는지라 먼저 타는 사람이 비행 중에 히말라야 산맥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오른쪽 창가 좌석을 차지할 수 있다. 다행히 나도 그쪽에 앉아 포카라까지 가는 동안(약 30분)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총길이 2,400km에 걸친 그 장대함은 언제 보아도 눈을 즐겁게 한다. 이것을 처음 보는 김용안 국장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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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히말라야]

 

    포카라 공항에는 혜초여행사의 양기영 지사장이 나와 있었다. 2년 전보다 건강한 모습인 게 반갑다. 이번 등반에는 동행하지 못하지만 수석가이드인 ‘라나’가 잘 안내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라나는 등반 내내 노련하게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포카라는 카트만두와 달리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함께 간 일행들 모두를 감탄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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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 트래킹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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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10시 30분, 혜초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포카라에서 바로 트래킹 출발지인 카레로 이동하였다. 해발 1,770m 지점의 카레까지는 1시간 넘게 걸린다. 중간에 피로가 몰려와 잠깐 조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카레는 네팔에서 흔히 보는 전형적인 산골마을이다.


    버스에서 내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10명 일행이 모두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12시에 드디어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날의 목적지 란드룩까지는 12km. 6시간 예정이니 다소 강행군이다. 카트만두에서 비행기가 1시간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본래 7시간 예정이었던 것이 단축된 것이다. 

 

    이미 각오를 하고 온 터인지라 다들 잘 걷는다. 처음에는 긴장한 표정들이었으나 기온의 변화에 따라 능숙하게 옷을 벗거나 바꿔 입는 모습에서 적지 않게 산을 다녀본 이력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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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에서 출발하기에 앞서]

 

    산행 시작 2시간 만에 포타나(Pothana)에 도착하였다. 해발 고도가 1,890m이니 상당히 빨리 걸은 셈이다. 입구의 한 로지에 ‘천국의 문(Heaven’s Gate)‘라고 써놓은 간판이 재미있다. 사실 카레에서 출발하여 거의 오르막길만 계속 올라가 숨이 차던 터라, 점심을 먹기로 예정되어 있는 이곳이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빔밥 점심이 어찌나 맛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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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 로지]

 

      갈 길이 바쁜지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도착 30분 만에 다시 출발하였다. 포타나에서 해발 1,940m까지 잠깐 더 올라간 후에는 란드룩(해발 1,565m)까지 내리막이 이어진다. 자연히 무릎에 부담이 갈 수밖에. 거기에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하여야 한다고 라나가 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힘이 더 들었다.


     빗방울이 약간 뿌리는 가운데 예정대로 저녁 6시에 란드룩의 로지(Lali Gurans Guest House)에 도착하여 무릎을 살펴보니 한국에서 떠나올 때 사무실 여직원 정문경씨가 준 테이프를 감은 자리가 벌겋게 부르텄다. 테이프가 통증 완화에 효과는 있는데, 나처럼 민감하고 약한 피부에는 적절하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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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드룩의 로지]

 

란드룩 시누와

 

     1월 24일, 란드룩의 로지에서 아침 6시 기상이지만 그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났다. 안나푸르나 남봉이 바로 코앞인데, 해가 뜨려고 벌겋게 물들고 있다. 그리고 서서히 황금색으로 변해간다. 해가 다 뜨고 나면 본래의 흰색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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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남봉(왼쪽)과 히운출리]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하였다. 목적지 시누와까지는 약 10km이다. 란드룩에서 출발하여 콜라강을 가로지르는 구름다리인 뉴브리지(New Bridge. 안나푸르나 지역에서는 제일 긴 다리이다)까지 가는 길은 고저 차이가 별로 없이 평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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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브리지]

 

     뉴브리지를 건너면 지누단다까지 오르막 내리막을 되풀이한다. 지누단다(해발 1,780m)는 지난번 트래킹 때 산속에서 마지막으로 잔 곳으로 인근에 노천온천이 있다. 온천 옆 계곡에서 수영을 했던 이영훈 부장판사(현재 전산정보국장)가 생각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함께 왔으면 좋았을 것을....   


     지누단다를 지나면 촘롱(해발 2,170m)까지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햇볕도 따가워 더 힘들다. 그래도 지난번에 내려왔던 길이라 익숙한 게 반갑다. 2년 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12시에 촘롱에 도착하여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밭’(이곳 위로는 밭 경작이 안 된다)이라는 뜻을 지닌 촘롱은 푼힐전망대 쪽으로 트래킹을 한 후 포카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교차하는 곳이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푼힐전망대 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이날 메뉴는 카레라이스. 전날과 달리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어 점심 식사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오후 2시 다 되어서 출발하였다.

 

     촘롱에서 시누와(해발 2,340m)까지는 공포의 3,000계단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막판에는 비까지 조금씩 내려 멀리 동방에서 온 산객을 힘들게 하였다. 그래도 비교적 이른 시각인 오후 4시에 시누와에 도착하였다.

 

     로지(Sherpa Guest House)가 허름하기는 하지만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는 곳에 있어 주위 전경이 아름답고, 한국말로 한국음식(라면, 김치찌개, 백숙, 김치 등)을 판다는 간판이 이채롭다.

     그런데 이런 간판은 이번 등반 내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간판에 한국인을 환영한다면서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문구까지 써놓은 곳도 있다. 안나푸르나에서는 그만큼 한국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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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와의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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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땅]

 

     오후 6시, 닭백숙과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Wifi(유료로 3불을 내야 한다)를 이용하여 파리(집사람), 서울(경호 내외), 인도(경준)에 소식을 전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깊은 산속인데다 난방시설이 없는 곳이라 밤이 되면 기온이 내려가 춥지만, 양승태 대법원장님이 빌려 주신 침낭 위에 혜초여행사에서 제공한 침낭을 이불처럼 펼쳐 덮고, 거기에 더하여 뜨거운 물이 담긴 핫백(Hot Bag)을 침낭 속에 넣고 자니까 그다지 추운 것을 모르겠다.   

 

시누와 → 데우랄리

 

     1월 25일 아침 5시 30분, 동행하는 포터들이 이 날도 예외 없이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와서 잠을 깨운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일어난 상태이다.
     로지 밖을 나오니 밤새 비가 왔는데, 높은 산에는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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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와의 로지에는 비가 왔는데 산에는 눈이 내렸다]

 

 

     조선시대 한량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함께 놀던 기생 한우(寒雨. 그야말로 ‘찬비’다)를 희롱하며 지은 시조가 생각난다.

 

  북천이 맑다 해서 우장 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한우(寒雨)가 이에 질쏘냐 응대한 시조가 더욱 걸작이다.

 

  어이 얼어자리 무스 일 얼어자리
  원앙금 비취침을 어디 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 비록 높은 산에는 눈이 오고 그보다 낮은 곳에는 찬비가 내렸건만 더불어 즐길 한우(寒雨)는 어드메 있다뇨. 

 

     꽁치백반과 ‘계란후라이’로 아침을 먹고 시누와에서 7시 30분에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데우랄리. 해발 3,200m이다. 마침내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는 3,000m를 넘어서는 것이다.


     해발 2,500m 지점에 이르니 마침내 눈길이 시작된다. 네팔의 위도가 낮다 보니 이제까지는 그야말로 봄 날씨였기에 길에서 눈을 볼 수 없었다. 2,800m 지점부터는 설국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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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으로 들어가는 협곡]

 

     12시에 도반(Dovan. 해발 2,560m)에 도착하였다. 점심으로 나온 수제비와 감자전이 일품이었다. 도반의 로지(Dovan Guest House)에서 만난 젊은이 일행 5명 중에 한 명은 여자였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팀을 짜서 함께 온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세 명만 함께 오고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은 각기 모르는 사이로 홀로 와서 네팔에서 합류했단다. 무엇보다도 그 여자의 용기가 대단해 보였다. 우리 일행처럼 요리사를 대동한 것이 아닌지라 매끼를 로지에서 사 먹는데,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젊음은 그래서 좋은 것이다.

 

    그런가하면 ‘히말라야 로지’(해발 2,900m)애서 만난 젊은이는 벌써 4개월째 혼자 배낭여행 중으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라갔다 오면 그 후 바로 일본으로 갈 예정이라고 하여 우리를 놀라게 했다.  “당신 진짜 멋진 청년이다”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었다. 

 

     오후 5시에 데우랄리에 도착하였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로지(Shangrila Guest House)에 서양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였고, 중국인들도 있었다. 조용히 카드놀이를 하는 서양 사람들과는 달리 중국인들이 어찌나 시끄럽게 떠드는지 저녁을 어떻게 먹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참다못해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주의를 주니까 그제야 다소 조용해진다.

     깎아지른 바위산 밑에 자리한 이곳에서부터는 와이파이(Wifi)가 안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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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랄리의 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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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랄리 로지의 뒷산]

 

     고산증을 본격적으로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어떨지 몰라 혜초여행사에 준 약을 먹었더니 깊이 잠들 수 있었다. 김용안 국장의 코 고는 소리를 처음으로 듣지 못할 정도였다.   
     안나푸르나 지역에는 '데우랄리'라는 지명이 내가 확인한 것만으로도 다섯 군데나 된다. 가이드 라나에 의하면 데우랄리는 ‘언덕’이라는 뜻이란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지형이 높은 곳에는 데우랄리라는 이름이 많이 붙여졌다고 한다.        

 

데우랄리 → ABC → MBC

 

    1월 26일, 다른 날과 다름없이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났다. 마침내 ABC(해발 4,130m)에 오르는 날이다. 아침 식사 후 비아그라 한 알(50mg)을 미리 먹었다. 아무래도 고산증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우랄리에서 8시에 출발하였는데, 전날 내린 눈으로 설국 속을 계속 걸었다. 가파른 산길을 걷기도 하고 계곡을 따라 걷다가 징검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계곡에는 눈 녹은 물이 소리 내서 흐른다. 그 수량과 속도가 한국에서 여름철 장마 때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 만큼이나 풍부하고 빠르다.

    분명 영하의 날씨라 물이 얼어야 할 판인데, 빨리 흐르다 보니 안 어는 듯하다. 대략 해발 3,500m 지점까지는 그런 계곡물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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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속의 계곡과 징검다리]

 

      12시 10분에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해발 3,700m)에 도착하였다. 본래 예정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서 짐정리를 다시 하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늦어져 그냥 곧바로 ABC로 올라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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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ABC로 향하는 도중에 하늘이 열려 안나푸르나 1봉(해발 8,091m)과 마차푸차레(해발 6,993m)가 다 보이는 장관이 펼쳐졌다. 아쉽게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번 등반일정 중 유일하게 두 산 정상을 동시에 다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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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1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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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푸차레]                                    

  

     인증사진을 찍고 출발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고, 이 눈은 그 다음날 낮까지 이어지다 하산으로 해발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순차로 진눈깨비와 비로 변하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 고산증과 싸워가며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노라니 절로 대자연의 일부가 된 느낌을 받았다. 거창한 표현을 빌리자면 물아일체(物我一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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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오르는 길]

 

      오후 1시 50분, 마침내 ABC에 도착하였다. 로지가 많이 있었으나 문을 연 곳은 몇 개 안 된다. 한겨울이라 이용객이 적기 때문이다. 겨울철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의 90%를 차지한다는 한국인을 제외하면 다른 나라 사람을 보기 어려운지라 그럴 만도 하다.

    우리 일행이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로지의 내부 사면 벽에는 온통 한국 등반객들이 두고 간 포스터들이 걸려 있다. 유일한 예외가 중국인들이 하나 걸어놓고 간 것이다. 참으로 극성스런 한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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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입구임을 알리는 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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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발고도가 4,130m나 되다 보니 일행 중 여자 대학원생과 박종혁준이 힘들어한다. 그들은 맛있는 짜장밥 점심도 거르고 식탁에 엎드려 휴식을 취해야 했다. 나는 특별한 증세를 느끼지는 못했으나 그들을 보니 걱정이 되어 비아그라 한 알(50mg)을 또 먹었다.

 

     점심 식사 후 10분 거리의 고 박영석 박영석 대장 추모비를 찾아 술을 한 잔 따르고 왔다. 우리나라, 아니 세계 산악계의 거봉인 고인은 2011년 10월 안나푸르나 1봉의 남벽에 새로운 등반루트(코리안 루트)를 개설하다가 추락하여 실종되었고, 아직도 시신을 못 찾아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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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영석 대장 추모비]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였으니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 오후 2시 30분에 하산을 시작했다. 기온은 계속 내려가고 눈발은 더욱 거세져 산의 윤곽조차 안 보여 걷기가 쉽지 않다. 날이 좋으면 안나푸르나 1봉의 장관을 볼 수 있다는데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이젠 그런 아쉬움에 젖을 계제가 아니다. 눈이 얼마나 더 올지 알 수 없는 일이고 날이 저물면 하산길이 위험해지니 서둘러야 한다. 가이드 라나를 재촉하여 MBC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그렇게 오후 4시에 MBC에 도착하였다.


      고산증, 강행군, 긴장.. 이 모든 것이 몰려온 탓일까,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다. 속도 울렁거리고 어지럽다. 두통도 심하다. 김용안 국장과 박재송 계장이 서둘러 침낭을 펼쳐 주어 그 안에 들어가 2시간 자고 나니 살 것 같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대충 해결하고 비아그라 한 알(50mg)을 더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물티슈로 하는 고양이세수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MBC → 촘롱

 

      1월 27일. 이번 산행 중 가장 긴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다. 온 길을 되돌아 하산하는 여정이긴 하지만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 가장 오래 가장 멀리 걸어야 한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문밖에 나서니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족히 60cm는 되어 보인다. 그러고도 계속 내린다. 날씨가 쾌청하면 안나푸르나 1봉과 마차푸차레를 다 볼 수 있는데, 하늘이 도와주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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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MBC]

 

      미역국으로 아침을 먹으며 가이드 라나에게 길이 눈에 파묻혀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산하느냐고 물었다. 깊은 산속에서 고립될까봐 내 딴에는 걱정이 되어서 물었는데, 라나는 태평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동행한 포터들과 요리사들이 먼저 출발하여 길을 낸다고 한다. 하긴 그들이야 한두 번 겪는 일이겠는가.


     과연 그랬다. 우리는 그들이 앞서 가면 낸 길을 따라 걸으면 되었다. 다만 길옆의 높은 산이 급경사를 이룬 곳은 눈사태를 대비하여 서둘러 통과해야 했다. 라나가 그런 지점도 미리미리 알려주고 주의를 촉구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전날부터 계속 내리는 눈에 천지는 온통 설국이다. 설경으로만 치면 이번 산행 중 가장 멋진 경치다. 함박눈이 아닌 싸락눈(싸래기눈)인데도 워낙 많이 오니까 온 산, 온 나무가 다 눈으로 덮였다. 달빛만 있다면 月白雪白天地白일 터이다.

    눈은 계속 오는데 다니는 사람은 적어 발걸음으로 다져지질 않아 한국의 설산에서 타던 엉덩이썰매는 엄두를 못 낸다. 대신 아이젠과 스패츠의 고마움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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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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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의 눈 덮인 등산로]

 

    그렇게 한참을 내려가는데, 밑에서 한국인들이 올라온다. ABC 가는 길이란다. 눈이 많이 오니 길을 잃지 말고 서둘러 올라가라고 인사를 해 주는 것 외에는 달리 조언할 말이 없다. 라나는 눈이 이렇게 계속 오면 아마도 밑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통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모두들 무사하길...

    고산증으로 아침까지도 남아있던 두통이 고도가 낮아지면서 어느 순간 깨끗이 사라졌다. 인체가 자연에 적응하면서 살기 마련이다.

 

    오후 2시에 밤부(Bamboo. 해발 2,340m)에 도착하여 라면(히말라야에서 먹는 신라면의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이젠 눈이 진눈깨비를 거쳐 비로 변했다. 배낭커버를 씌우고 비옷을 입고 걸어야 했다. 다만 장대비가 아닌 것이 다행이다.

    이번 산행에는 참으로 날씨가 뒷받침을 안 해 준다. 트래킹 내내 햇볕이 따가웠던 지난번과는 영 다르다. 목하 건기인 히말라야에서는 드문 일이다. 수퍼엘리뇨로 인하여 전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자랑스런 한국인을 또 만났다. 젊은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 6학년인 두 아들을 데리고 안나푸르나를 찾은 것이다.  베이스캠프까지 갔다 올 거라고 한다.  그 엄마에 그 아들이다.  그 엄청난 용기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산행을 꼭 무사히 마치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시누와를 지나면서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촘롱까지 갈 길이 먼데.... 박종혁군이 랜턴을 켜고 앞장섰다. ABC 올라갈 때 내려가느라 고생했던 공포의 3,000 계단을 깜깜한데 다시 오르느라 진땀을 흘렸다. 오후 6시 40분, 촘롱에 도착하니 기진맥진이다. 어제 오늘 확실히 강행군이다.

 

    무릎이 많이 아프다. 그러나 당초 걱정했던 것만큼은 아니다. 인천지방법원의 박용석 과장이 박재송 계장 편에 보내온 동전 크기의 무릎패치(유한양행에서 나온 ‘코인 플라스타’)와 이영훈 부장판사가 권하여 구입한 새 무릎보호대(닥터 K)가 효과를 발휘한 덕택이다. 산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게는 둘 다 추천할 만하다.
    이날 저녁이 산속에서의 마지막 저녁이었기에 식사하면서 기념으로 내가 폭탄주를 돌렸다(비주류인 나는 물론 물폭탄이다). 다만 다음날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촘롱 → 카트만두

 

     1월 28일 산행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카트만두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된장국과 김치로 아침을 먹고 촘롱에서 6시에 출발했다. 아직은 주위가 깜깜하여 헤드랜턴을 켜고 하산했다.

     한 시간 만에 지누단다에 도착하였다. 아마 밝은 낮에 걸었으면 지누단다까지 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꽤나 지겨워했을 텐데 깜깜해서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내려가다 보니 그럴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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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의 하산길]

 

     지누단다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밝았지만, 구름이 여전하여 안나푸르나는 안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가 다시 바로 출발하여 8시에 뉴 브리지에 도착했다. 행군속도가 무척 빠르다. 다리 건너 계곡 저편 언덕에 란드룩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산행의 첫 밤을 보낸 5일 전의 일이 벌써 아득하게 느껴진다.


     12시에 시와이에 도착하였다. 나야폴로 가는 짚차가 기다리는 곳이다. 이는 지난번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서서히 산행의 막이 내려가고 있다. 나야폴에 도착하여 일행이 조금씩 갹출한 돈으로 요리사 1인당 20불, 포터 1인당 10불의 특별 팁을 주었다. 궂은 날씨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나야폴에서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이동하여 오후 2시에 혜초여행사의 히말라야 로지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메뉴는 먹음직스럽게 구운 삼겹살. 고기를 멀리하는 나도 군침이 돌아 그것을 먹었다가 배탈이 나는 바람에 뒤늦게 고생했다. 역시 욕심은 금물이다.
     포카라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예티 항공사의 경비행기)가 오후 3시 15분에 드물게도 정시 출발을 하였다.

 

     카트만두는 여전히 공해와 먼지로 숨이 막힌다. Radisson 호텔에 도착하여 6일 만에 샤워를 하니 날아갈 듯하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여 산속에서는 고양이세수도 마다않더니 하산했다고 제일 먼저 더운 물 샤워를 찾는 것이다.

     산속에서는 겉은 깨끗하지 않아도 뱃속은 편했건만, 평지로 내려오니 겉은 깨끗해졌는데 뱃속은 탈이 나 식사를 제대로 못함은 또 무어람.     

 

카트만두 → 서울

 

     1월 29일 모처럼 아침 7시 기상이다. 짐을 싸서 서울로 돌아가는 날이다. 오후 4시 10분 비행기라 시간이 남아 오전에 카트만두 관광을 하였다. 나는 이미 2년 전에 다 본 것들이라 그다지 흥미가 없었지만, 일행과 함께 움직여야 했으므로 따라나섰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 해의 지진으로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안타까움만 더할 뿐이다.


     더 나쁜 것은 카트만두공항에서는 모든 외국 항공사 비행기들에게 급유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도와 사이가 안 좋아져서 기름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KAL도 베트남의 하노이에 기착하여 급유를 한 후 인천공항으로 간다. 그 바람에 직항보다 1시간 30분이 더 걸린다.


     어디서든지 눈만 붙이면 잠에 떨어지는 내가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한 잠도 못 잔 것은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안나푸르나를 졸업했으니 에베레스트도 가야겠다는 생각에 벌써 마음이 들뜬 것일까. 거긴 베이스캠프가 해발 5,500m라는데...  

 

     혹자는 말한다. 전문산악인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며 히말라야를 가냐고.  그렇지만 해발 3,000m를 넘으면서부터 산소 부족으로 고산증 증세에 시달리고, 영하 15도의 추위 속에 침낭에만 의지하여 새우잠을 자면서도,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생각보다는, 이 정도의 고생도 안 하고 어찌 히말라야의 절경을 감상할 것이며, 이러지 않고서야 고생 끝에 찾아오는 짜릿한 성취감을 어찌 맛볼 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 앞선다.

 

     이는 한낱 범부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앞에서 언급한 대로 중3인 박종혁군도, 혼자서 4개월째 배낭여행을 하면서 안나푸르나까지 온 청년도, 네팔 현지인 포터 한 명을 고용하여 단신으로 안나푸르나를 오르는 여대생도, 엄마와 함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찾는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남자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며 산을 오르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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