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멀지 않은 곳(2)

 

 

다시 케냐로

 

  8월 7일, 오전에 아루샤 인근의 헤리티지센터와 샹가(Shanga) 커피농장을 방문한 후 오후에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가 3시 비행기로 케냐의 나이로비로 가게 되어 있는 날이다.
  도노반의 안내로 헤리티지센터(Cultural Heritage)를 먼저 찾았다. 탄자니아의 전통공예품과 초원의 동물그림을 전시하고 또 판매도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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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센터]

 

  다르 에스 살람과 잔지바르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한데, 다만, 보다 전문적인 숙련된 장인들의 솜씨가 잘 잘 발휘된 느낌이다. 특히 초원 위를 무리지어 가는 누우 떼의 그림과 음영으로만 그린 코끼리 가족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공예품점에서 기념품을 몇 가지 사 볼까 했으나 집사람이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하여 그냥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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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우떼 그림과 코끼리 그림]

 

   이어서 샹가(Shanga) 커피농장으로 갔다. 넓은 평원에 자리 잡은 커피농장은 끝이 안 보인다. 제품으로 완성된 갈색 커피만 보다가 막상 커피농장에 가보니 전부 생소하기만 하다. 마치 참나무잎처럼 생긴 커피나무의 잎이며, 하얀 꽃, 빨갛게 익은 커피열매 그 모든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 중의 백미는 빨간 커피열매의 외피를 벗기면 그 안에 하얀 씨앗, 이른바 커피원두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커피 원두는 갈색인 줄 알았는데.... 역시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원두의 품질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원두를 공장에서 얼마나 잘 볶느냐에 따라 커피의 질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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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가 커피농장]

 

   그 농장에서 일하는 인부로 보이는 여인네 둘이 머리에 무언가 짐을 잔뜩 이고 걸어오는 모습이 눈에 띈다. 동남아 커피농장에서 일하는 어린 아이들의 하루 일당이 1불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 저네들은 얼마나 벌까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그들의 수입이라야 분명 우리 기준으로 보면 형편없는 수준일 게 뻔한데, 그걸 물어보면서 괜히 돈 잘 버는 사람처럼 우쭐대는 것으로 그들의 눈에 비칠 것이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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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나무의 꽃과 커피 원두]

 

    샹가 커피농장에는 부설로 수공으로 유리제품을 만드는 공장, 천을 짜는 공장, 탄자니아에서만 나오는 보석인 탄자나이트를 파는 매장 등이 딸려 있다. 그 공장시설의 열악함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커피농장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하여 점심식사를 제공(물론 유료이다)하는 식당의 시설은 그와는 정반대여서 놀라게 한다.
   푸른 잔디 위에 놀인 소파에서 먼저 샴페인잔을 기울이며 목을 축이고 시원한 그늘에서 나름 품위 있는 식사를 제공한다. 예전에 금강산에 갔을 때 보았던 남한 관광객을 위한 호화스런 온천과 북한 주민을 위한 다 쓰러져 가는 온천이 대비되었던 기억이 새롭다.
   지구상의 인류 모두가 함께 못 사는 세상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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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샹가 커피농장의 식당 잔디밭 ]

 

    샹가 커피농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데까지는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어 이제 아루샤의 메루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겨 킬리만자로 공항으로 이동하여 나이로비행 비행기를 타는 일만 남았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이 날 아침 나이로비 공항에 화재가 발생하여 비행기의 이착륙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메루 호텔로 돌아갔다. 서울의 국제심의관 진상훈 판사, 나이로비와 다르 에스 살람의 각 한국대사관, 도노반 사이에 나이로비로 가는 방법에 관하여 계속 연락이 오고 갔다. 도노반은 자기가 탄자니아와 케냐 국경까지 데려다 주고 그 곳에서 케냐에서 여행사를 하는 친구에게 인계하여 나이로비까지 가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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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도노반과 헤어지며]

 

    그러나 수소문 끝에 아루샤에서 여행사를 하시는 박은파씨와 침례교 선교사 겸 의사로 활동하시는 장상호 목사님에게 연락이 되어 결국 두 분이 자동차로 데려다 주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다만, 두 분이 서울의 국제심의관과 연락하는 과정에서 다소간 감정이 상한 탓에 케냐 국경까지만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다가(더 이상 연락을 안 하려고 휴대전화기를 꺼버렸다), 나와 집사람을 태우고 국경까지 가는 동안에 대화하면서 마음을 바꿔 나이로비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기야 그분들이야 아무런 의무가 없는 일을 갑자기 힘들여 할 이유가 없는 터였으므로(자동차로 왕복 10시간 걸린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들의 처분에 맡겨진 신세였던 것이다. 그분들이 정말로 케냐 국경에서 내려 주고 돌아가 버렸으면 어찌 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더구나 아루샤를 출발한 게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이라, 나와 집사람을 나이로비까지 데려다 주고 아루샤로 돌아가면 다음 날 새벽 2-3시가 되는데, 장목사님은 아침 6시에 다르 에스 살람까지 13시간을 운전하여 가는 선교일정이 잡혀 있다고 한다. 두 분께 새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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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파씨, 장상호 목사님과 함께]

 

    나이로비 공항의 갑작스런 화재로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곳을 5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갔지만, 덕분에 아프리카 대륙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평원과 그 뒤로 보이는 지평선, 그러나 물이 없어 황무지인 채로 방치되어 있는 넓디넓은 땅, 어쩌다 물이 발견된 곳이면 그곳에서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사이부족들, 그곳에 과연 문명의 손길은 언제 제대로 뻗쳐질 것인지...
   그런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물질적 풍요만을 염두에 둔 낸 생각일 뿐이지, (비록 도로변 마을의 풍경이 우리의 5-60년대 모습이지만) 그들은 지금 어쩌면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넓은 황무지를 굳이 개간하는 것만이 옳을 일이라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그러나 후에 케냐의 마사이 마라에 있는 마사이마을에 가서 그들의 실생활을 보고 나서는 또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무엇이 행복인가?
 
  드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나 있는 편도 1차선의 아스팔트 도로(고속도로는 아니지만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케냐의 몸바사 항구에서 출발한 화물차들이 이 도로를 따라 내륙으로 화물을 실어 나른다)는 중국이 건설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날림의 부실공사가 심한 듯 곳곳에서 보수중이다.
   그 공사 및 다른 공사를 위하여 중국의 인부들이(우리와는 달리 중국은 해외 건설현장에 자국민 인부를 데려간다) 들어 왔고, 공사가 끝나자 그대로 눌러 앉았는데, 그 숫자가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히 중국인다운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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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의 평원]

 

     아루샤에서 케냐 국경까지는 2시간 걸린다. 운전을 하신 장목사님은 본래 한국에서 산부인과 의사였다고 한다. 그러다 갑자기 뜻한 바 있어 목사 안수를 받고 아프리카로 선교활동을 하러 오신 것이다. 봉고차에 의료장비와 약품, 그리고 텐트 등 야영할 장비를 싣고 사모님과 두 분이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을 상대로 선교 겸 의료봉사를 하러 다니신다고 한다. 물론 힘들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는 일이기에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태석 신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을 벗어나 이 지구 곳곳에 이처럼 희생정신 하나로 봉사하면서 사는 분들이 나가 있는 것이다. 실로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아닐 수 없다.

 

      케냐와 탄자니아 국경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탄자니아를 출국하기 위해 열 손가락 지문을 찍어야 했고, 다시 케냐에 입국하기 위하서 다시 똑같은 일을 해야 했다. 입국심사에서 지문을 찍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출국심사에서도 지문을 찍는 것은 뭐람?
   이는 늘 테러공포에 신경을 쓰는 미국에서조차도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양쪽 국경의 먼지가 풀풀 나는 도로에는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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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 케냐의 국경지대]

 

    탄자니아에 비하면 케냐는 확실히 잘 사는 편이다. 국민 1인당 GDP가 967달러이므로 탄자니아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그래서인지 도로에 자동차도 훨씬 붐빈다. 나이로비가 가까워질수록 악명 높은 정체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와중에 총을 든 경찰이 차를 세우란다. 앞에 가던 차가 신고를 했는데, 자기 차를 추월하면서 마치 들이받을 듯이 위협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 신고했다는 차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억지가 있나. 그러나 그것을 억지라고 따져보아야 바보짓이다. 그 경찰관이 바라는 것은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박은파씨가 다소간의 돈을 주자 예상대로 해결이 되었다. 케냐에서 외국인이 운전하면서 겪는 흔한 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이는 이승휘씨가 지은 “케냐의 유혹”이라는 책에서도 읽은 기억이 있는데,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것이다.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나이로비의 사파리파크 호텔에 도착하였다. 한국대사관의 김찬우 대사님과 허영 서기관님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의 화재가 엉뚱하게 여러 사람을 힘들게 한 것이다. 박은파씨와 장목사님은 저녁식사를 간단히 하고 아루샤로 돌아갔다.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

 

   8월 8일, 본래의 예정대로라면 나이로비공항에서 오후 1시 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모리셔스로 가야 한다. 그 다음날 모리셔스 대법원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허영서기관님과 사랑아프리카 여행사의 김충학 사장님이 아침 일찍 호텔로 찾아와 어제 발생한 공항의 화재로 비행기가 안 뜬다고 한다. 모리셔스항공이 모리셔스에서 나이로비로 승객을 태우고 가게 되어 있는데, 모리셔스에서 비행기가 아예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리셔스는 섬나라이니 자동차로 갈 수도 없다. 결국 한국대사관(모리셔스에는 한국대사관이 상주하지 않고 케냐의 한국대사관이 겸임한다)에서 모리셔스에 사정을 설명하고 방문계획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모리셔스 방문을 취소한 후 대체일정을 의논한 끝에 허영 서기관님이 추천하는 대로 나이로비 북부에 있는 케냐 국립공원들을 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당초 예정에 없던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 나이바샤 국립공원, 나쿠루 국립공원을 차례로 찾아가게 되었다. 안내는 사랑아프리카 여행사의 알렉스가 맡았다. 생각지도 않은 여행이 오히려 더 알차고 재미있다고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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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도 전날 탄자니아에서 온 길과 마찬가지로 편도 1차선의 포장도로이고, 인도는 물론 비포장이다. 길의 양옆으로는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지는가하면 동물들이 뛰노는 비옥한 초지가 이어지기도 한다. 기후가 좋은 곳은 1년에 옥수수를 세 번 수확하는 곳도 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부족인 키쿠유(Kikuyu)족이 사는 곳도 지난다. 작은 도시들에서는 난장이 펼쳐진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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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의 평원]

 

   전체적으로 탄자니아의 마을들보다는 한결 윤택해 보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곳곳에 학교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케냐의 장래가 그만큼 밝다는 의미이다. 한반도 면적의 2.7배에 달하는 국토에 인구가 4,270만 명이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기독교 인구가 70%(개신교 40%, 천주교 30%)이고, 2010년 신헌법 제정 이후 삼권이 분립되고 정치가 안정된 데다, 매년 4.8% 정도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더하여 교육열이 높다면 발전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케냐에 머무는 동안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 위를 가방을 메고 걸어 통학하는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5-60년대에 십리 이십리 길을 걸어 열심히 학교를 다니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을 가는 길에 적도를 지나게 된다. 나뉴키(Nanyuki)라는 곳으로 해발 1,947m 되는 곳이니 한라산 정상 쯤 되는 곳이다. 이곳 길옆에 적도임을 알리는 커다란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남미의 에쿠아도르는 아예 적도를 국가이름으로 짓기도 했지만, 케냐에서는 적도가 지나는 곳마다 입간판을 크게 세워 놓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삼팔교(북위 38도가 지나는 곳에 세워진 다리들) 비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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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바로 이곳에서 소위 ‘적도박사’라는 사람들이 봉이 김선달식 적도장사를 하고 있다.   깔대기 구멍을 손으로 막고 물을 담아 성냥을 띄운 다음 손을 떼면 적도에서는 물이 그냥 흘러내리고 깔대기의 성냥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다.  그런데 북쪽으로 20m 가서 같은 실험을 하면 성냥개비가 시계바늘과 반대 방향으로 돌고, 물도 꽈배기모양으로 흘러내린다.   그리고 남쪽으로 20m 가서 같은 실험을 하면 이번에는 성냥개비가 시계바늘과 같은 방향으로 돌고 물줄기의 방향도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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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에서의 성냥개비 돌리기]

 

    이 실험에 동참하고 나면 적도통과증명서를 발급해 준다. 대가는 1인당 5달러이다. 이동식 천막집 같은 곳에서 발급해 주는 증명서이지만, 그냥 애교로 보아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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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증명서 발급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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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증명서] 

                                         

    나이로비에서 약 4시간 걸려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케냐산은 해발 5,199m로 아프리카에서 킬리만자로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케냐와 탄자니아를 모두 식민지로 두고 있던 영국이 두 나라를 분할하면서 킬리만자로는 탄자니아에 케냐산은 케냐에 나누어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949년 국립공원으로 정해진 이 산의 중턱에 페어몬트 마운트 케냐 사파리 클럽(Fairmont Mount Kenya Safari Club)이 있다. 안에 호텔이 있어, 헤밍웨이나 처칠이 속세의 관심을 떠나 있고 싶을 때 찾아와 머물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적하고 쾌적한 곳이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니 마침 공작새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멀리서 온 손님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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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호텔의 공작새]

 

   이 사파리 클럽에는 수영장도 있고, 골프장, 승마장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이 멋진 호텔에 묵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근의 침팬지 보존구역을 가보는 데 있는 까닭에 짐만 방에 갖다 두고 서둘러 다시 차를 타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호텔에서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한다.

 

    “OLPEJETA CONSERVANCY” 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침팬지 보존지구 입구를 들어서면 여기서도 제일 먼저 광활한 대지가 객을 맞이한다. 정말이지 아프리카는 어디를 가든지 아득히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이 늘 기다리고 있다.
   김제평야나 가야 겨우 지평선을 볼 수 있었던 내 눈에는 그 지평선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이 다가온다. ‘저 넓은 땅들이 우리에게도 있었더라면....’ 또다시 느끼는 부러움과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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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보존지구의 평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침팬지 보존구역(보존지구 안에 다시 보존구역이 설정되어 있다)의 문을 닫을 참이었는데, 가이드 알렉스의 활약 덕택에 개장시간을 연장하여 침팬지를 볼 수 있었다.
   침팬지는 이제는 아프리카에서도 멸종 위기에 처하여 이처럼 특별히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안내인이 사탕수수 줄기를 던져 주니까 개울 건너 숲속에서 침팬지들이 몰려 나왔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사탕수수라고 한다. 침팬지들이 걷는 모습,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인류의 원시적 모습이 아마도 저들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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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팬지]


   당초에는 침팬지만 보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왕 입장료 내고 들어왔으니 다른 동물들 구경도 하고 가는 게 어떠냐는 알렉스의 제안에 그러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단순히 침팬지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슴, 물소, 원숭이, 타조 등 각종 새들이 자유롭게 노는 일종의 사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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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물소 ]

 

 

   이리저리 차를 몰며 동물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소나기가 내렸다. 겨울의 건기에는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 바람에 차가 구렁텅이에 빠져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가 그치자 하늘에 쌍무지개가 떠 멋진 광경을 연출했다.  호텔에서는 공작새가 멀리서 온 손님을 환영하더니 이곳에서는 하늘이 코리아의 진객을 알아보는 모양이라고 자화자찬을 했다.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쌍무지개를 아프리카에 와서 그것도 비가 안 오는 건기에 보았으니,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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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초원의 쌍무지개]

 

  그 무지개를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알렉스가 또 새로운 제안을 했다. 볼수록 훌륭한 가이드이다. 호텔 근처에 수도원이 있는데, 그곳에 가면 멋진 전망소(Viewpoint)가 있다는 것이다. 불감청인정 고소원이라 마다할 이유가 없어 그리로 갔다. 베네딕트 수도원이었는데, 알렉스가 아는 신부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과문한 탓에 흑인 신부님의 실제 모습은 이 때 처음 보았다.  멀리서 온 손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신부님이 수도원 안 구석구석을 친절하게 일일이 소개하여 주는 덕에 수도원 구경은 잘했으나 그 바람에 그만 날이 어두워져 정작 멋진 전망소는 근처도 가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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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트 수도원]

 

    페어몬트 마운트 케냐 사파리클럽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진 시각이라 바로 호텔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 클럽 자체가 그렇기도 하지만, 그에 어울리게 식당은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식탁에는 촛불도 켜 놓는다. 음식을 주문하면 케냐의 식당답게 ‘뽈레뽈레’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식당 안은 물론 관광객으로 붐볐는데, 유럽인, 인도인이 많았고, 돈이 많아 보이는 흑인들도 있었다. 유럽인 중에는 귀부인처럼 한껏 멋을 내서 옷을 입은 할머니들도 눈에 띄었다. 말 그대로 휴양 차 온 사람들 같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여행을 온 흑인아이들은 식당에서 매우 얌전한 반면, 백인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를 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전체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본 광경은 그랬다.

 

   호텔방에는 벽난로가 있어 장작을 지피고 잔다. 비록 적도가 통과하는 곳이지만, 해발 2,135미터의 산속에 있는 호텔인데다, 지금 케냐는 겨울이라 밤이 되면 쌀쌀하다. 뜨거운 물주머니(Hot Bag)도 주문하여 끌어안고 자야 할 정도이다. 케냐의 겨울날씨를 한국에 비유하면, 낮은 한국의 5월 날씨이고, 밤은 한국의 3월초 날씨이다. 심한 일교차에 집사람이 감기 걸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침에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사파리클럽의 정원을 산책하였는데, 어제 보지 못한 멋진 풍경들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겨울이건만 잔디는 마치 물감을 칠한 듯 푸르고, 그 위에 그림같이 지은 2층짜리 객실들, 각종 새들이 노니는 넓은 정원에는 잘 손질된 열대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수영장 너머로 케냐산의 정상이 어렴풋이 보인다. 헤밍웨이나 처칠이 쉬고 싶으면 이곳을 찾았다는 이유를 알 만하다. 이번 아프리카 여행 기간 동안에 머문 숙소 중 가장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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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호텔의 전경과 정원]

 

나이바샤(Naivasha) 국립공원

 

  8월 9일, 마운틴 케냐 국립공원에서 나이바샤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이동시간은 4시간 정도 걸린다.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연달아 지난다. 역시 광활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이 길은 물론 편도 1차선이다.
  이동 중에 마라톤 연습하는 선수를 보았다. 기본적으로 고지대에 사는데다 교통편이 불편하여 걷고 뛰는 것이 일상화된 이들에게 어찌 보면 마라톤은 그리 힘든 운동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전국에 걸쳐 마라톤 열풍이 대단하다고 한다. 세계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에서 케냐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쓰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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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연습 중의 케냐인]

 

     현재 세계 최고기록은 케냐의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Wilson Kipsang Kiprotich)가 2시간 3분 23초라고 한다(2013년 베를린 마라톤대회).   2위 역시 케냐 선수의 몫이다. 패트릭 마카우(Patrick Makau)가 세운 2시간 03분 38초(2011년 베를린 마라톤대회).  이쯤 되면 마라톤은 젊은 케냐인들에게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가져다 주는 운동이 아닐까(국내 최고기록은 이봉주가 2000년 동경 마라톤 대회에서 세운 2시간 7분 20초이다).  그러고 보면 황영조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나이바샤 가는 길에 한 캠프촌(Thomson Falls Lodge)에 들렀다. 폭포가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폭포도 폭포지만 키쿠유족 원주민 복장을 하고 춤을 추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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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톰슨 폭포와 키쿠유족 원주민 복장]

 

     나이바샤 국립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2시. 이곳은 숙소가 캠프촌의 텐트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배(5-8인승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로 나갔다. 이 국립공원은 나이바샤 호수 일대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유는 이 호수에 하마가 살고,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이 걸어서 동물을 구경할 수 있는 사파리이기 때문이다. 하마들은 낮에는 호숫가의 물속에서 놀다가 밤이 되면 캠프촌으로 올라온다. 풀을 뜯어먹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아침에 나가 보면 캠프촌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 흔적들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려고 밤에 잠을 안 자고 기다리는 관광객들도 있다는데, 나와 집사람은 피곤해서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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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바샤 캠프촌의 텐트 ]

 

   하마를 보려고 보트를 타고 가까이 접근했는데, 머리와 등 부분만 수면 위로 내 놓아서 전체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마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본 것은 나중에 마사이마라에 가서이다.      
   나이바샤 호수는 말이 호수이지 마치 바다처럼 넓다. 수평선이 보일 정도이다. 최고 수심은 60m이다. 호수 속이나 물가에 자라는 나무들에는 저어새가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 새들이 물고기를 잡으려고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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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바샤 호수의 하마와 보트]

 

 나이바샤 호수의 백미는 바로 호수 한 복판에 있는 초승달 섬(Crescent Island)이다. 생긴 모양이 초승달 같아서 그렇게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배에서 내려 이 섬에 상륙하면 각종 동물들이 반긴다. 기린, 사슴, 들소, 원숭이, 누우, 얼룩말 등 초식동물들의 낙원이다. 사자나 표범 같은 육식동물은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본래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찍기 위해 육지에서 이곳으로 동물을 실어 왔는데, 그것들이 번식하여 지금과 같은 초식동물의 낙원이 되었다고 한다. 물가에는 그물을 쳐 놓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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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바샤 초승달 섬의 사파리]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손님은 중국인이 제일 많다. 이번 여행 중 느낀 것 중 하나가 아프리카 곳곳에 정말로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는 것이다. 15억 인구가 다 잘 살게 되는 날, 전 세계의 관광지는 중국인들로 덮이지 않을까. 캠프촌인 만큼 식당 시설은 초라하기 짝이 없고, 음식이 너무 짜서 괴롭다.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로만 먹고 숟가락을 놓았다.

 

   숙소인 텐트에는 모기장이 둘러져 있는 1인용 침대가 두 개 있고, 샤워시설도 되어 있는데, 더운 물이 나오려면 5분 걸린다. 밤이 몹시 추운지라 담요를 하나 더 달라고 하여 덮고 뜨거운 물주머니(Hot Bag)를 끌어안고 잤다.
   탄자니아도 그렇고 케냐도 그런데, 적도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어디를 가나 냉방시설은 되어 있어도 난방시설은 안 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기후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 복장을 보면 반팔 입은 사람과 두꺼운 털스웨터 입은 사람이 공존한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은 많다. 그래서 볼거리도 많지만.

 

나쿠루(Nakuru) 국립공원

 

   8월 10일, 나이바샤 국립공원에서 서쪽의 나쿠루 국립공원(Lake Nakuru National Park)으로 이동했다. 자동차로 1시간 20분 걸린다. 나쿠루는 인구가 약 50만 명 정도 되는 제법 큰 도시이다. 시내에는 대형 쇼핑몰도 있다.
   이 도시의 인근에도 나이바샤처럼 큰 호수가 있고, 그 주변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물론 야생동물이 많아 이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호숫가에 홍학(Flamingo)이 떼를 지어 살고 있어 그것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몰려온다. 

 

   나쿠루 국립공원 안의 숙소는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산 위 숲속에 지은 통나무집(Lake Nakur Lodge)이다. 공원 입구에서 비포장길로 30여 분 올라가야 한다. 이곳에도 모기장이 쳐진 침대가 있고, 물론 난방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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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쿠루의 통나무집]

 

   20달러를 미리 맡기면 샤워 후 멀리를 말리는 헤어드라이어를 빌려 준다. 대신 반납하면 20달러를 그대로 환불해 준다.   텐트를 쳐 놓은 캠프촌인 나이바샤와는 달리 번듯한 통나무집으로 지은 숙박시설인지라 규모도 제법 컸고, 식당도 번듯했다. 역시 많은 중국인들로 붐볐다. 식당 밖이 바로 초원인데, 얼룩말과 원숭이들이 평화롭게 뛰놀고 있다.  짐을 풀고 공원에서 차를 타고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나쿠루 호수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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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쿠루의 전망대]

 

    알렉스의 말이 그 호수를 둘러싼 초원지대에 각종 동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사자, 하이에나들도 산다고 한다.   그 동물들을 보러 차를 타고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초원지대와 호숫가에 동물들이 천지이다. 사슴, 원숭이, 아프리카 물소(African Buffalo), 얼룩말이 곳곳에서 뛰어논다. 원숭이들은 툭하면 자동차길을 막고 이동하여 차의 진행을 방해한다.  
  케냐에서 우스개소리로 ‘자동차로 사람을 치면 큰 돈 들이지 않고 해결이 되지만, 동물을 치어 죽이면 엄청난 벌금을 물거나 심하면 교도소에 간다’고 한다. 그만큼 동물들이 대접을 받고 살기 때문에 이들이 길을 막으면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

 

   사자 몇 마리가 나무 위에 올라가 널브러져서 잠을 자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마침 길가의 초원에서 하이에나 한 마리가 동물을 입에다 물고 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하이에나가 입에 문 것은 허리부위에서 몸통이 두 동강 난 동물인데, 그 크기가 거의 하이에나만하다.   
   하이에나는 보통 사자나 치타 같은 다른 맹수들이 사냥해 놓은 죽은 동물을 훔쳐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직접 사냥을 매우 잘한다고 한다. 나도 나중에 마사이마라에 갔을 때 사슴을 쫓아가는 하이에나를 직접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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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이곳에서 본 동물 중에 특이한 것 중 하나는 흰 얼굴 흰 꼬리의 원숭이이다. 이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과는 달리 무리를 짓지 않고 혼자 나무 위에서 나뭇잎을 뜯어먹고 산다. 머리와 등, 턱밑, 길고 꼬리의 일부는 검정색이다. 한 다미로 흑백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관객을 의식한 듯 정면 포즈를 취해 주어 간신히 사진기에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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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얼굴 원숭이]

 

  사자, 얼룩말, 원숭이, 사슴, 물소는 마사이마라에 가면 실컷 볼 테니 이곳에서나 볼 수 있는 홍학을 보러 가자고 호숫가로 차를 몰았으나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6시가 넘어 날도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는데....

 

   그 때 찻길에서 3-400 미터 떨어진 호숫가에 붉은 기운이 도는 새들이 운집하여 있는 것이 갑자기 보였다. 카메라의 18배 줌 기능을 사용하여 사진을 찍어보니 영락없는 홍학떼이다.   서울을 떠나올 때 비서들이 마련해 준 망원경을 통나무집에 두고 온 것이 너무 아쉽다. 망원경은 마사이마라에 가서나 쓸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단견이었다. 홍학떼 앞에 놀고 있는 사슴들이 안 어울릴 듯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부조화의 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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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쿠루 호수의 홍학]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식단은 여전히 입맛에 안 맞는다. 그래도 긴 여행에 영양보충이 필요해 이것저것으로 억지로 배를 채워야 했다. 해외여행만 나오면 집에서보다 오히려 더 잘 먹는 집사람의 식성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 때 웬 영국인 노부부가 아는 체하며 인사를 건네 온다. 킬리만자로 등산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자세히 보니 킬리만자로 등산길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분들이다. 여기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자기들은 영국 런던에서 케냐 항공(Air Kenya) 직항편을 타고 9시간 걸려 왔는데, 우리는 어떻게 왔냐고 해서 우리는 서울에서 대한항공 직항편으로 13시간 걸려 왔다고 하자 놀란다. 서울에서 나이로비까지 대한항공 직항편이 다닌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동경이나 상해에서도 그런 직항편이 없는데... 
   마침 이분들은 홍학이 비상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그 사진과 내가 찍은 하이에나 사진을 맞바꿔 보았다. 해외여행지에서 맛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