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령님께 고합니다(우암산,상당산성)

2010.02.16 12:42

범의거사 조회 수:19501


                     산신령님께 고합니다  
                                     
    청주에 부임한 지도 한 달이 넘어가고, 봄이 오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던 3월 14일, 청주지방법원 구룡산악회의 시산제를 겸한 정기산행길에 나섰다. 목적지는 우암산(牛岩山)과 상당산성(上黨山城).
    아침 8시에 법원에 20명이 넘는 산악인들이 모였는데, 주중에 그리도 따뜻했던 날씨가 꽤나 쌀쌀하다. 하필이면 이 날 꽃샘추위가 몰려 온 것이다. 영하의 날씨도 문제지만 바람이 제법 매섭다.

    우암산(牛岩山)

    산남동의 법원을 출발하여 30여 분만에 청주대학교 뒤 삼일공원(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개별적으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과 합치니 식구가 모두 26명이나 되었다.

    삼일공원은 우암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으로,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충청북도 출신 6명(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석구, 신홍식)의 동상이 모셔져 있는 작은 공원이다.

  

    간단히 기념촬영을 하고, 8시 35분 산행을 시작하였다. 우암산은 청주의 진산(鎭山)이건만, 산의 높이(353m. 그런데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보니338m라고 소개하고 있는 곳이 많아 헷갈린다)가 말해 주듯 높은 산이 아니기 때문에 산에 가면 흔히 만나는 깔딱고개가 없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어서 와우산(臥牛山)으로도 불릴 만큼 경사가 완만하고, 그나마 오르막경사가 나타나면 대개 계단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등산로는 그야말로 산책길이나 다름없다. 이만하면 청주시민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겠다.
   고향이 청주인 황성주 수석부장은 어릴 적에 학교가 끝나면 의례히 이곳으로 와서 놀았다고 한다. 와우산 말고도 예로부터 대모산(大母山)이나 모암산(母岩山) 등으로도 불렸다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 품안 같은 아늑한 분위기에 환하게 웃는 부처님상인 황 수석부장이 자신도 모르게 끌렸던 모양이다.  

    전날 비가 내렸음에도 산길에는 먼지가 풀풀 날린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봄가뭄이 심한 탓이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비가 많이 올 것도 아니지만, 가뭄으로 식수가 달리는 지역이 많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접하는지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



   20분 정도 산을 오르자 저 아래 먼 발치로 청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건물이 즐비한 시가지 뒤로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앞으로 청주가 더 발전하더라도 인구가 300만 명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걱정할 게 없을 듯하다. “저쪽은 조치원, 저쪽은 오창, 저쪽은 진천....” 청주가 고향인 사람들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서울 촌놈에게 일일이 설명해 준다. 아파트의 색깔이 대부분 흰 색이어서 그런가, “맑은 고을” 청주는 한 마디로 “하얀 도시”이다.

   황 수석부장으로부터 어릴 적에 우암산에서 놀던 이야기와 청주의 지형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거대한 철탑이 길을 막는다. 방송국의 송신탑이다. 크기가 파리에서 본 에펠탑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우암산에 있는 가장 큰 인공조형물일 것 같다. 이 탑 덕분에 편하게 텔레비전방송을 시청할 수 있어 좋지만, 꼭 이렇게까지 거대하여야 하나 싶다. 시내에 있는 방송국 건물 옥상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청주시민의 쉼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워 있던 소가 벌떡 일어날 것만 같다.          

     우암산 정상을 300m 남겨 둔 삼거리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온 거리가 1,500m임과 갈 길이 300m임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주위의 공터가 제법 널찍한 데다 주위에 운동기구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산을 올라온 인근주민들의 휴식공간 겸 체력단련장인 모양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에 3기의 산소가 있다는 것이다. 번듯한 집안의 산소들인지 저마다 비석까지 갖추고 있다. 처음엔 누가 이런 번다한 곳에까지 묘를 썼나 하면서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묘를 처음 설치할 때야 지금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알지도 못하면서 흉볼 일이 아니었다.
    명당을 찾아 조상의 산소자리를 잡는 것이야 우리나라 전래의 인지상정 아니던가.    

    9시 20분, 우암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이 정상이며 그 높이가 353m임을 알리는 까만 대리석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시산제를 지내기 위하여 산악회 총무인 조성철계장이 주과포(酒果脯) 등 제물을 꺼내 진설하는데, 뜻밖에도 돼지머리가 등장하였다. “아니 저걸 언제 장만했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산에 다니면서 시산제를 여러 번 지냈지만, 돼지머리를 통째로 제물로 올린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다. 산악회 총무가 품에서 주섬주섬 꺼낸 것은 제문(祭文)! 어이쿠, 제문까지 지어 왔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그야말로 너무나 완벽한 시산제이다. 청부지방법원의 서예가인 박희복씨가 붓글씨로 멋들어지게 쓴 제문은 문장도 명문이다.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단기 사천삼백사십이년 양력 삼월십사일 청주법원 구룡산악회 회장 연운희는 회원 모두와 함께 우암산 기슭에서 주과포를 진설하고 산신령님께 삼가 고하나이다. 우리 청주법원 구룡산악회 회원 일동은 자랑스러운 조국강산의 여러 산곡을 두루 탐방하여 심신을 연마하려 합니다. 바라옵건대, 금년에도 우리 산악회를 굽어살피시어 회원 모두에게 안전한 산행이 계속되게 하시고, 산과 골짜기를 넘나드는 우리의 다리가 지치지 않도록 힘을 주시고, 특히 우리 법원 산악회가 날로 번창하도록 끊임없는 가호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나이다. 또한 우리 청주법원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화목과 아울러 법원의 안녕과 무궁한 발전을 비나이다. 이제 우리 청주법원 구룡산악회 회원 일동은 보배로운 조국강산을 알뜰히 가꾸어 자손만대에 물려줄 것을 다짐하며 우암산 아래 산기슭에서 신령님께 이 잔을 올리오니, 산신령이시여 정성을 대례로 즐거이 받아 거두소서. 단군기원 4342년 양력 3월 14일 청주법원 구룡산악회 회원 일동”      

     시산제를 마치고 제물들을 나누어 먹고 마시는데, 말랑말랑한 인절미가 그 중 백미였다. 기온이 자꾸 내려가는지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졌지만, 멋진 시산제를 지낸 덕분에 마음은 한결 가볍고 흐뭇하다. 앞으로 산신령의 가호 아래 올 한 해의 산행을 잘할 것 같다.  

     시산제를 지내느라 우암산 정상에서 30여 분을 보낸 후 상당산성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우암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돼지머리 올려놓고 시산제 지낸 것)에는 우암산 정상에서 상당산성까지의 거리가 2km라고 되어 있다. 상당산도 그다지 높지 않으니 이 정도 거리라면 금방 갈 것 같다.
     상당산은 우암산의 동쪽에 있는지라, 이제까지 올라온 쪽과는 반대방향으로 안부(鞍部)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오른쪽 아래로 청주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에 볼거리는 그다지 없다는 게 청주 출신 산악회원들의 말이다. 그래도 언제고 한번 가보리라....

   상당산성(上黨山城)  

     청주박물관을 오른쪽에 두고 우암산의 능선길을 내려가다 보면 좌우의 산림이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왼쪽(북쪽)은 잡목들이 우거진 데 비하여 오른쪽(남쪽)은 소나무숲이 울창하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은 안부(鞍部)(이 밑으로 터널이 뚫려 청주외곽순환도로가 지나간다)를 지나 상당산을 올라가면서도 한동안 이어진다.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양쪽이 구별되는데, 초행길의 ‘서울 촌자(村者)’가 그 이유를 어찌 알겠는가. 이유를 모르기는 청주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긴 하였지만....

     우암산 정상을 떠난 지 30여 분, 마침 공터가 나오고 긴 의자도 있어 쉬어가자고 발을 멈추었다. 그 순간 그곳에 있는 이정표를 보고 입이 벌어졌다. 이제까지 온 거리가 1.2km이고 앞으로 상당산성까지 남은 거리는 3km이란다. 합하면 4.2km! 우암산 정상에 있는 표지석에는 우암산에서 상당산성까지 분명 2km라고 되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2km와 4.2km! 아무리 산길이라고 하지만 이건 정말 너무한다. 청주시민의 대표적인 쉼터에 있는 이정표가 이래서야...영 입맛이 쓰다.
  
    그런데 이 때 그 쓴 입맛을 잊게 해주는 사태가 벌어졌으니... 여판사인 박현이 판사가 배낭에서 마실 물을 꺼내는데, 맙소사 물병이 세 개나 들어 있다. 박현이 판사가 남자판사들인 황성광 판사와 조현락 판사의 물과 간식거리까지 전부 짊어지고 온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모두 의아해했는데, 황성광 판사의 백구두를 본 순간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터지는 웃음소리!
     황 판사와 조 판사는 청주법원의 F4에 속한다. F4답게 산에 오면서 빈 손에 백구두를 신고 나타난 것도 모자라, 산행 중에 먹으라고 총무가 나눠 준 물과 간식거리를 박 판사의 배낭에 넣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배낭은 박 판사가 지고 가게 하고!
     21세기 판 “기생오라비”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꽃보다 남자”인지 뭔지 하는 TV연속극, 당장 폐지하여야지 원....

     중간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쉬엄쉬엄 걷다 보니 어느덧 상당산성이다. 시계바늘은 11시 40분을 가리키고 있다.
     상당산성은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상당산(上黨山. 해발 491m) 위에 쌓은 석성으로서, 1970. 10. 1.  사적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산이나 성의 이름은 백제시대의 상당현(청주의 옛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며, 본래는 토성이었는데(백제인이 쌓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 숙종 42년(1716)에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산성의 둘레는 4.4㎞, 성벽의 높이는 3-5m, 성 안의 면적 12.6ha이다. 성곽의 모습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에 토사(土砂)를 쌓아올린 형태이다. 동쪽에 진동문(鎭東門), 서쪽에 미호문(弭虎門), 남쪽에 공남문(控南門) 등 3개의 성문이 있다. 북쪽은 산세가 매우 급하여 자연지세만으로도 방비에 큰 문제가 없어 당초부터 문을 내지 않았고, 성벽도 다른 쪽에 비하여 낮다.  

    우암산 쪽에서 접근하였는지라 성의 서쪽으로 진입하였는데, 마침 엿을 파는 노점이 있어 입이 즐거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던가. 성곽은 돌로 되어 있지만 그 위의 길은 흙길이다. 그 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상당산성의 서문인 미호문(弭虎門)이 나온다.


    이곳에 올라서면 우암산으로 가려진 중심부를 제외한 청주시의 남부와 북부, 미호천, 나아가 멀리 증평평야까지 보인다. 성의 동쪽문인 진동문(鎭東門)에서는 주위에 산만 보이는 것과 대비된다. 게다가 서쪽은 성벽의 높이가 가장 높고 잘 다듬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산성은 동쪽(신라쪽)에 대비한 축성이 아니라, 오히려 서쪽(백제쪽)에 대비한 축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그렇다면 당초 백제인이 이 성을 쌓았다는 설은 신빙성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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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호문에 처음 도착하여서는 현판을 읽지 못하여 다들 궁금해 하였다. 나중에 집에 와서 옥편을 찾아보고서야 ‘미호문’임을 알았다. 그런데 미호문(弭虎門)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궁금증을 풀려고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건축물의 이름을 지을 때) 통상 동쪽에는 청용,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라는 상징적 동물을 인용하여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마도 “虎”자를 사용한 것 같으나.... “弭“자는 “활고자 미”자다. 한자를 풀어보면 활의 귀 부분으로서 시위를 묶는 곳을 말한다. 아무래도 지형의 형태가 그렇기 때문에 “弭”자를 사용하지 않았나 싶다. 이곳 서문에서 남쪽의 성벽을 바라보노라면 성벽의 형태가 마치 활처럼 생긴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옛 조상들은 지명을 만들 때 어떤 사물의 형태를 이용하여 만든 흔적이 많다. 와우산이라는 지명도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이라하여 와우산이라고 한 것을 보면, 청주라는 지역이 늘 부지런하고 농사짓기 좋은 땅이기 때문에 부(富)와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지명이 유래되었다 할 경우 산성의 경우에도 무(武)와 관련된 것을 활용하여 지명을 만들지 않았었나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미호문 앞에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세워 두면 산성이 어떻게 되기라도 하나. 상당산성을 관리하는 청주시청의 무신경이라니... 하긴 2km가 4.2km로 둔갑하는 마술을 부리는 판국인데 무엇을 기대하랴.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따로 없다.

     미호문을 지나 북쪽 성벽을 따라 가자니 바람이 매서워진다. 우리나라에서 추운 계절에 불어오는 북서풍은 언제나 고난의 근원이다. 산세가 가파른데다 방향마저 북쪽이니 그 북서풍에 속절없이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저 멀리 진천평야가 보이고 그 뒤로 두타산도 어슴프레 눈에 들어온다. 추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동쪽 성곽길로 들어서자 신기하리만치 바람이 잦아들었다.    

     상당산성의 동쪽은 산등성을 따라 성벽을 쌓았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산의 표고가 낮아진다. 성의 동쪽문인 진동문(鎭東門)에 올라서면 문 바로 앞의 손바닥 만한 밭뙈기를 제외하면 온통 산밖에 안 보인다. 서문인 미호문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진동문 역시 전후좌우 어디를 둘러보아도 안내판을 찾을 수 없다. 관할관청의 무신경도 이쯤 되면 일관성이 있어 좋다고 칭찬하여야 하는 건가.



     진동문에서 더 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성곽길을 벗어나 성안의 마을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 관광지의 공통메뉴인 토종닭, 도토리묵을 파는 상가가 즐비하다. 그 상가 가운데에 큰 연못이 있는데, 최근에 준설을 한 듯하다. 청주시내에서 이곳까지 시내버스가 다닌다.    
     우리 일행을 점심식사 장소로 데려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던 마이크로버스에 오른 시각은 12시 30분. 상당산성의 성곽을 전부 돈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암산과 상당산성을 합쳐 4시간이 채 안 걸린 산행이 된 셈이다.
     점심식사 장소인 “산들바람” 식당이 성 밖에 있는지라 상당산성에 있는 3개의 성문 중 가장 볼 만하다는 공남문(控南門)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산들바람"의 메뉴가 특이하다. 두부전골과 햄버거스테이크를 함께 먹을 수 있다. 이게 어울리는 조합인가? 그래도 맛은 괜찮다. 百聞이 不如一食!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