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대한민국 산(용봉산)

2010.02.16 12:32

범의거사 조회 수:9947


                모두 대한민국 산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판소리 ‘사철가’의 첫 대목이다. 그렇다. 가는 듯 마는 듯 하던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고 이 산 저 산에 꽃이 피는 봄이 되었다. 그 봄이 또 언제 가버릴지 몰라, 가기 전에 만끽하려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아니 꽃이 피는 산의 유혹에 빠져든 것인지도 모른다.
 

 

   2007. 4. 7.(토)의 일이다.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용봉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고작 381m에 불과하다. 비록 월간 ‘山’(조선일보사 발행)에 가볼 만한 산으로 소개된 것을 보았고,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가볼 만한 곳이라는 소리를 듣긴 하였지만, 
    법원도서관 산악회를 따라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동안 솔직히 과연 2시간이 넘게 차를 타고 갈 만한 곳일지 의문이 들었다.

   아침 8시 20분에 버스로 서초동을 출발하여 용봉초등학교(충남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앞 주차장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다. 벌써 서너 대의 관광버스가 등산객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학교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하려니 웬 사람이 표를 사오란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매표소가 있다. 입장료가 무려 1,000원이나 한다. 국립공원이 아님은 물론이거니와 도립공원이나 군립공원이라는 푯말도 없는데 누가 받는 것이지?

   나중에 집에 돌아와 네이버 검색을 통해 알아보니 용봉산은 1973년에 가야산(678m)·덕숭산(495m) 등과 함께 산 일대가 충청남도의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국립공원 입장료는 2007. 1. 1.부터 폐지되었건만 도립공원 입장료는 여전히 징수하는 모양이다.

   등산을 시작한 후 10분 정도 지났을까 미처 땀도 나기 전에 미륵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나타났다. 충청남도 지방문화재(유형문화재 87호)로 지정된 미륵불입상(彌勒佛立像)이 있어서 암자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모양이다. 

   미륵불입상은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통째로 이용하여 미륵불을 조각한 것이다. 석불은 대개 산의 일부인 바위의 한 면에 조각을 한 것이 보통인데, 이 석불입상은 하나의 독립된 바위에 입체적으로 새긴 것이라 마치 동상을 연상케 한다. 
   전체적으로 투박한 모습인데, 어깨까지 내려오는 커다란 귀와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술이 대조를 이룬다. 그 앞에서 오늘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미륵암을 지나자 길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그에 비례하여 땀이 나기 시작하고, 아직은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 탓에 입고 온 등산 파카를 벗어야 했다. 
  암릉의 위로, 또는 기묘하게 생긴 바위 사이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험하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홍성의 평야(예당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작은 봉우리를 두 개 넘어 길을 재촉하는데, 지난 2월의 인사이동으로 법원도서관의 조사심의관으로 새로 부임하여 산악회장을 맡은 송봉준 판사가 준 초콜렛이 맛있게 느껴질 무렵 어느새 정상에 다다랐다. 산행 시작 1시간만이다.

“뭐야 이거, 등산이 아니라 소풍 온 거 아냐?”

   해발 381m 지점이 정상이니 그럴 법도 하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북한산(836m)은 고사하고 청계산만 해도 해발고도가 618m인 것에 비추어 보면 소풍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과장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과장된 것을 찾으라면 바로 이 산의 이름인 ‘龍鳳山’이야말로 과장의 백미가 아닐는지... 거창하게 용(龍)과 봉황(鳳凰)이 노니는 산이라고 할 땐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한양에서 온 凡夫의 눈에는 용도 봉황도 아직 보이지를 않는다. 
   이 이름의 연유를 알게 된 것은 산행 후 몇 날이 지난 나중의 일이다.
  
   용봉산은 높이가 낮은 데 비하여 조망이 뛰어나다. 용봉산의 정상에 서면 북서방향으로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495m)이 보이고, 그 뒤로 개심사가 자리한 가야산(677m)이 그 높이를 뽑낸다. 강원도라면 모르겠으나, 충청남도에서 그만한 높이면 위용을 자랑할 만하다. 
    남쪽의 올라온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홍성읍과 삽교천유역의 넓은 평야(예당평야)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봄소식을 전한다.  

   그나저나 이 ‘소풍’이라는 말은 곧 도로 주워 담아야 했으니...용봉산 정상으로부터 북쪽으로 노적봉, 악귀봉을 거쳐 수암산으로, 거기에서 다시 덕산온천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10여 개가 넘는다. 
    그 봉우리를 다 넘어 덕산온천까지 가려면 4시간이 걸린다.

   정상에서 노적봉을 지나 악귀봉까지 가는 길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험로가 많다. 바위틈 사이로 깎아지른 듯한 길을 오르락내리락하여야 하는데, 아차 한번 발을 잘못 디디면 앞날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험로를 피해 우회하는 길도 친절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 사실을 알리는 푯말도 세워져 있다. 그러면 그렇지 1,000원씩이나 입장료를 받으면 그 값을 해야지... 이 곳에서는 좌우에 보이는 기암괴석들도 장관이다. 
   이쯤 되어서야 비로소 높지도 않은 산이 전국에 알려지고(한국의 100대 명산 안에 든다) 찾는 이가 많은 까닭을 알게 된다.

   악귀봉은 한자로 어떻게 쓰는지를 알 수 없어 정확한 뜻을 모르겠으나, 혹시 봉우리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들이 악귀(惡鬼)처럼 험상궂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닐는지...이름치고는 다소 험악하다. 
   아무튼 용봉산 전체가 바위산이기는 하지만 특히 이 악귀봉 주위에 기기묘묘한 바위가 몰려 있어 절정을 이룬다.

   문득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었다. 악귀봉 정상부근의 넓은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가지고 온 먹거리들을 내놓는데, 이 배낭 저 배낭에서 나온 음식과 과일이 순식간에 산더미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백중석 과장의 배낭에서 나온 문어가 단연 최고의 인기품목이다. 문어를 찍어먹을 초고추장까지 준비한 열람과장의 세심함에 다들 혀를 내두른다. 특히 윤성혜 과장은 백중석 과장이 사람이 변했다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원종삼 계장의 처갓집 호박고구마 역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총무과에서 준비한 마른안주세트는 맥주집의 안주를 연상시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지만, 어차피 정상주를 마셨기 때문에 상황에 딱 어울리는 먹거리인 셈이었다.  

  금준미주(金樽美酒)와 옥반가효(玉盤佳餚)는 아닐지라도 반소사음수(飯蔬食飮水) 정도는 되었기에 배를 불린 후의 산행길은 한결 더 여유가 있었다. 
   오른쪽으로 마애석불(보물 제355호)과 용봉사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쳐 병풍바위를 바라보며 용바위쪽으로 향하려니 길가에 평상들이 여럿 놓여 있다. 30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이미 한 팀으로 보이는 일군의 등산객들이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용봉산의 특징 중 하나가 팔각정과 평상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역시 1,000원 입장료의 위력이 아닐는지... 다행히도 그 시설들이 목재로 되어 있어 친근감을 준다. 계룡산의 능선에 있는 괴물 같은 시멘트 정자와는 대조적이다. 등산객들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로 쌓은 탑이 많은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이혜영 과장이 충청도 산은 높지는 않아도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등산하기가 좋다고 하자, 서두원 과장이 한 마디 한다.

“이과장님이나 나는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에 충청도의 산을 칭찬해서는 안 됩니다. 남들한테 자화자찬으로 들리기 때문이지요.”

하긴 그렇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대구 출신의 윤성혜 과장의 한 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이 땅에 있는 산이면 다 대한민국 산이지, 충청도 산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그렇다. 다 대한민국 사람이고 다 대한민국 산일 따름이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인데도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살 때가 많다.

   용바위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도라지 능선이 시작되는 봉우리 하나를 더 넘으니 잘록한 안부(鞍部)인 가루실고개가 나온다. 여기까지가 용봉산이고 다음부터는 수암산(秀岩山)이다. 행정구역도 더 이상 홍성군이 아니고 예산군이다. 

   수암산 자락으로 들어서면서 묘목을 등에 지고 가는 한 무리의 나이 지긋한 분들을 만났다. 산에서 캔 묘목을 짊어지고 하산한다면 모를까 그걸 지고 산을 오른다는 게 이상하여 연유를 물어보았다.       10여 년 전에 수암산에 큰 불이 나서 나무가 많이 타죽었는지라 진달래나 철쭉 등의 묘목을 옮겨심는다고 한다. 아마도 도청이나 군청에서 취로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능선의 좌우로 불탄 자리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수암산의 정상은 해발고도가 275m이다. 이 곳에도 역시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여기서 뒤로 돌아 용봉산 쪽을 바라보면 비록 높지는 않을망정 갖출 것은 다 갖춘 산봉우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더 이상 봉우리가 없으려나 했는데, 산악회총무인 박재송 계장이 내미는 지도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봉우리가 5개나 그려져 있다. 능선을 따라 265m, 260m, 255m, 245m 등 5-10m씩 높이가 낮아지는 봉우리들을 넘어야 덕산온천에 다다르게 된다.
   능선길이 일률적으로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이거나 또는 평지라면 지루하겠지만, 오르막 내리막을 되풀이하고, 그 경사 또한 그다지 급하지 않은데다 용봉산과는 달리 흙길인 까닭에 걷기가 쉽다. 

   바위가 빼어나다고 해서 산 이름을 수암산(秀岩山)이라고 지었을 법한데, 용봉산과는 달리 그런 바위는 눈에 잘 안 띈다. 
   그리고 이 능선의 이름이 도라지능선이건만 길가에서 도라지를 발견하지 못 하겠다. 하긴 아직 도라지꽃이 필 계절이 아니니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이번 산행에는 왜 자꾸 이름을 갖고 시비를 하는지 모르겠다. 凡夫의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수암산의 북쪽 끝자락으로부터 두 번째에 해당하는 봉우리(245m)에서 덕산온천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일단의 아이들이 올라온다. 초등학생 내지 중학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이들이 한 명씩 지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고 깎듯이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그러려니 했는데, 올라오는 아이들마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은 모두 이곳이 양반고장이라 아이들이 교육을 잘 받았구나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주머니를 뒤져 남아 있던 초콜렛이나 사탕을 그들의 손에 쥐어 주면서도 아까운 줄을 몰랐다. 오는 정 가는 정이 별 것인가...

   총 8.5km에 달하는 용봉산, 수암산 종주산행을 5시간에 걸쳐 끝내고 오후 3시 30분 산을 완전히 내려오니 바로 덕산온천이 지척에 있다. 그 중에서도 원탕이라는 덕산온천관광호텔의 목욕탕에 몸을 담그니 산행 중에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는다. 
 
    온천욕을 마치고 인근의 천년고찰(千年古刹) 수덕사(修德寺)를 둘러본 것도 부수적으로 주어진 즐거움이었다. 4월 초파일 불탄일이 아직 달포 가량 남았는데 절 마당에는 벌써 연등을 달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심포 맞배지붕, 배흘림기둥, 전면 3칸 측면 4칸으로 된 대웅전이 고색창연하다.

   산행 내내 궁금증이 안 풀렸던 용봉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서울에 와서도 생각해 보았으나 답이 안 나왔다.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불릴 텐데...
   그러다가 한 인터넷사이트(http://blog.naver.com/youngrb?Redirect=Log&logNo=130015911738)에서 “이 산의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 듯한 형상인 데서 유래했다”는 글귀를 발견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다시 보니 과연 그랬다. 북쪽 수암산 쪽으로부터 남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의 곳곳에 봉우리들이 솟아 굴곡을 이루어 용의 몸통을 이루고, 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우뚝 솟은 용봉산 정상은 깃털을 날리는 봉황의 머리를 연상케 한다. 
   풍수지리에 능했던 우리 조상들의 혜안을 둔자(鈍者)가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실감한다. (2007.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