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 땅(울릉도, 독도)

2010.02.16 12:41

범의거사 조회 수:13894


                     독도는 우리 땅  
                         
     법원도서관 산악회에서 울릉도 성인봉을 등산하자는 이야기가 진작부터 거론되던 차에, 일본인들이 여름에 느닷없이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내용을 담는가 하면, 미국의 지명위원회에서 독도의 표기를 일본식의 ‘다케시마’로 했다가 정정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등으로 독도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갑자기 높아졌다.
    그래서 법원도서관 산악회에서는 이왕 울릉도에 가는 김에 독도에도 가보자고 의견이 모아졌고, 그 계획이 알려지자 산악회 회원이 아닌 사람들까지 나서서 무려 30명이 울릉도와 독도 탐방길에 나서게 되었다. 남녀의 성비가 15 : 15인 게 이채롭다. 일부러 조정한 것도 아닌데...

 

      

2008. 9. 20.(토)

     추분을 사흘 앞둔 시점이라 아직은 주위가 어둑어둑한 새벽 5시에 대법원을 출발하였다. 잠을 설치고 나온 탓에 모두들 아직은 여행의 설렘보다는 잠의 여신이 뻗치는 유혹에 넘어가 깊은 잠에 빠져 든다. 영동고속도로 횡성휴게소에 도착해서야 겨우 머리가 맑아진다. 산악회 총무가 준비해 온 김밥으로 아침을 먹으려니 한 줄의 반도 못 먹겠다.
    전세버스의 기사가 배 시간에 못 댈까봐 서두른 탓에 8시 30분에 동해시 묵호항에 도착했다. 울릉도행 배는 10시에 출항하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 온 셈이다. 그래도 부두에는 울릉도 가는 사람들을 서울에서 태우고 온 버스들이 줄지어 있고, 그 버스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로 대합실이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 아줌마가 거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것 같다. 역시 대한민국은 아줌마공화국이다.

    묵호항에서 울릉도를 거쳐 독도까지 가는 쾌속선 한겨레호가 예정대로 10시 정각에 묵호항을 출발했다.
    한겨레호는 정원이 445명인 큰 배이다. 그런데도 빈 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최고속력은 40노트이다. 운임은,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일반인 일등석 기준 편도 49,000원인데, 30명 단체할인하면 1인당 42,500원이다. 울릉도에서 독도 가는 요금은 일반인 일등석 기준 왕복 45,000원인데, 20명 이상 단체할인하면 1인당 40,500원이다. 포항에서는 울릉도행 배가 매일 출항하지만, 묵호항에서는 1주일에 대략 3회, 월요일, 금요일, 토요일의 아침 10시에 출항한다.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 걸리는 시간은 2시간 30분이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간 배가 다시 오후 4시에 독도를 향해 출항하며, 독도까지는 1시간 걸린다. 운항 중에는 난간에 나가지 못하고 객실 안에만 머물러야 하기 때문에 다소 답답했다.

     서울에는 비바람이 분다고 하는데 동해상의 날씨는 쾌청하기만 하다. 바다에는 잔잔한 물결만 일 뿐이다. 그런데, 배가 속력을 내자 마치 수면 위에 떠서 달리는 듯하였고, 그러자 파도가 치지 않는데도 배가 앞뒤로 흔들렸고, 그에 따라 배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대개는 배멀미약을 먹거나 ‘귀미테’를 붙이고 있었는데도 소용없는 모양이다.

    다행히 나는 ‘귀미테’만으로도 효험이 있었는지 배멀미를 하지 않았다. 배 안에 멀미약을 선전하는 광고판이 있어 나그네의 눈길을 끈다.  
    문득 1980년 12월말에 해군법무관으로 임용되어 함상훈련을 받느라 2주일 동안 구축함을 타고 대만 부근 해역까지 갔다 온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폭풍을 만나 배멀미를 어찌나 심하게 했던지 몸무게가 4Kg이나 빠졌었다. 이번에도 파도가 심하였으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리라.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는 161km이다. 2시간 반의 항해 끝에 울릉도의 동남쪽 항구인 도동항에 도착하였다. 울릉도의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이다.  그 주민의 대부분이 모여 살면서 육지로 나가는 문호가 바로 도동항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이다. 


      
 

    화산이 폭발하여 생긴 섬인 울릉도는 같은 화산섬인 제주도와는 달리 해안이 대부분 절벽이고 평지가 거의 없다. 비록 산과 산 사이의 계곡에 있을망정 그나마 사람들이 발붙일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동항인 것이다.  이곳에는 1,000톤급 배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시설이 되어 있다.
    울릉도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오징어가 상징물 아니던가. 도동항에 내리니 온통 오징어 천지이다. 강원도의 황태 덕장을 연상케 하는 오징어 건조장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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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숙소인 한일모텔로 가 여장을 풀었다. 울릉도에는 번듯한 호텔이 없다. 고급숙소로는 유일한 콘도인 대아리조트가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장급의 여관들로 대부분 도동항에 몰려 있다. 한일모텔 인근의 예약된 식당으로 가서 울릉오미(五味)의 하나인 홍합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에 바다낚시팀, 도동항관람팀, 휴식팀으로 나누어 흩어졌다. 나는 10명의 바다낚시팀에 끼어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저동항으로 이동했다.

  저동항은 도동항의 북쪽에 있는 조그만 어항이다. 물론 오징어배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낚시꾼과 관광객들을 위한 낚싯배들도 있다.  
  조그만 통통배인 낚싯배(독도호)를 타고 바다로 나섰다. 저동항 방파제를 벗어나 외항으로 나가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 간 곳에서 배를 멈추고 낚시를 드리웠다. 오염원이라고는 없는 청정해역이 바로 이런 곳일까, 바닷물의 색이 ‘마치 잉크를 풀어놓은 듯하다’(오경미 판사의 표현). 말 그대로 검푸른 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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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없어 물결이 잔잔했지만, 배가 워낙 작은지라 좌우로 흔들림이 심했다. 묵호항에서 울릉도까지는 멀미하지 않고 잘 왔던 윤성혜 과장이 낚싯줄을 잡아보지도 못한 채 얼굴이 핼쑥해지며 난간에 기대앉는다.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배안으로 들어가 눕는다. 다른 사람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오경미 판사도 잠시 후 그 뒤를 잇는다. 


    낚시의 미끼는 냉동새우이다. 이것을 낚싯줄에 매달려 있는 5-6개의 낚시바늘에 꿰어 바다 밑으로 던져 넣는데, 20-30m 정도 내려간다. 낚싯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맨손으로 낚싯줄을 잡고 있다 보면 물고기가 문 경우 묵직한 느낌이 전달되어 온다. 위치를 옮겨 가며 그렇게 1시간 정도 낚시질을 하였는데, 8명이 모두 합쳐 8마리를 잡았다. 어종은 놀래미와 뽈락. 오징어를 잡겠다고 나선 것은 물정을 모르는 생각이었다. 오징어배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오는 것을 보면 오징어는 먼 바다로 나가야 잡을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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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하고 돌아와 오후 4시에 독도를 향해 출발했다. 배는 묵호항에서부터 타고 온 한겨레호 그대로이다. 날씨는 여전히 쾌청하다. 한 시간의 항해 끝에 독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우리보다 앞서 다른 사람들이 타고 온 배가 접안해 있어 그들이 떠날 때까지 외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독도의 부두에는 배가 한 척밖에 정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독도. 행정구역의 명칭은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이다. 460만 년 전에 생겼다는 이 화산섬의 지도상 정확한 위치는 동경 131도 북위 37도이다.
     이름은 독도(獨島)이지만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의 노래말처럼 ‘외로운 섬 하나’가 아니라, 크게 동도(東島)와 서도(西島)가 있고, 그 주변에 89개의 바위섬이 흩어져 있다. 배에서 내렸을 때 받은 독도의 첫 인상은 생각 밖으로 큰 섬이라는 것이었다. 총면적이 187,554㎡(동도 73,297㎡, 서도 88,740㎡, 부속도 25,517㎡)이다. 그 섬, 독도에 첫발을 디뎠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여기가 바로 독도구나. 마침내 나도 우리의 땅 독도에 왔다!”는 것이었다. 독도, 그래 바로 여기가 독도다!

    동도의 선착장은 몇 백 명이 내렸는데도 비좁지 않을 정도로 넓다. 과거에는 일반인의 독도 방문이 불가능했는데, 2005. 3. 16. 일본의 시네마현 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竹島の日)’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한 것에 맞서 우리 정부가 2005. 3. 17.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였다. 그래서 지금은 수많은 사람이 독도를 찾고 있다.
    일본인들의 도발에 의해 오히려 우리가 자유롭게 독도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아니러니이다. 남의 땅을 자기네 땅이라고 생떼를 쓰는 일본인들의 못된 버릇을 어떻게 하면 고칠거나...
    독도 동쪽으로 바다 건너 있는 일본이 마치 우주 저편에 있는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일본은 가까이 하기엔 먼 나라이다.          

     동도의 정상에는 독도를 지키는 경비대가 있다. 경비대 건물까지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져 있는데 일반인은 출입금지이다. 선착장 부근에는 ‘이곳이 대한민국의 동쪽 땅끝’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놓여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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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도에는 어민 김성도씨 부부가 살고 있는데, 여객선을 댈 만한 선착장이 없어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다. 

    김성도씨는 1970년대부터 최초의 독도주민인 최종덕씨 소유의 어선(덕진호, 2.22톤)에서 선원으로 일해 오다가, 1987년 최종덕씨가 사망한 후 서도에 거주하면서 본인 소유 어선(명성호 2.08톤, 부영호 1.5톤)을 이용하여 본격적인 어로활동을 해 오고 있으며, 1991. 11. 17.에 현재의 주소지(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20-2)로 주민등록을 옮겼다고 한다.
    동도든 서도든 더 많은 주민이 거주하여 명실상부한 유인도가 되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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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분간 체류한 후,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땅, 독도에 발을 디뎠다는 자부심에 뿌듯해 하며 울릉도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정체 모를 진한 아쉬움을 뒤에 남긴 채. 

 

03.jpg    울릉도에 돌아오니 해가 짧아 이미 밤중이다. 저녁을 먹으러 울릉등기소에서 예약해 준 식당으로 갔다. 메뉴는 울릉약소(藥牛). 울릉도에서 약초와 산채를 먹고 자란 소를 ‘울릉약소’라고 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그냥 고깃집에 왔나보다 했는데, 그 맛이 참으로 별미이다. 통상적으로 좋은 소고기 하면 횡성한우를 떠올리지만 울릉약소는 그 이상이다. 거기에 울릉도 특산의 나물인 명이나물  을 곁들이니 더 바랄 게 없다.
    본래 울릉도에는 울릉오미(五味)라 하여 다섯 가지 맛있는 음식이 있다고 한다. 울릉약소, 홍합밥, 산채비빔밥, 오징어, 호박엿이 그것이다. 이 오미(五味) 중의 첫째가 바로 울릉약소이다. 앞으로 울릉도에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꼭 울릉약소를 맛볼 것을 권한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니 이슬비가 내린다. 서울에 큰 비가 온다고 하더니 드디어 여기도 오는구나... 배도 부르고 비도 오지만, 그래도 명색이 울릉도에 왔는데 그냥 갈 수 있는가. 발길을 돌려 부두로 갔다. 펄펄 뛰는 싱싱한 오징어로 즉석회를 뜨는 노점들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주문을 하고 인근 식당에 가 있으면 그리로 가져다준다.
    또다시 포만감에 젖어드는 사이에 도동항의 밤이 빗속에 깊어갔다.

2008. 9. 21.(일)

     아침 일찍 여관에서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마치고 8시에 길을 나섰다. 도동항의 반대편인 울릉도 북쪽 끝의 천부(天府)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다시 나리분지로 가 성인봉 등산을 할 참이다. 천부에서 나리분지까지는 마이크로버스가 다닌다. 간밤에 울릉도의 정취에 흠뻑 젖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들로 인해 출발이 다소 늦어졌으나, 일정에 차질을 빚을 정도는 아니었다.


     도동항에서 천부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걸렸다. 해안선을 따라 길이 나 있는데, 해안이 대부분 절벽이라 왕복 2차선 길을 겨우 냈기 때문에 차가 빨리 달릴 수 없다. 대신 차창에 어리는 주위 경치가 일품이다. 천부 역시 조그만 어항이다. 여기도 예외 없이 오징어가 햇볕 아래 줄을 지어 늘어서 일광욕을 하고 있다.
  
     ‘천부(天府)’라는 지명이 특이하여 항구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그 유래를 전한다. 내용인즉,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들 중에 덕산 이씨, 청안 이씨, 한양 조씨 세 사람이 이곳이 시내가 흐르고 지형이 평평하여 살기가 좋아 정착하기로 했는데, 나무가 너무 울창하여 하늘이 보이지 않아 도끼로 나무를 베어냈는바, 그 베어낸 곳만 동그랗게 하늘이 보여 ‘천부(天府)’라고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왜인들이 이곳에 와서 배를 만들고 고기를 잡고 나무를 베어갔다고 해서 ‘왜선창(倭船艙)’이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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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에서 나리분지로 가는 마이크로버스는 소형이라 우리 일행은 반씩 나뉘어 두 번에 걸쳐 이동해야 했다.  

    
    해발 370m 지점의 나리분지는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 화구(火口)가 함몰하여 형성된 분지로서,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이다. 안에 화산이 다시 분출한 알봉(卵峰, 611 m)이 있다. 섬말나리가 많이 자라서 나리분지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분지 주위는 외륜산(外輪山)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인봉(聖人峰)은 외륜산의 최고봉(984m)이자 울릉도 최고봉이다.

    나리분지의 크기는 동서로 약 1.5km, 남북으로 약 2km 된다.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은 화산의 분화구에 물이 고여 거대한 연못을 형성한 반면, 나리분지는 마을이 형성되어 주민들이 밭농사를 짓고 있다.
    겨울에 눈이 3m 이상 내리는 일이 많다고 하는데,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던 전통적인 너와지붕은 주택개량사업으로 인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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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가 성인봉 등반의 시발점이다. 그래서 친절하게도 등산안내 지도판이 설치되어 있고, 성인봉까지 4,500m임을 알리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다. 성인봉은 나리분지를 둘러싼 외륜산 중 남쪽 봉우리이다. 그 봉우리를 넘어 동남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도동항으로 연결된다. 


       

 

    오전 9시 40분, 호기롭게 출발하였다. 피톤치드를 내뿜는 숲속을 거닐자니 발걸음도 가볍다. 예상 산행시간이 4시간이므로 다소 여유 있는 산행길이다.
    평소 산행에 동참하지 않던 이혜경 사무관이 제조상궁 도정애 사무관과 함께 앞장을 선다. 다른 여직원들이 그 뒤를 따라 선두그룹을 형성한다. 잘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앞장을 서는 게 산행에서는 순리이다.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에 투막집이 나타났다. 1945년 무렵에 건축되어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투막집은 19세기 말에 울릉도를 개척할 당시 사람들이 살던 집의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는 않고 민속자료로 보존하고 있을 따름이다.
     투막집을 지나서 약간은 경사가 있으나 그래도 아직은 밋밋한 숲길을 계속 걷다 보면 왼쪽으로 돌에 “성인봉 신령수”라는 글씨가 새겨진 약수터가 나타난다. 얼마나 신령스런 물인지는 모르나, 앞에 널찍한 공터가 있고 건너편에 화장실도 있어 성인봉 등산객이 처음으로 쉬어 가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경사진 산길이 시작된다.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약수로 목을 축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밤에 과음한 백중석 과장이 누구보다도 맛있게 약수를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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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을 식히고 약수로 힘을 비축한 사람들이 하나 둘 전진을 시작하는데, 이제까지 앞서 왔던 이혜경, 도정애 두 사무관이 계속 미적거린다. 이혜경 사무관에게는 이곳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도정애 사무관이 도우미로 함께 남고, 나머지 일행들만 정상을 향해 출발하였다. 사실 건강이 안 좋았던 김경화 계장이 중간에 낙오할까봐 내심 걱정했는데, 그 사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는지 오히려 앞장서서 잘 걷는다.

    한라산을 연상하면 쉽게 떠오르듯 분화구의 외륜산은 성격상 분화구 바깥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한 반면, 분화구 내부에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올라가는 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일단 분지의 평지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오르막길로 접어들면 길이 여간 가파른 게 아니다. 그런 길을 오르려니 계단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서 설치해 놓은 계단이 끝이 없다. 이 굽이를 돌아도 계단, 저 굽이를 돌아도 계단...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 계단의 재료가 나무여서 한결 낫지만, 한 마디로 징그럽다고 할 정도로 계단이 이어진다. 그런데 최진영 국장님을 따라오신 사모님이 그 계단을 가볍게 성큼성큼 올라가셔서 주위 사람들의 입이 벌어지게 하였다. 대단한 공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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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숨을 돌렸다. 이때쯤은 다리가 많이 아플 텐데 다들 환하게 웃는 얼굴이다. 자랑스러운 법원도서관인들이다. 

       저 멀리 아래로 나리분지가 보이고, 주위의 외륜산 뾰족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나리분지 안에 톡 튀어 나온 봉우리는 알봉이다. 알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리라.0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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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의 등산로 시작지점에서도 일부 그랬지만, 오르막길이 시작된 후로는 좌우가 본격적으로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다. 너도밤나무, 섬단풍, 섬피나무, 섬잣나무 등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들이 군락을 지어 자라고 있다.  그 나무들 사이사이로 수없이 피어 있는 야생화들은 오경미판사의 발걸음을 수시로 붙잡는 단골손님이다. 카메라에 그 아름다운 모습을 담느라 여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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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분지를 출발한 지 2시간 30분 만에 성인봉 정상(해발 984m)에 도착했다. 정상은 바위덩어리들이 모여 있는 좁은 공간이다.  우리 일행 외에도 다른 등산객들로 붐빈다. 기념사진을 찍고 북쪽 20여 미터 아래 전망대로 갔다. 선봉대가 전망이 좋다고 미리 파악해 놓은 곳이다. 

   정상에서는 주위의 숲에 가려 아래를 조망할 수 없는 데 비하여 이곳에서는 나래분지와 그 외륜산의 봉우리들이 다 보인다. 그런데 해발 1,000m 가까이 되는 지점이다 보니 구름들이 수시로 몰려와 그 경치를 가리곤 한다. 심하면 온통 구름밖에 안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아쉬움이 있기에 그 경치들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닐까. 세상 일이 원래 100% 다 구비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전망대에서 배낭을 풀어 과일, 과자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도동항까지는 4.3km이다.
     정상에서 동남쪽의 도동항을 향해 내려가는 내리뫼길은 호젓하기 그지없는 숲길이다. 그것도 밋밋한 길이 아니라 출렁다리도 있고 쉬어가라고 팔각정도 있다. 팔각정은 아마도 하산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도동항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리라. 나리분지 쪽에 있는 공포의 계단은 없다. 이 쪽은 경사가 급하지 않기 때문에 계단을 설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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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젓한 하산길은 도동항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러 최악의 코스로 둔갑한다. 급격하게 경사진 길을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포장을 해 놓은 것이다. 등산화 속에서 발이 앞으로 밀리고, 이제껏 별로 아픈 줄 모르겠던 무릎이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자고 만든 길이 등산객에게는 고통을 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원망스런 길의 한 옆으로 대원사라는 절이 있건만 들어가 볼 엄두가 안 난다. 그저 한시바삐 이 길에서 탈출하고 싶을 뿐이다. 마침내 시내로 들어서서야 그 경사진 포장도로에서 벗어났다.  

  
     도동항을 관통하여 한일모텔로 가다 보니 길가에 울릉읍사무소와 울릉군 의회가 보인다. 인구래야 1만여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명색이 울릉군이라 지방의회가 있는 것이다. 의회건물 벽에 “일본은 역사왜곡 독도침탈계략을 즉각 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언제나 일본인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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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모텔에 돌아와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0분이다. 본래 예정보다 1시간 30분 늦었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는 생선회와 어제 낚시로 잡은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이다. 식당 주인이 울릉도의 생선회는 모두 자연산이라고 자랑한다. 하긴 울릉도에 양식장이 있을 리 만무하니 주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그래서인지 생선회가 신선하고, 고소하고, 졸깃하고...등등 아무튼 맛이 좋았다. 그보다 더 별미는 어제 잡은 놀래미와 뽈락으로 끓인 매운탕이다. 내 손으로 직접 잡은 탓도 있겠지만, 정말로 천하일미였다. 


     예정보다 30분 늦은 오후 4시 30분에 묵호항으로 가는 여객선 썬플라워호가 출발하였다. 이 배는 크기가 584톤으로 정원이 423명이고, 최고속력이 38노트이다. 이 배 역시 만원이다. 도동항을 떠나 울릉도를 남쪽으로 돌아 묵호항쪽으로 방향을 잡는 사이 짧아진 가을해가 저문다. 그렇게 1박2일의 울릉도, 독도 탐방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어제 타고 온 한겨레호와는 달리 잔잔한 바다 위를 천천히 달렸기 때문에 배멀미를 하는 사람이 없다. 대신 묵호항까지 가는데 어제 올 때보다 1시간이 더 걸렸다. 밤 12시에 도착한 서울 하늘에는 더 이상 비가 오고 있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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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모든 일정을 준비하였으면서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정작 탐방에는 참가하지 못한 산악회장 송봉준 판사의 쾌유를 빌고, 울릉도에서 숙소와 식당, 교통편 등의 예약을 맡아 준 울릉등기소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