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놓은 비단은 어디에(금수산)

2010.02.16 12:43

범의거사 조회 수:13699

 


         수놓은 비단은 어디에

                  
   

     1994년 7월에 충주지원장으로 부임하여 소위 유명하다는 산을 여러 곳 다녔는데, 그 때 처음 이름을 들은 후 한 번 가 봐야지 하면서 벼르기만 하고는 정작 15년이 되도록 못 오른 산이 바로 금수산이다.

     그 동안 그 산자락에 있는 ES리조트를 몇 번 가 본 일이 있고, 최근에는 정방사(淨芳寺)까지 다녀온 터라 생소한 산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한 번은 꼭 정상을 밟아 보아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2년 전까지 설악산 공룡능선에 대하여 느꼈던 감정처럼.
 

    그 금수산을 찾아 길을 나선 2009. 4. 25. 구름이 짙게 드리운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금수산(錦繡山)        

    해발 1,016m의 이 산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과 제천시 수산면에 걸쳐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의 최북단이다. 본래는 백암산(白岩山)이라 불리던 것을 퇴계 이황(李滉)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산이 아름다운 것이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금수산(錦繡山)이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산능선이 마치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여 '미녀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데, 역시 가장 일반적인 명칭은 금수산이다.

 

 

    4월의 넷째 주, 주중 내내 맑던 날씨가 금요일 오후부터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비가 내렸다. 너무 엉터리라고 한동안 욕을 많이 먹던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이번에는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히 들어맞는지...

    전국적으로 계속되어 온 봄가뭄을 생각하면 당연히 비가 반가워야 하는데, 등산을 하여야 한다는 목전의 이해관계에 얽매여 그 비를 원망하니 범부의 협량(狹量)은 어쩔 수 없다.

    4월 25일(토) 아침 7시 45분에 청주법원을 떠나는 버스 안에는 구룡산악회원 19명이 타고 있었다. 당초 30명 가까이 가기로 했었는데, 비가 온다는 소리에 여성회원들이 대거 주저앉은 탓이다. 그럼에도 당당히 나선 2명의 여성회원, 박현이 판사와 강수현 계장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 아울러 지난 2월의 인사이동으로 대전지방법원으로 가신 어수용 전임 수석부장이 참가하여 빛을 발한다.

    금수산을 향해 가는 버스의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참으로 야속하였지만, 다행히 빗줄기가 가늘어서 곧 그칠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차창에 어리는 풍경을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다. 구룡산악회 조성철 총무의 잠시 쉬어가겠다는 말에 눈을 뜨니 월악산 가까이에 있는 휴게소다. 하늘은 여전히 흐려 있지만, 비가 어느새 그쳐 있다. 산신령이 돕나 보다.

    충주호를 끼고 도는 호반길, 얼마만인가. 1997년 2월 충주지원장직을 마치고 서울로 떠난 이후로 처음이니 12년이 훌쩍 넘었다. 그 동안 내 머리에는 서서히 서리가 내리고 이마에는 주름이 깊어졌건만, 산천은 여전히 의구(依舊)하다.

     월악산, 제비봉, 옥순봉, 구담봉, 장회나루... 하나같이 정감 어린 산하이다. 상념이 옛날로, 옛날로 달려가는 사이 버스는 옥순대교를 넘고 있었다.    

    아침 10시 옥순대교 휴게소에 도착하여 제천지원 산악회팀 8명과 합류하였다. 이승택 지원장, 산악회장 김정석 판사, 김주완 사무과장... 반가운 얼굴들이다.

    청주지방법원 본원 산악회에서는 올해 제천, 충주, 영동의 산악회팀과 합동으로 각 지원 지역에 있는 산을 등반하기로 했다. 이번 산행이 그 첫 무대인 셈이다.  
  
 


    두 산악회의 27명 회원을 태운 버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이제껏 온 길도 만만치 않았는데, 이곳에서부터 30분간은 그야말로 꼬불꼬불 산골길이다. 차멀미 기운을 느낄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충북 단양군 적성면 상리의 상학마을 주차장이다. 

 
    이 깊은 산속에 누가 살까 싶은데, 그래도 인가가 번듯하고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다. 이 날은 날이 궂어 우리 일행밖에 없었지만, 평소에는 찾는 등산객이 많은지 주차장도 널찍하다. 중앙고속도로에서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 아닐는지. 구룡산악회장 연운희 부장도 예전에 가족들이랑 이곳에서부터 금수산 등산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주차장 옆 공중화장실이 깨끗한 것이 마음에 든다. 이제는 우리의 문화수준도 그만큼 높아진 것이다.
  

 

    10시 35분, 마침내 산행의 첫발을 내디뎠다. 비가 다시 내릴 듯하다가 때맞추어 멈추는 것이 좋은 징조 같다.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의 등산안내도를 보는 순간 이날의 등산이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할 수 있다. 정상까지 2.3Km의 길이 일견하여 경사가 매우 급함을 알 수 있다. 어제부터 내린 비로 길도 미끄러울 텐데...  

    그래도 출발지에서 남근석공원까지 가는 길은 고속도로나 다름없다. 양옆에 석축을 쌓아 다듬어놓은 길 위로 낙엽이 쌓여 있는 게 등산객에게는 오히려 호사스런 느낌이 든다. 구름 속에서 그 길을 걸으니 운치가 더욱 난다.

    길 오른쪽 산사면에는 토종벌을 키우는 벌집들이 있고, 군데군데 보이는 산벚꽃들이 흰 자태를 뽐낸다. 도시의 벚꽃들은 진 지 벌써 오래지만, 지대가 높아 기온이 낮은 이곳에는 벚꽃이 아직도 한철이다.












         금수산 등산로상에 있는 남근석공원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공원이 아니다. 금수산은 그 형태가 미녀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여자의 기운이 강한 곳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남자들이 단명한다고 하여 이를 막고자 남근석을 만들어 이곳에 설치하였다는 것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조선시대 말기에 파괴된 것을 2001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글자 그대로 돌로 만든 남근석(男根石)은 거대한 것이 하나 있고, 그 주위에 남근 모양의 장승에 갖가지 얼굴표정을 조각한 남근목(男根木)이 20여 개 세워져 있다. 이제는 남근목공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는지. 하여간 날씨 탓에 뿌옇게 보이는 공원의 분위기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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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남근석공원을 포함한 이곳 일대를 품달촌(品達村)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신혼부부가 첫날밤을 치르면 위인을 낳는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여 산행 후에 자료를 찾아보았다. 사연인즉 이렇다.

   품달촌은 충북 단양군 적성면의 금수산 아래 골짜기로서 윗말(上里), 아랫말(下里), 가마실(玄谷里), 텃골(基洞里) 등을 합쳐서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은 금수산 아래에 자리해 경치 좋기로 유명하여 정감록(鄭鑑錄)에서 말하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한 군데로 꼽혀 왔는데, 옛날부터 명현(名賢)이 많이 나고 높은 품계(品階)의 벼슬에 오른 사람이 많이 나온 까닭에 품달촌(品達村)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세 명의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하는데, 고려 원종 때의 명신인 우탁(禹倬)선생과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유척기(柳拓基)선생이 이곳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나머지 한 명의 위인이 탄생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신혼으로 아직 아이가 없는 박현이 판사더러 이곳에 남편과 함께 와 밤을 보내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을 낳으라고 하니 어디서 자냐고 되묻는다. 텐트를 치고 자야 하나....
여기서 고등학교 때 배운 우탁선생의 시조를 한 수 떠올려 본다.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 쥐고
늙난 길 가시로 막고 오난 백발(白髮)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白髮)이 제 몬저 알고 즈럼길로 오더라.
  

    청춘이 저물고 밀려오는 백발을 누가 있어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막을 수 없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탁선생은 다시 되뇐다.

춘산(春山)에 눈 녹인 바람 건듯 불고 간 듸 업다.
져근 덧 비러다가 마리 우희 불니고져
귀 밋테 해묵은 셔리를 녹여 볼가 하노라.
  

    산에 쌓인 눈도 녹이는 봄바람, 그 바람을 빌린다면 머리에 내린 서리를 녹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회춘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은 위인이나 범부나 다를 게 없다. 품달촌에서 하룻밤을 지내 위인을 낳은들...













      남근석공원을 지나면 고속도로가 끝나고 너덜길이 시작된다. 경사 또한 심해진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구름이 짙어져 겨우 한 치 앞만 보인다. 그래도 길가에서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날씨만 청명하면 분명 보다 많은 꽃들을 볼 수 있으련만... 비가 안 오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던 생각이 날이 흐려 아쉽다는 경지로 발전하는 것을 보면,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어 한다”는 속담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한다.

     해발 770m 지점의 쉼터에 도착하였다. 그 사이 출발해서 50분이 지났다. 이정표가 지금까지 온 길이 1.4Km이고 앞으로 갈 길은 900m임을 알려 준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추워서 웅크렸는데, 이젠 땀이 나서 등산자켓을 벗어야 할 판이다.

     1주일 전부터 시작된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서인가, 아니면 구름 속에서 걸어서 그런가, 뒷골이 당기고 아프다. 그러고 보니 숨도 다소 가쁘다. 그런데 일행들이 걱정할까 봐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도 못한다.      
  












    해발 880m 지점의 옹달샘을 지나 능선 위 살바위고개로 올라서자 갑자기 찬 바람이 세차게 분다. 제천 쪽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다. 서둘러 등산자켓을 다시 입은 것도 모자라, 손이 시려 가죽장갑을 껴야 했다. 주위에 진달래가 아직도 계속하여 피고 있는 이유를 알 만하다. 고갯마루를 사이에 두고 산의 이쪽과 저쪽이 어쩌면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는 계단이 많은데, 경사가 급하여 숨이 찬다.  

     12시 30분, 금수산의 정상(해발 1,016m)에 도착하였다. 정상은 비좁은 암봉일 뿐만 아니라 동서 양쪽이 깊은 골짜기여서 절벽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무와 쇠로 발판과 난간을 만들어 겨우 발을 디딜 수 있게 해 놓았다.


    날씨가 좋으면 정상에서의 조망이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져, 북쪽으로는 금수산의 지봉인 망덕봉과 신선봉(이곳에 정방사가 있다)이, 남쪽으로는 옥순봉과 월악산이, 동쪽으로는 소백산이 보인다는데, 이 날은 구름 속에서 노니는지라 한 치 앞에 있는 옆 사람의 얼굴만 보일 뿐이다. 그러니 충주호반에 둘러싸인 청풍문화재 단지나 호수를 가르는 유람선 또한 보일 리 만무하다. 비단에 수를 놓은 절경은 어드메뇨.



    산을 오르는 동안 우리 일행 말고는 다른 등산객들을 보지 못하였는데, 정상에 서니 그래도 다른 팀이 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무시하고 1,000m가 넘는 높은 산의 정상(頂上)에 오르는 것은 확실히 정상(正常)이 아닌가 보다. 이름하여 만용(蠻勇)인가? 그렇지만, 주말에나 산에 갈 수 있는데다, 봄철이면 그나마 각종 행사가 많아 시간 내기가 어려운 판국에 이리저리 재다 보면, 정작 산엔 근처도 못 가고 한 철이 지나가 버릴 수 있는지라 무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단에 수를 놓은 듯한 경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섭게 부는 바람에 추위가 뼛속을 파고드는지라 이래저래 기념사진만 찍고 정상에서 서둘러 내려왔다. 제천지원 김주완 사무과장으로부터 금수산의 풍수에 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후일을 기약해 보지만 과연 가능할는지... 올라갈 때는 단양 쪽에서 출발했지만, 내려갈 때는 제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종점인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 주차장까지의 거리는 3.5Km.

    추위에 굶주림마저 더해지면 인생이 서글퍼진다. 다들 아침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선 탓에 허기진 표정이 역력하다. 정상에서 내려와 바람이 덜 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쳤다. 모든 게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던가. 찬밥일망정 배를 불리고 정상주(頂上酒)가 한 순배 돌아가니 모두들 얼굴에 생기가 돈다. 이럴 때는 나 홀로 술을 못하는 게 실로 애석하다. 아무리 보온병에 든 따뜻한 물이라 한들 향기로운 곡차(穀茶)에 견줄 수 있으랴. 이제 남은 것은 산을 안전하게 내려가는 일뿐이다.
  
     비가 온 뒤의 하산길은 아차 하는 순간 미끄러지기 때문에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조심하라고 서로서로 주의와 격려를 하며 내려가는데, 황성주 수석부장이 결국 미끄러지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지만 손과 다리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다. 달마대사를 닮은 황 수석이 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액땜을 하는 자비를 베푼 것이다. 나무 황성주보살 마하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시야가 트여 산의 윤곽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아름다운 야생화들도 더 많이 보인다.
    산 중턱을 내려 온 후부터는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가 편하다. 삼림욕을 위해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노라니, 높은 산을 오르고 내리느라 다리에 쌓였던 피로가 절로 풀리는 듯하다. 등산로 주변에 한 때 화전민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는 공터(집터와 밭터)들이 군데군데 있어 시대의 변화를 엿보게 한다.  

     산을 다 내려와 백운동 마을에 다다랐을 즈음 금수산의 숨은 비경을 하나 보고 가야 한다고 제천지원팀이 이끈다. 용담폭포이다. 안내문에 의하면, 금수산 비경 중 제1경이라는 이 폭포는 상,중,하 3단 폭포로서 물이 30m 절벽에서 5m 깊이의 웅덩이로 떨어지면서 만들어 내는 흰 물보라가 마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용담(龍潭)폭포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간의 가뭄으로 이 날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산불예방기간으로 출입을 통제하는 바람에 하단 폭포밖에 볼 수 없어 과연 비경(秘境)일지 의문이 들었다.  

  오후 3시, 이날 산행의 종점인 제천시 수산면 상천리의 백운동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에는 근래에 세워진 보문정사라는 절이 있는데, 하산이 끝난 시점이기도 하지만 불자(佛者)를 자처하는 나도 선뜻 들어가 볼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오히려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 올린 돌담길이 푸근하게 다가온다. 시골마을의 정취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는지.

  산행이 끝나니 빗방울이 다시 떨어진다. 이 무슨 하늘의 조화인가. 연운희 구룡산악회장의 해석이 그럴 듯하다. 지난 3월에 우암산에서 시산제를 잘 지냈기 때문에 산신령께서 도와주시고 있다고.(끝)

(후기) : 1. 산행을 세밀하게 준비해 준 제천지원산악회팀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2. 상천리 휴게소에서 버스종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의 가은산 기슭에 숯가마찜질방이 있다. 찜질방 자체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이 집에서 소금을 뿌려 굽는 돼지 목살의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말만 잘하면 주인이 신선한 더덕줄기를 고추장 찍어 먹으라고 주는데, 이 또한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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