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龜岩)대사 보시게

 

   입동이 되도록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 첫 눈까지 내리고.

대사가 1주일에 두 번씩 “뜸봉사”로 공익근무를 하다가 기온이 내려가면서 뜸해지는 바람에 연락마저 뜸해졌네 그려.

무고하신가?

 

   나는 지난달 2일에 서리풀산악회의 산행으로 광주의 무등산을 다녀왔다네. 꼭 30년 전인 1980년 가을에 광주 보병학교에서 군법무관 훈련을 받던 시절, 유격훈련을 위하여 화순의 동복유격장에 가기 위하여 완전군장을 하고 넘었던 산이 바로 무등산이라네. 감회가 새로웠지. 또한 지난 봄에 북한산의 오봉을 거쳐 도봉산과 사패산을 다녀온 후로 오랜만에 하는 산행이라 이래저래 의미가 있었다네. 

   그런데 대사도 알다시피 내가 요새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한 달이 넘어서 겨우 그 소식을 전하네. 더 미루다간 해를 넘길 것 같고, 기억도 가무러질 듯하여 총총히 붓을 드니 양해하시게.

 

무등산지도.jpg

 

   무등산은 주위에 그보다 높은 산이 없어서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맞는지 모르겠네[일설에는 부처님의 공덕은 더할 나위 없이 높아 이를 무등(無等. 無有等等)이라고 하는바. 이 산에 고찰, 고승들에 얽힌 불교적인 인연이 많아 그 무등(無等)을 차용하여 이름을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네].    

  아무튼 높이가 해발 1,187m이니 높은 산임에는 틀림없지.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도시에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산이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고 하네.

 

   이처럼 높은 산이기는 하지만, 광주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증심사 입구의 증심교(해발 150m)에서 출발하여 토끼등(해발 460m)→동화사터(해발 800m)→중봉(해발 915m)→서석대(해발 1,100m)→입석대(해발 1,017m)→장불재(해발 900m)→용추삼거리→중머리재(해발 586m)→당산나무→증심사→의재미술관→증심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형 등산코스(총연장 9.9km)가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네. 산 자체가 비교적 완만하고 등산로가 대부분 흙길이기 때문이지. 총 산행시간이 대략 7시간 정도 걸리더군.

 

   증심사 기점의 산행은 광주 시내의 여러 방면으로 연결되는 노선버스가 많아 무등산 등산객의 80%가 몰린다고 하는데, 명불허전(名不虛傳)으로 등산객이 꼬리를 물더군.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무등산 하면 광주를 떠올리게 되는데, 정작 무등산은 전라남도 도립공원이라네. 하긴 광주가 전라남도에서 독립하기 전에는 그 일원이었으니, 전라남도 도립공원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을 듯하이.

                  소리정.JPG   

   증심교에서 토끼등까지 올라가는 길이 깔딱고개에 해당하여 시작부터 땀을 흘려야 했지만, 10월의 맑고 따스한 햇살이 청정한 공기와 어울려 상쾌하였다네. 한 시간 걸려 올라간 토끼등에는 널찍한 쉼터와 소리정이라는 정자가 있어 땀을 식히기 좋았네.

 

   광주가 임방울 명창을 배출한 곳이니 정자 이름에 걸맞게 어디선가 “춘향 형상 가련허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에 찬 자리에 생각 난 것은 임뿐이라...”로 시작하는 판소리 “쑥대머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데, 아쉽게도 나만의 생각이었네.

 

   토끼등에서 동화사터까지도 가파른 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졌네. 등산로는 곳곳에 통나무나 돌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걷기가 힘들지는 않더군. 길옆의 너덜지대가 눈길을 끌었지. 간간히 광주 시내의 풍경이 내려다보이고.

              

  동화사터에 있는 약수로 목을 축이고 중봉으로 향했네. 중봉까지는 중봉 가는 능선길.JPG이제까지의 가파른 길과는 달리 밋밋한 능선길이 이어지는데, 등산로 양 옆에 억새가 만발하여 한양나그네의 발길을 자주 멈추게 하였고, 아직 제 집을 찾아들어가지 못한 독사 한 마리가 사람을 놀래키기도 하였지.

 

  출발지로부터 3시간 걸려 중봉(해발 915m)에 도착하였다네. 여기엔 MBC와 광주방송의 송신철탑이 높이 솟아 위용을 뽐내고 있는데, 광주시민들이 TV 시청을 위하여 필요한 시설이기는 하네만, 산의 모습을 망가뜨리는 주범의 하나임은 틀림없지. 이렇듯 문명의 이기는 필연적으로 자연의 파괴와 연결되는 것인가. 나는 잘 모르겠으니 도력이 깊은 대사가 답을 찾아 알려주게.

 

   중봉 일대도 억새가 장관이네. 철원의 명성산, 정선의 민둥산, 영남알프스의 사자평...다 이름난 억새군락지이지. 무등산의 억새가 솔직히 그보다는 못해도 나름 볼 만했다네. 특히 중봉에 있던 군부대가 다른 곳으로 옮겨간 자리에 조성된 억새밭은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명물이 될 성싶으이. 언제 한 번 직접 발품을 팔아보시게.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지 않던가.

 

                                   중봉.JPG

 

 

 

   중봉에서는 무등산의 그 유명한 서석대(瑞石臺, 천연기념물 제465호)가 바로 보이네. 그래도 경사가 제법 있어 서석대까지 40분 정도 걸리더군.             

   무등산을 서석산이라고도 부를 만큼 서석대는 무등산이 자랑하는 최고의 볼거리이지. 서석대.JPG 약 7천만 년 전에 화산이 폭발할 때 용암이 땅속에서 솟구쳐 나와 식으면서 수축하여 생긴 주상절리대(柱狀節理臺)인데, 아직 풍화가 덜 진행되어 마치 병풍모양을 하고 있네. 날카로운 칼로 자른 기둥모양의 바위들이 늘어선 것이 참으로 장관이더군.

 

   무등산의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의 남쪽 해발 1,100m 지점에 있는 이 서석대는 광주의 자존심이라 할 만하네. 광주 시내 어디를 가든 서석대 사진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 말일세.

   그 뿐인가 서석대의 정상에 세워진 표석 뒷면에는 광주가 자랑하는 서예가 학정(鶴亭) 이돈흥(李敦興) 선생이 쓴 “光州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광주의 기상 여기서 방눰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을 정도이지. 

서석대1.JPG   

   서석대에서 천왕봉은 지척에 보이는데,  미사일기지가 있어 등산객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네. 통일이 되어 그 기지의 효용이 다하게 되면 올라갈 수 있으려나..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서석대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입석대(立石臺)가 나오네. 이 역시 주상절리대(柱狀節理臺)로서 서석대와 같은 시기에 생긴 것이지. 다만 풍화가 더 진행되어 기둥모양을 하고 있다네. 5-6각형 모양의 돌기둥들이 중간이 토막이 났음에도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네. 자연의 신비를 인간이 어찌 다 알리오. 그저 보이는 대로 느낄 뿐...

 

  입석대에서 더 내려가 KBS 중계탑이 있는 장불재(해발 900m)에 도착하니 어느 새 점심 먹을 때가 지나버렸더군. 입석대.JPG

   장불재는 고원지대로 여기서 남쪽의 화순으로 이어지는 백마능선도 억새의 군락이 유명하다는데, 아쉽게도 이날의 산행과는 방향이 달라 가 볼 수 없었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구름이 요동을 치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통에 벌벌 떨며 늦은 점심을 먹고 하산을 재촉했지.

 
   서쪽으로 용추삼거리와 중머리재를 거쳐 증심사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하여 하산길로는 그만인데, 중간중간 돌길이 나와 신경이 쓰이더군. 대사도 알다시피 내가 무릎이 시원치 못하잖나. 그러고 보니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30년 전 유격훈련하러 갈 때는 반대로 증심사에서 중머리재, 용추삼거리를 지나 장불재를 넘어 화순으로 갔던 것 같으이. 

 

   증심사 못 미친 지점에 있는 한 그루 당산나무는 실로 거목이더군. 옛날에 이 근처에 무당들이 모여 사는 무당골이 있었다고 하네. 통일신라시대 헌안왕 4년(860년)에 철감선사가 창건했다는 증심사는 광주문화재 제1호임에도 생각 밖으로 아담한 절이더군. 나는 관광객들이나 등산객들로 소란스러울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는데 그렇지 않았네. 절 바로 밑에는 20세기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 1891-1977) 선생을 기념하는 의재미술관이 있는데, 시간에 쫓겨 그냥 지나쳤네. 그 아쉬움이라니...

 

  7시간 걸린 산행을 마치고 출발지인 증심교로 회귀하여 주차장으로 이동하려니 빗방울이 떨어지더군. 장불재에서부터 꾸물거리기 시작하던 하늘이 마침내 선물을 준 것이지. 하느님이 우리가 등산을 마친 것을 용케도 아시더라고. 하긴 그러니까 하느님이지. 장대비보다는 무등산수박을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무튼 서울 가는 KTX열차는 “비 내리는 호남선~”이 되었다네^^(끝)   

 

(후기) 멋진 산행을 위하여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신 광주지방법원의 조의연, 정창호 두 부장판사님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