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난 돌이 정 맞는다(함백산)

2012.01.12 16:16

범의거사 조회 수:9963

 

구암대사 보시게.

 

  신묘년의 해가 임진년으로 바뀌었네.

  삼한사온은 어디로 가고 추위가 여러 날 계속되네.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가 아열대기후로 바뀌고 있다고 하더니만, 오히려 예전보다 더 추위를 느끼는 것은 늙어감의 징표인가? 싫어도 인정해야겠지.

  엄동지제(嚴冬之際)에 대사도 무탈하고 가내 다 안녕하신가?

 

구암,

 

  연말연시라고 이리저리 쫓기다 보니 지난해 12월 10일에 함백산 다녀온 이야기를 이제껏 전하지 못했네.

  사실 함백산이나 그 옆의 태백산은 서울에서 워낙 먼 곳이라 그동안에는 1박 2일로 다녀왔는데, 지금은 이리저리 길이 잘 뚫려 있어 당일치기가 가능하다네.

  아침 7시 35분에 서초동에서 출발하여 밤 10시에 돌아왔으니 할 만하지 않은가. 언제고 대사와 백동, 그리고 담허랑 함께 시도해 보세그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네.

 

대사,

 

  해발 1,330m의 만항재에는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라고 하네. 오전 11시, 그 만항재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니 처음에는 솔직히 심란하더군. 주위를 둘러 온통 사방이 눈으로 덮여 있는데, 등산로도 안 보이더군. 법원산악회의 용감한 선발대가 멀리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리본을 보고 방향을 잡은 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뚫고 길을 내어 그 뒤를 따라갔지. 그렇게 10여 분 전진하니 비로소 등산로가 나오더군.

 

함백산(4).jpg

 

    일단 등산로에 들어서니 안심이 되어 심란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눈 덮인 사위(四圍)의 경치가 눈에 들어오는데 그야말로 설국(雪國) 그 자체였네. 함백산의 정상이 1,573m로 태백산보다 7m 더 높지만, 출발지의 고도가 워낙 높아 등산은 전혀 힘들지 않네. 

 

  마지막 정상을 앞두고 잠시 깔딱고개가 나타나지만 등산길이 너무 심심할까 봐 산신(山神)이 양념으로 만들어 놓은 정도이니 걱정할 게 없네. 그냥 설경을 감상하며 감탄하다 보면 정상에 도착하지.

 

  함백산(1).jpg 중간에 잠시 쉬면서 점심 요기를 하였음에도 오후 1시 35분에 정상에 도착하였다네. 결국 쉬지 않고 가면 2시간이 안 걸려 정상에 도착한다는 이야기일세.

 

  정상에 도착하기 전에 우측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지적응훈련을 위하여 1998년 6월에 문을 연 태백선수촌이 보이고, 정상에 서면 태백시와 말썽 많은 오투(O2)리조트가 보이네.

 

   태백시가 수요를 생각 않고 건설하였다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이 스키장은 온 산에 눈이 하얗게 덮였음에도 적막강산 그 자체였네. 리프트도 서 있고, 슬로프에는 스키 타는 사람들이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이더군. 내방객에게 청정지역의 산소를 공급하겠다고 이름까지 산소(O2)로 지었지만, 정작 자신이 산소호흡기를 꽂아야 겨우 연명할 지경이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치단체의 재정은 생각 않고 업적쌓기용으로 사업을 벌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장이 아닐는지. 아무튼 개장 후 이제까지 3년 동안에 600억의 적자를 기록한 애물단지이지만, 이왕 만들어 놓은 것이니 어떤 형태로든 활성화가 되었으면 좋겠네.

 

구암,

 

   함백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높이가 1,572.9m라고 하여 소숫점 이하까지 표시하는 특이한 표지석이네) 부근에는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네. 겨우 등정 증명사진을 찍고 바로 내려왔다네. 영월지원에서 준비한 환영플래카드도 거센 바람 탓에 펼치기조차 어려웠다네. 함백산(2).jpg

   함백산의 정상에는 방송국(KBS, EBS, 삼척 MBC)의 중계소가 있고, 그곳까지 자동차도로가 나 있는 통에 해발 1,573m나 되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네. 자동차로 갈 수 있는 곳을 누가 애써 등산하겠나. 결국 인근에서 제일 높은 탓에 중계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으니, 이것도 자업자득인지, 아니면 본래 이 산이 생겨날 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네만, 마치 모난 돌이 정 맞는 우리네 인생살이와 비슷하여 씁쓸하네.

 

  정상에서 하산길은 북쪽 싸리재(두문동재) 쪽을 택하였네. 본래 처음 계획했던 산행은 북쪽 싸리재에서 올라가 정상을 거쳐 남쪽 만항재로 내려가는 것이었는데, 함백산(3).jpg 폭설로 싸리재 쪽이 통제되는 바람에 그 반대의 방향을 택한 것이지. 하산길 역시 설국이었네. 주목군락지의 눈 덮인 경치는 올라갔던 길보다도 더 멋지더군. 이따금 다리도 쉴 겸 그냥 길에 주저앉으면 주~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엉덩이썰매의 즐거움도 맛보았지.

 

  싸리재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샘터(제2쉼터)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적조암쪽으로 내려와 정암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 30분이더군. 정암사 적멸보궁에 잠시 들러 참배한 후 못골 찜질방에 가 더운 물에 몸을 담갔네. 그 순간 전신에 몰려오는 나른함이라니... 겨울의 설산등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즐거움 아니겠나.

 

구암대사,

 

  추위의 끝에서 더위가 시작되지 않을까. 추사 김정희가 난초그림을 그리고 써붙인 화제(畵題)가 생각나네. “積雪滿山 江氷闌干 指下春風 乃見天心”(적설만산 강빙난간 지하춘풍 내견천심)이라고 했던가. 온 산이 내린 눈으로 덮이고 강 얼음이 난간을 이루나, 손가락 끝에 봄바람 부니 하늘의 뜻을 알겠네그려. 

 가까운 시일 내에 얼굴 보고 작설차나 한 잔 함세.

 

 임진년 정초에

 

 범의가 썼네 

 

(추신) 정암사에서 만항재로 오르다 보면 왼편 길가에 “만항할매닭집”(033-4303-8248)이라는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네. 근처에 갈 일이 있으면 꼭 가보시게. 텔레비전의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지 않았어도 우리나라의 곳곳에는 알려지지 않은 그야말로 ‘명품’ 식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걸세.

 

Taro Iwashiro - 16 - 赤壁 ~大江東去~ Song By alan _ Theme Song of Part 2 - 192k.m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