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원...(서대산)

2012.05.01 10:36

범의거사 조회 수:8663

 

구암대사,

    북극의 찬 공기에 밀려 봄이 그렇게 안 오더니 갑자기 여름이 된 듯하네. 4월말에 7월 중순 기온이라니, 이거야 원.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에 날씨마저 우리네 삶을 외면하네그려.

한 여름 같았던 주말을 그래 어떻게 보내셨나?

    잔인한 달 4월이 다 가기 전에 밀린 숙제를 하려고 졸필(拙筆)을 놀리고 있네. 이 달에는 산행을 두 번 했다네.

   14일)2012. 4. 14.)에는 법원산악회원들과 충남 금산에 있는 서대산을 다녀왔고, 그제 28일에는 서리풀산악회원들과 남양주에 있는 축령산을 다녀왔지. 두 산행 다 좋았네. 축령산 산행기야 그렇다 치고 서대산 산행기는 진즉 썼어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하다 보니 벌써 월말일세그려.

 

구암,

    서대산은 해발 904m로 충청남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을 주로 찾는 법원산악회의 전통에 따라 간 것이라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막상 가서 보니 숨은 진주이더군. 

 

전경.jpg

 

   용바위, 마당바위, 나뭇잎바위, 사자바위, 신선대, 장군바위, 해마바위 등 기암괴석이 널려 있고, 곳곳의 천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일품이더라고. 해마바위는 우리 일행이 처음으로 붙인 사자바위.jpg 이름이라네. 해마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꼭 닮았다네. 참, 누가 만들었는지 작은 돌탑군도 있더군.

 대사,

   대사도 알다시피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주민이 직접 뽑는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995년 6월 27일 아닌가. 그로부터 벌써 17년이 지났네.

   그 사이 각 자치단체들이 자기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애를 썼나. 그 과정에서 지역마다 자기 지방을 명소로 만들려고 경쟁적으로 힘을 쏟아, 길을 내고, 공원을 만들고, 안내판을 정비하고, 교통편을 연결하고... 산천유람을 하다 보면 그 변화에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지 않나. 해마바위.jpg

   그런데 말일세, 이런 세상의 조류와는 동떨어진 곳이 있더군. 마치 그런 일은 우리 양반동네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오불관언(吾不關焉)인 곳, 다름 아닌 금산과 충청남도일세.

   앞서도 언급했듯이 서대산은 충청남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네. 우선 그 사실만으로도 상품가치가 이미 충분하지 않겠나. 그러니 더도 덜도 말고 이런 곳을 다른 산들 만큼만이라도 정비한다면 그 경쟁력이 뛰어나지 않겠나.

   뿐만 아니라 이 산에서는 전국 어느 산(적어도 내가 가 본 숱한 산)에서도 보지 못하는 민속신앙을 발견할 수 있는데, 커다란 바위가 있으면 대부분 잔 나뭇가지를 꺾어 바위를 받친다는 것일세. 많은 곳은 그런 나뭇가지가 몇 십 개씩 되어, 마치 바위 밑에 나뭇가지로 울타리를 친 듯하다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 모르겠네.

  마당바위.jpg

구암대사,

   그런데 이런 잠재력을 갖춘 서대산의 실상은 어떤지 아나?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일세. 이정표.jpg거대한 바위를 나뭇가지로 받치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설명해 주는 안내문은 아예 기대할 수 없고, 

   길의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는 나무판에다 손으로 적당히 써서 철사줄로 나무에 묶어 놓고, 잉크로 그려 나무에 매단 등산안내도는 덧씌운 비닐은 벗겨지고 글자는 빗물에 씻기고 얼룩이 져 보이질 않고...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구름다리일세. 서대산에는 주능선에 도달하기 전 신선대가 바라보이는 곳에 계곡을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네. 등산안내도.jpg고도가 꽤나 높은 곳이지. 이곳에서 신선대 쪽을 보면 마치 장가계에 온 듯한 느낌을 줄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네.

   그런 곳에 있는 구름다리인 만큼 관광상품으로 얼마나 좋겠는가. 대둔산의 유명한 출렁다리에 버금가는 이 구름다리가 글쎄 언제부터인지 통행금지라네. 이유는 관리를 하지 않아 녹이 슬어 그리로 건너다가는 다리가 끊어져 추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 

   이제껏 없던 구름다리도 새로 만들고 심지어 케이블카까지 설치한다고 전국 곳곳에서 난리인데, 있는 명물다리마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금산군, 그리고 나아가 충청남도는 도대체 무엇 하는 곳인가. 우리는 양반이니 에헴! 하고 뒷짐이나 지고 있겠다는 것인가.

   기존에 있는 시설물이 이 지경이니, 다른 것은 말해 무엇 하겠나. 높은 산을 오르다 보면 전망이 좋은 곳에는 대개 목조로 전망대를 설치하여 놓지 않나. 등산객을 위한 배려이지. 그러다 보니 어떤 곳은 심지어 그다지 전망이 좋지 않은 곳에도 설치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  그런데 서대산은  아무리 전망이 좋은 곳이어도 전망대는 꿈도 못 꾼다네. 이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참으로 답답하다네.

구름다리.jpg

전망대.jpg

 

구암,

  서대산 산행기가 마치 성토문처럼 되어 버렸네. 우리의 금수강산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늘 꿈꾸는 이름 없는 산객의 충정으로 이해하시게. 

  대사는 고향이 충청북도이지 않은가. 이웃사촌이라는데, 기회가 되거든 좀 일깨워 주시게나. 지금은 1960년대가 아닌 2010년대라고 말일세. 21세기에는 충청도를 비하하는 말인 ‘멍청도’라는 말을 더 이상 듣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고향이 충청도와 이웃한 경기도 여주인데다, 충주, 대전, 청주에서 합계 4년 3개월 남짓 근무한 까닭에 충청도는 촌부에게 제2의 고향처럼 아늑한 곳이라네. 서대산이 제대로 대접을 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도 되겠지?

대사,

이제 곧 5월이네.

이 봄에는 대사와 더불어 산천경개를 둘러 볼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맺네.

무탈하시게.

임진년 4월의 마지막 날에

범의가 썼네.

 

 

 

 

 

 

 

 

 

 

 

 

 

서대산1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