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멀지 않은 곳(3)

 

 

 마사이마라


   8월 11일, 나쿠루 국립공원에서 마사이마라로 이동했다. 교통편은 경비행기이다. 1시간 정도 걸린다. 오후 1시 2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알렉스가 모는 자동차에 올랐다.
   경비행기는 1인당 짐을 11kg으로 제한하고 치약, 샴푸 같은 것은 가지고 타지 못한다고 하여, 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남는 것은 알렉스편에 나이로비의 사파리 파크 호텔로 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바로 이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식자우환(識字憂患)으로 아는 게 병이다. 비행기를 탄다고 하여 공항으로 가서 통상 하듯이 검색을 하고 타나보다 했더니, 비행기 타라고 알렉스가 내려 준 곳은 허허벌판이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흔히 나오는 푸른 초원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장면 그대로이다.
   그냥 여자 파일로트 두 명이 11인승 경비행기를 몰고 와 얼룩말들이 노는 초원에다 비행기를 착륙시키고는 나와 집사람 달랑 두 명을 태워 출발하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짐검색이 있고, 무게 제한이 있겠는가. 짐을 분리하여 싸느라고 괜한 고생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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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쿠루 초원의 비행장과 경비행기]

                              

   비행기에 오르니 승객 3-4명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다음 기착지에 내리고 나와 집사람 둘이 최종목적지 마사이마라 트라이앵글까지 타고 갔다. 우리가 내린 곳도 물론 허허벌판이다. 차이가 있다면 나쿠루공항(?)은 초원의 잔디밭이고, 마사이마라 트라이앵글공항(?)은 맨땅이라는 것이다. 


   마침내 동물의 왕국 마사이마라에 도착했다. 숙소는 키치와 템보(Kichwa Tembo) 캠프이다. 나이바샤와 마찬가지로 텐트촌인데, 규모가 커 텐트가 50여 동 된다.

 

   이곳 텐트에도 모기장이 쳐진 1인용 침대 2개와 샤워시설이 있다. 밤에는 역시 매우 춥다. 텐트 밖 풀밭에는 멧돼지들이 마치 제 집 안마당인 양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 아예 누워서 자는 놈도 있다. 밤에는 총이나 활을 든 경비원들이 밤새도록 순찰을 돈다. 캠프촌 중앙에 식당과 기념품점 및 사무실이 있다. 식당은 나이바샤 국립공원과는 달리 시설이 괜찮고, 술 마시는 바(Bar)도 옆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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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와 템보 캠프와 캠프촌의 텐트]

 

   음식은 채소는 신선하고 좋았으나, 평소 밀가루와 육고기를 멀리하는 나에게는 채소 외에는 달리 먹을 만한 게 없었다. 어쩌다 나오는 야채수프는 왜 그리도 짠지...  과거 영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런지 케냐의 어디를 가나 식당의 주 메뉴가 소고기 스테이크와 빵인 통에 힘들지 않을 수 없다.  후에 귀국하여 몸무게를 재보니 2kg 빠졌다. 아니 내 몸에 아직 더 빠질 살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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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앞의 멧돼지]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가이드 모세가 모는 차를 타고 오후 4시에 1차 사파리투어에 나섰다.  그런데 맙소사, 이곳이 처음이라는 이 마사이족 가이드, 너무나 낡은 차를 어찌나 험하게 모는지 구덩이에 처박기 일쑤이고 나무뿌리를 받았다가 빼도 박도 못하여 애를 먹기도 했다. 덕분에 동물의 왕국에서 행한 첫 사파리투어는 기린과 타조, 코끼리 몇 마리 보는 것으로 끝났다.

 

   저녁 식사 후 밤 7시 15분부터 캠프 중앙의 마당에서 마사이족의 전통춤 공연이 열렸다.  맨발에 붉은 색 전통의상을 걸친 마사이족 원주민들이 그들의 춤과 높이뛰기(마사이족은 제자리 높이뛰기를 제일 높이 하는 사람을 추장으로 뽑는다고 한다)를 보여 주었다.  공연 후에는 그들이 가져온 공예품을 바닥에 늘어놓고 팔았는데, 사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안쓰러웠다. 캠프 측으로부터 공연료를 받는다면 모르되, 만일 그렇지 않다면 공연하느라 공연히 땀만 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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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 공연]

 

   텐트로 돌아오니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다. 캄캄한 하늘에 한 점 떠 있는 그 달이 매혹적이어서 시험 삼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18배 줌의 위력일까, 단순한 콤팩트카메라임에도 생각 밖으로 사진이 선명하다.
   이역만리 아프리카 마사이마라에서 본 초승달이라, 괜스레 낭만적인 분위기에 젖어든다. 서울에서 보는 달이나 아프리카에서 보는 달이나, 그 달이 그 달이건만, 거기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의 심성은 어찌 설명하여야 하나. 집착과 분별을 버려야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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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의 초승달]

 

   8월 12일, 새벽부터 사파리 투어를 하는 날이다. 아침 6시가 되니 캠프 측에서 텐트로 커피, 카모마일, 핫초코를 보온병에 담아다 준다. 새벽 사파리투어를 가는 관광객을 위한 배려이다. 텐트에는 별도의 유선전화가 없으므로 모닝콜의 기능도 하는 셈이다.  

 

  아침 6시 30분, 서울에서 가져온 두꺼운 겨울점퍼를 걸치고 모세가 모는 낡은 SUV에 올랐다. 평원으로 나서니 동녘으로 해가 막 얼굴을 내미는 참인데, 벌써 열기구들이 하늘에 떠 있다. 너무 부지런한 인간들이 동물의 왕국 아침시간의 정적을 깨우는 것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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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

 

    어제 이렇다 할 동물을 보여 주지 못한 보상을 하려는 것일까, 모세가 부지런히 차를 몰더니 암수 사자 한 쌍이 있는 곳으로 인도한다.  이른 시간이건만 이들 사자는 이미 아침식사를 마친 것일까, 무료한 눈빛이다. 보통 밤에 먹이사냥을 한다고 하니 간밤에 포식하였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탄 차가 몰려와도(사자가 발견되면 사파리 차량들이 그곳으로 몰려든다) 멀뚱멀뚱 바라만 볼 뿐이다. 
   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설 사파리지역(동물들이 아무런 구획 없이 그냥 제 멋대로 사는 마사이마라에 비하여 이곳은 넓은 지역에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 동물들이 살게 하면서 관광객들에게 사파리투어를 제공한다)에 갔을 때는 사자 근처에서는 위험하다면서 입도 벙긋 못하게 하였는데, 이 천혜의 동물의 왕국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가이드 말로도 사자들은 배가 부르면 오로지 쉬거나 잘 뿐이며, 사파리차량의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뿐인가 인근에서 얼룩말이 뛰어 놀아도 오불관언이다. 마치 득도한 모습이다.  마침 암놈이 졸음이 오는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한다. 새끼들은 어디로 놀러갔는지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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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의 숫사자와 암사자]

 

   아침을 먹기 위해 캠프로 돌아가는 길에 코끼리떼를 만났다. 이 놀들이 길을 건너 이동하는지라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가까이서 본 코끼리들은 정말 거구이다. 그 거구를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풀의 양이 얼마나 될지 짐작이 안 된다. 배설하여 놓은 똥의 양이 엄청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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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너는 코끼리떼]

 

   아침 식사를 하고 9시부터 본격적인 종일 나들이에 나섰다. 그런데 가이드와 차가 바뀌었다.  모세의 가이드 솜씨와 그의 차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고생문이 훤할 듯하여 집사람이 어제 밤 ‘사랑아프리카 여행사’의 김충학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가이드와 차량을 바꿔 준 것이다.  

 

   가이드는 벤슨이고 차량은 신형 도요다 SUV이다. 벤슨 역시 마사이족 출신인데, 이곳에서만 가이드 10년을 한 베테랑이다. 본 소속은 "& Beyond"라는 아프리카 여행사이다. 이 여행사는 본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데, 탄자니아와 케냐의 어디를 가도 이 여행사 차가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규모가 무척 큰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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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투어 차량]

 

 

      아프리카의 동물의 낙원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와 케냐의 마사이마라로 대별된다. 그런데 이 두 지역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두 나라를 다 식민지로 두었던 영국이 그 시절 그냥 선을 그어 두 나라의 국경을 만들었고, 그러다 보니 세렝게티와 마사이마라가 나뉜 것뿐이지 본래 하나의 지역이다. 다만 세렝게티는 남쪽이다 보니 이곳의 겨울인 7-8월에는 동물들이 세렝게티보다는 북쪽(적도에 더 까갑다)인 마사이마라로 많이 이동한다. 먹이인 풀을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동물들에게 국경이 어디 있겠는가. 그들은 출국과 입국을 위해 열 손가락 지문을 찍을 필요도 없다. 먹이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관광객들도 이때에는 세렝게티보다 마사이마라를 더 찾는 것이다.

 


   그러면 마사이마라의 풍광은 어떤가. 단적으로 말해 아래 사진과 같다. 그냥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초원이다. 대략 제주도 넓이라고 한다. 그 곳에서 각종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초식동물은 풀을 뜯어먹고 살고, 육식동물은 그 초식동물을 잡아먹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의 원주민인 마사이족들은 전에는 사냥을 하였으나, 지금은 소나 양을 키우고,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고 공예품을 팔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이곳의 생존법칙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러 전 세계에서 몰려든다. 아직은 오염이 안 되었지만, 언젠가는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오염이 되고, 그렇게 되는 순간 동물들이 살 곳을 잃고 떠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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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의 풍광]

 

   지평선이 보이는 이 넓은 평원에 어디 가면 무슨 동물이 많다는 것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고 있는 노련한 가이드인 벤슨 덕분에 사자, 하이에나, 코끼리, 기린, 얼룩말, 원숭이, 하마, 물소, 멧돼지, 이름 모를 각종 새들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나무그늘에서 잠을 자는가 하면, 아예 나무에 올라가 큰 줄기에 배를 깔고 사지를 떨어뜨린채 잠을 자는 사자들, 3톤이나 되는 거구의 몸을 이끌고 강가나 초원지대에 나와 있는 하마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숲속을 돌아다니는 아프리카 물소(이렇게 혼자 다니는 놈은 대개 늙은 수놈으로 병이 들어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라고 한다), 마사이마라 강의 무법자 악어, 풀섶에 둥지를 만들고 낮잠을 즐기는 하이에나, 너무나 긴 목을 주체 못할 것 같은데도 용케 머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다니는 기린 등이 특히 인상적이다.

 

   집사람이 표범과 치타를 보기를 원해, 그들이 많이 산다는 지역의 숲속으로 일부러 찾아갔지만 끝내 볼 수 없었다. 이들은 사자처럼 낮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동작이 날쌔서 이곳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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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위에서 잠자는 사자와 홀로 떨어져 초원에 나온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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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 강의 악어와 풀섶의 하이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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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중인 기린과 아프리카 물소]

 

   이제는 마사이마라의 진정한 볼거리 중 하나인 누우떼를 보러 갈 차례이다. 마사이마라를 가로지르는 마사이마라 강을 건너 이동하는 모습이야말로 장관 중의 장관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벤슨이 그곳으로 차를 몰아가니 벌써 수많은 차량들이 강의 양쪽으로 몰려와 있다. 그 중에는 방송차량도 보인다. 그러나 정작 강에는 하마와 악어만이 헤엄을 치며 위아래로 왔다 갔다 할  뿐 누우떼는 보이지 않는다. 벤슨 말이 끈기를 갖고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가져간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고 낮잠도 자며 2시간 30분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보람이 있었을까. 강 건너 쪽 모래밭에 먼지가 일더니 일단의 누우떼가 몰려와 정렬을 한다. 마치 잘 훈련된 군인들처럼 질서정연하게 늘어선다. 얼룩말도 보인다. 꼽사리 껴서 함께 건너려는 모양이다. 드디어 장관을 보는구나 하는 순간, 이를 어쩌랴, 기대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강에 있는 악어떼들(이놈들은 누우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이 군침을 흘리는 것을 본 누우떼들이 발길을 돌려 되돌아 간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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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 강의 누우떼]

 

    혹시 다시 오지 않을까 하고 1시간을 더 기다려 보았지만 한번 발길을 돌린 누우떼들은 어찌 그리도 야속한지, 돌아올 줄 모른다. 망할 놈의 악어들만 없었어도 멋진 구경을 하는 건데....
    하긴 우리야 단순히 구경삼아 기다린 것이지만, 그 악어들은 생존이 걸린 먹잇감을 기다린 것이니 탓할 일만도 아니다. 허탕 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악어새들이다. 용케 알고 때맞추어 찾아온 그 새들은 어떻게 배를 채울지 궁금하다.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마사이마을로 차를 돌렸다.

 

마사이 마을

 

   마사이 마을은 마사이부족 중에서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마사이마라에는 이러한 마을이 여럿 있는데, 그 중 한 곳을 찾았다. 입장료가 1인당 40달러이니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입장료는 캠프에서 받는 것을 보면 캠프와 마사이 마을 사이에 협약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마사이마라에 있는 산 중턱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한다. 전부 고유의 화려한 전통복장 차림으로 맨발이다. 그 중 추장은 나이가 젊은 편인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어릴 적에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학교에 걸어서 통학했다고 한다. 최고령의 노인은 나이가 90세 전후인 듯한데 여전히 정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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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마을의 사람들]

 

   다소 늦은 시각이라 관광객이라야 나와 집사람 둘뿐인데, 관례에 따라 10여명이 둘러서서 전통춤과 제자리 높이뛰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무를 비벼서 불을 피우는 시연도 하였다.
   그들이 사는 움막 같은 집안으로 추장이 안내를 해서 들어서는 순간 깜깜 절벽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햇빛이 전혀 안 들어오는 것이다. 휴대전화기의 플래시 기능을 이용하여 비추자 겨우 내부가 보였다.  흙바닥이긴 하지만 침실도 있고, 부엌도 있다. 그들이 마시는 우유가 병에 담겨져 있는데, 추장이 한 모금 마시고는 나더러 마셔 보겠냐고 한다. 물론 정중히 사양했다. 내 비위로는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그런 곳에서 사는 게 용하다. 세수는 하면서 사는 걸까. 차마 못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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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 안]

 

   다시 밖으로 나오니 양지 바른 곳에 여자들과 아이들이 모여 있다. 마사이족은 일부다처제로 남자가 처를 4명까지 거느릴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들이 질투심이 없어서 그 4명의 처가 사이좋게 지낸다고 한다. 순서를 그르쳐 한 여자의 집에 연속해서 이틀 가면 그 여자가 어제도 왔으니 오늘은 순서대로 다른 집으로 가라고 한다고 한다. 천사인가, 아니면 숙명으로 받아들인 체념의 결과인가? 헷갈린다.
   마침 두 여자가 출생한 지 한 달밖에 안 되는 갓난아기를 각기 안고 있어 물어보았더니 한 아버지의 자식으로 같은 날 태어났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배 다른 쌍둥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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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마을의 여인들]

 

   코흘리개 아이들의 얼굴에는 파리가 들끓는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조차도 그 파리를 쫓을 생각을 안 한다. 흔히 사용하는 ‘물 반 고기 반’이라고 하는 말을 원용한다면 ‘얼굴 반, 파리 반’이다.  미리 준비해 가져 간 사탕을 나누어 주니까 너무 좋아한다. 돈은 주면 안 된다(버릇이 나빠지기 때문이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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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마을의 아이들]

 

    추장이 마지막으로 안내한 곳은 그들이 만든 공예품을 파는 곳이다. 엉성한 판매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물건들을 진열하여 놓았다.  각종 구슬로 만든 목걸이, 실내장식품, 그들이 입는 붉은 색 옷감 등이 주된 상품이다. 가격이 의외로 비싼데 관광객이 깎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비싸게 부르는 듯하다. 흥정하면 반값 이하로 깎아 주니 말이다.
   그 사이 소떼를 몰고 나갔던 목동들이 마을로 돌아왔다. 나이도 어린 목동들이 차질 없이 소떼를 몰고 다니는 것이 용하다. 그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으니 훈련을 잘 받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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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 마을 기념품 장터와 소떼]

 

   마사이 마을을 나오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들도 분명 나와 같은 인간인데, 저들은 저 생활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나더러 그 안에 들어가 살라면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할 텐데 말이다. 전에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근처 씨엠립강의 수상가옥마을에 갔을 때도 그랬다.


  인간의 행복은 과연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일까. 방글라데시의 사람들이 삶의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말이 정말로 옳은 것일까. 나만의 틀 안에서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면서 살면 그게 곧 지상낙원일까. 아니다. 적어도 아직까지 나의 머리로는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도를 깨친 부처님이나 고승대덕이라면 모를까 한낱 필부에 불과한 나에게 그것은 단지 현실도피로 보일 뿐이다. 틀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워서 의도적으로 틀 안에 안주하며 행복을 주장하며 자기합리화를 도모하는 것이 아닐는지...
 

   그런 삶은 멀리 마사이마을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주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윤리도덕, 인습과 제도의 틀, 이념과 사상의 틀이 마사이 마을의 울타리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8월 13일, 나이로비로 돌아가는 날이다. 경비행기가 오전 10시 15분에 출발할 예정이기 때문에 아침 식사 전에 다시 사파리투어를 했다.
   동물들은 이미 볼 만큼 보았는지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기 위하여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마침 기린 한 마리가 아침 산책을 하는지 초원 위를 천천히 걸어 내가 타고 있는 차 바로 옆을 지나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하마 한 마리가 물에서 초원으로 나와 풀을 뜯어 먹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하마는 보통 하루에 풀을 40kg 정도 먹는다고 한다. 모두 아침 이른 시간에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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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 평원의 아침]

 

    마사이마라의 드넓은 평원을 카메라에 계속 담으며 마사이마라 강변으로 갔다. 마사이족 담요를 두르고 악어가 있는 강을 바라보면서 마사이족의 정서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드넓은 초원이야 두고두고 생각이 나겠지만, 아무래도 피부에 절실하게 와 닿지 않는 마사이족의 생활과 정서는 곧 망각의 저 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나 또는 다른 사람이 마사이 마을에 가 보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권할까, 아니면 말릴까? 동물의 왕국은 꼭 가보라고 하겠지만, 마사이 마을은 무엇이라고 할지 자신이 없다. 굳이 가보겠으면 가보라고 하겠지만 권하지는 않겠다고 하지 않을까. 멀리 산 중턱의 어제 가서 본 마사이 마을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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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 강변]

 

    아침 식사 후 맨땅 공항(?)으로 나갔다. 경비행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미 많이 와 있다. 예정보다 비행기 출발시각이 늦어진다. 나이로비에서 비행기가 와서 이곳 승객을 태우고 다시 나이로비로 돌아가는 식인데, 오는 비행기가 늦어진 것이다. 이를 기화로 잽싸게 과일과 주스 같은 음료수를 차에 싣고 와 파는 사람도 있다. 이곳은 허허벌판이라 비행기 기다리는 동안 햇볕을 피하라고 원두막 비슷한 것을 하나 세워 놓았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의 여행경험, 다음 행선지에 관해 담소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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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마라의 공항 원두막]

 

  마침내 오전 11시에 기다리던 비행기가 오고, 그동안 수고한 가이드 벤슨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마사이마라를 떠났다.  마사이마라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마사이마라 강과 그 주위에 엄청난 수의 누우떼가 대평원을 이동하는 모습이 비행기의 창문 아래로 내려다보인다.  아마도 앞으로 내가 생전에 다시 올 일은 없을 테니 잘들 살라고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나이로비

 

  오전 11시에 마사이마라를 출발한 경비행기가 12시 30분에 나이로비의 윌슨 공항에 도착하였다. 나이로비 국제공항은 화재의 악몽에서 아직 덜 깨어난 상태이다. 윌슨 공항은 경비행기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사랑아프리카 여행사의 김충학 사장님과 알렉스가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한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밥과 국, 김치가 어찌나 맛있던지 한 그릇을 금방 비웠다.


   식사 후 민속공예품점과 대형 쇼핑몰에 잠깐 들렀다가 카렌(Karren) 박물관으로 갔다. 실존인물이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의 주인공인 카렌이 살던 집을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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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박물관 표지판과 카렌의 생전 모습]

 

  건물의 외관은 영화 속에 나오는 그대로이다. 내부에는 카렌이 당시 살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여 두고 있다. 그녀의 생전 모습을 찍은 사진, 그녀가 쓴 책들도 전시되어 있다.

 

   사랑이 아니라 돈과 명문가의 후광만으로 맺어진 결혼생활에 투영된 유럽 제국주의의 종말을 아프리카의 삶과 풍광에 담은 카렌 블릭센(Karren Blixen, 1885-1962)의 자전적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1937년에 초판이 출간되었는데,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1985년에 시드니 폴락 감독에 의해 영화화됨으로써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이, 카렌은 죽어서 소설과 영화를 남긴 것일까. 영화 속의 케냐인들(기쿠유족)은 제대로 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데, 그 케냐인들이 카렌 박물관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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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박물관 전경]

 

     카렌박불관의 뒷마당 뜰에서는 멀리 산봉우리 5개가 보인다. 그 너머 어디에선가 카렌의 연인 데니스(‘아웃 오브 아프리카; 영화 속의 로버트 레드포드 분)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래서 카렌은 데니스가 생각날 때는 이 뒤뜰의 의자에 앉아 그 산봉우리들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고 한다. 애틋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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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박물관에서 바라본 5봉]

 

 

    카렌박물관에서 나와 숙소인 사파리 파크 호텔로 갔다. 호텔 내의 바비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커다란 공연무대를 갖춘 이 식당에서는 소, 돼지, 닭은 물론이고, 양, 멧돼지, 악어, 타조, 사슴 등 각종 동물을 불에 구워 주방장이 각 식탁을 돌며 즉석에서 썰어준다. 작년 4월부터 육(肉)고기를 멀리해 온 나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메뉴였는데, 같은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한 한국대사관의 허영 서기관님, 사랑아프리카 여행사의 김창학 사장님이 어색하지 않게 각 고기마다 한 점씩만 달래서 먹었다. 타조고기는 무척 질겼고, 악어고기가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에 무대에서는 아프리카 민속춤과 서커스를 공연하였는데, 건장한 흑인 남녀들의 율동이 볼 만했다. 흑인 노예 시절이나 식민지시대를 연상케 하는 처연한 음악이나 춤이 나올 줄 알았으나, 기대와는 달리 시종일관 템포가 빠르고 경쾌했다.
   그런데 그 공연자들 중 1급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금 한국의 워커힐이나 파라다이스호텔에 가서 공연하고 있고, 이 날 공연자들은 2급에 속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멀리 서울에서 왔는데, 정작 본토에서는 1급 공연을 못 보고 그걸 보려면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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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파크 호텔 식당의 공연]

 

   이 날은 마침 나와 집사람이 결혼한 지 30주년 되는 날이다. 호텔 측에서 식탁에 샴페인과 기념 케이크를 준비하여 주었고, 허영 서기관님과 김충학 사장님은 물론 식당에 온 다른 손님들이 함께 축하를 해 주어 의미 있는 만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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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0주년 기념케이크]

 

   사파리 파크 호텔은 30여 년 전에 한국의 전낙원씨가 이곳에 세운 호텔이다.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부지에 객실은 모두 2층 이하의 목조건물로 지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울창한 숲속의 곳곳에 각종 연회장, 식당, 정원, 수영장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아침에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 한참 동안 산책을 하다 보면 마치 수목원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인이 세운 만큼 부페식당에는 밥과 김치, 그리고 국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 그래서 특히 한국에서 귀빈이 나이로비에 오게 되면 대개 이 호텔에서 머문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지은 지 30여 년이 지난지라 객실의 시설이 낡았다는 것이다. 내가 현 경영진의 생각을 알 수는 없으나, 시설을 리모델링하여 한국의 신라호텔이나 롯데호텔 같은 유수의 호텔과 협약을 맺어 위탁경영을 한다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호텔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부분의 길이 왕복 2차선인 나이로비에서 유일하게 이 호텔 앞은 8차선 도로가 뚫려 있어(중국에서 공짜로 이 길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공항이나 시내에서 접근성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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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파리 파크 호텔의 정원]

 

케냐 대법원 

 

   8월 14일, 한국대사관의 김찬우 대사님, 한은실 서기관님과 함께 케냐 대법원을 방문했다. 무퉁가(Willy Munyoki Mutunga) 대법원장은 나이가 67세인데도 젊어 보였다. 귀고리를 한 게 인상적이다. 한국과 케냐의 사법제도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 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케냐 법관들의 한국 연수를 제안하자 대법원장이 흔쾌히 동의하였다. 한국의 발전된 모습을 케냐의 법관들에게 보여 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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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대법원장과 함께]

 

     케냐는 2010년에 헌법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에 의하면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이 철저하게 분립되어 있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기는 하지만, 사법위원회(Judicial Service Commission)에서 추천하고 국회에서 동의한 인물을 임명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권한이 형식적이다. 법관들도 사법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러한 사법위원회는 대법원, 항소법원, 고등법원, 하급법원(치안법원)의 법관들, 법무부장관, 변호사, 시민대표자 등으로 구성된다.

 

   대법원은 예산편성권도 주어져 있어, 우리와는 달리 예산을 독자적으로 편성하여 국회에 제출한다. 고등법원에서 다시 항소법원을 거쳐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대법원의 사건은 많지 않다고 한다. 상고사건의 폭주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대법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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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대법원 앞에서]

 

   케냐 법원의 위상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건이 지난 4월에 있었다. 아래는 대법원장이 이날 나에게 직접 들려 준 이야기이다.


   당시 신헌법에 의한 최초의 대통령 선거를 하였는데, 1차 투표에서 여당 후보자가 과반수에서 4,000표(0.03%)를 더 얻었다. 케냐의 선거법으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2차 결선 투표를 하여야 한다. 인구가 4,270만 명(그 중 총 투표자는 1,233만 명)이고, 문맹률이 높고, 43개 부족이 전국에 흩어져 사는 이 나라에서 과반수를 겨우 4,000표 넘겼다는 집계결과는 쉽게 승복할 수 있는 표차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당연히 야당 후보가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하였는데, 6명의 대법관(본래 대법관이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모두 7명이다)이 며칠 논의한 끝에(재검표를 한 것이 아니다) 여당후보의 당선을 확정지었다. 놀랍게도 대법원의 이러한 결정에 야당후보가 승복하고, 언론도, 국민들도 더 이상 시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법원 앞에서 시위 한 번 벌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2000년 11월의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플로리다주의 개표결과에 대한 재검표를 중지시키고 공화당 부시 후보의 당선을 선언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결정에 민주당 고어 후보도 국민도 모두 승복한 것을 연상시킨다. 우리라면 어땠을까? 과연 이렇게 승복하고 조용했을까?

 

   '입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민주주의',

 

케냐 대법원을 나서면서 떠올린 화두이다.     

 

     케냐 대법원에서 나와 점심식사를 한 후 구슬공예품(Beads & Pottery)을 만드는 공장을 견학했다. 이 공장은 유리구슬을 이용한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곳인데, 대부분의 직원들이 미혼모이다. 자칫 손가락질 받으며 사회의 낙오자가 될 수 있는 그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자립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공장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시종 활기찬 모습으로 열심히 일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한 줄기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상의료, 무상 교육’ 등의 거창한 구호 대신 이처럼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복지가 아닐는지.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 뒤 원각사의 열악한 무료급식시설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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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공예품 공장]

 

 

   공예품 공장을 나와 커피 볶는 공장을 견학하러 차로 이동하는 사이에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 폭우가 쏟아진다. 아스팔트 차도 옆의 비포장 인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흙탕물로 차도가 순식간에 넘쳐난다. 도로의 배수시설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것이다. 하늘에서는 천둥번개 치고, 흙탕물 공세를 받은 차들이 도로 곳곳에 멈춰서 있다. 케냐는 지금 비가 안 오는 건기인 겨울인데, 그야말로 청천벽력의 날벼락이다. 바야흐로 온 지구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로비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악명이 높은데, 장대비가 쏟아지니 아수라장이다.


   결국 커피 공장 견학을 포기하고 대사관저로 갔다. 김찬우대사님 주최의 만찬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관저는 고급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는데, 대문에 총을 든 경비가 지키고 있어 놀랐다. 사연인즉, 무장강도들이 많아 그런다는 것이다. 대사관저의 요리사도 장을 보아 오다가 바로 대사관저 앞에서 세 번이나 강도를 당했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서양 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놀라고 좋은 것 중의 하나가 활기가 넘쳐 나는 밤과 그 밤에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새삼 서울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찬우 대사님 사모님이 정성들여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며 케냐 생활의 이모저모에 관하여 담소를 즐기는 동안 케냐에서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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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우 대사님과 함께]

 

다시 서울로

 

   8월 15일, 교통체증과 공항 사정이 어쩔지 몰라 일찍 호텔을 나섰다. 공항의 불탄 건물이 그대로 있다. 임시로 천막을 쳐서 사용하고 있는 대합실은 북새통이다. 공항이 제대로 복구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다행히 비행기는 제대로 뜬다. 공항 사정을 잘 알고 잇는 대한항공 나이로비 지점장님의 도움으로 출국절차를 신속하게 밟을 수 있었다. 마침내 오전 10시 30분, 서울로 가는 대한항공이 출발했고, 긴 아프리카 여정도 막을 내렸다.
  8월 16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타고 공항고속도로로 올라서는 순간 잠시 헷갈렸다. 마치 푹신한 양탄자 위를 차가 달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겨우 보름 만에 터덜거리는 길에 익숙해졌던 것일까. (끝)


(추신) 보름 동안의 아프리카 여정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국내외에서 모든 일정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안내하여 주신 여러 관계자분들,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국위 선양과 교민 보호를 위하여 불철주야 애쓰시는 정일, 김찬우 대사님을 비롯한 공관원 여러분들, 대한항공 나이로비 지점의 박진성 지점장님, 그리고 아루샤에서 나이로비까지 먼 길을 선뜻 데려다 주신 박은파님, 장성호 목사님,  이 모든 분들께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