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한 생각을 하지 마라(민주지산)

2010.02.16 11:54

범의거사 조회 수:9855

 


           한가한 생각을 하지 마라
         

                                                                    
  2002. 6. 6. 현충일이다. 이처럼 주중에 휴일이 있으면 난감해진다. 더구나 그것이 목요일이면 더욱 그렇다. 서울에 다녀오자니 수요일 밤에 갔다가 금요일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대전에 내려와 토요일 오후에 다시 올라가야 한다. 결국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몸만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차라리 서울 가는 것을 단념하고 택한 것이 민주지산 등산이다. 마침 이 산을 올라본 경험이 있는 琴덕희 판사가 한 번쯤 가볼 만하다고 적극 추천하여 길을 나섰다.

  아침 8시 30분에 대전의 법원 마당을 출발하여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대전권역을 벗어나서 본격적으로 南行을 시작하자 명색이 고속도로인데 주위에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그 산 속에다 고속도로를 내려니, 그것도 경제력과 기술력이 미미했던 1960년대 말에 경제개발의 의욕 하나로 서둘러 건설하려니, 꼬불꼬불 산골길을 단지 4차선 아스팔트길로 넓혀 놓는 데 만족해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는 당시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우리는 우선 길을 내는 것이 급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우리도 산이 막으면 굴을 뚫고, 물이 막으면 다리를 놓으며 일직선으로 된 고속도로를 건설할 수가 있게 되었다. 이제는 꼬불꼬불 고속도로에서 일어나는 대형 사고를 그대로 방치할 단계는 지난 것이다. 지금 한창 진행중인 영동에서 김천까지 경부고속도로를 직선화하는 작업, 이 작업은 사실은 고속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달리는 차창으로 그 공사현장을 바라보며 발전해 가는 우리의 국력에 뿌듯함을 느끼는 사이 어느새 차는 황간 인터체인지를 벗어나 곧바로 우회전하여 579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운전대를 잡은 오석룡 사무관의 모습이 듬직하다. 매곡면, 상촌면 등의 이정표를 뒤로 하고 산길을 달리기 30여분 드디어 물한리 주차장이다. 시멘트 포장을 한 주차장은 그 넓이가 민망할 정도로 차가 별로 없다. 등산객이 그만큼 적다는 이야기다. 주차료를 징수하는 것이야 이해가 되는데, 이건 또 뭔가? 오물수거비를 내란다. 등산객과 피서객이 산과 계곡을 더렵혀 놓으니 그 청소를 위하여 돈을 받는다는 것일 게다. 그런데 그 징수자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아무리 보아도 군청이나 면사무소 같은 행정관청에서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돈을 받아 정말로 청소비에 사용하는지는 더더욱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시비할 일도 아니기에 얼른 내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전 10시.

  산행을 시작하기에 결코 이른 시각은 아니지만, 등산로 초입에 그려져 있는 산행지도에 의하면 민주지산 정상까지 곧바로 올라갈 경우 2시간 정도 걸린다(삼도봉도 마찬가지이다)고 되어 있으니 늦은 시각도 아니다. 물한계곡을 가운데 두고 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을 차례로 올랐다가 다시 출발지로 내려오는 코스와, 반대로 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을 올랐다가 출발지로 내려오는 코스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망설였다.
  입체적으로 그려진 산행지도상으로도 그렇고 琴판사의 말로도 물한계곡에서 삼도봉 가는 null길은 완만한 데 비하여 민주지산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갈 길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하면 산은 경사가 급한 곳으로 올라갔다가 완만한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만 무릎에 무리가 안 가기 때문이다.

  여행의 진정한 기쁨은 돌아올 것을 잊고 출발할 때 느끼듯이, 등산의 진정한 맛은 내려올 것을 잊고 출발할 때 느낄 수 있건만, 언제부터인가 그리고 특히 월출산을 다녀와 무릎수술을 한 후부터는 산에 오르기에 앞서 내려올 걱정을 하면서 출발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쇠해져 가는 신체를 어이하랴....    

  오늘 산행의 출발지인 물한계곡, 0625_02.gif다소 과장되게 표현하여 우리 나라 최대의 原始林지대라고 불리는 곳이다. 계곡 초입의 동네도 행정구역이 이 계곡 이름을 따서 충청북도 상촌면 물한리이다.
  물한계곡엔 물이 많다. 미나미골, 음주암골, 백일산제골, 속새골, 배나무골, 각호골 등 이름도 다양하게 붙여진 깊은 골짜기에서 쉼 없이 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 물들은 황간 어간에서 추풍령천과 만나 멀리 금강으로 흘러든다.
  울창한 나무들의 숲이 하늘을 가리고, 그 속의 바위틈을 따라, 때로는 바위를 넘어 산삼 썩은 물이 소리내며 흐르는 곳, 이 곳의 이름이 왜 하필이면 물한계곡일까? 물(水)이 너무 차서(寒) 그렇게 붙여진 걸까? 그러나 계곡 초입에 세워진 큰 바윗돌 標石에 씌어진 한자이름이 “勿閑溪谷”인 것을 보면 물이 찬 것과는 거리가 먼 이름이다. 물이 찬 것으로 치면야 이 나라 금수강산에 어디 이 곳뿐이랴.

  그렇다면 “한가롭지 마라(勿閑)”,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번잡한 대처를 피해 큰 맘 먹고 이 인적 드문 원시림지대의 계곡에 들어왔는데 한가롭지 말라니....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탁족(濯足)이라도 할 량이면 그보다 더 한가로운 게 없을 텐데.... 하릴없는 山客의 이러한 궁금증을 아래의 인터넷 싸이트가 풀어준다.  

   “ㆍㆍㆍㆍ계곡 초입에서부터 물한(勿閑)이라는 한자 이름이 여간 거북살스럽지 않다. 그냥 이 고장 사람들처럼 사철 마르지 않을 만큼 물이 많아서 생긴 이름이라고 생각해도 안될 건 없겠지만, 대동여지도에도 물한(勿閑)이라고 똑똑히 적혀 있으니 그 속내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말 그대로라면 '한가로움이 없다' 또는 '한가롭기를 바라지 말라'는 뜻일 텐데, 이런 깊고 한적한 계곡에서 한가롭지 말라니, 그럼 한가로움은 어디서 찾으란 말인가. 물론 궁벽한 산촌의 삶을 꾸려나가려면 한가하게 계곡에 앉아 탁족(濯足)이나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런 운치 없는 발상으로 생겨난 이름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ㆍㆍㆍㆍ이런저런 책을 다 뒤져도 수긍할 만한 해답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역시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이 그저 생긴 것이 아니다. 『전등록(傳燈綠)』에 '한공부(閑功夫)'라는 말이 있다. '하찮은 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또 선가(禪家)에서는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쓸 데 없는 생각이나 분별'을 '한망상(閑妄想)'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물한(勿閑)이라는 말 또한 '(이 계곡에 들어와서는) 쓸 데 없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는 뜻으로 새겨도 되지 않을까. 저으기 위안이 된다. 한편으론 귀동냥을 한 걸 가지고 견강부회를 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지만ㆍㆍㆍ”(http://www.buddhapia.co.kr/mem/hyundae/auto/newspaper/261/c-17.htm)

  勿閑의 의미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면 이내 황룡사라는 절이 나타난다. 0625_03.gif창건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절인지라 특별히 볼 만한 것은 없다. 이 절을 지나면서부터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넓은 등산로가 시작되는데, 아뿔싸, 계곡과 길을 파란 철망이 갈라놓는다. 몇 군데 출입문을 만들어 놓았기는 하지만 여름철 피서객들의 무분별한 출입으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란다.


  이 계곡보다 훨씬 더 지명도가 높아 여름이면 사람들이 들끓는 七仙계곡(지리산), 12선녀탕계곡(설악산), 송계계곡(월악산), 화양계곡(속리산)... 그 어디서도 못 본 철망이다. 이 계곡이 TV에 몇 번 소개된 후 한 여름이면 사람들이 몰려와 계곡에서 취사를 하는 통에 궁여지책으로 철망을 설치하였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가로움조차 경계했던 우리 조상들의 선비정신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흐르는 물소리를 귀로나 듣자꾸나.

  심란한 마음이 다행히도 오래 가질 않는다. 하늘을 찌르는 낙엽송 숲, 그리고 이어지는 잣나무 숲이 雄姿를 뽐내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참으로 잘도 생겼다. 그 그늘에 앉아 쉬어감직도 하지만 갈 길이 바쁘다. 등산을 시작한 지 이제 경우 20여 분밖에 안 지난 것이다.

   잣나무 숲을 지나자 오른쪽으로 속새골로 들어서는 민주지산 안내판이 나온다. 넓은 등산로를 따라 계속 직진하면 삼도봉으로 바로 가지만, 이미 작정한 대로 민주지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부터는 오솔길이다. 역시 숲이 우거진지라 하늘은 잘 안 보인다. 덕분에 얼굴이 탈 염려가 없어 좋다.    

  오솔길로 접어든 지 10분만에 민주지산 2.6Km라는 안내판이 나오고 길이 좌우로 갈린다. 왼쪽은 일견하여 평평한 길이고, 오른쪽은 돌밭의 너덜길이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등산객 한 분이 평평한 길로 가라고 일러주었건만 굳이 너덜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이 민주지산을 오르는 지름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 일행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몇 명 안 되던 사람들도 그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내심 안심하면서...그리고 이것이 고생을 자초한 선택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면서... 

 
  이 돌밭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30여 분 계속된다. 그리고 좁은 산길로 바뀌는데 경사가 매우 급하다. 琴판사는 지난번에 이 길로 하산을 하였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하산하기에는 부적절하다. 내가 이런 길로 내려가다가는 금방 무릎을 부여잡고 뒹굴 판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앞만 보고 얼마를 올랐던가, 마침내 발 아래로 경치가 보이기 시작하고 쉬어가기 딱 좋은 능선에 다다랐다. 배꼽시계는 12시를 막 지나고 있다. 정상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한 숨 돌리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데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다. 과거 치악산에 가서도 두 번이나 그런 경험을 해서 심한 고생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 나라 산에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정표가 없는 예가 흔히 있다. 외줄기 길이라 이정표가 그리 필요하지 않은 곳에는 잘도 서 있는 안내판이 정작 삼거리 같은 꼭 있어야 할 곳에는 없는 것이다.


  아, T자형 삼거리인 이 능선의 쉼터가 또 그럴 줄이야!
  왼쪽에도 봉우리가 보이고 오른 쪽에도 봉우리가 보이는데, 어느 봉우리가 민주지산 정상이란 말인가? 마침 오른 쪽에서 등산객 한 분이 내려온다. 그 쪽이 정상이냐고 하니까 “글쎄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그래서 그냥 돌아오는 길이에요” 하면서 지나간다. 그 때 우리 뒤를 따라 올라온 등산객 두 분이 너무도 자신 있게 말한다.

  “오른쪽으로 10분만 가면 바로 민주지산 정상이에요”

  말하는 투가 이 곳을 자주 올라온 분들 같다. 이 분들 말을 듣고 10분 후면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오른쪽으로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두 개 넘어섰다. 그리고 다시 올라선 봉우리. 그 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민주지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고, 측량을 위한 삼각점만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는 저 멀리 아득히 높은 봉우리가 보이고....


  琴판사 말이 여긴 정상이 아니란다. 자기가 올랐던 정상은 이렇게 안 생겼단다. 맙소사, 나중에 안 일이지만 민주지산 정상과 각호봉 사이의 삼각점봉에 올라간 것이다. 남은 일은 부리나케 회군하는 것뿐이다, 갑자기 등산화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일까? 운동화를 신고 온 金하늘판사는 여전히 발이 가벼울까?
  한 시간 가까이 헛수고를 하면서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통에 배만 더 고파온다. 이제는 떠들 기운도 없다. 능선길임에도 불구하고 우거진 숲 덕분에 그늘 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오후 1시 30분.

  드디어 민주지산 정상(1,242m)이다. 북쪽으로는 각호봉(1,176m)이,0625_04.gif 동남쪽으로는 석기봉(1,200m)과 그 뒤로 삼도봉(1,177m)이 우뚝 솟아 한 눈에 들어온다. 이들 봉우리들이 높낮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 밋밋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민두룸한 산이다.


  그러고 보니 '민주지산(岷周之山)'이라는 이름의 뜻이 어렴풋이 다가온다. '산이름 岷 또는 봉우리 岷'자에 '두루 周'자이니 이 고장의 사투리로 '민두룸한 산'을 일제 강점기 때 지도를 만들면서 한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 오늘의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게 설득력이 있게 들린다.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에는 백운산(白雲山)이라고 표기되어 있건만 말이다.

  그저 민두름하기만 한 산이기에, 기암절벽이나 폭포 따위를 매력이라 말하지 않기에, 0625_05.gif여느 산처럼 빼어난 절경이나 화려한 불교유적을 자랑하지도 않기에, 그래서「無慾의 山」으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산의 나무도 풀도 없는 맨 땅의 민둥봉우리에서 쇠파리와 벌, 그리고 심지어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며 등산객한테 달려드는 것은 왜일까?

 

   주위를 둘러보면서 정상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할 정도인 이들 微物들이 이 산의 주인은 정녕 아닐진대, 자기들의 영역을 침범한 산사람들을 몰아내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달려드는 이유를 모르겠다.
  거기에다 주위에 더 이상 오를 높은 봉우리가 없건만, 정상 등정을 알리려고 서울에 아무리 전화를 하려 해도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이유는 또 뭐란 말인가....    

  정상에서 석기봉 쪽 200m를 내려오자 물한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 나타난다. 처음 목표했던 바로 그 길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검토를 해보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국 처음에 잣나무 숲을 지나 오솔길에서 민주지산 2.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을 때 너덜길이 아닌 평평한 길을 택했어야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차는 떠난 뒤이고 그나마 맞는지 여부를 검증할 길도 없는 결론이지만...
  
  대전부터 싸 가지고 온 김밥이 너무 맛있다. 아침에 생식 한 봉지를 물에 타 먹고 나온 게 전부인데다 3시간을 산 속에서 헤맨 뒤이니 그 밥이 맛없을 리가 없다.

   자, 이제는 배도 부르고 비록 도중에 큰 봉우리 두 개를 넘어야하지만 어떻든 하산길이니 좌우도 둘러보며 여유를 가질거나.    

  민주지산 정상에서 석기봉을 거쳐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4.1Km의 능선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길이 좁다. 능선의 오른쪽은 전라북도 무주이고 왼쪽은 물한계곡이 있는 충청북도 영동이다. 그 경계를 따라 걷는 이 능선길은 위로는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이 우거져 해를 가리고, 아래로는 山竹이 파랗게 덮여 있어 발끝을 건드린다. 봄에는 길 양쪽으로 진달래꽃이 계속 이어진다고 하는데, 이미 여름이 시작된 때인지라 녹음만이 나그네를 맞이할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삼도봉 쪽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이따금 만나게 되는데, 십중팔구는 나이가 지긋한 부부들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3개 넘어야 하는 이 등산코스를 부부가 같이 다닌다는 것, 그들이 함께 향유하는 건강한 정신, 건강한 육체, 부럽기 짝이 없다.    

  좌우 풍경을 만끽하며 微吟緩步할 수 있는 가벼운 산책로를 연상케 하는 능선길이 석기봉(石奇峰) 아래에 이르면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특히 석기봉 정상 바로 밑의 암릉(岩稜) 구간은 네 발로 올라야 한다.0625_06.gif 다리가 길어 머리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金하늘 판사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琴판사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가볍게 올라가 보는 이의 눈을 감탄케 한다.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음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석기봉 정상은 온통 바위뿐이지만, 민주지산 정상보다 쉬어가기가 한결 좋다. 쇠파리도, 모기도, 벌도 없고 오히려 시원한 바람만이 등산객을 반긴다. 마치 암릉을 오르느라 고생했다면서 위로하듯이...

   때문에 민주지산 정상에서 서둘러 쫓겨 내려온 아쉬움을 이 곳에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 유일한 흠이라면 석기봉임을 알리는 길쭉한 푯말이 너무 멋이 없다는 것이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는 1.5Km인데 능선을 따라 작은 오르내리기를 몇 번 하다 보면 이내 三道峰에 도착한다. 우리 나라에는 三道峰이 세 곳 있다. 지리산 삼도봉(1,530m. 경남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과 초점산 삼도봉 (1,250m. 경남 거창, 경북 김천, 전북 무주), 그리고 이 곳이다. 이 세 개의 삼도봉 중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모두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三道峰은 바로 이 곳 민주지산 삼도봉이다.

  백두대간을 타고 북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받아 한 줄기는 대덕산으로 가르고 다른 한줄기는 0625_07.gif덕유산으로 갈라 지리산과 맥을 이어주는 이 곳은 해발 1,177m의 산봉우리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펑퍼짐한데, 바로 그 곳에 민족 화합을 상징하는 三道和合塔이 우뚝 솟아 있다(1990. 10. 10. 세워졌고, 매년 10월 10일에 이곳에서 三道의 주민들이 모여 만남의 날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위에는 거북이 등에 올라탄 세 마리의 용이 검은 여의주를 받치고 있고, 그 아래 삼면에 충청북도(영동, 북쪽), 전라북도(무주, 남쪽), 경상북도(김천, 동쪽) 표시가 새겨져 있다. 그 옛날 신라와 백제의 경계가 되기도 했던 이 곳이 三道峰으로 명명된 것은 조선시대 태종 14년(1414년)에 조선을 8도로 분할하면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분기점이 된 이후부터라고 한다.

  이제야 터진 휴대폰으로 서울에다 삼도 화합의 기운을 전하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어느새 시계바늘이 오후 4시를 넘고 있다. 삼도봉에서 계속 능선을 타고 30 여분 내려가자 헬기장이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갈림길이건만 안내판은 역시 안 보인다. 이번만큼은 琴판사의 확실한 기억 덕분에 왼쪽으로 자신 있게 발을 내딛는다. 다시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다른 쪽 길로 내려가면 김천 쪽으로 빠진다.

  민주지산을 향하여 올라가던 길, 그리고 산 위에서의 능선길과는 달리 이 내리막길은 넓직하다. 그리고 완만하다. 물론 머리 위로는 계속 숲이 우거져 햇볕을 피할 수 있다. 그야말로 하산길로는 적격인 셈이다. 그 길을 따라 30여 분 내려가자 물소리가 들리고 계곡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물한계곡의 상류인 셈이다.


  드디어 濯足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흉물스런 철망도 없다. 등산화를 벗고 계곡에 발을 담그니 발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렇다면 저 아래 처져 있는 철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琴, 金 두 판사랑 물 속에 오래 발 담그고 있기 내기를 했다. 먼저 나오는 사람이 저녁을 사기로. 1997년에 사법연수원 교수들과 설악산 12선녀탕 계곡에 갔다가 오래 견디기 시합에서 1등을 한 경험이 새로워 자신 있게 도전했건만, 이번에는 보기 좋게 降書를 썼다. 내가 물 속에 발을 담그고 5분도 안 돼 발이 너무 시려 물 밖으로 나온 후에도 두 사람은 여유 있게 한참을 그대로 있다. 역시 젊음은 당해낼 재간이 없나보다.

  물한리 주차장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30분이다. 본래 6시간으로 예정했던 산행이 8시간 30분 걸린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한가로울래야 한가로울 수 없는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문제이지....(2002. 6.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