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세요~!(장성 백암산)

2010.02.16 11:56

범의거사 조회 수:9635


                     건강하세요∼!   
                          
                                         
  가을이다. 아니 가을이 서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며칠 전에는 霜降도 지나고 열흘 후면 立冬이니 말이다. 그 가을이 가는 것이 아쉬워 길을 나섰다. 지리산 종주를 다녀온 후유증도 이젠 어느 정도 가셨다.

  2002. 10. 29.

  대전고등법원 추계체육행사의 일환으로 설왕설래 끝에 정해진 산행지가 백암산이다. 처음 백암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니 대전에서 울진까지 가는 거냐?"고 반문하였다가 내장산 남쪽에 있는 전남 장성의 백암산이라는 대답에 머쓱해지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충남 금산에도 백암산이 또 있단다. 흔히 말해서 좁은 국토라고 하지만, 우리가 과연 내 나라 내 땅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침 9시. 대전을 출발하여 호남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는 차창에 어리는 농촌풍경은 가을걷이가 끝난 뒤라서인지 마냥 평화롭게 보인다. 산과 들의 교대가 수없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잠시 쉬었다 간다며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내장산 휴게소에 멈춘다.

   허리도 펼 겸 차에서 내려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 입이 벌어졌다. 영화나 연극이 끝나고 바로 화장실에 가면 한꺼번에 몰리는 인파로 인해 줄을 서야 하는 일이 흔하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내 경험에 의하면 화장실에서 줄을 서는 것은 대개 그와 같거나 비슷한 경우, 즉 무언가가 끝나 동시에 사람이 몰리는 경우말고는 없었다.

  그런데, 호남고속도로의 이 내장산 휴게소 화장실은 이러한 나의 경험과 통념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주말도 아닌 평일(화요일)의 고작 오전 10시가 넘은 시각에 이 화장실은 대만원을 이루어 소변을 보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 속에서 그 충격(?)으로 잠시 띵해진 머리를 굴려 보았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정녕 여자 화장실이 아닌 남자 화장실일진데, 아무리 내장산의 단풍이 유명하기로서니 평일 오전의 이 인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일거리가 없는 실업자가 그렇게 많은 것인가, 아니면 일을 안 해도 먹고살기에 불편이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인가. 현대판 不可思議이다.
        
   백양사 인터체인지를 벗어난 버스가 장성호를 끼고 백양사로 달린다. 어린 단풍나무를 가로수로 하여 단장한 湖畔 길의 아름다움이 타성을 자아내게 한다.

   弘意박사, 中砥대사, 水鄕처사, 하나같이 1980년 여름 법무관으로 입대하여 그 해 가을에 저 장성호반에서 각개전투 훈련을 받느라 땀을 흘리던 시절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긴다. 그게 벌써 22년 전의 일이다.

   광주시민의 상수원인 저 호수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그네들은 혈기왕성했던 20대의 청년에서 어느 새 50을 바라보는 초로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11시가 다 되어 백양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이미 嘗秋客들을 실어온 차들로 꽉 차 있다. 참으로 부지런들도 하다. 여기서 왼쪽으로 계곡을 끼고 백양사로 향하는  1.5km의 길은 2-3백년 된 아름드리 굴참나무와 사이사이의 단풍나무가 좌우로 군락을 이뤄 Jqctx001.gif터널을 이룬다. 그것이 연출하는 붉게 타는 듯한 단풍이 晩秋를 즐기러 온 산객을 산행 초입부터 즐겁게 한다.


  그 터널을 지나는 동안 어리어리해진 나그네의 눈은 절 입구의 쌍계루에 이르러 마침내 開眼을 하게 된다.

   누각 앞의 연못과 그 곳에서 유영(遊泳)하고 있는 붉은 잉어들, 그리고 그 물 속에 비치는 붉은 단풍과 백암산의 회백색 바위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仙境을 만들어내고 있다.

   올 가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단풍이 예년만 못하다는 소리를 어디서든지 듣고, 백암산의 단풍 또한 예외가 아니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다리품을 판 것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곳의 단풍은 보통 단풍잎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크기에 선명한 색채가 특징이다. 그래서 이름도 "아기단풍"이다. 붉게 물든 아기단풍의 앙증맞은 손바닥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금모래처럼 쏟아지면, 높푸른 가을하늘에 빼앗겼던 넋이 그 햇살을 타고 다시 내려오는 듯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白羊寺)는 백제 무왕 33년(636년)에 여환선사가 창건한 古刹이다. 노령산맥의 끝자락 백암산(白巖山)에 자리하였기에 창건 당시의 이름은 본래 '백암사(白巖寺)'였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중창하면서 '정토사(淨土寺)'로 불리다가, Jqctx002.gif조선시대 숙종 때 이르러 '백양사(白羊寺)'로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숙종 때 환양선사라는 高僧이 이 절에서 說法을 하고 있는데, 흰 양 한 마리가 산에서 내려와 그 설법을 듣고는,

"저는 본래 하늘의 神仙이었는데, 죄를 짓고 벌을 받아 짐승이 되었습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다시 神仙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선사께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고 고백했다. 이 때부터 절 이름이 '백양(白羊)'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호남지방에서는 예로부터 "산은 내장산이요, 절은 백양사"라는 말이 전해올 정도로 백양사는 이 지방을 대표하는 名刹이다. 유구한 역사 속에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 民草들과 함께 해온 한 마디로 호남불교의 요람인 셈이다.

   최근에는 1947년 만암스님이 개창한 古佛叢林을 복원하여 經·律·論의 가르침을 펴고 있기도 하다.

  양 옆으로 계곡이 흘러 '雙溪'樓라고 이름지었을 법한 누각인 쌍계루를 지나 천왕문으로 들어가다 보면, 문 앞에서 '이 뭣고'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돌비석을 만난다. 지금 이 곳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는가?
Jqctx003.gif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이한 가람 배치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으레 경내 중앙을 지키고 있을 법한 탑은 보이지 않고, 더구나 대웅전이 가운데가 아닌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길을 틀어 대웅전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된다. 대웅전이 바로 백학봉의 학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웅전은 곧 백학봉의 일부인 셈이다.

    자연미와 인공미의 그 완벽한 조화에 탄복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네 옛 조상의 慧眼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차일을 치고 행사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韓日 공동으로 法會를 여는데,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도 차리는 걸까.  

  오전 11시 30분.

  대웅전에 들어가 관례대로 오늘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三拜를 한 다음 절 밖으로 도로 나와 담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다. 백암산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 것이다.

   白巖山(해발 741m)은 흰 빛깔을 띤 바위가 유독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백양사 대웅전 뒤로 솟아있는 白鶴峯(해발 651m)은 봉우리가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모양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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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까맣게 치솟은 천연기념물(153호) 비자나무가 좌우로 꽉 들어찬 곳에 이른다. 아기단풍나무를 시샘하듯 가을에도 푸르기만 한 이 나무는 진한 樹香을 내뿜어 지나는 이들에게 상쾌함을 선사한다. 구충제나 감기약 등 약재로 많이 쓰이는 그 열매를 쌍계루 옆의 매점에서 팔고 있다.


  비자나무는 이곳 백양사 지역이 북방한계지대인데, 다른 지방의 비자나무가 씨눈이 한 개인 것과 달리 이곳의 비자나무는 씨눈이 두 개여서 '양코배기' 또는 '두눈쟁이' 비자나무로도 불린다고 한다.

  비자나무숲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면 곧 약사암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은 계속 백양계곡을 따라 운문암쪽으로 올라가는 다소 완만한 길이고, 오른쪽은 약사암을 거쳐 백학봉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계단길이다. 백학봉까지 1.8km라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우리는 왼쪽길로 들어섰는데, 이 길은 시멘트포장이 되어 있다. 아마도 상왕봉 밑에 있는 운문암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서 포장한 것이리라. 그러나 흙길도 아닌 포장도로가 깊은 산에 어울리지 않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백양사 대웅전과 백학봉 학바위를 절묘하게 조화시킨 先人들의 지혜를 後孫들이 이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백암산의 산행은 백양사→약사암 삼거리(운문사와 백학봉으로 갈리는 곳)→약사암→영천굴→백학봉→삼거리(백양계곡과 상왕봉으로 갈리는 곳)→722m봉→상왕봉(741m)→운문암→백양계곡→백양사의 코스를 택하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 산행의 길잡이인 예비판사들이 무슨 연유인지 逆으로 운문암쪽으로 난 길로 일행을 先導한다. 아마도 백학봉의 거대한 학바위를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 보고 반대방향을 택한 모양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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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계곡을 따라 20여분 올라갔을까, 앞서 가던 예비판사가 헐레벌떡 되돌아온다. 운문암 가는 길의 중간에 백학봉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다시 있는데, 그 이정표를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못 보고 지나쳐온 모양이라며 도로 내려가야 한단다.

   할 수 없이 삼거리까지 회군한 후, 이미 12시가 다 되어 가는지라 핑계 김에 아예 백양사로 내려가 밥이나 먹고 대전으로 돌아가자는 등산기피파를 설득하여 백학봉쪽으로 길을 잡는다.

   결국 통상의 산행코스를 택한 셈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轉禍爲福임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거리에서 약사암까지는 불과 20여 분의 거리(400m)이지만, 처음부터 경사가 급한 깔딱고개인지라 中砥대사를 비롯하여 벌써 땀으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숨이 목에 찬 노령의 조정위원 중에는 중도포기의사를 밝히는 사람도 나온다. 봄에 지리산 바래봉을 등산할 때는 선두에 서서 가시던 원장님도 오늘은 힘들어하신다.

  Jqctx006.gif  약사암은 위와 아래가 모두  암벽이다. 결국 암벽의 중간에 자리잡은 셈이다. 암자 앞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멀리 백양사 堂宇들의 질서정연한 배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깊은 단풍바다 속에 떠 있는 듯하다.


  백양사의 정돈된 모습과는 달리 약사암은 말이 절이지 엉성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色卽是空이라지만 법당에 들어가 참배할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 걸 어쩌랴.
  결국 佛子가 아닌 일반 등산객들에게는 학바위를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목을 축이고 기력을 충전하는 곳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고 한다면 너무 세속적인 평가이려나.

  약사암을 지나면 백학봉의 진정한 등산이 시작된다. 사실 백학봉을 오르기 전에는 백학봉을 직접 오르는 길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Jqctx007.gif백양사 입구 주차장에서부터 보이는 높은 단애(斷崖)를 이룬 암면에 길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심 설마 저기를 올라가는 것은 아니겠지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곳을 올라가는 것이다.

 

   이름하여 학(鶴)바위. 북한산의 인수봉, 월악산의 영봉 못지 않은 거대한 수직 암벽이다. 그 밑에서 위를 쳐다보면 그 커다란 바위덩어리가 금새라도 머리 위로 덮칠 것만 같아 기가 질린다. 백학봉도 결국 이 바위로부터 나온 이름인 셈이다.


  이 바위를 올라가면서 유심히 살펴보면, 멀리서는 하나로 보이던 바위가 사실은 중첩되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음을 알게 된다. 정상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는데, 한 고비를 오를 때마다 그 끝에 전망대가 있고, 거기에는 어김없이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아차!' 하여 발을 헛디디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 밑에 있는 황천길로 직행하는 것이다.

  약사암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급경사를 올라가면 곧 샘터가 하나 나온다. 길에서 약간 벗어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곳인데다 약사암에서 목을 축인 지 얼마 안 되는 까닭에 그냥 지나쳤는데, 아뿔싸! 생각이 짧았다. 이 샘터가 말 그대로 신령스런 샘이 있는 굴, 영천굴(靈泉窟)이라니... 그 안에 부처님(약사여래입상)이 안치되어 있고 물맛이 기가 막혔다고 琴덕희, 金하늘 두 배석판사가 전한다.


  틈틈이 산행을 계속한다는 琴판사는 여전히 힘들이지 않고 산을 잘 타고, 얼마 전에 계룡산에 가서 동학사→은선(隱仙)폭포→관음봉→자연성릉→삼불봉(三佛峰)→남매탑→동학사주차장으로 이어지는 5시간 코스의 일주를 하고 온 金판사도 예행연습을 한 덕분에 오늘은 한결 수월한 모습이다.

  영천굴에서 백학봉 정상까지는 800m인데,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이젠 제법 힘들다. 자연히 발걸음이 늦어진다. 서두르면 금방 숨이 찬다. 참으로 대단한 경사다. 공간이 있거나 경사가 너무 급한 곳은 아예 철제사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 한 사다리를 올라서자 갑자기 앞이 탁 트인다. 학바위 중간지점의 전망대에 도착한 것이다. 거대한 암벽을 뒤로 한 채 발치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환상적이다. 약사암보다 고도가 높아진 만큼 시야가 더 넓어 또 다른 맛이 난다. 백양사는 여전히 단풍의 바다 속에 떠 있다.  

  그 전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왁자지껄하며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진다. 일단의 단풍나들이부대가 도착한 것이다. 가슴마다 "○○산악회"라는 리본을 달고 있는 것을 보아 단체로 등산을 온 모양이다. 도리 없이 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다시 등반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괴성이 들려온다.

  "건강하세요∼!"

아니 이게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인가 싶었는데, 연이어서

  "이 산에 오신 분들 모두 건강하세요∼!"

하는 소리가 암벽에 부딪친 후 온 산으로 퍼져나간다.
21세기를 맞이하여 "야∼호∼!" 대신 새로 나온 구호인가 보다.  
이럴 때

  "감사합니다∼!"

하고 맞장구를 쳐야 하는 걸까?
아무튼 고맙기는 한데, 문득 지리산 종주길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한테 들은 말이 귓가를 맴돈다.

  "여러분의 집 옆에 사람들이 모여 고함을 지르면 여러분은 좋아하겠습니까? 이 산의 주인은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와 풀, 그리고 이곳에 사는 야생동물들입니다. 여러분들이 목청을 자랑하며 지르는 '야호' 소리가 이 산의 주인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준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산을 진정 사랑하는 산악인은 산에서 조용하답니다."  

그 때 그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얼굴을 붉혔던가.

  아줌마부대와 헤어져 백학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大岩壁 아래로 난 숲길을 올라간다. 이제까지보다 경사가 더 가파르다. 새가 앉을 자리조차 없어 보이는 민자 암벽 밑을 그렇게 오르려니 숨이 턱에 와 닿는다.

   위를 바라보면 기가 질릴 뿐이어서 차라리 한 발 앞만 내다보고 걸음을 겨우 떼어놓는다. 만일 이 길을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간다면? 그 때 무릎이 받을 고통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길을 잘못 들은 것이 참으로 잘된 일이다. 轉禍爲福이 따로 없다.

   산은 가파르게 올라가서 밋밋하게 내려가야 하는 게 정도인데, 등산 경험이 별로 없는 예비판사들이 거꾸로 코스를 잡았던 것을 백학봉의 산신령이 造化를 부려 바로 잡아준 것이 아닐는지.... 백양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드린 덕분이라면 너무 견강부회(牽强附會)이리라.

  드디어 학바위의 정상이다. 백양사 마당에서 대웅전 뒤로 보이는 그 암벽의 정수리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이 곳은 백암산의 全景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이다.

  북서쪽의 상왕봉, 사자봉, 서쪽의 가인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상왕봉 밑의 운문암도 한 눈에 들어온다. 절벽 아래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현기증이 이는데, 그것을 견뎌내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백양사의 풍경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 뒤로 더 멀리 보이는 푸른 물은 필경 장성호이겠지.

  학바위 정수리에서 백학봉 정상까지 남은 거리는 400m이다. 철제 사다리를 하나 더 오르고 나면 이제부터는 평탄한 산길이다. 바위가 있어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곧추 선 것은 없고 모두 드러누워 있고, 그것도 주위는 흙으로 되어 있다.

  Jqctx008.gif해발 651m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는 곳, 백학봉의 정상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 새 오후 2시를 넘고 있다. 산에만 가면 펄펄 나는 水鄕처사는 진즉에 도착하여 목을 축이고 있다. 그것이 물인가 곡차인가.  

  30여 명의 일행이 둘러앉기에는 정상의 터가 좁지만, 더 이상 높이 올라갈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낭을 풀고 짐들을 부린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서이다. 옛부터 '金剛山도 食後景'이라고 했지만, 오늘만큼은 '食前景'이 된 셈이다.

   예비판사들이 힘들여 들고 온 삶은 돼지고기와 김치가 단연 인기이다. 이번 산행에서 예비판사들의 노고가 너무 크다. 비록 코스 선택에서 작은 오류를 범하긴 했어도 산신령의 造化로 결국 바로 잡았으니 더 이상 탓할 바가 아니다.  

  或者는 내려올 것을 무엇 하러 산을 올라가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내려오기 위해서 올라간다고 대답한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바로 인생이 아닐는지.

  내 욕심 같아서는 백암산의 최고봉인 상왕봉까지 올라갔다가 운문암을 거쳐 하산하고 싶지만,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어찌하랴. 琴판사도 나 못지 않게 아쉬운 표정이다.

  상왕봉 방향으로 가다가 헬기장을 지나 나오는 삼거리에서 백양계곡으로 바로 빠지는 하산길은 그야말로 콧노래를 부르고 가도 될 만큼 평탄, 완만하다. 걸리는 시간도 1시간 정도이다.

  도중에 양지바른 곳에 제법 큰 무덤(산행지도에도 나오는 무덤이다)이 하나 자리잡고 있는데, 仁村 김성수선생의 부인 묘라고 한다. 풍수에 無知한 凡夫의 눈에도 기막힌 명당자리로 보인다.

  정작 仁村 선생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왜 합장을 안 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들지만, 이는 가을 山客의 한갓 호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높은 곳에 있는 산소의 벌초를 어떻게 할까 하는 의문 역시 매한가지이다.

   백양계곡까지 다 내려온 순간

  "어라, 팻말이 있네!"

  어느 예비판사의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이다. 백학봉 올라가는 길임을 알리는 팻말이 길 옆에 버젓이 서 있는 것이다. 아까는 逆코스를 順코스로 바꾸라고 산신령이 빼놓았던 것이고, 이제는 제대로 한 바퀴 돌아 다 왔으니 다시 꽂아 놓은 것이라고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진실은 처음에 이곳까지 오지도 않았으면서 도중에 못 보고 지나친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되돌아간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잘된 일이지만 말이다.

   萬物의 靈長임을 자랑하는 인간도 사실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一喜一悲하는 미미한 존재일 따름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