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페루

   

   7월 3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페루 리마로 이동했네. 비행기로 5시간 30분 정도 걸리더군. 유명한 안데스 산맥을 넘어가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니까 만년설이 덮인 하얀 산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 그리고 해발 3,800m에 있는 티티카카호수(Lago Titicaca. 아마존강의 발원지)도 보이고. 우리나라의 나무가 울창한 산만 보다가 나무가 거의 없는(고도가 워낙 높아 나무가 살 수 없겠지) 이곳의 산들을 보니까 낯설게 느껴졌네. 통일이 되어 북한의 민둥산을 보아도 그러려나.

 

   미주23.jpg 페루는 면적이 한반도의 6배로 제법 넒은 나라라네. 북쪽으로는 적도의 아마존 밀림지역을 포함하고 남쪽으로는 칠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칠레와는 사이가 안 좋아 툭하면 으르렁댄다고 하네. 우리와 같은 전쟁의 위협을 모를 것 같은 이 나라가 군대를 유지하고 현대화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가 바로 장차 칠레와 벌일지 모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라니 사람 사는 세상은 지구상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일세.

 

   페루는 우리나라와는 8월 1일부터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될 정도로 경제협력관계가 밀접하다네. 작년 페루에 대한 해외투자국 중 우리나라가 투자액 1위라고 하더군. SK에너지가 아마존 밀림과 바다에서 석유를 생산하다고 하네. 그런가 하면 올해 상반기 이곳 자동차시장에서 팔린 자동차가 1위 현대자동차, 2위 도요다, 3위 기아자동차일 정도로 한국산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네.

   다만, 7월 28일 좌파의 오얀타 우말라(Ollanta Moisés Humala Tasso) 대통령이 취임하여 양국의 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사라네. 우리 대사관에서도 그 점을 늘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다행히 미주24.jpg 우리나라의 박희권 대사가 즉석연설이 가능할 정도로 능통한 스페인어와 세련된 매너, 그리고 혼신을 다하는 열정으로 열심히 뛰고 있어 당장 크게 걱정할 것은 없을 듯하더군.

 

   850만 명이 사는 페루의 수도 리마는 해안도시인데, 겨울에 6개월 동안 해를 볼 수 없다고 하는군. 태평양의 한류(寒流)의 영향으로 안개가 많이 끼기 때문인데, 안개비로 인하여 안경이 젖고 심지어 차창에 물이 흐를 정도인지라 우리 같으면 당연히 우산을 써야 할 판인데,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안 쓰더라고. 정장을 한 신사, 숙녀들이 모두 그냥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하더군. 우산을 파는 곳이 아예 없다고 하네. 사람 사는 모습이 그렇게 다르다네.

 

   시내 한복판 대통령궁 앞은 사각형의 광장인데, 그 한 면에 대성당이 있어 들어가 보았지. 대성당의 외모나 내부 구조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네. 다만 지하 1층에 소장품 전시실을 만들어 놓은 게 이채로웠네.

   그런가하면 피사로(Francisco Pizarro. 1471-1541)를 추모하여 그에 관한 자료들을 1층의 한켠에 진열하여 놓은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더군. 피사로가 누구인가? 미주25.jpg 바로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장본인 아닌가. 아무리 그가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건설하고 마지막 생애를 이곳에서 보냈다고 하지만,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 나라가 오늘날까지 과연 그를 이렇게 추모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네.

   지금의 페루가 스페인계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도 아니고, 페루 국민 중 50%가 원주민인 인디오들이고, 37%가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조인데 말일세(이웃 나라인 볼리비아는 인디오의 비율이 65%라고 하네. 미주 대륙에서 대개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이 멸종하다시피 되었는데, 특이하게 이 두 나라에서는 이처럼 국민의 다수를 차지한다네).

 

   그래서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해보았네. 다름이 아니라 일본계 이민 2세로 페루의 대통령을 10년이나 했던 후지모리가 각종 부정과 비리의 원흉으로 재판을 받아 작년 1월에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지금 페루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데, 지난 6월 5일에 실시된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에서 그의 딸인 36세의 게이꼬(Keiko)가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고 하네.

   아버지가 중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불과 1년만에 그 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커다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우리나라라면 가능할까? 피사로를 추모하는 것과 맞물려 생각하여 보니, 미주26.jpg이곳 사람들은 과거는 과거로서 그대로 인정하고(피사로), 현재는 또한 어디까지나 현재일 뿐(게이꼬)이라는 극히 현실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하여 보았다네.

  

    페루의 대법원은 시내 중심가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는데, 마침 내가 묵은 쉐라톤 호텔이 길 건너 맞은편에 있어 호텔 고층에서 쉽게 조망할 수 있었네. 건물이 그야말로 고색창연한 하나의 왕궁이더군. 중세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지.

   산 마르띤(San Martin Castro) 대법원장을 만나러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풍스런 분위기가 더더욱 느껴지더군. 흥미로운 것은 페루 대법원장이 대학에 강의를 나간다는 것이네. 페루 카톨릭대학교 법과대학에서 1주일에 2시간씩 형사소송법을 가르친다고 하더라고.

   미주27.jpg 그는 대법관으로 있다가 대법원장이 되었는데, 대법관 때는 4시간씩 강의를 했다고 하더군. 현직 대법원장의 강의라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고 하네. 이걸 여유라고 해석해야 하나...아무튼 또 헷갈리는 대목일세.

 

   대통령궁 앞 사각형의 광장 중 대성당의 반대편 쪽에는 세계 10대 사교클럽에 들어간다는 고급 사교클럽이 있어 저녁시간에 가보았네.

식민지시대에 지은 거대한 석조건물 전부를 차지하고 있는 이 클럽은 정장차림으로 회원과 동반해야만 입장이 허용되는데, 저녁 7시 30분에 도착하였건만 손님이 우리 일행밖에 없더라고.

   30분 정도 차를 마시며 환담하고 이어서 식사를 하는데 여전히 손님이 없어, 지레짐작에 아무리 유명한 사교클럽이라지만 이래서야 곧 망하겠군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

 미주28.jpg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10시 쯤 나오려니 그때서야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이곳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새벽 3시까지 사교모임을 가지며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고. 남자들은 굵은 시가를 문 사람들이 많더군. 아무튼 무슨 중세시대의 귀족파티장에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었네.

 

    페루에 있는 동안에 주말을 이용하여 쿠스코(Cusco)와 마추픽추(Machu Picchu)를 다녀왔네.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동쪽으로 1시간 가면 쿠스코에 내리지.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한 도시로 현재 인구가 30만 명 정도이네. 쿠스코의 거리는 성스러운 동물인 퓨마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설이 있네. 미주29.jpg

 

   원주민인 인디오의 말로 ‘배꼽’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 쿠스코는 1534년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의 침략을 받아 잉카제국이 멸망한 후 스페인식으로 변모되었지. 그래서 식민지 지배의 흔적이 지금도 도시의 건축물에 그대로 남아있다네.

 

   스페인의 정복자들은 잉카제국의 수많은 건축물, 사원, 궁전을 파괴한 후 돌로 된 축대와 벽은 남겨둔 채 그 위에 스페인풍의 수도원, 성당, 대학을 지었다네. 결국 잉카의 전통 건축 방식에 중세 유럽풍이 결합된 독특한 건물들이 생겨난 것이지.

 

   그런데 그 돌로 된 축대나 벽을 보면 돌과 돌 사이에 면도날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촘촘하고 정미주30.jpg교하여 감탄을 금치 멋하게 한다네. 이렇게 기구한 운명을 띤 쿠스코는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하더군.

 

   시내에는 옛날에 마차가 다니던 돌길이 그대로 있는데, 그 길이 좁아서 큰 차는 다니기 어렵네. 그래서 그 사이를 쉽게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소형차가 택시의 주종을 이루어 관광객을 태우고 다니는데, 그 차종이 무엇인지 아나? 바로 티코일세.

 

   사연인즉, 중고 티코가 과거에 페루에 수입되어 수도 리마에서 택시로 이용되었는데, 후지모리의 집권 후 일제 새 차에 밀려 이곳으로 왔다는군. 아무튼 우리의 오래된 티코가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게 신기했다네. 미주31.jpg

 

  구암대사,

 

기차나 자동차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고산지대로 오르면 우리 몸이 비교적 쉽게 적응할 터인데, 해안도시 리마에서 비행기를 타고 갑자기 해발 3,400m의 고지대에 오니 몸이 어찌 되겠나. 이름하여 고산병에 시달릴 수밖에.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여 간 고산병 특효약 비아그라를 먹고 그것으로 모자라 가이드가 주는 현지 고산병약을 먹고, 수시로 코카茶(코카 잎을 재료로 한 차. 많이 마셔도 중독될 염려는 없다더군)를 마셨는데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미주32.jpg 쿠스코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둘러보는 데는 한 낮으로 부족하더군. 어떤 유적은 해발 3,750m 되는 고지대에 있다네.

   그러다 보니 미처 다 보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는데, 쿠스코의 아름다운 야경을 본다고 욕심을 내서 이곳에서 숙박을 하면 다음날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하여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해발 2,900m에 있는 우르밤바라는 소도시로 이동하였네.

 

   나처럼 고산병에 시달리는 관광객이 많이 있음인가, 호텔에는 산소통이 준비되어 있더군. 10여 분 산소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고 나니 한결 기운이 나더라고.

 

   그렇지만 결국 이곳에서 하룻밤을 더 보내면서 배탈이 나는 통에 리마로 돌아가서는 이틀을 설사로 고생했다네.

   그 바람에 졸지에 페루대사 부인한테 신세를 지고 말았지(관저에서 죽도 쑤어 주시고, 미주33.jpg약도 챙겨 주시고....어찌나 미안하던지). 설사도 고산병 증세에 속한다는군.

   그런데 평소 골골하는 집사람은 처음에 조금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이고는 이내 적응을 하여 쌩쌩하더라고. 여행체질이 따로 있는 모양일세.

 

    우르밤바의 호텔 ‘Casa Andina Private Collection Valle Sagrado’는 내부 시설은 다소 낡았으나, 경치가 참으로 좋았네. 식사하면서 듣는 원주민인디언 음악도 감미로웠고. 역시 강력 추천대상이네. 

 

      다음날 우르밤바의 역에서 기차를 1시간 타고 마추픽추(Machu Picchu)로 갔네. 역 구내에미주34.jpg서도 만년설이 덮인 산이 보여 심상치 않더니만, 우르밤바강을 끼고 가는 기찻길은 더욱 운치 만점이었네.

 

   한 옆으로는 강이 흐르고 다른 한 옆으로는 만년설이 덮인 산이 이어지는데, 그런 깊은 산속을 기차를 타고 가는 낭만이 그럴싸하였지.   

   37년 전 대학 신입생 시절 경춘선 기차를 타고 청춘을 노래하던 기억이 새로웠다네.

   그리고 오로지 관광객만 수송하는 기차라서 그런지 기차 안에서 먹을 것도 주는 게 이채롭더군.

 

   마추픽추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한계령보다 더한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면 마침내 마추픽추가 나타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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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1년 발견되기 전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있었기에 ‘잃어버린 도시’로 불리고, 높은 산과 절벽, 밀림에 가려 밑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로 불리는 마추픽추, 해발 2,450m의 산꼭대기 깎아지른 절벽에 이런 도시를 건설한 잉카인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였던 것일까.

 

   잉카제국을 건설한 잉카의 9대왕 파차쿠티가 자신을 태양의 아들로 자칭하여 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하여 이 도시를 건설하고 쿠스코의 왕궁 외에 별궁으로 사용하였을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으로 과연 설명이 다 될까.

   홍수를 피해 고지대에 만든 피난용 도시라는 설명 또한 그럴싸해 보이지만, 어딘가 미흡하긴 마찬가지네.

 

   분명한 것은 이곳이 주위에 해발 3,000m가 넘는 산들로 둘러싸인(멀리 보이는 조산은 6,000m가 넘어 만년설이 덮여 있네) 한가운데로 그야말로 명당자리라는 것이네. 마치 우리나라 오대산의 적멸보궁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형국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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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추픽추는 원주민 말로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네. 사진 한 가운데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는 반대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의 와이나픽추라네.

 

   도시의 총면적은 5㎢로서, 그 절반에 해당하는 비탈면은 계단식 밭이고, 미주37.jpg 산릉(山稜)에 밀집하여 있는 석조건축물들은 신전, 궁전, 거주지 등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하네. 대략 1만 명 정도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측하지.

 

   아무튼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 마추픽추는 신비의 도시 그 자체이네. 대략 잉카의 왕 파차쿠티가 인근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하여 잉카제국을 건설한 1438년 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시절에 아무런 기계도 없이 어떻게 사람의 힘만으로 이런 공중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을까.

 

   200톤이 넘는 거석, 정교한 다면체로 쌓아올린 태양의 신전, 주신전 등은 불가사의할 따름이지. 그런가 하면 건물들 사이로 수로를 만들어 놓아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네. 그 물은 그러면 어디서 오는 걸까. 과연 만년설이 녹은 물일까.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마찬가지로 이 마추픽추를 보면 옛사람들의 뛰어난 건축기술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네.   이과수폭포를 연출하는 대자연만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인간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지.

 

이과수를 이야기할 때 한 말을 여기서 다시 하겠네. 미주38.jpg

 

“가서 눈으로 직접 보시게.”

 

   마추픽추의 맨 꼭대기에는 '인티파타나'라고 하는 제례용 석조물이 있네. 인티파타나는 '태양을 붙드는 기둥'이라는 뜻이라네.

 

   이 석조물 위에 높이 1.8m, 너비 36cm의 돌기둥이 솟아 있지. 잉카인들은 천체의 궤도가 바뀌면 커다란 재앙이 생긴다고 믿고, 매년 동지 때 이 돌기둥 바로 위에 뜬 태양을 붙잡아 매려고 돌기둥에 끈을 매는 의식을 치렀다고 하더군.

 

   그런데 이 기둥을 해시계의 일부로 보는 견해도 있다네. 즉 이 기둥이 만드는 그림자가 시각을 나타낸다는 것이지. 지금은 이 돌기둥에서 엄청난 기(氣)가 나온다고 하여 보는 사람마다 손을 올려 기를 받는다네.미주39.jpg

 

   충주에서 근무하던 시절 잠깐동안 택견을 배우면서 우주의 기(氣)를 받아들이는 호흡을 배웠던 내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토불이(身土不二)인지 기(氣)가 영 느껴지지 않더군. 

 

   그나저나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는 어떻게 이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게 된 것일까.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1년 7월 24일,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존스교수(해리슨포드 역) 같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국 예일대학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 1956) 교수일세.

 

   그는 잉카제국이 멸망할 당시 잉카의 귀족들이 스페인군을 피해 숨어들었다는 빌카밤바 요새를 찾아 나섰다고 하네. 모르긴 해도 고고학자적 호기심에 더하여 그 요새를 찾는 순간 잉카의 황금유물들로 벼락부자가 될 꿈을 꾸었을지 모르지.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마추픽추 밑의 우르밤바강가에 도달했는데, 미주40.jpg거기서 산에서 내려오는 인디언 목동을 만났다는군. 그 목동이 가리키는 산꼭대기에 요새 같은 게 있다는 말을 듣고는 단걸음에 올라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해서 마추픽추는 더 이상 잃어버린 도시가 아니게 되었지만, 빙엄교수가 당초에 찾던 빌카밤바 요새는 아직도 ‘잃어버린 요새’로 남아 있다네. 구암대사의 신통력으로 한번 찾아나서면 어떤가.

 

   마추픽추 발견 후 100년이 지난 올해 예일대학에서는 빙엄교수가 발견 당시 가져온 유물을 페루에 반환하였네. 페루 정부가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소송까지 제기한 결과라고 하더군.

   마추픽추에 그 유물을 전시할 박물관을 곧 짓는다는데, 유물이 과연 전부 반환된 것이냐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는 모양일세. 아무튼 아직 공개가 되질 않아 그 반환된 유물을 보지는 못했네.

   그나저나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져 간 유물들은 언제나 돌아오려나.

 

   저녁 무렵 마추픽추에서 우르밤바로 돌아와 다음날 다시 쿠스코로 이동했네. 리마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이지. 그런데 우르밤바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이 또 다른 별천지를 연출하더군(처음에 쿠스코에서 우르밤바로 간 길과는 다른 길이네). 미주41.jpg

 

   대략 해발 3,500m에서 4,000m 정도 되는 고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만년설이 덮인 안데스산맥의 고봉들이 가까이서 손짓을 한다네.   

 

   고원의 황금빛 벌판을 뒤덮은 것은 추수를 앞둔 보리들이라네. 놀라운 것은 인디오들이 이 넓은 벌판의 보리 재배를 기계가 아닌 인력으로 다 한다는 것이지.

 

   그런데 그들은 왜 해안가의 낮은 지대를 놔두고 이 높은 고원에서 사는 것일까.  고산족이 평야로 내려가면 병균에 대한 면역력이 없어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것이 이유일까.  그보다는 구름에 덮인 회색빛 도시 리마에 비하여 머리 위에서 태양이 작열하는 이곳이 인디오들에게는 훨씬 살기 좋은 곳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닐까.

 

 

  5. 로스앤젤레스

 

 

    8월 4일, 페루 리마에서 미국 LA로 향했네. 비행기로 9시간 걸리더군. 그런데 이 비행기가 리마에서 새벽 1시 5분에 떠나 사람을 당황케 했지. 고산병으로 이틀이나 설사를 해 탈진한 상태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야 했으니 기가 막히더군.

 

   LA공항에 도착하는 시각이 현지시각으로 아침 8시라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하루 일과를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지는 몰라도, 한 밤중에 9시간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에게 그런 배려가 과연 고맙게 받아들여질는지 모르겠네.

 

   아무튼 유명한 산타 모니카(Santa Monica) 해변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으로 LA에서의 일과를 시작했네.

 

   19년만에 다시 찾은 LA도 앞서 이야기한 뉴욕과 마찬가지로 옛날에 비해 한결 정돈된 모습이었네. 서울거리처럼 북적거리는 인파로 활력이 넘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제껏 남미의 도시에서 보았던 것과는 달리 안정되어 보였네.

 

   그런 반면에 오후 3-4시에 인구가 70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의 시내 중심가 한복판 도로가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아 한적한 데 놀랐네. 어깨를 부딪치지 않으면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많은 서울거리에 익숙한 이방인에게는 낯선 모습이었네.

 

   총영사관에 들러 업무현황을 청취하였는데, 내년 총선거부터 행해지는 재외국민 투표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걱정의 목소리가 많더군. 한반도의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남북으로 갈린 것도 모자라 동서로 다시 쪼개져 사사건건 대립하는 마당에, 해외에서마저 정치바람이 몰아쳐 무슨무슨 향우회라는 이름으로 출신지역별로 또다시 갈라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네. 해외에서나마 모두 ‘하나의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미주42.jpg

 

  여기서 해외 교민에게 선거권을 인정하는 것의 당부를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네만, 제발 해외에 나가서까지 사분오열되어 싸우는 모습만은 안 보게 되길 바랄 뿐이네.

 

    몸 상태가 엉망인 상태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한 비행기를 9시간 동안 타고 와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계속되는 일정에 파김치가 다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 California) 내에 있는 한국학연구소는 너무 반갑더군.

도산 안창호 선생이 거주하셨던 집을 그대로 연구소 건물로 사용하고 있었네. 한국 관련 자료들이 이름에 걸맞게 풍부하게 비치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산 선생의 애국혼을 느낄 수 있어 의미가 있었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는데, 미주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하신 경복 33미주43.jpg회 변홍진 선배님이 내가 LA에 도착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공항까지 마중을 나오신 덕분에, 그분을 통해 49회 동기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기회가 주어졌지. 언제 보아도 반가운 게 동기들 아닌가. 그것도 먼 이국땅에서이니 더더욱 그렇더군.

 

    진병서 동문이 49회 동기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직접 운영하는 한식 부페집 ‘한송’(코리아타운에서 제일 큰 한식집이더군)에서 모처럼 밥다운 밥을 먹었다네. 김치가 어찌나 맛있던지.

 

   LA 코리아타운은 구암도 알다시피 영어를 몰라도 불편함이 없이 살 수 있는 곳 아닌가. LA를 둘러싼 지역에 교민이 50만 명 산다고 하니 작은 대한민국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대한민국 사람이 사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브라질에서 어느 교민한테 들은 말일세.

 

   LA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인 2010. 8. 5. 아침 LA에서 연수중인 한국 판사 2명, 변호사 1명을 초치하여 코리아타운에 가 아침식사를 함께 한 후 서울 가는 대한항공 KE18편에 몸을 싣는 것으로 15박 16일의 미주여행에 종지부를 찍었네.

 

   해외에 나가면 언제나 느끼는 것,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생각을 이번에도 예외 없이, 아니 전보다 더 절실하게 하였다는 말로 이 글을 마치네.

 

처서도 지나고 곧 가을로 접어드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졌는데, 건강에 유의하시게.

이과수와 마추픽추를 꼭 다녀오시게. 하루라도 젊어서 말일세.

 

 2011. 8. 27.

 

 범의가 썼네.

 

(추신)

방문지마다 공식일정을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여 주신 각국의 공관장과 가족, 그리고 공관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외교의 최일선에서 애쓰시는 님들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