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고, 또 놀라고, 먼저 놀라고

 

  홍천의 팔봉산(八峰山),

  봉우리가 여덟 개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을 하여 보면 서산, 대구, 밀양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지어진 이름을 과연 고유명사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이름 아닌 이름 때문에 공연히 산의 가치가 떨어진다. 얼마나 특징이 없으면 그냥 봉우리 숫자에 맞추어 산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홍천강을 끼고 있는 홍천의 팔봉산 역시 그런 연유로 산객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촌부 역시 그랬다. 게다가 높은 산도 아니니(최고봉의 높이가 해발 302m이니 차라리 낮은 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고 그런 산으로 치부해 온 것이다.

    그런데 서리풀산악회의 가을 정기 산행지를 정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문득 이 산이 떠올랐다. 홍천의 대명콘도를 가다가 그 옆을 지나친 적이 있을 뿐인 이 산이 왜 불연 듯 생각났는지는 불가사의다. 아무튼 그렇게 이 산을 찾게 되었다. 그게 2017. 11. 11.의 일이다.

 팔봉산0.jpg [팔봉산 전경]

    아침 7시 30분에 서초동을 출발하여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이용 대략 두 시간 걸려 팔봉산 유원지에 도착했다. 늦가을이라고 해야 할지 겨울 문턱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한 시기라서인지 유원지는 한산했다. 유원지에 있는 많은 식당들 중 한 군데 들어가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팔봉교 매표소에서 입산료를 내야 하는데, 무려(?) 1,500원이나 한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거대한 국립공원도 무료인데, 최고 높이가 고작 302m에 불과한 산의 입장료로 1,500원이라니... 지방자치단체인 홍천군의 조례로 그렇게 받는다는 데야 할 말이 없다.

   처음 이 산을 볼 때는 너무 낮아 놀라고(실제로 팔봉유원지에 도착했을 때 어째 이렇게 낮은 산을 산행지로 선택했는지 회원들이 의아해 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험한 암릉길에 또 한 번 놀란다고 하는데, 입구에서 내야 하는 비싼 입장료에 산에 오르기도 전에 먼저 놀랐다. 비록 그 1,500원이 결코 비싼 게 아니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지만.

   팔봉산은 홍천강이 산의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데, 강의 남쪽 연안을 따라 여덟 개의 봉우리가 길게 뻗어 있다. 여덟 개의 봉우리는 대부분 암릉으로 되어 있어 밧줄을 잡고 오르거나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한다. 가장 동쪽 봉우리가 1봉이고 서쪽 물가의 끝봉이 8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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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 앞에 놓인 다리로 개울을 건너면 1봉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만큼은 완만한 흙길이어서 낙엽을 밟으며 만추(晩秋)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오르니 발아래 먼발치로 홍천강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직 이른 시각인지 우리 일행 외에는 등산객이 안 보였다. 정상 부근은 암릉이었으나 경사가 완만하여 별 어려움 없이 쉽게 올랐다. 그러나 그런 무난함은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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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봉]

   2봉부터는 달랐다. 이후의 봉우리마다 보이는 경고문에 아무래도 신경이 쓰인다. 요컨대, 정상은 암벽구간으로 험하니 안전을 원하면 우회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경고문을 보고 우회로를 택하는 등산객이 없다는 것이다. 하긴 전술했듯이 최고 높이가 302m에 불과한 팔봉산을 등산하면서 정상을 우회할 요량이라면 굳이 멀리 이 산을 찾아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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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봉 올라가는 길]

    2봉 정상에는 삼부인당(三婦人堂)이라는 당집이 있어 인근 주민들의 안녕과 질병이나 재액, 풍년과 흉년을 주재하는 세 여신(李氏, 金氏, 洪氏)을 모신다. 이 지역 사람들은 400여 년 전부터 매년 3월과 9월 보름에 이것에서 당굿을 벌여왔다고 한다. 특히 3월 굿을 크게 하며 삼부인신과 칠성신을 기리는 세 마당 굿을 사흘 동안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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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인당]

    팔봉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해발 302m)인 3봉을 오르려면 앞에서 말한 수직에 가까운 사다리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제부터는 이런 사다리를 수시로 오르고 내려야 한다. 이보다 경사가 더 급한 곳도 여러 곳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사다리가 당연히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곳인데, 사다리는 없고 밧줄만 늘여놓거나 양 옆으로 철제 난간만 설치하여 이를 잡고 오르락내리락 하여야 하는 곳도 있다. 암릉길이 험하다고 사다리만 오르내리면 등산의 묘미가 줄어들까 봐 배려 아닌 배려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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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봉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아무튼 곳곳에 설치된 이런 시설물 덕분에 수직 암봉을 오르내릴 수 있으니, 앞서 낸 입장료 1,500원이 결코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받아도 될 성싶다. 그래서 보다 더 시설투자를 하여 등산객들이 안전하게 산을 오를 수 있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아니겠는가. 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수익자 부담을 누가 탓하랴. 그런 점에서 국립공원 무료입장도 이젠 재고하여야 하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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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봉]

     3봉을 내려가 4봉으로 오르는 안부에 도착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하나는 출렁다리를 지나 4봉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옆으로 내려가 해산굴(解産窟)을 통과한 후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해산굴의 유래에 관한 설명은 그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으로 갈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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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이 좋아 산을 즐겨 찾는 등산객이라면 모름지기 다른 산에서 볼 수 없는 명소를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 생리이다. 우리 일행도 당연히 해산굴을 통과하기로 했다. 사실 이는 우리만이 아니고 우리 뒤에 오는 다른 등산객들도 남녀 불문하고 너나없이 대부분 이 길을 택했다.

   해산굴은 말 그대로 해산과정에서 아이가 엄마의 산도(産道)를 따라 나오듯 출구에서는 머리부터 시작하여 몸 하나만 겨우 빠져 나올 수 있는 좁은 굴이다. 그것도 거의 수직으로 나 있어 밑에서부터 몸을 굴에 밀착하여 위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배낭은 출구에서 밖으로 먼저 내보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좁은 해산굴을 힘들게 빠져 나온 후 남자들보다 아줌마들이 더 환호성을 지른다는 것이다. 해산의 고통을 반추(芻)하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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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굴의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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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굴의 출구]

    해산굴에서 나오면 바로 4봉 정상이다. 여기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5봉으로 올라가기 전 안부(鞍部)가 나온다. 일단 이곳에서 숨을 고르고 준비해 온 음식들로 간단히 요기를 했다. 이번에도 총무인 박재송 사무관이 제일 수고를 했다. 그에게 늘 고마울 따름이다.

    5봉은 가파른 암릉을 밧줄에 의지하여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기 힘든 만큼이나 정상에서 조망할 수 있는 경치는 으뜸이다. 겹겹이 펼쳐지는 산들이야 우리나라의 웬만한 산이면 어디에서나 정상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팔봉산의 5봉 정상에서는 무엇보다도 암릉의 절벽 바로 밑으로 홍천강이 한눈에 들어와 탄성을 자아낸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찔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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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봉과 홍천강]

     한 봉우리를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 하는 기대를 하고 다음 봉우리를 오르려면 또 헉헉대게 하는 곳이 바로 홍천의 팔봉산이다. 그게 바로 산을 오르는 재미이긴 하지만, 어쩌면 이리도 매 봉우리마다 힘이 든단 말인가... 이런 불평 아닌 불평을 하면서 다음 봉우리에 오르면 또 다시 멋진 경치에 반해 언제 그런 불평을 했냐는 듯 감탄을 한다. 분명 최고 높이가 302m인 산이건만, 막상 산을 오르다 보면 1,300m 되는 산을 오르는 것 같은 곳, 그런 곳이 바로 이 산이다. 가파른 암릉을 오르기 위한 밧줄, 철제로 된 사다리, 난간, 계곡을 연결하는 출렁다리, 게다가 굴(窟)까지... 어느 유행가 가사의 한 대목처럼 “있을 건 다 있구요”다.

   그런 의미에서 6봉도 예외가 아니다. 힘들게 오른 암봉에 털썩 주저앉으면 주위 풍광을 감상하느라 일어날 줄 모른다. 서울 하늘은 황사와 미세번지로 뿌옇다고 하는데, 이곳의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다리품을 팔아 멀리 떠나온 보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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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봉]

    이제까지와 별 다를 바 없는 암봉인 7봉을 지나면 출렁다리가 다시 나오고 이내 8봉 앞에 서게 된다. 오르기도 내리기도 모두 가장 험한 곳이다. 그래서 그 앞의 경고문이 섬뜩하기조차 하다. 웬만하면 그냥 내려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물론 아니다. 네 발을 동원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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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봉]

 

   8봉에서 내려가는 길 역시 팔봉산의 내리막길 중 가장 험하면서도 또한 길다. 정상으로부터 바로 홍천강가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수직에 가까운 하산코스를 만들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암벽을 따라 내려가려니 밧줄, 철계단, 철제 받침대, 철제 난간 등 온갖 시설물이 다 동원되어 있다. 게다가 등산을 끝내는 시점이니 다리에 쌓인 피로도 만만치 않다.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무릎도 아프고 이젠 그만 걷고 싶다고 할 즈음에 홍천강가에 도착했다. 하산이, 아니 이 날의 등산이 모두 끝난 것이다. 쉬는 시간 포함해서 5시간 남짓 걸렸다.

 

   홍천강의 물은 생각만큼 차지는 않았다. 여름이라면 탁족(濯足)이라도 하면서 피로를 풀련만, 때가 때인지라 손만 담가 보는 것으로 그쳤다. 오래 전에 이 강에서 불의의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 하신 휴암스님 생각이 문득 난 것은 왜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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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