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산행)

2018.12.09 09:57

우민거사 조회 수: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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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忘坐坐忘行

歇馬松陰聽水聲

後我幾人先我去

各歸其止又何爭

      

    산길을 갈 땐 앉기를 잊고 앉으면 가길 잊어

    소나무 그늘에 말을 세우고 물소리나 듣는다

    뒤에 오던 몇 사람이 앞질러 지나간들

    다들 멈출 곳에서 멈출 테니 무엇을 다투리오

    


조선 중기의 송익필(宋翼弼. 1534-1599)이 쓴 시 "山行(산행)"이다.

글씨체는 예서(隸書) 죽간체(竹簡體).

  

산길을 갈 때는 가는 것이 너무 좋아 '쉰다'는 개념을 잊어버린다.

쉴 때는 또한 쉬는 것이 너무 좋아 '간다'는 개념을 잊어버린다.

시인은 지금 소나무 그늘 아래 말을 세우고 쉬면서 하염없이 물소리를 듣고 있다.

산과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다. 산이 곧 시인이고, 시인이 곧 산이다.

그 사이 뒤에서 처져오던 사람들이 여럿 시인을 앞질러 간다.

그 가운데는 뛰어가는 사람도 있다. 정상에 빨리 도착하려는 사람이다.

산에 오르는 이유가 제각각이니 그 오르는 방식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뒤에 있던 사람이 나를 추월해 간다고 해서 내가 신경쓸 일이 아니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것이다.

 

  이 시의 작자 송익필은 정작 이런 달관한 삶을 살지 못했다.

  송익필은 본래 할머니가 안돈후(安敦厚)의 천첩 소생이었으므로 신분이 미천하였다. 그런데 아버지 송사련이 안처겸(安處謙)의 역모를 조작, 고발하여 공신에 책봉되고 당상관에 올라, 그의 형제들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재능이 비상하고 문장이 뛰어나 일찍부터 문명(文名)을 떨쳤다.

    그러나 1586(선조 19) 동인들에 의해 안처겸의 역모가 조작임이 밝혀지고 그의 형제, 일가친척들이 안씨 집의 노비로 환속되자 이름을 바꾸고 도피 생활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3년 후인 1589년 기축옥사로 정여립(鄭汝立이발(李潑) 등 동인들이 제거되자 그의 형제들도 신분이 회복되었다. 그 때문에 기축옥사의 막후 조종 인물로 지목되기도 하였다.

    송익필은 1593년 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나, 일정한 거처없이 친구·문인들의 집을 전전하며 불우하게 살다 죽었다.

 

*2015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