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파서 물마시고

2018.06.25 21:25

우민거사 조회 수:112


하지 지난 지 이제 겨우 나흘밖에 안 되었는데, 오늘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3도였다.
복지경이 따로 없다.


“툭하면 전국적으로 30도를 넘는 날씨가 이어지고,
복지경이 아닌 6월인데도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가는 곳이 속출하다 보니,
여름을 날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 본 1년 전 6월 28일의 글 중 일부이다.
그 때 상황이 1년 후인 지금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무리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하지만, 찌는 더위가 일찍 찾아오는 것까지 굳이 같아야 한단 말인가.
결코 반갑지 않은 이야기다.


  지난 주말 밤에는 러시아 월드컵 F조 예선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2:1로 졌다는 소식이 전파를 탔다. 첫 경기였던 대(對) 스웨덴전에 이어 두 번째 패배이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경기 전에 애써 희망 섞인 전망들을 쏟아냈었지만, 전 세계 다른 언론들은 이미 우리의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한 경기 독일과의 싸움 역시 사실상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게 냉정한 현실이 아닐는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객관적인 지표가 우리가 독일보다 나을 것이 없으니 어쩌랴.

런 판에 공·수 양면의 핵심선수인 주장 기성용마저 부상으로 뛰지 못한다니... 


   ‘축구공은 둥글다’는 표현은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놓지 않으려 할 때 외치는 절규나 다름없다. 죽을힘을 다해 뛰겠다는 젊은 선수들의 각오가 가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들이 더위를 멋지게 날려 줄 시원한 한 방 소식을 전해 준다면 그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 기적이 일어난다면야 오죽 좋으랴.


‘꿩 대신 닭’이라고 했다.

월드컵에서 승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그 대신 다른 곳에서 더위를 이길 방도를 찾을 일이다. 
촌부는 지난 주말에 금당천변 우거에서 울안에 심은 감자를 캤다. 하지(夏至) 지난 직후이니 말 그대로 '하지감자'이다. 퇴비로 거름만 하였을 뿐 비료나 농약을 일체 사용 안 했는데도 알이 제법 굵다.


하지감자.jpg

완두콩.jpg


땡볕 아래서 감자를 캐는 동안에는 땀이 비 오듯 했지만, 다 캐고 나니까(고작 한 상자밖에 안 되지만) 뿌듯하였다. 집사람이 먼저 따놓은 완두콩과 더불어 여름농사의 수확물인 셈이다. 오이고추는 덤이고.
감자와 완두콩에서 시원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

이열치열(以熱治熱)이 따로 없다.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인간사(人間事)라고 다를 바 없다.

6·13 지방선거가 여당의 일방적인 압승이자 야당의 기록적인 참패로 끝났다. 보는 각도에 따라 그 원인이 여럿일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탄핵정국 이후 계속 이어져 온 야당의 지리멸렬이 초래한 결과가 아닐는지. 뿌린 대로 거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한 야당의 부재가 정부·여당의 폭주로 이어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포의야부(布衣野夫)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오만과 독선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늘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닐까.


완두콩으로 지은 밥에 울안에서 따온 상추, 오이, 고추로 쌈을 싸서 배불리 먹으니 부러울 게 없다. 격양가(擊壤歌)라도 불러 볼 거나.


日出而作 日入而息(일출이작 일입이식)
鑿井而飮 耕田而食(착정이음 경전이식)
帝力於我何有哉(제력어아하유재)


해 뜨면 들에 나가 일하고 해 지면 집에 들어 쉬고,
우물 파서 물마시고 밭을 갈아 밥 먹으니.
제왕의 권력이 나와 무슨 상관인가   


전설이 아닌 현실세계에서도 온 국민이 소리 내어 격양가를 부르는 때가 올 수 있을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조조익선(早早益善)이다.  


(후기) 2018. 6. 28. 새벽 기적이 일어났다. 러시아 월드컵에 출전한 우리 팀이 세계랭킹 1위인 독일 팀과 싸워 2:0 으로 이긴 것이다. 무더위를 한 방에 날려 버린 쾌거이다.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올 줄이야. 젊은 선수들의 열정과 패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대한민국 축구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