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추분(秋分)이 지났다. 

힌남노와 난마돌 두 개의 태풍이 지나가면서 더위를 몰아내고

한반도에 완연한 가을 날씨를 선물했다. 

황금색으로 변한 농촌 들녘을 보노라면 괜스레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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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秋分)을 전후하여 백로(白露)는 진즉에 지났고,

2주 후면 한로(寒露)이다.

가을이 다가옴을 알려주었던 하얀(白) 이슬(露)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면서 

가을이 무르익음을 알리는 찬(寒) 이슬(露)로 바뀌는 것이다. 

 

이른 새벽 사립문을 열고 금당천변으로 나선다. 

잠이 덜 깬 채로 거니는 촌로(村老)에게는 

풀잎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이 마냥 정겹게 다가온다.

더없이 반가운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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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 이슬방울뿐인가.

 

졸졸졸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 

수직의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낙엽, 

강남으로 안 가고 외로이 노니는 백로,

아직은 지지 않고 먼 산에 걸려 있는 달, 

 

이 모든 것이 이슬과 더불어 반가운 벗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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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을 바라보며, 

촌로 주제에 오우가(五友歌)까지 지을 수는 없고, 

두목(杜牧)의 흉내나 내 볼거나.        

 

金堂帶殘夢(금당대잔몽)

葉飛時忽驚(엽비시홀경)

露凝孤鷺遊(노응고로유)

月曉遠山橫(월효원산횡)

 

비몽사몽 간에 금당천을 거닐다가 

날아온 낙엽에 화들짝 놀라 깨니

이슬이 맺혀있고 백로 외로이 노니는데

새벽달이 먼 산에 걸려 있구나

 

'천하의 즐거움은 몸이 편하고 마음이 느긋한 것에 있다'

[天下之樂, 惟身逸而心閒(천하지락 유신일이심한).

이만용(李晩用. 1792-1863)의 "寐辨(매변)"에서 인용]

고 했던가. 

비록 천하의 즐거움까지는 아니어도, 

금당천변의 아침은 촌로에게 분명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나저나 

눈길을 어디로 돌려도 볼 수 있는 이런 목가적(牧歌的)인 정경이 

어찌하여 벽촌(僻村)에만 있는 걸까.

 

목하 대내외적으로 실로 난국(難局)인 상황에서,

국민은 전혀 안중(眼中)에 두지 않은 채,

오로지 와각지쟁(蝸角之爭)의 권력 다툼과 일신(一身)의 보위를 위한 정쟁에만 몰두하며 

최고의 ‘막장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는 위정자(僞政者)들의

퇴행적인 정치행태들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어린 백성들이 그저 격양가(擊壤)나 부르며 살 수는 없을까요?" 

 

Comme Au Premier Jour-1-Andre Gagno....mp3

(앙드레 가뇽, "첫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