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백로(白露)다. 

 

 

   아무리 세상이 번잡해도 세월은 어김없이 흐른다. “더워, 더워” 하던 게 엊그제인데, 벌써 오늘 아침 기온이 18도였다.

   오리떼와 노니는 금당천의 백로(白鷺)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백로(白露)가 지나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하면 백로(白鷺)는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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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당천의 백로와 오리]

 


   백로(白露)는 말 그대로 ‘흰 이슬’이라는 뜻이다.

이때쯤이면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통상 이 무렵에는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맑은 날씨가 계속된다. 


   그러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과 해일로 곡식의 피해를 겪기도 한다.

올해가 꼭 그럴 상황이다. 8호 태풍 ‘바비’, 9호 태풍 ‘마이삭’에 연이어 10호 태풍 ‘하이선’이 한반도에 들이닥칠 기세다.

아니 이 크지도 않은 땅에 이렇게 며칠 간격으로 태풍이 찾아오는 건 도대체 뭐람.

 

   기록적으로 54일이나 이어진 기나긴 장마로 인한 피해를 미처 다 복구하기도 전에 태풍이 연타를 가하니 죽을 맛이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다시 창궐하고 있지 않은가.  

 

  이 나라 백성은 지금 왜 이다지도 자연재해와 역병에 시달려야 하는가.

도대체 어린 백성이 무슨 큰 죄를 지었길래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가.

그냥 개천에서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지 주제넘게 용(龍)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려고 용을 쓴 업보인가.

분수를 모르는 미망에 사로잡혀 산 죄의 대가인가.

 

그런데 궁금하다.

 

가붕개 주제에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헛된 욕망을 가진 게 그리도 큰 죄인가?
가붕개 주제에 정부가 잔뜩 늘린 공무원 자리와 공공기관에서 감지덕지하며 고분고분 일할 것이지 쓸데없이 의사 같은 고소득자가 되려는 어리석은 욕망을 가진 게 그리도 큰 죄인가?
가붕개 주제에 공공 임대주택에 살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거늘 당치도 않게 영혼까지 끌어다 ‘내 집 마련의 꿈’을 꾸는 주제넘은 욕망을 품은 게 그리도 큰 죄인가? 대역죄라도 되나?

 

  이런 것들이 과연 그렇게 큰 죄인가?

큰 죄가 맞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면 가붕개들은 이런 큰 죄를 짓고 그나마 남은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길이 없는 게 아니다.

 

가붕개들끼리 서로

남자와 여자로 갈려 싸우고,

서울 사람과 시골 사람으로 갈려 싸우고,

영남, 호남, 충청의 지역별로 갈려 싸우고,

노인과 청년의 계층별로 갈려 싸우고,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갈려 싸우고,

의사와 간호사로 갈려 싸우고...

그렇게 서로 싸우고 싸우며 청맹과니로 지내면 된다. 


   가붕개는 마땅히 이이제이(以夷制夷)에 순응해야 한다. 연작(燕雀)인 주제에 홍곡(鴻鵠)의 뜻을 알려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중에 알려줄 때를 기다려 천천히 알면 된다.

또한 괜히 눈을 제대로 뜨고 교육이나 자산 축적을 통해 신분 상승을 도모할 일도 아니다. 얼토당토않은 신분 상승은 자칫 보수화로 연결되나니, 이는 곧 천벌을 받을 짓임을 깨쳐야 한다.

그간의 적폐청산 교훈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옛 성현의 가르침에 삼분지족(三分之足)이란 것이 있다.

사람은 모름지기 ‘분수를 알고, 분수를 지키고, 분수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 땅의 가붕개들은 모름지기 이 삼분지족(三分之足)의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분수를 모르고 감히 DNA가 전혀 다른 용(龍)이 되려고 애쓰면 절대 안 된다.

가붕개는 가붕개일 뿐이다.

 

  미망에 사로잡혔던 가붕개들이 이제라도 이렇게 자신의 죄를 알고 성현의 가르침에 순종한다면, 더이상 자연재해나 역병에 시달리지 않고 안온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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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의 변화는 아무래도 대처보다 촌에서 빠르게 느낀다. 자연의 색이 눈에 띄게 변하기 때문이다.

   대문 밖 논이 그동안의 짙푸른 초록색에서 서서히 황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울안에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엊그제의 애호박이 어느새 늙은 호박으로 변했다.

가을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제 곧 하늘이 높아지고 사람이 살찌리라(天高人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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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곡(五穀)이 여물어 가는 때에

그동안 역병, 장마, 태풍에 시달린 백성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선물한 ‘시무7조’에 위정자(僞政者)들은 무어라고 답할까.

결실의 계절답게 좋은 결실을 보게 되려나.

가붕개도 이제부터는 용이 되려는 꿈을 꾸어도 될까.

붕어가 국토부 장관이 되고,

개가 법무부 장관이 될까.

 

물정 모르는 촌부의 한낱 망상인가.
사뭇 하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