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동안 판결문을 작성하여 오면서 가장 어렵게 느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관행처럼 굳어진 어려운 어투의 용어들을 쉽게 고쳐 쓰는 일이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일본식 표현, 거기에 덧붙여진 억지 영어식 표현, 맞춤법에 어긋난 낱말과 띄어쓰기, 피동형의 남발, 어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형태의 문장, 한 문장의 길이가 서너 쪽에 달할 정도로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서술형태...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법원도서관장 시절에 아래 기사에 나오는 '법원 맞춤법 자료집' 2006년 개정판을 발간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위의 법관들에게 "맞춤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그 책을 항상 법전 옆에 두고 판결문을 작성하라고 권했다. 나아가 매년 신임법관 연수 때에는 법원도서관의 담당 심의관으로 하여금 출강하여 그 점을 강조하게 하였다(그 당시 수고한 오경미 판사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비록 내가 처음 법관이 되었을 때보다는 상당히 좋아졌지만, 여전히 미진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차에 법원도서관에서 전문 국어학자와 손잡고 다시 '법원 맞춤법 자료집' 전면 개정판을 발간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누구보다도 젊은 법관들이 늘 이 책을 가까이함으로써, 기왕의 잘못된 판결투가 몸에 배기 전에 보다 읽기 쉽고 세련된 판결문을 작성하기를 기대한다.

   한 번 작성한 판결문은 영원히 보관되어 후세 사람들의 열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보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까. 아무쪼록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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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용어라 바꿀 수 없다던 판사님 설득 어려웠죠

 

[중앙일보 2013.3.5.자]

 

‘법원 맞춤법 자료집’ 감수 이병규 서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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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넘게 법원 판결문이라는 ‘외계어’와 씨름한 국어학자가 있다.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이병규(44) 교수다. 지난해 6월부터 최근까지 대법원 산하 법원도서관과 함께 ‘법원 맞춤법 자료집’ 전면 개정 작업을 했다.

 

 “첫 5개월 간 다른 연구진 5명과 초고 작업을 끝냈어요. 근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법원도서관 측이 ‘법률전문용어’라며 띄어쓰기나 용어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겁니다. 설득했죠. 설전도 벌였어요.”

 

 이 교수를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어려운 단어와 표현들이 난무해 ‘외계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법원 판결문 개정 작업을 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보람도 있었다”며 웃었다.

 

 ‘법원 맞춤법 자료집’ 개정은 법원도서관 측이 판결문을 쉽고 바른 문장으로 고쳐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작업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추천을 받아 이 교수를 작업 동반자로 부르고, 국어연구원 연구진 5명과 팀을 꾸렸다. 자료집은 판결문을 쓰는 일선 판사들에게는 참고서 격으로, 1997년 첫 발간 이후 2006년 개정판이 나왔다. 전면 개정판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조찬영 조사심의관(판사) 등 법원도서관 측의 의지가 강했고 열성적으로 하셨어요. 근데 법조인의 시각과 국어학자의 시각이 좀 달랐던 거죠. 조율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법률에 명시돼 있어 함부로 바꿀 수 없는 용어들’을 제외하곤 법원도서관 측이 제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했습니다.”

 

 ‘국어학자 입장에서 법원 판결문에 작문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이나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 교수는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라고 했다. 전문 분야 구성원들만 보는 글이라면 몰라도 일반 국민이 접하는 글이기 때문에 결코 후한 점수는 주기 어렵다는 거다. 그는 판결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관행적 단어 사용과 현실과 동떨어진 표현을 지적했다.

 

 “외포(畏怖), 경락(競落), 도과(徒過)… 이런 단어들은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아요. 물론 사전이 모든 전문용어를 아우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다면 쉽고 정확한 말로 바꿔 쓰는 게 맞습니다.”

 

 이 교수는 자료집 초고 작성을 위해 민사·형사·행정·가사 사건 등 유형별로 1000건에 달하는 판결문을 분석했다.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관행 으로 쓰이고 있는 것에 놀랐다고 했다. “예를 보죠. 판결문에는 ‘여성 근로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하다’처럼 ‘~을 양립하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그런데 ‘양립하다’는 목적어를 취할 수 없는 서술어죠. ‘~와 ~가 양립하다’로 써야 맞는 거죠.”

 

 8개월의 산고(産苦) 끝에 출간된 ‘법원 맞춤법 자료집’은 일선 법원에 배포돼 실제 판결문 작성 때 참고서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 교수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판사들이 더 쉽고 아름다운 글로 판결문을 쓴다면 그게 큰 보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 교육과정을 마친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게 좋은 글이죠. 판결문은 당사자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문제잖아요. 법원이 판단을 했는데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이젠 나아지겠죠.”

 

글·사진=이동현 기자

 

출처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875/10844875.html?c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