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지---怒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2010.02.16 13:30

송종의 조회 수:14355

                                                怒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화우양춘(花遇陽春) 인봉태운(人逢泰運)

  이 구절은 노무현 대통령께서 공(公)을 검찰총장으로 지명하였다는 방송내용을 듣고 어제 저녁 대검으로 보낸 저의 축전 내용입니다.
  이는 공(公)의 금년 운세가 그렇다는 어느 역술인의 점괘가 아니라, 공이 검찰총장으로서의공직을 수행하는 동안 꽃이 양명한 봄날에 만개하듯이 공이 편안한 대운을 만나 만사가 형통하기를 바라는 나의 소박한 소망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선 공이 검찰의 최고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공의 앞날에 더욱 큰 영광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公에 대한 인사만은 큰 기대

  역대정권이 예외없이 그러하였듯이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수많은 인재가 부침(浮沈)을 거듭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공에 대한 이번의 인사만은 큰 기대를 걸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공의 대부항(大夫行)의 종친이라는 사실도 또 공이 나의 대학동문인 검찰 후배라는사실도 그 기대의 이유는 물론 아닙니다.

  대검찰청 차장검사를 끝으로 검찰을 떠난 지도 벌써 8년, 법제처장을 그만두고 임천(林泉)에 노닌지도 어언 10년의 반이 지났으니 뙈 오래 전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하군요. 그 때 변화와 개혁을 표방한 문민정부의 출범과 때맞추어 시작된 사정수사가 한창일때이니 꼭 10년 전인 1993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 사람은 서울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고 공은 형사3부장이었을 것입니다.

  형사 3부에서는 교육풍토쇄신을 위하여 대학입시 및 편입학 부정사건수사를 전담하였었지요. 많은 수의 학부모가 자식의 장래를 지극히 염려하면서 돈을 잘못 뿌린 죄로 눈물을 흘리며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중에는 나의 절친한 친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간밤에 수사관에서 임의 동행되어 갔다는 말을 전해들은 나는 다음 날 아침 공이 들고온 수사결과 보고서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급히 살펴보았습니다. 그 보고서의 구속대상자명단 속에는 그의 성명 3자가 틀림없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공은 그가 나의 친우라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섭섭한 일면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공사의 구분이 이처럼 분명함에 대하여 크게 안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공이 수사한 사안들을 일일이 따져본 바가 없음은 송광수 부장검사가 처리하는 사건들이라는 것이 그 이유의 전부였습니다. 서로 마주쳐다보면서 웃는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쌓였을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금년 구정 직전 내가 이곳 논산에서 손수 제조한 식품인 밤다이스 통조림 시제품 1병을 택배에 부탁하여 고의 서울 사저로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한촌(閑村)에 머물며 잊혀진 나에게도 무슨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정갈스러운 선물을 보내주는 후배가 몇 명 있습니다.
  나는 공이 보낸 여러 번의 정성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잘 받아오고 있습니다. 대례에 대한 소례로 보낸 밤다이스 1병은 며칠 후 이 곳으로 되돌아 오고 말았습니다. 그간 어디 다른 곳으로 이사한 것이려니 생각하고 다시 알아보니 공은 서울 주소를 옮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반환된 물건의 포장을 다시 살펴본 즉 배달사고는 가족의 수령거절이 그 이유였습니다.

  자허원군성유심문(紫虛元君誠諭心文)이란 옛글에 이르되 물순래이물거(物順來而勿拒) 물이거이물추(物已去而勿追)라 하였소. 굳이 부언하면 재물이 순하게 온다면 이를 거절하지 말 것이며 재물이 이미 나를 떠났거든 이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지요.
  공이 나의 자그마한 성의를 받았다면 자허원군의 훌륭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되며 가족이 받지 아니함으로써 돌아온 것이라면 공의 친인척 관리는 그야말로 검찰총장이 아깝고 오히려 대통령 감이오. 받아도 옳고 받지 아니하여도 옳은 이 아이러니는 인품이 훌륭한 경우에만 성립될 수 있는 역설인 것이오.

    검찰의 병, 고황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나는 가족이 거절할 것을 예측하지 못한 채 고위공직자의 집으로 선물을 보낸 사려깊지 못한 소치로 인하여 택배비용만 갑절을 물어내고 말았소. 송광수의 공사(公私)가 이러하므로 노대통령의 인사 가운데 다른 부분을 잘 모르겠으나 검찰총장의 인선만은 제대로 되었다고 믿어 앞날을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

  1995년 가을, 혜안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예측대로 법조후배기수에서 검찰총장이 발탁되던 날 제가 대검차장검사를 끝으로 청춘을 불태웠던 검찰을 떠나면서 충정으로 다음 3가지를 후배들에게 부탁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들에게 부탁하는 못난 선배의 말이었지요.
  첫째는 검찰의 권위를 바로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면으로서의 권위가 아니라 국민이 달아주는 고귀한 훈장으로서의 권위말입니다.
  둘째는 검찰의 명예를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명예는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입니다. 조직의 명예는 개인의 명예보다 더욱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존경받는 검찰이 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가지 모두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남이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게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이 누구입니까? 바로 국민이 아니겠습니까? 손, 발과 입은 내 스스로 제어할 수 있으나 눈, 귀와 코는 내 뜻대로 잘 되지 않는 것이어서 세상 일을 잊고 사는 이 사람도 검찰의 모습과 이야기를 보고 듣게 될 뿐 아니라 냄새 없는 악취마저도 감지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몇 달이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무슨 무슨 게이트 또 한 사람도 아닌 몇 명이나 되는 특별 검사들,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 나라 최고 수사기관의 불쌍한 일반 검사들. 보고 듣지 않으려 해도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었습니다.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을 잊으라고 가르쳤으나 양의 동서와 때의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여자가 친정을 생각치 아니 할 수 있었으리오. 나는 이미 법조인이 아니다라고 수없이 되뇌어 왔건만 눈과 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고.

  얼마 전에 있었던 대통령과 평검사들 사이의 토론 광경을 TV로 보면서 그들의 잘잘못과 내용의 당부(當否)를 가리기에 앞서 나는 혼자 마음 속의 눈물을 한 없이 쏟은 바 있었습니다.
  권위와 명예와 국민의 존경심은 이미 흘러간 사전 속의 죽은 용어일 뿐 살아있는 말이 아니며 검찰의 병이 이미 고황(膏, 사람 몸의 가장 깊은 곳을 일컫는 말)에 이르러 온전한 검찰상을 회복하기에는 매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는 다 있었겠으나 능력있고 훌륭한 많은 인재가 검찰을 떠나는 모습이 연일 큰 뉴스로 보도되는 듯 합니다.
  온전한 사람을 찾아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21세기의 디오게네스는 이 급한 시절에 지금 어디를 방황하고 있길래 촛불을 밝혀도 볼 수가 없는가? 많은 동료와 선후배의 한 많은 무덤 위에 세워지는 팔자 사나운 검찰! 이것이 지금의 검찰입니다.

    지혜와 용기앞에 장애없다

  사기(史記)에 이르되 문왕(文王)이 한 번 크게 노함에 백성이 안태(安泰)하더라. “
  송광수 검찰총장!
  그대가 비록 통치자는 아니나 이제 크게 노하여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대가 노하지 아니하고 울분을 토하지 못한다면 국민 모두가 노하고 또 분개할 것입니다. 복받치는 울음 속에서 울어나오는 분노이어야 합니다. 크게 울고 길게 노하여야 합니다.

  결코 짧지 않았던 나의 공직 생활에 비추어 보면 직책이 주는 영광이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광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이 검찰총장으로 취임하는 날부터 그대를 향하여 비추던 섬광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 때부터는 재임 기간 중 풀어나가야 할 많은 과제와 책임만이 빛이 색깔을 달리한 채 끝까지 공을 비추고 있을 것입니다. 꽃은 바람에 날리고 달은 구름에 가리는 법입니다. 어찌 편안한 날만이 이어질 수 있으리오. 장애물은 도전의 노리개요. 시련은 희망의 약속입니다.

    도전하여 장애와 시련을 극복하십시오.

  위대한 결과는 원대한 포부가 가져다 주는 선물입니다. 어느 한 사람의 탁월한 능력보다도 완벽한 조화 속에 전개되는 총화의 노력이 더욱 값질 것입니다. 지혜와 용기 앞에 장애는 있을 수 없으며 이 두 낱말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열쇠입니다. 원대한 뜻을 세워 분심을 품고 검찰의 총화를 바탕으로 당당히 시련을 극복해 나간다면 반드시 값진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검찰 선후배 모두가 앵무새처럼 외워 온 검찰수사의 독립과 중립이 굳건히 확립되기를 천지신명께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2003년 3월 13일 송종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