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2016. 4. 1.자)   
“적극적으로 일하다 나온 공무원 실수, 과감히 면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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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일영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이 3월 2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다듬고 있다. 민 위원장은 “사회가 고도화할수록 공무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이 더욱 청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민일영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

대법관을 끝으로 32년간의 법관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난 2월부터 제15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수장을 맡고 있는 민일영(61) 위원장을 정부서울청사에서 3월 28일 만났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이 내려다보이는 정부서울청사 건물은 조선 시대 공직 기강을 바로잡던 사헌부 건물이 있던 곳이다. 사헌부는 임금의 명에 따라 옳고 그름을 엄정하게 심판하고, 관리의 부정을 조사해 엄벌하던 곳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의 주 임무 역시 1993년 김영삼정부에서 실시된 금융실명제와 함께 도입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통해 공직자들의 부정한 재산 증식을 감시하는 등 공직자 기강을 바로잡는 일이다. 대법관 시절 민 위원장은 대쪽 같은 성품과 온화함을 겸비한 ‘꼿꼿 판사’의 표상이었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안전기획부 엑스파일’‘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주민 상고’ 등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맡아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엄정한 잣대로 원칙과 소신을 관철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옛 사헌부 터에 자리 잡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 역시 예사 인연이 아닌 듯싶다.

“ 6년간의 대법관 퇴임사에서 이제야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에서 벗어나 좀 쉬게 됐다고 하셨는데, 얼마 못 쉬고 또 중책을 맡게 돼 일복을 타고난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넨 뒤, 한 달여 동안 위원장을 맡은 소회를 물었다.

“법관 때와 전혀 다른 생소한 업무를 맡다 보니 솔직히 겁도 났다. 재산 등록 및 공개와 취업제한 여부를 결정하는 게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인데, 대상자만 거의 14만 명에 이른다. 회의를 2번 주재해 보니 조선 시대 사헌부쯤 되는, 막중한 역할로 어깨가 무겁다.”

민 위원장은 “재산공개 시즌만 되면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퇴직 고위공직자 재취업과 관련해 ‘관피아’라는 말도 많이 나돌고 있어 위원회 운영에 더욱 심사숙고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래도 다행인 것은, 대법관 때처럼 1년 내내 월화수목금금금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지난달 25일 위원회가 공개한 고위공직자 정기 재산변동 신고 결과, 지난 한 해 최악의 경기불황 속에서도 고위공직자 10명 중 7명이 재산을 불린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공직자 재산 증식이 위법은 아니지만 갈수록 재산이 줄어드는 서민들로서는 허탈감·박탈감·위화감이 큰 게 사실이다.

“국민은 언론을 통해 재산 내역을 알게 된다.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이 평균 5500만 원 늘었다. 사실 서울에 집 한 채만 갖고 있어도 공시가격이나 공시지가 상승과 맞물려 재산이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매년 다수 공직자의 재산 변동 사항이 한날, 한꺼번에 공개되면서 특정 공직자의 재산총액이라든지, 재산 증감 내역 등 화제성 사안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 같다. 이제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역사가 어느 정도 축적됐으니 재산공개를 객관적이고 생산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번에 신고된 공개자들의 재산 내역에 문제가 있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하나.

“공개된 공직자 1813명의 재산 변동사항에 대해 6월 말까지 3개월간 실사를 벌인다. 신고 재산의 과다 혹은 누락뿐 아니라 재산 취득경위, 소득원 등 재산 형성 과정을 모두 살펴본다. 실사 결과 부정 증식 혐의가 드러나면 거기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 재산심사 결과 등록재산을 거짓으로 기재했거나 중대한 과실로 누락 또는 잘못 기재했거나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경우는 공직자윤리법 제8조 2항에 따라 경고 및 시정조치, 과태료 부과, 해임·징계의결 요청 등 조치를 취하게 된다.”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는 매년 기준을 강화하는 추세지만 관피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공직자들도 할 말이 많겠지만 국민 기준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퇴직공직자의 재취업 자체를 관피아로 보는 시각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 3월 30일 공직자윤리법이 강화돼 취업제한기관 수가 늘면서 취업심사 건수가 2014년 260건에서 2015년 538건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취업제한 비율도 2012년 5%에서 지난해 20.8%로 높아졌다. 앞으로 취업심사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실시해 취업심사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높여 나가도록 하겠다.”

민 위원장에 따르면, 비영리분야 취업제한기관이 새로 지정돼 기존 사(私)기업체의 경우 2014년 3960개에서 올해 1만4214개로 늘어났다. 관피아를 막기 위한 조치이긴 하지만 제한대상이 엄청나게 늘다 보니 그만큼 공직자가 재취업할 수 있는 문이 좁아졌다.

―취업기준 강화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 부처마다 재취업제한으로 고위직이 자리를 지키다 보니 승진 등에서 동맥경화에 걸려 공무원 사회 조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얘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그래서 고민이 많다. 어떻게 보면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막고 있는 셈이다. 취업제한 제도를 두는 것은 다른 나라에도 입법례가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건 등을 겪으면서 관피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탓에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강화라는 한길로 달려가다 보니, 헌법상 자유와 상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숙제로 떠올랐다.”

―급조해서 제도를 만들다 보니 부작용도 따르는 것 같다.

“재산등록의무자 14만 명의 공무원이 취업제한 대상이 되다 보니 특정 부서의 경우 6급, 7급 공무원들도 퇴직 후 단순업무 재취업을 하려 해도 꼼꼼한 심사를 받게 된다. 과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 관피아를 막자는 본래 취지와도 어긋난다. 이제는 종합적으로 검토해 과연 우리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참 어려운 숙제다. 자리는 만들어야 하고 사람은 내보내야 아랫사람이 승진하는데. 아무튼 관피아 문제나 방위사업 비리는 계속 터져 나오니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인사혁신처에서 소극 행정을 하는 공무원들도 징계하기로 방침을 밝히면서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소극 행정을 공무원 윤리 차원에서 바라본다면.

“인사혁신처의 업무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야말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안 하는 공무원의 무사안일, 복지부동 등 소극 행정 공무원에게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어 공무원징계령 시행령 시행규칙을 개정한 것이라고 본다.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방임하거나 꼭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있으면 국민에게 불편을 주거나 권익을 침해해 국가 재정에 손실을 끼치고 결국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무원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공복인데, ‘나는 소극적으로 자리만 지키면서 철밥통으로 정년까지 가면 돼’ 하는 태도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일하다가 나온 실수를 제대로 평가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면책해야 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원회 회의 방식에 적용할 수 있는 게 있는지.

“공직자윤리위 회의도 전원합의체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대법원에서 다수 의견, 소수 의견으로 결정이 나는 것처럼 위원회도 다수결로 결론을 내린다. 다만 대법원은 누가 무슨 의견을 냈는지 다 공개되는데, 위원회는 어차피 위원장, 부위원장 빼고는 위원 명단도 비공개라 의견 공개는 불가능하다. 윤리위원 명단을 비공개로 하는 이유는 그래야 바깥에서 로비 등 영향받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다.”

민 위원장은 32년간의 법관생활이 주는 이미지와 달리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영화 ‘서편제’를 보고 국악에 매료돼 2005년부터 판소리를 익혀 국립국악원 무대에 선 판소리 전도사다. 사법연수원 석좌교수 시절 집무실에서 서예를 하는 서예예찬론자이면서 동시에 전국 법원산악회 회장도 맡았다.

―대법관 퇴임사를 보니 후배 법조인들에게 유독 취미생활을 권했는데, 판관의 자질과도 연관이 있는지.

“재판의 독립, 엄정함과는 사실 상관이 없고 취미를 강조하는 이유는 딴 데 있다. 판사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하고 기록을 보다 저녁 먹고 자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그렇게 살다 보면 머리가 한쪽 방향으로 굳어져 버린다. 다양한 세상살이를 알아야 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한데 자칫하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 그러면 사회를 보는 관점이 좁아진다.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건 정말 외계인이 되는 길이다. 세상은 변해 가고 다양화되는데 나는 내 길만 간다고 하면 과연 판사로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겠는가. 외골수에 빠지는 삶을 막으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양한 면을 보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문화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힐링된다. 전국법원산악회 회장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 산행을 권장했다. 산에 갔다 오면 판결 기록이 더 잘 보이고, 일이 더 잘된다고 말했다. 머릿속을 일단 한번 비우고 재충전하면 일의 능률이 더 오른다고 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잠깐 머리를 식히는 게 좋을 수 있다. 삶을 다양화해야 시야도 넓어지고 시각도 다채로워진다.”

―대법관 시절 워커홀릭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떻게 취미생활이 가능했는지.

“‘시간이 나면 한다’는 생각으로는 영원히 취미생활을 못 한다. 취미생활은 시간을 내서 하는 것이다. ‘시간이 나서’와 ‘시간을 내서’는 획 하나 차이다. 후배 법조인들에게 거창하게 시간을 많이 내라는 게 아니라 1주일에 2시간만 투자하라고 했다. 제가 판소리를 배울 때 1주일에 2시간 냈는데, 국립국악원 무대에도 섰다. 그게 가능하다. 어느 직역이든 마찬가지인데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1주일 2시간을 못 내는 건 말이 안 된다. 결국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

―향후 공직자윤리위 활동은 어디에 방점을 둘 생각인가.

“결국 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이 재산 등록과 취업제한이니 공무원들이 부정한 재산 증식을 하는지를 엄밀히 심사하고 대처해서 이른바 관피아 발효를 막아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지탄받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런 방향으로 세밀하게 신경 쓰면서 하겠다. 그래야 위원회가 제대로 일을 하고 우리 사회가 제대로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잿밥에 눈을 돌리는 것을 막을 것이다. 부정하게 재산 증식한 게 밝혀지면 그에 맞는 여러 처분을 단계별로 할 수 있다.”

―대법관 재임 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제주해군기지 강정마을 사건 등 어느 하나 간단한 사건이 없었는데 매사가 그런 것 같다. 힘들 때, 결론 내기 어렵고 부담스러울 때는 결국 원칙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 법의 취지, 법이 정한 대로 가는 것이 정도다. 그게 법관이 할 몫이기도 하다. 저는 그렇게 사건을 처리했다. 입법기관이 아니라 법을 만들지는 못해도 기본적으로 정해진 법에 충실하게 원칙을 따라간다는 게 기본 입장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사건들을 처리했다. 그래도 엄청 힘들었다.”

―사법연수원에서 강의할 때 ‘선배 힘들게 하는 거 자제하라’는 발언으로 일각에서 중립성 위배 논란을 제기했다는데.

“법관 판결을 두고 사법불신이란 말이 많이 나오는데, 고무줄 판결 논란이 있으면 안 된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다. 고무줄 판결이면 국민이 어느 기준을 따라가야 하겠는가. 법원 판결은 누구나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돼야 한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제가 무슨 얘기를 잘못했나 오히려 궁금해지더라.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는 판결을 해야 국민이 헷갈리지 않지, 판사에 따라 달라지면 안 된다. 대법원 판례가 누적돼 있는데 그걸 무시하고 돈키호테 같은 판결을 하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법관이 공명심에 치우쳐서 자기 이름 알리려고 엉뚱한 판결을 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 헌법에 법관은 양심에 따라 판결하게 돼 있는데 그 양심은 개인의 독단적 판단을 말하는 게 아니라 법관의 직업적인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원님 재판하면 선배들은 불편하고 후배들은 존경 안 하고 동료들로부터는 신뢰를 못 받게 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청렴하다는 것은 천하의 큰 장사로, 청렴은 목민관의 임무로서 모든 선의 근원이자, 모든 덕의 뿌리’라고 하셨다. 현대 사회에서 공무원의 윤리는 어떤 의미를 갖나.

“사회가 고도화되고 전문화될수록 공무원들이 자기 책무에 충실하면서 부정과는 거리가 멀어져야 한다. 과거에는 공무원들이 사회를 이끌고 선도해 왔다. 후진국에서 중진국, 선진국으로 가는 데 공무원 역할이 컸다. 그때는 민간이 못 따라왔지만 지금은 민간부문이 나날이 발전하고, 이제는 공무원이 뒤쫓는 형국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공무원 사회가 깨끗하지 못하고 그래서 사회의 뒷다리를 잡게 되면 공무원 조직이 우리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공무원의 윤리가 상당히 중요하다. 공무원들이 재산 증식에만 눈이 돌아가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면 어떻게 나라가 발전하고 선진사회가 되겠는가. 자기 직무에 충실하면서 올바른 마음가짐을 유지하지 못하면 나라는 퇴보할 것이다.”

―공직자들이 지켜야 할 덕목은.

“공직자로서 청렴해야 하고 공정해야 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덕목이다. 저는 평소 다산 선생의 말씀을 인용하는 외에,  ‘대학’에 나오는 ‘심성구지(心誠求之)면 수부중(雖不中)이라도 불원의(不遠矣)’라는 글귀를 또한 강조하는데,  이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울이면 목표에 100% 적중하지는 못해도 결코 멀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궁을 보면 목표물에 조준해서 쏘는데 어떤 화살은 정중앙으로 날아가 카메라 거울까지 깨기도 하지만 어떤 화살은 어디로 날아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개 보면 10점을 못 맞혀도 9점, 8점, 7점까지는 맞힌다. 마음을 기울여서 정성을 다하면 10점은 못 맞혀도 9점, 8점은 맞힐 수 있다. 공직자로서의 자세도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공직자가 국민을 위해 하는 일을 대충 하면 그만큼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공직자가 정성을 다하면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100%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대공약수가 나오고 많은 국민을 위하는 길을 찾게 될 것이다. 이는 소극 행정과도 관련된 것이다. 재판도 그렇게 해야 한다.”

인터뷰 = 정충신 부장 (정치부) csjung@munhwa.com
정리 = 유현진 기자 cworang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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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일영 위원장이 3월 28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산을 부정하게 증식한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면밀한 조사를 거쳐 전보다 강화된 조치를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대법원에서 1년에 4만건 처리...말 안 돼"
“형사사건 성공보수 받는 건 정말 창피한 얘기”

사법개혁에 대한 개인 생각은…

32년간 법조인으로 살아온 민일영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은 사법고시 존치, 상고법원 도입 문제 등 법조계 화두에 대해 묻자 “이제 퇴직했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 입장에서 답변하겠다”고 했다. 개인 의견을 전제로 한 그의 답변은 단호했다.

―여전히 사법고시 존치 문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모든 제도라는 게 하루아침에 정착되지 않는다. 느닷없이 원위치시키면 또 혼란만 오고 국가 정책의 신뢰가 무너진다. 국가 정책은 일관성 있고 일정한 방향으로 가야지 조변석개(朝變夕改) 식으로 하면 국민이 국가 정책을 못 믿게 된다. 어느 제도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없다.”

―대법관은 퇴임 후에도 공적 기여를 해야 한다는 시각과 전관예우를 이유로 변호사 개업에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데.

“풀기 어려운 문제다. 공직자윤리위와도 상관이 있는데, 법에서 금지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된다. 법에서 금지를 안 하는데도 불구하고 변호사회에서 임의로 금지한다면 그건 위법이다. 공직자윤리위도 퇴직공직자 취업제한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규정 외로 제한을 하면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 정서상 대법관을 하고 난 뒤 변호사 하는 게 과연 옳으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변호사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면 그런 시각이 맞다. 그런데 돈벌이 수단으로만 본다면 너무 변호사라는 직업을 폄하하는 것 같다. 국선 변호사가 업무 성공보수를 받으면 안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변호사 업무가 단순 돈벌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판례가 나갈 수 없었다.”

―상고법원 도입 논란에 대한 견해는.

“대법관 경험으로 보면, 정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상고제한을 안 하고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소위 선진 사법제도 도입국 가운데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상고제한을 안 하는 건 터무니없다. 대법관 12명이 1년에 4만 건을 처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대법원에서 이 문제를 풀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법안을 제출했지만 번번이 국회에서 좌절됐다. 비유컨대 서울대병원에서 수많은 감기 환자를 볼 필요가 없다. 동네병원에서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법조계는 감기 환자가 다 서울대병원을 가도록 내버려두는 식인가.”

―상고법원이 4심제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그건 아니다. 사실 심급이 3심, 4심, 5심이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머릿속에는 삼세 번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만일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다면 4심이나 마찬가지다. 파기환송하면 5심, 7심까지 될 수 있는데 그건 초점이 어긋난 것이다. 상고법원에 보낼 사건을 대법원에서 정하게 된다. 도대체 왜 그런 반론을 위한 반론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지방변호사회 중 변호사 수가 제일 많은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는 상고법원을 공개적으로 찬성했는데,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반대했다. 변호사 사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 사안이다.”

―형사사건 성공보수 제도를 ‘너무 창피한 일’이라고 하셨는데 유독 일본은 왜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일본은 뭐 하나를 고치는 데 정말 오래 걸린다. 독특한 사회다. 아무튼 성공보수는 정말 창피한 이야기였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저는 없애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문명국가에서 그걸 인정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더 이상의 창피를 면하자고 대법원이 과감히 칼을 뽑았다.”

정충신 기자 csju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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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위원장은… ‘소신’ 대법관으로 정평… 아내는 탈북자 인권운동

두아들도 법조계 몸 담아

민일영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제15대 위원장은 공무원 부정부패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원들의 시야를 넓게 만드는 다양한 호기심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실제 그는 다소 무미건조할 수 있는 법관생활도 산행과 판소리 등 다양한 취미를 통해 다채롭게 만들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자신이 맡은 사회적 소임을 다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민 위원장은 지난 6년간의 대법관 임기 동안 굵직한 사건들을 맡으면서 사법부에 큰 족적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미래에 받을 퇴직연금 등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으로 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주심을 맡아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3대 0의 전원일치 의견을 냈다.

소신 있는 소수 의견도 많이 냈다. 특히 민 위원장이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소수 의견은 2014년 ‘국가재산 무단점유자에 대한 과태료 부과 외에 별도 민사소송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가 주심을 맡았다. 그는 “공무원들이 소위 손에 피를 묻히기 싫어 직접 집행해야 하는 변상금 부과 처분을 내리지 않고 민사소송을 남발하는 행태를 바로잡았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이기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대법관 때부터 위원장이 된 지금까지 계속 견지해 온 태도다.

그의 아내는 탈북자 인권운동으로 이름을 알린 박선영 동국대 교수다. 박 교수는 1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탈북자학교인 물망초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민 위원장은 아내에 대해 “마음으로만 도와주고 있다”며 멋쩍어했다. 두 아들은 모두 법조계에 몸담고 있다. 큰아들은 변호사 개업을 앞두고 있고, 둘째 아들은 이번에 로스쿨을 졸업해 판사직을 희망하고 있다. 민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일요일 자정에도 내가 계속 일을 하니 큰아들이 법관은 절대 안 하겠다고 말하더라”는 일화도 소개했다. 민 위원장은 1년에 4만 건에 가까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대법관 제도의 폐해를 알리는 데도 앞장섰다. 대법관 퇴임 직후에는 “일단 쉬는 게 목표”라고 하기도 했지만 5개월 만에 다시 중책을 맡게 됐다. 그는 “쉬는 것도 팔자소관인가 보다”며 웃었다.

△1955년 경기 여주 △경복고 △서울대 법학과 △1978년 사법시험 20회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도서관장 △청주지방법원장 △2009년 대법관 임명 △사법연수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