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추세

2010.02.16 13:13

범의거사 조회 수:13354

  어느 여성 정치인이 그가 몸담고 있던 정당에서 탈당을 하면서 "여자 대통령이 세계적인 추세이다"라고 한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 여성 정치인이 바로 자기가 장차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의 말이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봐야 그 진실한 속내를 알 수 있으니까...

  바야흐로 여풍의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서울대학교의 단과대학 중 9개 대학의 올해 수석졸업자가 여자이고, 올해 임관한 판사의 30%가 여자인 세상이다. 헌법상 엄연히 남녀가 평등한 마당에, 여자라고 대통령이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능력만 있으면, 그리고 국민이 원해서 뽑아준다면 여자도 얼마든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위 여성 정치인의 말처럼 "여자 대통령이 세계적인 추세"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바야흐로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에 아래 신문기사는 또 뭐란 말인가. 구조조정의 기준이 개인의 능력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성별이어야 하는가....  

(동아일보 2002/02/26)

                 "사내부부 여성직원에 사표강요는 부당해고" 첫 판결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가 사내 부부 중 여성에게 사표를 종용한 것은 부당해고라는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9부(박국수·朴國洙 부장판사)는 26일 김모씨(34) 등 알리안츠제일생명보험에서 근무했던 여직원 4명이 “회사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썼다”며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 확인 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들이 사직한 98년부터 지금까지 월 170여만원씩의 월급과 이자도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사표를 쓰기는 했지만 이는 회사가 정리해고 부담을 피하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부부 사원 중 1명에게 퇴직을 종용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며 “이는 정리해고 요건 등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이므로 무효”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 등이 회사 측의 사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까지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가중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된 점이 인정된다”며 “이는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회사의 강요행위에 의한 결과”라고 덧붙였다.

  알리안츠제일생명에서 근무하던 여직원 김모씨(34) 등 4명이 사직서를 낸 것은 98년 8월. 당시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인원 감축이 불가피해지자 회사측은 부부사원들을 대상으로 사퇴를 요구했다.
  김씨는 회사 상사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이 사표를 쓰지 않으면 승진불가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며 수차례 사직 설득을 요구하자 결국 사표를 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사퇴한 사내 부부 88쌍 중 86명이 여성이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부사원 중 한사람에게 사표를 종용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이번 판결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여성에게만 희생을 강요해온 업계 관행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성계는 이번 판결을 크게 환영하고 있다. 여성민우회는 “남성들에게 억눌려온 여성들이 이제는 외부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원하는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라며 “여성에게 우선적인 희생을 강요해 온 잘못된 관행에 경각심을 울렸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고법에는 750여쌍의 부부사원 중 1명씩이 비슷한 이유로 사표를 쓴 농협 전 여직원들이 낸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재판 결과가 주목된다.(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