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의거사

(동아일보 2011. 9. 23.자)

 

의외였던 ‘이용훈의 선택’… 100% 다수의견 지지했다

14대 이용훈 대법원장은 재임 6년간 대법원 최고 판결기구인 전원합의체에서 단 한 번도 소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대법원장이 법원 좌편향 논란의 진원지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실제 사회적 논란이 된 판결에서는 사회 주류 및 대법관 다수와 항상 의견을 같이해온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동아일보 법조팀이 이 대법원장 임기 동안 전원합의 사건 95건과 이에 포함된 세부 쟁점 234건을 전수 검색해 심층 분석한 결과다. 이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수임한 탓에 재판에서 배제됐던 삼성에버랜드 사건(세부 쟁점 5건)을 제외한 모든 전원합의 사건에 참여했다.

분석한 결과 이 대법원장은 에버랜드 사건을 제외한 229건의 세부 쟁점에서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100% 다수 의견을 지지했다. 12대 윤관 전 대법원장과 13대 최종영 전 대법원장은 임기 동안 각각 2건과 1건의 소수 의견을 냈다.

이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 전원합의 사건은 95건으로 직전 최 전 대법원장 때의 63건보다 50%(32건)나 늘었다. 전원합의 사건 95건에 포함된 세부 쟁점은 234건으로 최 전 대법원장 때의 124건보다 89%(110건)나 증가했다.

특히 대법관들이 전원합의 사건의 세부 쟁점을 두고 치열하게 다툰 비율도 많이 늘었다. 최 전 대법원장 때는 전체 세부 쟁점 124건 중 38건(30.6%)에서만 대법관들의 의견이 갈렸다. 그러나 이 대법원장이 이끈 전원합의는 세부 쟁점 234건 중 81건(34.6%)에서 대법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대법원 관계자들은 지난 6년간 전원합의 사건이 크게 늘고 대법관들이 치열하게 다툰 점에 대해 “이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전원합의 회부와 난상토론을 적극 독려한 결과”라고 평했다.

최근 6년간 전체 전원합의 사건의 절반이 넘는 50건 이상의 판결에 참여한 대법관 중에서 이 대법원장과 가장 비슷한 성향을 보인 대법관은 양승태 차기 대법원장으로 나타났다. 이 대법원장과 양 차기 대법원장은 184개(95.3%) 쟁점에서 의견이 같았다. 한 대법관은 “이 대법원장이 정통 보수 법관이라는 점은 굳어진 평가여서 오히려 좌편향 논란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 자신도 8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법원장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나를 좌파로 보면 대한민국 국민 중에 누가 우파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또 “언론이 나를 좌파라고 하는 걸 보면 내가 대한민국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해주는 것 같아 그야말로 금상첨화”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퇴임하면 변호사로 개업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 대법원장이 참여한 다수 의견 중에는 박시환 대법관 등 5명의 진보 성향 대법관과 함께했던 적도 95건 중 11건으로 나타났지만 이 사건들 중 이념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은 없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