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여왕이란 호칭이 무색하게 전혀 계절의 여왕답지 않았던 5월이 가고 6월이다.

5월에 일찍 찾아왔던 무더위가 6월에 들어서자 오히려 물러가고 시원한 날이 이어지니 헷갈리기 십상이다. 정말 철이 철들지 않은 듯하다.


   그나저나 이 달마저 지나면 어느새 올 한 해도 꺾이게 된다. 현충일 덕분에 사흘간의 연휴가 시작되지만,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는 일보다는 연휴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까 하는 궁리를 더하게 마련인 게 작금의 세시풍속 아닐까. 


   연휴의 끝인 양력 6월 6일은 음력 5월 5일이다. 음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양력 기준으로는 망종(芒種)이고 음력 기준으로는 단오(端午)이다.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망종(芒種)은 벼와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동시에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 보리를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도시생활만 하는 사람들은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여?” 하겠지만,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곧 망종이니라”라는 말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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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종 풍경](이억영)


   수릿날 또는 天中節이라고도 불리는 端午는 初五의 뜻으로, 五와 午가 같은 음인 데 착안하여 5월의 “첫째(端) 五일”을 端午로 이름 지은 것이다. 더구나 음력 5월은 말의 달(午月)이니 기막힌 궁합이다.

   본래 음양철학에서는 홀수를 양(陽)으로 치고 짝수를 음(陰)으로 치기 때문에, 예로부터 홀수가 겹쳐 生氣가 倍加되는 3월 3일(삼짓날), 5월 5일(단오), 7월 7일(칠석), 9월 9일(중양절)을 중요하게 생각하였고, 그 중에서도 단오는 일년 중 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왔다.


   단오를 수릿날이라고도 하는 것은, 수리는 神이라는 뜻과 ‘높다’는 뜻을 지녀 이것을 합치면 ‘높은 신이 오시는 날’이란 뜻이 된다고 한다.

   기생 월매의 딸 춘향이가 그녀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이도령을 처음 만난 날도 바로 단오인데, 결과적으로 춘향에게는 단오가 말 그대로 수릿날, 즉 ‘높은 신이 오신 날’이었던 셈이다. 陽氣가 왕성한 이도령이 춘향의 그네 뛰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을 보면 남녀 간의 인연은 예나 지금이나 따로 정해져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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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오도](신윤복)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는 전국 각지에서 단오날에 각종 행사가 펼쳐지는데, 그 중에서 강릉의 단오제가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등록되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2005년 11월에는 유네스코 지정 인류 구전 및 문화유산 걸작으로 등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알고 중국사람들은 자기네 명절을 도둑맞았다고 매우 흥분하였다고 한다.


   각설하고,

 

   진짜 은행인지, 아니면 사채업자의 사금고인지 헷갈리는 어느 저축은행 사태로 세상이 어수선하기만 하다.

  그런 판국에, 한 해의 반이 접히고 계절의 반이 접힌다고 해서 마음마저 접히면 삶이 너무 서글퍼지지 않을까?

   작년 8월에 개통된 북한산 둘레길에 이어 이달 말에는 도봉산 둘레길도 개통된다고 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을 빙 둘러 한 바퀴 도는 두 길을 합치면 총연장 77km(여기도 홀수가 겹친다. 陽氣가 넘치는 좋은 길인가 보다)라고 하는데, 그 길을 찾아 서글픈 심신을 달래 보면 어떨까?

바야흐로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이니까! 

 

2011. 6. 3.

 

 

 

 

 

 

 

 6월의 달력 

 

  - 목필균 -


한 해 허리가 접힌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중년의 반도 접힌다
마음도 굵게 접힌다

동행 길에도 접히는 마음이 있는걸
헤어짐의 길목마다 피어나던 하얀 꽃
따가운 햇살이 등에 꽂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