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제15대 대법원장 취임사

2011.09.29 09:54

범의거사 조회 수:12543

 

  존경하는 내외 귀빈과 이 자리에 참석하신 동료 대법관 및 사법부 가족 여러분!

 

  오늘 제15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선 저의 가슴속에는 대임을 맡은 영예와 기쁨이 찾아들기에 앞서 책무의 막중함과 소명의 엄중함으로 인한 책임감만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필시 부족한 저에게 거는 모든 이들의 기대가 너무나 크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수행하여야 할 사명이 심히 중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가 헤쳐 나가야 할 갖가지 어려움에 관한 인식과 각오가 각별하여야 함을 알기에 저에게 남아 있는 모든 정열을 쏟아 대법원장으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법부는 격동하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영광과 굴절, 발전과 수난 그리고 기대와 실망의 순간이 교차되는 격랑 속에서 온갖 어려움을 하나하나 극복하여 왔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흐름을 거쳐 이제 사법부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적 요청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습니다. 사법부에 부여된 헌법적 기능을 수행함에 있어 실질적으로나 외형적으로 크나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는 건국 이래 헌법이 부여한 사명을 완수하고 민주주의 사법이 지향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애써 오신 모든 사법부 구성원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며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국민의 성원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신 모든 사법부 구성원과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친애하는 전국의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헌법이 사법부에 부여한 사명은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주의를 구현함으로써 일관성이 유지되고 예측가능성이 보장되는, 안정되고 평화로운 사회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러한 사회가 조성되어야만 자유민주사회의 가장 고귀한 가치인 개인의 존엄과 가치가 한껏 보장되고, 모든 국민이 기본권을 누리는 조화로운 삶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법이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사법부가 수행해야 할 최우선의 헌법적 사명입니다.

 

  아울러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가 다수의 그늘에 묻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사법부에 맡겨진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헌법이 사법부를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선거에 의하지 않고 구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사법부에게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라는 특별한 사명을 맡기고자 하는 헌법적 결단입니다.

  저는 사법부가 이러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는 것이 대법원장의 책무라고 생각하며, 신명을 다하여 그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특히 재판의 독립 없이는 법원이 결코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고 민주주의도 존속할 수 없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함에 있어 어떠한 형식의 부당한 영향도 받지 않도록 저의 모든 역량을 다 바칠 것을 약속합니다.

 

  존경하는 법관 여러분!

 

  저는 재판의 진정한 권위는 국민이 승복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고, 국민의 승복은 무엇보다도 재판하는 법관에 대한 존경과 믿음에서 우러나온다고 믿습니다. 법원에 대한 신뢰가 유달리 높은 영미 사회에서 법관이 존경받는 이유는 그 사람이 법관이기 때문이 아니라 법관이 되기 전에 이미 존경받고 있던 사람에게 법관직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하듯이, 법관은 법률전문가이기 전에 훌륭한 인품과 지혜를 갖춘 인격자이어야 합니다. 국민은 영리하기만 한 사람보다는 덕망 높고 이해심 깊은 사람이 법관이 되기를 더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법관인사제도는 법조인력의 부족함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최선의 제도로 가치를 발휘하여 왔습니다만 결코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이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관상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새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법관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할 영예로운 직분이지 결코 다른 목표를 향한 수단이 되거나 단순히 선망 받는 취업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재임기간 동안, 법관의 직에 있는 사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결한 인격과 높은 경륜을 갖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국민의 뇌리에 깊이 자리 잡게 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자 합니다. 법원에 개혁이 필요하다면 그 모든 개혁은 법관에 대한 존경과 신뢰 없이는 사법부의 미래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의식의 개혁과 성찰에서 출발하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이에 관하여 모든 법관들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제도를 고쳐 나가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사법부 구성원 여러분!

 

 

  사법의 1차적 기능은 평화로운 절차에 의하여 당면한 분쟁을 해소하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기능은 법원과 재판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의 바탕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신뢰 확보는 사법부의 변함없는 염원이었고, 사법부는 이를 위해 제도와 절차를 끊임없이 개선하며 부단히 노력하여 왔습니다. 또한 저는 모든 법원 구성원이 폭주하는 업무 속에서도 충실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의 수준은 결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자신할 수 없고, 들인 노력에 걸맞은 평가도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현실인 듯합니다.

그동안 사법부가 신뢰 확보를 위해 추진하여 온 여러 가지 노력과 성과는 당연히 이어가고 또 확대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노력이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를 찾아 새로운 각도에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국민이 분쟁 해소를 위한 법원의 사법기능을 잘 이해하는 바탕 위에서 투명하게 드러나는 재판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공정성을 확인할 때에 비로소 전폭적인 신뢰 확보가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국민과 진정으로 교류하고 소통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국민으로 하여금 법원 속을 들여다보게 하고, 거꾸로 우리가 국민 속으로 들어가 마음을 열어 보임으로써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투명하고 열린 법원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모든 방안을 강구하여 국민이 사법업무에 참여하는 문호를 넓히고, 법정뿐 아니라 법원 업무가 행해지는 모든 현장에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사법부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국민의 마음속에 튼튼히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법관 및 법원직원 여러분!

 

  유감스럽게도 재판에 임하는 국민의 인식이나 사법현실이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소 왜곡되어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재판은 충실하고 완벽한 심리절차를 거쳐 한 번으로 결론을 내는 것이 원칙이 되어야 하는데도 패소한 측은 끊임없이 상소를 거듭하며 3단계의 절차를 다 거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오늘의 재판현실입니다. 이로 인한 인적· 물적인 낭비는 막대합니다.

  그 위에 우리 사회는 날이 갈수록 다양성의 폭이 넓어지고 양극화 추세도 심화되어 분쟁의 양상도 점점 복잡해지고 격화되고 있습니다. 법조인 양성제도의 근본적 변화와 법률시장의 전면적 개방 등 사법 환경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지 못하고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다면, 사법부는 우리 사회가 바라는 분쟁해결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재판제도와 절차, 심급구조, 법원조직, 인사제도 등 기존의 사법제도에 관하여 깊이 있는 검토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진정 사려 깊고 혜안이 있는 법관이라면, 진정 성실하고 법원을 사랑하는 법원 가족이라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법부의 참된 모습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하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잘 헤아리고 나라를 위하는 최선의 사법제도를 창안하는 데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법원 가족 여러분!

 

  우리 사법부 앞에는 여러 어려운 과제와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난관과 도전도 우리가 가고 있고, 가야만 하는 길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 전진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어떠한 어려움도 헤치고 사법부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사법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어 나갑시다. 자유, 평등, 정의의 이념이 온 누리에 퍼져 모든 국민이 법의 혜택을 함께 누리면서 평화와 행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다함께 손을 잡고 노력합시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1. 9. 27.

 

                           

                                                                     대법원장 양 승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