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서로 꼭 붙들고

2010.02.16 15:02

범의거사 조회 수:17701

(오서빈 주례사)

  대설이 지나고 동지가 멀지 않은 계절이건만, 아직은 큰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쾌한 주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선 두 주인공이 뿜어내는 사랑의 열기에 아마도 동장군이 겁을 먹고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처럼 날씨마저 축복해 주는 오늘 이 자리에서 백년해로를 약속하는 신랑, 신부의 결혼을 먼저 진심으로 축하하고, 아울러 양쪽 집안의 어른들께도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 주기 위하여 연말의 바쁜 시간임에도 어려운 걸음을 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 및 양가의 婚主를 대신하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인 신랑 최종훈군은, 세명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의정부에서 의술을 펼치면서 21세기의 허준을 지향하고 있는 젊고 유능한 한의사이고, 또 하나의 주인공인 신부 오서빈양은 이화여자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내년 초에 법관으로 임용될 예정인 재원입니다.

  신랑 최종훈군과 신부 오서빈양이 처음 만난 것은 지금부터 3년 전인 2006년 가을이었습니다. 당시 신부 오서빈양은 사법시험 준비를 위하여 상주 도장산의 극락정사라는 절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천도제를 지내기 위하여 절에 온 사람이 바로 신랑 최종훈군이었습니다. 이 때의 서로에 대한 첫 인상을 두 사람은 “한 마리의 학”, “착하고 심성이 좋은 남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천도제라는 것이 본래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행사인데, 이 날의 천도제는 반대로 고인의 영혼이 두 사람을 인연의 끈으로 맺어주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두 사람 모두 첫눈에 반하여 꽁깍지가 내려앉은 것입니다.

  부모 자식의 사이가 되려면 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하는데, 남녀가 부부가 되려면 그보다 두 배인 이천 겁의 연을 쌓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영겁의 세월을 두고 쌓은 인연의 끈을 뒤늦게 발견한 두 청춘남녀에게는 안타깝게도 데이트할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한 사람은 사법시험을 앞두고 산속의 절에서 공부를 해야 했고, 한 사람은 천리 밖 머나먼 곳에서 의술을 펼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잠도 안 자고 책과 씨름하는 신부 오서빈양, 그 오서빈양을 보기 위해 주중 내내 환자를 돌보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편단심 의정부에서 상주의 극락정사로 허위허위 달려가는 신랑 최종훈군, 두 사람한테 일요일은 말 그대로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상주도, 청주도, 대전도 가는 곳마다 전부 극락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의 밀어를 나누며 애정의 깊이를 더해 가는데, 야속한 시간은 왜 그리도 빨리 흐르는지,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신랑 최종훈군은 의정부로 돌아가야 했으니... 서로서로 꼭 잡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판소리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대목의 마지막 장면인 “둘이 서로 꼭 붙들고 떨어지지를 못 하는구나” 바로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 밤이면 오서빈양의 베갯잇은 그리움의 눈물로 흠뻑 젖어야 했습니다.
  (아니 그런데 극락정사의 스님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비구니스님만 계신 절에서 머무르면서 이렇게 연애를 해도 되는 겁니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연애도 잘하는 건가요, 아니면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공부도 잘하는 건가요? 아무튼 신랑 최종훈군의 정성어린 외조 덕분에 신부 오서빈양은 그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고, 마침내 두 사람은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주례를 맡게 된 것은 제가 청주지방법원장으로 근무할 당시 오서빈양이 그곳에서 실무수습을 한 인연에서 비롯됩니다.
  두 사람이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러 왔을 때, 제가 두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서로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말입니다. 그러자 신랑 최종훈군은 신부가 밝고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신부 오서빈양은 신랑이 예의바르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습니다.

  "잘 생긴 남자를 만나면 결혼식 한 시간 동안의 행복이 보장되고, 가슴이 따뜻한 남자를 만나면 평생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쁜 여자를 만나면 삼 년이 행복하고, 밝고 순수한 여자를 만나면 영원히 행복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남자의 표상인 신랑 최종훈군과 밝고 순수한 여자의 표상인 신부 오서빈양이 오늘 부부로서 백년가약을 맺는 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믿는 부처님이 정해 주신 인연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객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두 사람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제 말씀에 동의하신다면 박수를 크게 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천생배필의 두 사람이기에, 어느 누구 못지않게 화목하고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나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오늘 이 자리의 주례를 맡아 두 사람으로부터 혼인서약을 받은 사람으로서, 신랑, 신부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먼저,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핑계로 상대방을 홀대하여서는 안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사랑할수록 상대방을 더욱 공경하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때로는 상대방을 어려워할 줄 알아야 그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됩니다.
  남을 존경하여야 내가 존경받는다는 것은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만고불변의 이치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혈육인 부자지간에도 1촌의 촌수가 있는 데 비하여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습니다. 이는 그만큼 부부가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뜻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만큼 먼 사이라는 뜻도 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 한 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말 한 마디에 쉽게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공경하고 고마워하라고 거듭 당부를 드립니다.

  다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수학공식을 푸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간에는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니라, 셋이나 넷이 될 수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왜 그러냐고 그 이유를 캐려 하지 마십시오. 그 대신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결혼생활은 혈처를 세밀하게 찾아 침을 놓듯, 법조문을 분석하듯, 따지고 캐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이기는 삶을 사려고 하지 마십시오. 너그럽게 져주는 삶이 필요합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 서기 전까지 30여년의 세월을 서로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따라서 생각이 다르고, 생활습관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통점만 보이다가 결혼 후에는 차이점만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던 연애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차이점이 그 콩깍지가 벗겨진 결혼생활에서는 한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차이점을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차이가 나냐고 따지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 대신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다음의 싯귀를 떠올리십시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기다렸다는 듯 당신의 따뜻함으로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김은미의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중에서)
  
  그렇습니다. 서로의 가슴속에 가득 채워져 있는 따뜻함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십시오. 視而不見하고 聽而不問하십시오.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따지고 캐묻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너그럽게 포용하고 감싸는 현명한 사람이 되라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습니다.

  셋째로, 두 사람 모두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기 바랍니다.  

  결혼은 일방통행도 아니고, 계약도 아닙니다. 결혼은 공통의 목표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합동행위입니다.  

  두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이 자리에 서게 되기까지를 두 사람 인생의 첫째 단계라 한다면, 오늘 이 순간부터는 그 인생의 둘째 단계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는 남편이 있기에 아내가 있고, 아내가 있기에 남편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서로의 共同善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이 펼쳐져야 합니다.
  두 사람은 이제 말 그대로 一心同體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것이 아니라 '네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너'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끝으로,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하십시오.

  법정스님은 언젠가 주례를 서시면서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두 권의 산문집과 한 권의 시집을 사 볼 것을 숙제로 내주신 일이 있습니다. 저는 거기까지는 못 미쳐도 신랑신부에게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할 것을 숙제로 내주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연애기간에는 신부 오서빈양이 공부하느라 여행을 함께 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여행을 많이 하십시오. 두 사람만의 여행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감흥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두 사람에게 내준 이 숙제를 잘 하는지는 앞으로 두고두고 지켜보겠습니다.

  이제 주례사를 마치면서 다소 주제넘기는 하지만, 양가의 부모님께도 한 말씀 올립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양가의 부모님들은 오늘의 결혼으로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스런 며느리, 사랑스런 사위를 새로운 식구를 맞이하는 것이므로, 그 며느리를 딸처럼, 그 사위를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십시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한 발짝 뒤에서 두 사람을 격려하고 지켜보시는, 더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두 사람이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개척하여 나가는 것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의 착한 마음씨와 빛나는 슬기로, 두 사람의 앞날에 무한한 영광과 행복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행복하고 또 행복하십시오.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 신부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 12. 13.

                         주례    민 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