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가 정착된 민주사회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의 비밀이 보호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헌법은 제17조, 제18조에서 개인의 사생활 보호 및 통신의 비밀 보호를 천명하고 있고, 이에 따라 통신비밀보호법은 불법도청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불법도청된 내용을 알게 된 사람이 이를 공개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처벌하고 있다. 

  불법도청만 금지하고 도청된 내용의 공개는 허용하게 되면, 도청행위자는 뒤에 숨고 다른 사람을 시켜 그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불법도청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어 불법도청이 만연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개행위도 함께 금지하고 처벌하여야만 불법도청 자체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기관이 개인의 사생활에서의 대화를 불법으로 도청한 내용을 언론기관이 입수하여 그 내용이 공적인 관심사에 해당한다며 공개한 경우는 어떤가? 공개자가 언론기관이면 면책되는 것인가? 사생활의 보호와 언론의 자유가 충돌하는 대목이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법원판결이 2011. 1. 17. 선고되었다.

 아래는 관련 기사이다.

 

                                                            ************************************************

  

‘안기부 X파일’ 보도 2명 유죄 확정 

대법, 언론자유보다 통신비밀 보호에 무게


2005년 ‘안기부 X파일’에 담긴 대화 내용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현 대통령정무1비서관)의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언론의 자유’와 ‘통신비밀 보호’가 충돌할 때 공익을 위한 보도라도 엄격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7일 두 사람에게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린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언론기관이 불법감청 및 녹음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감청된 대화의 내용을 보도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라며 “불법감청 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용을 공개하거나 공중(公衆)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한 경우가 아니면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기자는 옛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이 1997년 4∼10월 당시 이학수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이 정치권 동향과 대선주자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문제를 논의한 대화 내용을 도청한 테이프를 돈을 주고 입수해 보도한 혐의로, 김 전 편집장은 테이프 녹취록 전문을 게재한 혐의로 2006년 기소됐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10318/35669263/1)

 

안기부 X파일 보도 유죄’ 의미는

      

보도 불가피성·정당성 등 엄격 제한

"언론 자유 너무 좁게 봤다" 비판도


이른바 `안기부 X파일'을 보도한 기자에게 유죄를 확정한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헌법상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와 `통신의 비밀'이 충돌할 때 언론의 자유를 과연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기준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일부에서는 통신의 비밀에 비해 언론 자유의 범위를 너무 좁게 인정해 사실상 통신 비밀을 침해한 내용은 보도할 수 없도록 봉쇄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헌법 18조는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통신비밀보호법은 "불법 도청 등을 통해 얻은 통신·대화 내용을 공개하거나 누설하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5년 이하의 자격정지"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다수의견을 낸 8명의 대법관은 이 조항의 의미에 대해 "통신비밀을 침해해 수집된 정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함으로써 애초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불법의 결과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도청의 유인마저 없애겠다는 정책적 고려"라고 설명했다.


물론 공적인 관심사에 관한 언론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점은 개인 간의 통신 대화를 도청이란 불법적인 방법으로 파악했는데 그 내용이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도청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언론사가 보도할 수 있느냐에 맞춰졌다. 대법원은 "원칙적으로 언론보도는 통신 비밀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하지만, 도청 내용을 보도하는 것도 예외적으로는 정당행위로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예외로는 보도의 불가피성, 자료 입수 방법의 정당성, 침해의 최소성, 보도의 이익이 통신비밀 보호 이익을 초과할 것 등 네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특히 보도의 불가피성으로는 `보도의 목적이 불법 감청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때이거나, 도청된 내용을 공개하지 않으면 공중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뚜렷한 경우'로 엄격히 제한했다.


또 자료 입수방법의 정당성은 언론사가 적극적·주도적으로 도청 자료 입수에 관여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침해의 최소성은 보도 내용이 보도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부분에 한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에 비춰봤을 때 MBC 이상호 기자의 도청내용 보도는 `8년 전 대화'란 점 등에 비춰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뚜렷하거나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또 취재사례비로 1천달러를 제공하는 등 도청자료 입수에 언론이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대화 당사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해 침해의 최소성도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위법하다는 것이다.


반면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전수안, 이인복 등 대법관 5명이 "통신비밀보호에 편향돼 언론의 자유를 너무 좁게 허용해 문제가 있다"고 할 만큼 반대의견도 만만찮았다.


이들은 "대선 정국에서 후보 진영에 대한 정치자금 지원이나 정치인·검찰에 대한 추석 떡값 지급 등을 보도하는 것은 재계와 정치권의 유착관계를 근절하기 위한 것으로 시의성이 있고, 대기업 간부나 유력 일간지 사장은 공적 인물로 도청자료 공개에 따른 인격권 침해를 어느 정도 감수할 수 밖에 없다"며 보도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언론사가 통신비밀 입수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도 "사실상 본연의 취재활동을 하지 말고 우연히 수동적으로 얻어진 결과물만 보도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출처 http://news.donga.com/3/all/20110317/3566060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