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

2010.02.16 14:56

고현철 조회 수:14114

                              
먼저 저에게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주신 대법원장님과 동료 대법관님들,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저를 위해서 이 자리에 와주신 법원장님들과 법관 및 법원공무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35년 동안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이제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스물일곱 살에 법원에 들어와서 이제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법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살아온 법원을 떠나려 하니 실로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짊어지고 오던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게 되었다는 안도감도 느껴지고,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보다나은 법관생활을 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끌어 주시고 감싸주시고 격려해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가장 앞섭니다.

  저는 법관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또 남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법관이 되자는 생각을 가졌고, 대법관 청문회 때에도 이러한 저의 생각과 함께 법치주의의 확립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법원을 떠나면서 뒤돌아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았고 허물도 많았던 것 같아 아쉽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다만, 저로서는 그동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해 왔고 또 후회보다는 많은 보람과 긍지를 느끼면서 법원을 떠난다는 것을 여러분들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법원은 법령의 해석과 적용을 통하여 분쟁을 해결하고, 재판을 통하여 법과 원칙을 선언하는 실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복잡, 다양화되면서 이념과 이해관계의 대립이 점점 더 심해지고, 분쟁과 갈등이 증가되고 있습니다.  또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무조건 배격하려는 풍조가 퍼져 있고, 자기에게 유리하면 법을 내세우고 불리하면 법을 무시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를 극복하고 선진 민주국가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치주의의 확립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법치주의의 확립을 위해서는, 우리 법원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가운데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법과 원칙을 세워나가야만 합니다.
  
  그동안 우리 법원가족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또 국민의 신뢰를 받는 법원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상당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 법원에게 더 많은 노력과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법원을 떠나려고 합니다. 국민을 위한 법원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계시는 대법원장님, 홍수처럼 밀려오는 사건 속에서 오로지 사명감으로 수도승과 같은 길을 걷고 계신 동료 대법관님들, 그리고 과중한 업무 속에서도 공정한 재판과 법원의 발전을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시는 법관 및 법원공무원 여러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법원을 떠나더라도, 국민의 신뢰와 사랑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해가는 법원의 모습을 항상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법원생활에서 얻은 보람과 즐거움, 그리고 여러분들과의 인연을 가슴속에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늘 여러분들이 건강하시고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내내 안녕히 계십시오.


                                                      2009.  2. 17.

                                                      대법관 고 현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