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의 독립

2010.02.1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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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을 제35기로 수료하고 3년간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다 2009. 4. 1. 판사로 임용된 사람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장에서 이용훈 대법원장님이 "사법권의 독립"을 강조하는 말씀을 하셨다. "사법권의 독립"은 26년 전 판사로 처음 임용될 때부터, 아니 거슬러 올라가면 법과대학을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들어온 말인데도 새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래는 대법원장님의 말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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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 법관 여러분!

  여러분의 임관을 축하합니다. 여러분이 사법부의 새로운 구성원으로 들어오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이겨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성실함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이 자리에 서게 된 여러분을 아낌없이 격려하고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법관의 꿈을 이루었다는 성취감에만 젖어 있을 수 없는 것이 우리 법원의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법관의 길을 걷기 시작하려는 지금, 사법권의 독립, 그 가운데서도 법관 개개인의 재판의 독립을 열망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뜨겁게 분출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과 함께 국민이 그토록 바라는 법관의 재판상 독립이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헌법적 요청입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든 국가기관이 사법권의 독립을 존중하고 수호할 의무를 집니다만, 법관 개개인의 재판의 독립을 지켜나가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미룰 수 없는 우리 법관 모두의 헌법적 책무입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법관이 법대에 처음 올라서는 순간부터 법복을 벗을 때까지 법관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재판의 독립이 없이는 국민이 사법을 신뢰할 수 없고, 국민이 사법을 신뢰하지 못하면 사회적 안정과 번영의 토대인 법의 지배가 자리 잡을 수 없습니다. 재판의 독립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가져야만 진정 국민을 섬기는 법관이 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법관의 판단은 재판받는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음에 따라 부당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돈이나 권세를 가진 자에 대하여도 엄격하여야 하며, 큰 소리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당사자라고 하여 달리 대하는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법관의 재판상 독립은 어떠한 국가권력으로부터도 부당한 영향을 받아서는 아니 됨을 말합니다. 정치권력을 비롯한 법원 외부의 권력은 물론이려니와, 법원 내부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게, 직무상의 양심에 따라서만 판단함을 의미합니다.

   정치,경제,사회적 환경 변화에 따라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여론의 부당한 영향에도 주의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진정한 국민의 의사와 혼동하여서는 안 됩니다. 법관이 시류에 영합하고 중심을 잃어서는 진정한 재판의 독립을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법관은 또한,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법이 자기 자신의 주관이나 가치관에 반한다고 하여 이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법관도 인간인 이상 각자가 살아온 경험과 환경이 다르고 믿음과 신념의 체계가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관은 개인적인 요소를 뒤로하고 객관적인 법의 정신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재판을 하는 양심은 법관으로서의 양심이지 법관으로 임명받은 한 개인의 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국민이 원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전한 재판의 독립을 의미합니다. 모든 법관은 오로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희망하는 사법권의 독립은, 이러한 개개 법관의 강건한 의지가 한 데 모여 조화를 이루며, 전체 사법부의 의지로 승화될 때에만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친애하는 신임 법관 여러분!

   여러분은 재판권을 행사함에 있어 국민을 보는 시각을 올바르게 정립하여야 합니다. 법원에 재판받으러 온 국민은 단순히 사건처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법관들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사건이 법관의 손을 거쳐 가는 현실에서, 당사자의 인격과 존엄성은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당사자가 단지 법관이 처리할 일의 대상으로만 비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 당사자에 대하여 객관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일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엄연히 구별해야 합니다. 공정한 재판으로써 국민을 섬겨야 할 법관이, 일에 매몰되어 주인과 일의 대상을 혼동하여서는 곤란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심리하고 판단할 수없이 많은 사건은,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에 목매고 있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절박함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공정하게 판단하여 줄 것을 바라는 국민의 마음은 한결같은 것입니다.

   신임법관 여러분!

   여러분은 배석판사로서 법관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심리를 진행하는 절차는 재판장이 주재하겠지만, 배석판사에게도 사건을 종국적으로 해결할 책임과 권한이 동등하게 부여되어 있음을 잘 알아야 합니다. 사건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심리의 방향과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주심 판사의 책임은 대단히 크다고 하겠습니다. 배석판사라고 하여 판단의 책임을 재판장에게만 떠맡길 수 없습니다.

   사건 하나하나를 신중히 처리함에 있어서 여러분은 최대한의 정확성을 기하여야 합니다. 맡은 사건과 유사한 대법원 판례만을 찾아 기계적으로 적용하여서도 안 됩니다.

   얼핏 보면 기존 판례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도 면밀히 살펴보면, 사실의 확정이나 법률의 적용에 있어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치밀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시도하지 않고 판례를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적용하는 것 또한 국민이 원하는 재판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신임 법관 여러분!

   여러분이 들어선 법관의 길은 영예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예는 세속적 권력이나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법관은 국민의 의사에 다름 아닌, 법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선언함으로써 국민을 섬기는 일에서 삶의 만족을 찾아야 합니다. 수도자처럼 법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참다운 기쁨이 여러분 앞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우리 사법부의 역사를 만들어 나갈 분들입니다.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신뢰와 존경을 받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임관을 다시 한 번 축하하며, 여러분의 오늘이 있기까지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가족,친지분들께도 축하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9.  4.  1.


                                                             대법원장    이  용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