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죽을 권리

2010.02.16 14:59

범의거사 조회 수:17990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의 규정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것은 헌법 이전의 문제이다. 소위 천부적인 권리이지, 헌법에 규정됨으로써 비로소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참으로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동어반복일 수도 있다. 한편, 사람답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답게 죽는 것도 또한 인간의 존엄에 속할 것이다. 아무런 의식도 없는 회복불능의 식물인간 상태에서 기계에 의하여 목숨만 이어가는 상태의 사람을 두고 과연 존엄성 운운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생명이 전 지구의 무게보다도 무겁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 생명이 의미 있는 존재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무의미한 삶을 기계에 의하여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강요받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사람답게 죽겠다는 선택을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안락사는 아니더라도 소극적인 존엄사는 인정되어야 할 이유이다.

대법원에서 마침내 2009. 5. 21.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이로써 존엄사의 허용 여부를 둘러싼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여 그런 판결을 선고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인가를 두고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일 것이다.

이제는 존엄사의 허용 기준을 세심하게 정하는 일만 남았다. 그래야만 존엄사를 빙자한 현대판 고려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