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사

2010.02.16 14:27

김성호 조회 수:13883

  법무가족 여러분 ! 참 세월이 빠릅니다.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무더위도 가시고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높은 하늘에서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낍니다.
  28년 전 검사로서 공직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한데 벌써 법무부 장관의 직책을 마치고 여러분들에게 공직을 마감하는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서고 보니 국가와 사회와 함께했던 지난 30년간의 세월이 한편의 꿈 같이 아득하기만 합니다.
  큰 뜻을 품고 들어온 공직의 길에서 많은 사람과 사건을 만났고, 또 적지 않은 보람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24년간 검사로서 두 전직 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 수사 등 거악을 뿌리뽑는 일에 매진했고, 청렴위 사무처장으로서 범정부적 부패방지 시스템의 청사진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모두가 의미있고 보람된 시간이며 소중한 추억입니다.

  지난 해 8. 30.에 첫 청문회를 거쳐 장관에 취임하여 꼬박 1년을 여러분과 같이 생활했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1년 전 취임식에서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법과 원칙이 살아있는 행복국가’를 만들고, 국민을 위하여 확고한 원칙에 따라 열정적으로 일해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우리사회의 법과 원칙을 확립하고 국민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열심히 뛰어 다니다보니 어느덧 1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불법이 있으면 처벌과 손해 있다’는 명제가 국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서민의 권익이 확대되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충실히 보호되며, 기업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저를 믿고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준  여러분의 노고에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법무가족 여러분 !

  저는 최근 며칠 사이에 그동안 내가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위해 공무원의 길을 걸어왔는지 되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결론은 무엇보다도 먼저, 제 생각과 생활의 중심에는 항상 국민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취임사에서, 우리가 가마를 타는 상전이 아니라 국민을 모시는 가마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국민이 주인임을 명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결심이 요구되는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제 판단의 기준은 항상 「국민」이었습니다. 국민의 뜻을 따르고 국민의 권익을 위하여 일할 뿐 그 외 다른 어느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나 서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한 것도 그것이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국민경제에 기여한 공적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폄하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기업인들의 노력과 헌신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마음놓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고, 국민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터에서 안심하고 종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공직자는 모름지기 국민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사적 이익이나 정파적 이해관계로 국민을 빙자하거나, 기만하거나, 오도하거나, 무시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헌법 제7조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직자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어느 누구도 아닌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저는 업무수행에 있어서 항상 公正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오랜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 경험으로 터득한 진리입니다.
  저는 법무,검찰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반드시 지켜야할 덕목 하나를 고르라면 공정무사를 들고 있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법집행은 결코 국민의 승복을 받을 수 없고,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확인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바이레이도 “정부가 국민의 존경과 지지를 얻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정부가 국민의 욕구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국민의 신뢰이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교훈을 바탕으로 수사를 하거나, 민원인을 대하거나,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사사로움없이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양심만이 잣대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간혹 정책을 수립하거나 업무를 처리할 때에 그 배경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편향된 시각을 접할 때도 있었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향노루의 향기는 바람을 마주해 서 있지 않아도 저절로 퍼지는 것이니까요(有麝自然香 何必當風立).

  청탁이 보편화된 현실사회에서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다보니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섭섭하거나 노여운 감정을 느끼게 하였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외골수에 가까운 저의 모자라지만 똑바로 걷는 걸음을 이해해 주리라 믿습니다. 제가 가진 것은 권한이 아니라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로, 봄비에 촉촉이 젖은 새 풀잎처럼 싱그러운 상태로 남아있고 싶었습니다.

  다소 반복되는 업무로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공무원으로 첫발을 내딛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내가 품었던 뜻과 마음가짐을 되새겼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민원인이든 상사든 누구를 만나더라도  당당하고 스스로도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는 길이 항상 장밋빛만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사막을 만나고 때로는 낭떠러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옳은 일에는 망설이지 않고 옳지 않은 일은 스스로 삼감으로써 언제나 영혼이 맑은 사람으로 신선함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연꽃이 더러운 진흙속에 피면서도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맑고 깨끗함을 지켜가듯이(처렴상정, 處染常淨) 저도 ‘국민의 호민관’ 으로서 청렴과 절제된 생활을 견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시지프스의 운명과 같은 힘든 일상생활에서도  작은 행복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행복해야 국민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할 수 있고, 행복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바쁜 중이라도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보고, 맨발로 풀밭을 걸어 보면서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무가족 여러분 !

  이제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정약용 선생은 ‘벼슬은 갈리게 마련이니 갈려도 놀라지 말고 잃어도 연연하지 말라. 벼슬을 헌신짝 같이 버리는 것이 옛사람의 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자리를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다만 정든 여러분과의 작별이 못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혹여 저와 근무하는 동안 힘들었거나 불편을 느낀 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저의 부덕의 소치이므로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맹자는, 뜻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그 뜻을 실천해 가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자기의 道를 행하여 부귀도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고 빈천도 그의 지조를 변하게 하지 못하며 무력(武力)도 그의 뜻을 꺾지 못하는 사람을 대장부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곁을 떠나더라도 법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서 대장부의 기개로 국가와 사회에 더욱 헌신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진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또 응원하겠습니다.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감사합니다.

                                                 2007.  9.  3.
                                             법무부장관  金  成  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