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대법관의 퇴임사

2010.02.16 14:03

범의거사 조회 수:16604

  이용우 대법관님이 36년간의 법관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10월 10일 퇴임하셨다. 당신을 보면 언제나 꼿꼿한 선비의 자세, 옛날 남산골에 살았다는 딸깍발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부터 15년 전인 1990년 대구고등법원 판사 시절, 당신의 배석판사를 하였던 기억을 되살리며, 법관으로서의 자세를 강조하시는 모습에 새삼 옷깃을 여민다.
  떠나시는 대법관님의 건강을 빌면서 당신의 퇴임사를 여기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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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  임  사

  존경하는 법원가족 여러분.

  오늘 저는 36년간의 법관생활을 마치고 법원을 떠납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3배도 넘는 세월 동안 법관으로서의 한 길을 걷다가 이제 자유의 몸이 됩니다. 그 중 대법관으로 있었던 마지막 6년의 기간은 그 업무의 양과 질로 인하여 그야말로 ‘고난과 보람의 긴 터널’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경제개발이라는 기치 아래 권위주의정부가 지배하던 시대에 법관직을 시작하여, 또 한 번의 군사정부와 처절한 민주화투쟁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사회의 주류세력이 교체되는 진통을 겪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파란 많은 세월 속에서 법관직을 수행했습니다.

  모순과 불의가 지배하기도 했고 이념의 충돌이 표면화되기도 한 시대에 재판을 해 오면서도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소신을 피력하면서 36년간이나 법관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앞서 가신 선배님들과 법원가족 여러분들의 격려와 따뜻한 보살핌으로 인한 것이기에, 오늘 저는 법관직을 마감하면서 이에 대한 감사와 또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이제 두려운 마음으로 법원의 문을 나섭니다. 사람은 어떤 자리에 있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영예로운 자리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한 일이 국민과 역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더 이상 영예가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저는 오늘 제가 한 많은 판결들을 국민과 역사 앞에 내놓으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법원을 떠납니다.

  저는 우리의 헌법상 체제인 자유민주주의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아무리 통일이 우리의 염원이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가 없는 통일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통일과 민족에 대한 열정이 지나친 나머지 자유민주주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지합니다. 그리고 세계화는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물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주의는 달콤하고 정의로운 것 같지만 이상에 불과할 뿐 현실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사상임은 역사가 증명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사회주의적 사고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인권은 자유민주주의의 요체이므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한편 저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인권의식의 과잉으로 혹시 다른 사람의 권리나 이익이 훼손되고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는 일은 없는지 유의하기도 합니다.
  표현의 자유와 공적존재의 명예가 충돌하는 경우에 저는 전자에 약간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념을 둘러싼 논쟁에 대하여는 그것이 국가의 정체성과 관계되므로 쉽게 언로를 봉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정, 공명한 선거풍토의 조성은 올바른 민주주의 정착을 위하여 필수적이므로 각종 선거관련 사건의 재판에 있어서는 극히 엄정하게 대처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기본생각을 가지고 재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념의 추구보다는 현실의 발전을 중시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그러나 제가 한 판결들은 무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겸허히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법원을 떠나면서 후배 여러분들에게 노파심에서 한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합니다.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사법부의 독립을 걱정할 일이 어디에 있느냐고 생각하실지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사법부 독립에 대한 위협요인은 과거와 같이 국가권력이 아니라 각종 이익단체나 이념단체 그리고 정치세력 등 목소리 큰 사람들의 압력입니다.
  사회적 쟁점이 문제로 된 사건의 재판에 있어 여러분들은 혹시 그러한 목소리 큰 사람들의 다양한 형태의 공격에 신경을 쓰지 않으십니까. 그 때문에 혹시 법률과 양심에 따른 진정한 정의의 선언을 왜곡시키거나 침묵하려는 유혹을 받지는 않으십니까. 이러한 압력을 이겨내기 위하여는 뚜렷한 소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믿겠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들에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대한민국 사법부 만세!!!


                                                   2005.  10.  10.      
                                                      이   용   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