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원이 제 손으로 法의 권위를 무너뜨리면

2010.02.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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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 법원이 제 손으로 法의 권위를 무너뜨리면

입력 : 2006.12.22 22:35

21일 386간첩단 ‘일심회’사건 첫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에는 대한민국도, 法법도 없었다. 수십 건의 국가 기밀을 北북에 보고하고, 일부는 김정일에 충성 서약까지 했다는 간첩 혐의자 5명은 법정에 들고 날 때마다 의기양양하게 주먹을 쥐어 흔들었다. 방청객 100여 명은 “힘내라” “파이팅”하는 소리와 함께 起立박수까지 쳤다. “소리 지른 사람 일어나라”는 재판장 명령은 “그냥 넘어가자”는 방청객들의 야유에 파묻혔다.

재판장이 방청객 한 명을 지목해 監置 명령을 내리자 방청석에선 “5공 파쇼재판이냐” “야, 이 ×새끼 美帝 앞잡이야”라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검사를 향해서도 “이 개×끼 두고 보자,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쓰레기 같은 자식들” “민노당에 대한 테러다. 민노당원 다 구속해라”라는 욕설과 삿대질이 쏟아졌다. 끝내는 재판이 20분 넘게 중단됐다. 방청객 대부분은 이번 사건으로 전·현직 간부 두 사람이 구속된 민노당 당원들이었다고 한다.

재판장은 이런 아우성과 욕설과 고함 속에 법정 질서가 무너져 내렸는데도 이미 했던 감치 명령까지 20분 만에 스스로 거둬들였다. 한 명의 방청객도 처벌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법원은 판사와 검사를 모욕하고 재판까지 중단시킨 난동꾼들에게도 이처럼 자비롭다. 형법138조 ‘법정모욕죄’는 法典 안에서 그만 숨을 거둔 모양이다. 재판장은 이날 아수라장이 된 법정은 자기 개인의 가게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법이 실현되는 公的 장소라는 생각이라도 했을까.

이 정권이 퍼뜨린 ‘無法的 진보 바이러스’에 사법부가 이 정도로 심하게 감염돼 버린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는 것이 좋다”고 假매장해 버렸고,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간첩들을 민주화 有功者로 포상하고 있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사 기준으로 정권 386들의 정치 구호인 ‘시대정신’을 들고 나올 정도가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판사들은 불법 시위 前科4범이 경찰의 이를 부러뜨려도, 정부청사에 쳐들어가도, 불법 집회를 14차례나 주도해도 영장을 기각해버리게 된 것이다.

권위는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지켜가고 쌓아가는 법이다. 법원이 제 발로 법과 법원의 권위를 흔들면 언젠가는 대법원의 천장에 금이 갈 날이 오고 말 것이다.